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삿갓과 기녀의 유머♠

김삿갓이 일생을 죽장망혜(竹杖芒鞋)로 세상을 유람하다가 단천(端川) 고을에서

결혼을 한 일이 있었다...

젊은 청춘 남녀의 신혼 밤은 시간시간마다

천금이 아닐 수 없지 않는가....

불이 꺼지고 천재시인과 미인이 함께 어울어졌으니 그 즐거움이야 어찌 이루 다 말할수 있겠는가....?

뜨거운 시간에 취해 있었던 김삿갓이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 쓴 사람처럼 불이나케 일어나서 불을 켜더니

실망의 표정을 지으면서 벼루에 먹을 갈고

그 좋은 명필로 일필휘지하였는데,

毛深內闊

모심내활, 털이 깊고 안이 넓어 허전하니

必過他人

필과타인, 필시 타인이 지나간 자취로다.

 

이렇게 써놓고 여전히 입맛만 다시면서 한 숨을 내쉬고 앉아 있었다.....

신랑의 그러한 행동에 신부가 의아해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신랑이 일어나는 바람에 원앙금침에 홀로 남아

부끄러움에 감았던 눈을 삼며시 뜨고 김삿갓이 써놓은 화선지를 살펴보곤

고운 이마를 살짝 찌푸리듯 하더니

이불에 감싼 몸을 그대로 일으켜

세워 백옥같은 팔을 뻗어 붓을 잡더니 그대로 내려쓰기 시작했다.

 

後園黃栗不蜂坼

후원황률불봉탁

뒷동산의 익은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저절로 벌어지고

溪邊楊柳不雨長

계변양류불우장

시냇가의 수양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더이다.

 

글을 마친 신부는 방긋 웃더니 제자리로 돌아가 눈을 사르르 감고 누었다.

신부가 써놓은 글을 본 김삿갓은 잠시 풀렸던 흥이 다시 샘솟으며 신부를 끌어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기의 처녀성을 의심하는 글월도 글월이거니와

이에 응답하는 글 역시 자연 관찰을 바탕으로 문학적 표현을 해 놓았으니 

유머도 이쯤 되면 단순한 음담패설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하겠다.

인생의 의미를 알려고 하기보다

홍경래에게 굴복한 조부의 연좌제에 걸린 불우한 처지의 그 인생을

풍자와 냉소와 유머로 즐기며 살다간 팔자도 참 기구한 사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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