제2회

靑坡士人柳泳, 飽聞此園之勝槪, 思欲一遊焉, 而衣裳藍縷. 容色埋沒, 自知爲遊客之取笑, 況將進而趑趄者久矣.

청파사인 유영은 이 동산의 경개를 실컷 듣고서 한 번 놀러가자고 벼렸지만 의상이 남루하고 용모가 남에게 못미쳐 유객들의 비웃음을 살 것을 알면서도 행차하려다가 주저한 지가 오래였다.

萬歷辛丑春三月旣望, 沽得濁醪一壺, 而旣乏童僕, 又無朋知,

만력(萬曆) 신축(辛丑,1601년) 춘삼월 16일에 탁주 한 병을 샀으나 동복도 없고 또한 친근한 벗도 없었다.

躬自佩酒, 獨入宮門, 則觀者相顧, 莫不指笑.

몸소 술병을 차고 홀로 궁문으로 들어가 보니, 구경 온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고 손가락질하면서 웃지 않는 이가 없었다.

生慙而無聊, 乃入後園. 登高四望, 則新經兵燹之餘, 長安宮闕, 滿城華屋, 蕩然無有,

유생은 하도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모르다가 바로 후원으로 들어갔다. 높은데 올라서 사방을 보니, 새로 임진왜란을 갓 겪은 후라, 장안의 궁궐과 성안의 화려했던 집들은 탕연(蕩然)하였다.

壤垣破瓦, 廢井堆砌. 草樹茂密, 唯東廊數間, 蘬然獨存.

부서진 담도 깨어진 기와도, 묻혀진 우물도, 흙덩어리가 된 섬돌도 찾아볼 수 없었다. 풀과 나무만이 우거져 있었으며, 오직 동문 두어 칸만이 우뚝 홀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生步入西園, 泉石幽邃處,

유생은 천석(泉石)이 있는 그윽하고도 깊숙한 서원으로 들어가니,

則百草叢芊, 影落澄潭, 滿地落花, 人跡不到,

온갖 풀이 우거져서 그림자가 밝은 못에 떨어져 있었고, 땅 위에 가득히 떨어져 있는 꽃잎은 사람의 발길이 이르지 아니하며

微風一起, 香氣馥郁.

미풍이 일 적마다 향기가 코를 찔렀다.

生獨坐岩上, 乃咏東坡,

유생은 바위 위에 앉아 소동파가 지은

‘我上朝元春半老, 滿地落花無人掃’之句,

我上朝元春半老 아침에 일어나보니 봄은 거의 지나갔고

滿地落花無人掃 지천으로 널린 낙화 쓰는 이 없네.

라는 시구(詩句)를 읊었다.

輒解所佩酒, 盡飮之, 醉臥岩邊, 以石支頭.

문득 차고 있던 술병을 풀어서 다 마시고는 취하여 바윗가에 돌을 베고 누웠다.

俄而酒醒, 擡頭視之, 則遊人盡散,

잠시 후 술이 깨어 얼굴을 들어 살펴보니 유객은 다 흩어지고 없었다.

山月已吐, 烟籠柳眉, 風動花腮.

동산에는 달이 떠 있었고, 연기는 버들가지를 포근히 감쌌으며, 바람은 꽃잎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時聞一條軟語, 隨風而至.

그때 한 가닥 부드러운 말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生異之, 起而訪焉,

유영은 이상히 여겨 일어나서 찾아가 보았다.

則有一少年, 與絶色靑蛾, 斑荊對坐, 見生至, 欣然起迎.

한 소년이 절세(絶世) 미인(美人)과 마주 앉아 있다가 유영이 옴을 보고 흔연히 일어나서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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