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변 九辯 卷八

[은자주]왕일은 <구변>이 굴원의 제자 송옥의 작품이라고 했으나 명대 이후에는 그 풍격에 있어 <이소><구장> 등과 유사한 점을 들어 굴원 설도 강하게 제기되었다.

어쨌거나 은자는 이 시에 동원된 가을의 정서와 어휘에 주목한다. 신파극이나 일제 식민지시대 유행가 가사에서부터 트로트 노래 가사나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언급한 가을의 모든 것들이 총망라된 느낌을 받는다. 나 자신부터 이 시를 통해 가을 정서에 폭과 깊이가 더해지기를 빌어본다.

九辯의 九는 숫자의 陽을, 辯은 變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九는 11장으로 된 초사를 九歌라 하듯이 곡조의 명칭에서 온 것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그 내용은 방축된 굴원이 가을날을 보내며 자신의 추락을 무의식의 심층에 깔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수(憂愁)를 한껏 노래한 작품으로 보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분량 때문에 2회에 나누어 싣는다.

悲哉 秋之爲氣也,

蕭瑟兮(1) 草木搖落易變衰,

憭慄兮 若在遠行,

登山臨水兮 送將歸.

슬프다, 가을의 절기여!

쓸쓸한 가을바람에 초목이 떨어져 시들어가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 먼 길 떠난 나그네처럼 마음 아파오는데,

산을 올라 강물에 임하여 벗을 전송하는 듯하다.

(1)蕭瑟(소슬): 가을 바람이 쓸쓸히 부는 모양.

沆寥兮 天高而氣淸,

寂寥兮 收潦而水淸,

憯悽增欷兮 薄寒之中人.

텅 빈 하늘은 드높고 대기는 청명하고

고요히 흐르는 가을 물은 맑기도 하다.

마음이 아파서 탄식하는데 차가운 기운이 내 몸에 스며든다.

愴怳懭悢兮 去故而就新.

坎廩兮 貧士失職 而志不平.

廓落兮 羇旅而無友生.

惆悵兮 而私自憐. (2)

슬프고 실의에 차니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따르리.

불우하고 가난한 선비는 직분을 잃고 평상심을 잃으니

원망에 가득차도다. 쓸쓸한 나그네 신세에 벗조차 없도다.

서글픈 마음을 스스로 달래보네.

(2)惆悵추창: 실망하여 탄식하는 모양.

燕翩翩其辭歸兮, 蟬寂漠而無聲.

鴈廱廱而南遊兮,(3) 鵾雞啁哳而悲鳴.(4)

제비는 훨훨 날아 떠난다 인사하고

매미는 적막하여 아무 소리 없구나.

기러기는 화락하게 울며 남쪽에서 노니는데

고니새 끼역끼역 슬피 운다.

(3)廱廱(옹옹): 화락한 모양.

(4)鵾鷄(곤계): 애완용 닭.고니새. 啁哳(조찰): 새가 연달아 우는 모양.

獨申旦而不寐兮, 哀蟋蟀之宵征 (6)

時亹亹而過中兮,(7) 蹇淹留而無成.

날이 밝아오지만 홀로 뜬눈으로 꼬박 새우니

귀뚜라미만 밤길에 슬피 운다.

세월은 쉼 없이 흘러 절반을 넘었건만,

아, 머물려 해도 쓸데없구나.

(6)蟋蟀(실솔): 귀뚜라미과에 속하는 곤충. 첫가을부터 밤에 움.

(7)亹亹(미미): 흐르는, 달리는, 진행하는, 부지런히 힘쓰는 모양.

悲憂窮戚兮獨處廓, 有美一人兮心不繹.

去鄕離家兮徠遠客, 超逍遙兮今焉薄?

슬프고 답답하기 그지없어 홀로 떨어져 거처하는데,

아름다운 한 사람이 있어 마음이 편하지 않다.

고향을 버리고 집을 떠나서 먼 길 떠난 나그네 신세,

멀리서 헤매이다 이제 어디에 머물까?

專思君兮不可化, 君不知兮可奈何!

蓄怨兮積思, 心煩憺兮忘食事,

오직 임 그리는 마음 변함 없건만

임이 몰라주시니 어찌해야 하나?

쌓인 원망과 그리움 때문에

마음이 번잡하여 식사도 잊었다.

願一見兮 道余意, 君之心兮 與余異.

車旣駕兮 朅而歸, 不得見兮 心傷悲.

한 번 뵈옵고 나의 뜻을 말하려 해도

임의 마음은 나와 다르구나.

수레를 타고 하마 돌아가시니

뵙지 못해 내 마음만 찢어진다.

倚結軨兮長太息, 涕潺湲兮下霑軾.

忼慨絶兮不得, 中瞀亂兮迷惑.(8)

私自憐兮何極? 心怦怦兮諒直.

수레난간에 기대어 길게 한숨 쉬니

줄줄 흐르는 눈물 떨어져 수레 가로막이를 적시네.

끓어오르는 안타까움으로 죽으려 해도 할 수 없으니

마음 속 어둡고 어지러워라.

내 아픈 마음 언제나 다할까?

내 마음은 성실함과 충직함뿐이어라.

(8)亂(무란): 어지러움.

皇天平分 四時兮, 竊獨悲此廩秋.1]

白露旣下百草兮,2] 奄離披此梧楸.3]

하늘은 고르게 사계절을 나누신데

나는 유독 이 찬 가을이 서글프다.

흰 서리 백초에 서렸으니,

어느덧 이들 오동과 가래나무가 흩어지리라.

1)늠(廩):차다. 늠추(廩秋):차가운 가을.

2)하(下):내리다.(서리)

3)엄(奄):갑자기. 이피: 흩어뜨리다. 오추: 오동과 가래나무.

去白日之昭昭兮,4] 襲長夜之悠悠.5]

離芳薆之方壯兮,6] 余萎約而悲愁,7]

밝은 해는 지고

기나긴 밤이 오니

풀향기는 흩어지고

시들어져 쓸쓸해져 가네.

4)소소: 밝다. 밝은 해.

5)습: 밀려오다. 유유: 길고 긴. 그지 없다.

6)방애: 향기 부성하다. 때마침 젊은 때. ‘향기 짙은 젊은 날을 잃다.’

7)위약: 시들어 쪼그러 들다.

秋旣先戒白露兮,8] 冬又申之以嚴 霜,9]

收恢台之孟夏兮,10] 然欿傺而沈藏.11]

가을은 벌써 흰 서리로 알리고

겨울도 찬 서리로 겹쳐오니

초여름이 가시고

곧 안타까이 모두 깊이 숨는도다.

8)先戒선계: 먼저 알리다.

9)申신: 겹치다. 엄상: 찬 서리.

10)恢台회태: 넓고 큰 모양. 거대한 것.

11)然연: 이에. 곧. 欿감체: 걱정하여 물끄러미 있다.

葉箊邑而無色兮,13] 枝煩拏而交橫,14]

顔淫溢而將罷兮,15] 柯彷彿而萎黃.16]

잎이 말라서 고운 빛 자취 없고

가지는 어지러이 얽혀

빛은 갈수록 바래고

가지 끝에는 똑같이 시들어 누렇게 되었구나.

13)어읍: 초목이 마르고 시듦.

14)번여: 어지럽다. 번거롭다.

15)淫溢 음일: 점점 갈수록. 피: 바래다., 덜다.

16)柯가: 나뭇가지. 방불: 그처럼. 따라서. 위황: 말라서 누렇게 되다.

箾櫹槮之可哀兮,17] 形銷鑠而瘀傷.18]

惟其紛糅而將落兮,19] 恨其失時而無當,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뻗어 있어 더욱 서글픈데

이 내 몸도 여의어서 병에 들었도다.

근심 어린 생각 어지러운데

좋은 때 놓치고 어쩔 수 없으니 원망스럽네.

17)소: 줄기만 남는. 소삼: 잎이 지고 가지만 길게 있는 것. ‘줄기만 남아 가지가 길게 뻥어 있어 슬퍼진다.’

18)소삭: 마르다. 어상: 병으로 몸이 마르고 약해지다.

19)유: 생각. 근심. 분유: 매우 번잡하다. 어지럽다. 무성하다.

擥騑轡而下節兮,20] 聊逍遙以相佯,21]

歲忽忽而遵盡兮,22] 恐余壽之弗將,23]

곁마의 고삐잡고느긋하게 걸어보지만

오직 소요하며 배회한다.

세월은 어언 다 가고

내 인생 얼마 남지 않은 듯,

20)擥남: 쥐다. 잡다. 騑轡비비: 곁마의 고삐. 하절: 채찍을 당기다.

21)相佯상양: 머뭇거리다. 배회하다.

22)遵盡준진: 다 지나가다.(세월)

23)將장: 길다.

悼余生之不時兮,24] 逢此世之俇攘,25]

澹容與而獨倚兮,26] 蟋蟀鳴此西堂.

내 인생 헛되이 보낸 일 슬퍼지누나.

이 슬프고 두려운 세상을 만나서

조용히 홀로 살아가려니

쓸쓸히 귀뚜라미 이 서당에서 우는구나.

25)俇攘광양: 허둥거리며 어쩔 줄 모름. 슬프고 두려운 모양.

26)獨倚독의: 홀로 서다. 외로이 살다.

心怵惕而震盪兮,27] 何所憂之多方. 28]

卬明月而太息兮,29] 步列星而極明.30]

이 마음 놀라고 두려워서 울렁거리니

이 많은 근심을 어찌하면 좋을 건가!

밝은 달 쳐다보며 긴 한숨 쉬노라니

뭇별만 헤며 지새는구나.

27)惕출척: 놀라고 두려운 것. 진탕: 떨리고 울렁거림.

28)多方다방: 여러 가지. 여러 개. 많은 의미.

29)卬앙: 바라보다.

3)步列星보렬성: 헤아리다. ‘많은 별을 헤아리며 밤을 새다.‘ 극명: 날이 새다

四.

竊悲夫蕙華之曾敷兮,⑴ 紛旖旎乎都房⑸,

何曾華之無實兮,⑹ 從風雨而飛颺⑺.

혜초꽃이 겹겹이 피어

큰 화방에 가루 되어 무성한데 남몰래 어이 슬퍼하는지.

어찌 겹겹이 핀 꽃이 열매 없이

비바람을 따라 흩날리는가.

⑴ 蕙華 : 蕙草, 좋은 향내가 나는 난초에 속하는 풀.曾敷 : 겹겹이 피다.

⑶ 旖旎 : 盛한 모양,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양, 깃발이 펄럭이는 모양.

乎 : 於 와 뜻이 같음. 都房 : 큰 花房.

⑹ 曾華 : 겹겹이 핀 꽃.

⑺ 飛颺 : 飛揚과 상통함. 날아가다, 흩날리다.

以爲君獨服此蕙兮, 羌無以異於衆芳.

閔奇思之不通兮,⑻ 將去君而高翔,

임을위함으로써 홀로 그 혜초를 입고 있으나,

아!임은 다른 꽃과 구별해 보지 않으시네.

충성 어린 마음이 통하지 않음을 슬퍼하니

장차 군주를 떠나 높이 날으리라.

⑻ 奇思 : 기이한 생각. 여기서는 충성 어린 마음을 나타냄.

心閔憐之慘悽兮,⑼ 願一見而有明,

重無怨而生離兮,⑽ 中結軫而增傷,

마음이 아프고 슬퍼서

임을한 번 뵙고 뜻을 아뢰기를 원하나

원한도 없이 멀쩡히 버림받은 것을 깊이 생각하네.

마음이 맺혀 아픔을 더하니

⑼ 慘悽 : 마음이 슬프고 쓰리다.

⑽ 重 : 깊이 생각하다, 심히 생각하다, 중히 여기다.

豈不鬱陶⑾而思君兮, 君之門以九重,

猛犬狺狺⑿而迎吠兮, 關梁⒀閉而不通,

어찌 마음이 울적하여 군주를 생각지 않으리요?

임계신 집의 문이 아홉 겹이니

사나운 개가 서로 물어뜯고 으르렁 짖어대며 맞이하고,

관문과 교량이 막혀 통하지 않으며

⑾ 鬱陶 : 마음이 답답함, 의기가 꺾여 위축된 모양.

⑿ 狺狺 : 개가 서로 으르렁거리며 물어뜯는 소리.

⒀ 關梁 : 관문(關門) 과 교량(橋梁)

皇天淫溢而秋霖兮,⒁ 后土⒄何時而得漧.

塊獨守此無澤兮,⒅ 仰浮雲而永歎.

하늘에서 비가 많이 내려 가을에 장마지니

이 나라의 땅은 언제나 마를것인지.

홀로 이 물이 없는 못을 지키며

뜬 구름을 바라보며 길게 탄식하네.

⒁ 皇天 : 하늘의 敬稱. 淫溢 : 비가 많이 내린다는 뜻. 秋霖 : 가을 장마.

⒄ 后土 : 토지를 맡은 신, 국토.

⒅ 塊獨 : 홀로, 孤立, 孤獨. 無澤 : 물이 없는 못, 왕의 은총을 받지 못함을 비유.

五.

何時俗之工巧兮, 背繩墨⑴而改錯,

卻騏驥⑵而不乘兮, 策駑駘⑶而取路.

어찌 세속이 (바르지 않고) 교묘한가?

법도를 어기고 잘못되어

駿馬를 팽개치고 타지 않으며,

느린 말을 채찍질하여 갈길을 취하네.

⑴ 繩墨 : 먹줄, 法, 法度, 準則.

⑵ 騏驥 :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는 駿馬.

⑶ 駑駘 : 느린 말, 굼뜬 말.

當世豈無騏驥兮, 誠莫之能善⑷御.

見執轡者非其人兮, 故國跳⑸而遠去.

당세에 어찌 駿馬가 없으리요,

진실로 능히 말을 잘 부릴 수 없음이로다.

고삐를 잡고 있는 자를 보면 그 사람이 아니거늘,

말이 서서 몸부림치며 뛰어 멀리 가네.

⑷ 善 : 잘하다.

⑸ 國跳 : 말이 서서 몸부림치며 뛰다.

鳧鴈皆唼夫粱藻⑹兮, 鳳愈飄翔而高擧.

圜鑿而方枘兮, 吾固知其鉏鋙⑺而難入.

오리와 기러기 모두 기장과 물풀을 쪼아 먹으며

봉황이 가벼이 날아 높이 올라가네.

둥근 구멍과 네모진 자루가

내 진실로 서로 어긋나 들어가기 어려운 것을 알고 있네.

⑹ 梁藻 : 기장(수수)과 물풀.

⑺ 鉏鋙(서어) : 서로 어긋남.

衆鳥皆有所登棲兮, 鳳獨遑遑而無所集.⑻

願銜枚而無言兮,⑼ 嘗被君之渥洽⑽.

뭇 새가 올라 깃들 곳이 있지만

봉황만은 갈 곳 없이 헤매이며 모일 곳이 없도다.

재갈을 물고 말을 하지 않음을 원하니

예전에는 군주의 두터운 은덕을 입었었네.

⑻ 遑遑 : 마음이 몹시 급하여 허둥지둥하는 모양, 갈 곳 없이 헤매는 모양.

⑼ 銜枚(함매) : 옛날에 진군할 때에 군졸이나 말이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입에다 나무를 물리던 일에서 인용됨.

⑽ 渥洽(악흡) : 두터운 은덕(隱德).

太公⑾九十乃顯榮⑿兮, 誠未遇其匹合⒀,

謂騏驥兮安歸? 謂鳳皇兮安棲?

太公은 九十 세에야 이름을 드러냈으니

진실로 그 알맞은 짝을 만나지 못했음이라.

준마(駿馬}에게 어디로 돌아가라고 말하리요?

봉황에게 어디에 머물라고 말하리요?

⑾ 太公 : 周初의 賢臣인 呂尙. 90세에 文王을 만남.

⑿ 顯榮 : 입신하여 번영함, 이름을 날리다.

⒀ 匹合 : 알맞은 짝, 동지.

變古易俗兮世衰, 今之相者⒁兮擧肥,

騏驥伏匿而不見兮, 鳳皇高飛而不下,

옛 좋은 풍속이 바뀌어 세상이 쇠하니

오늘날의 말을 가려내는 자는 살찐 말만을 내세우네.

駿馬는 숨기어 보이지 않고

봉황은 높이 날아 내려오지 않으니,

⒁ 相者 : 會同같은 것의 禮式을 행할 때 주인을 돕는 사람. 또는 관상쟁이, 相人.

鳥獸猶知懷德兮, 何云賢士之不處,

驥不驟進⒂而求服兮, 鳳亦不貪餧⒃而妄食.

새와 짐승이 또한 바른 덕을 지닐 줄 안다면

어찌 어진 선비가 있지 않고,

준마가 급히 나아가 타기를 구하지 않으며,

봉황이 먹을 것을 찾아 무턱대고 먹는다고 말하겠는가?

⒂ 驟進(취진) : 급히 나아가다.

⒃ 貪餧(탐위) : 먹을 것을 찾다.

君棄遠而不察兮, 雖願忠其焉得.

欲寂漠而絶端兮, 竊不敢忘初之厚德,

군주가 멀리 버리고 돌아보지 않으시니

비록 충성하기를 원하나 어찌할 수 있으리요.

조용히 모든 생각을 끊고자 하나

처음의 도타운 덕을 감히 잊을 수 없어서

獨悲愁其傷人兮, 馮鬱鬱⒄其何極?

홀로 상처받은 사람(군주)을 슬퍼하며 가슴 아파하니

분하고 답답한 마음 그 어느 때 그치겠는가.

⒄ 鬱鬱(울울) : 기분이 언짢은 모양, 우울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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