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직각(南直閣) 공철(公轍) 에게 답함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 연암집 제 2 권


[주C-001]남 직각(南直閣)에게 답함 : 남공철(南公轍 : 1760 ~ 1840)은 본관이 의령(宜寧)으로, 세손(世孫) 시절 정조(正祖)의 사부였으며 대제학을 지낸 남유용(南有容)의 아들이다. 1792년 전시(殿試) 급제 후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선발되고 규장각 직각, 홍문관 부교리에 임명되는 등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순조 때 더욱 현달하여 대제학,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당대의 문장가로 평판이 높았으며 문집으로 《금릉집(金陵集)》 등이 있다. 젊은 시절부터 연암을 비롯하여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등과 교분이 있었다. 직각은 규장각(奎章閣)의 관직으로 정원은 1명인데 홍문관에 속한 정 3 품에서 종 6 품 사이의 관원이 겸임하였다. 이 편지는 남공철의 편지와 함께 《과정록》 권2에도 일부 소개되어 있다.


금년(1793) 정월 16일에 형이 지난 섣달 28일 띄운 서한을 받고서 비로소 형이 내각(內閣 규장각)에 재직하고 있음을 알았으며, 바삐 서한을 펴 보고 또한 평안히 계심을 알았소이다. 그런데 반도 못 읽어서 혼비백산하여 두 손으로 서한을 떠받들고 꿇어 엎드려 머리를 땅에 조아렸소.
대개 사신(私信)이기는 하지만 임금의 명령을 받든 것이라,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두렵더니 뒤따라 눈물이 마구 쏟아졌소. 진실로 위대한 천지는 만물을 기르지 않음이 없고, 광명한 일월은 미물이라도 비추지 않음이 없음을 알게 되었소. 그러나
글방의 버려진 책위로 티끌 하나 없이 맑은 대궐을 더럽힐 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소?


[주D-001]글방의 버려진 책 : 원문은 ‘兎園之遺冊’이다. 원래 글방에서 아동들에게 가르치던 교재 따위를 토원책(兎園冊)이라 하는데, 자신의 저술을 겸손하게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여기서는 연암이 자신의 《열하일기(熱河日記)》를 가리켜 한 말이다.
[주D-002]위로 …… 줄 :
원문은 ‘上汚龍墀之淸塵也’인데 《운산만첩당집》에는 ‘上汚’가 ‘誤玷’으로 되어 있다.


이곳은 천 리나 동떨어진 하읍(下邑)이지만 임금의 위엄은 지척(咫尺)이나 다름이 없고, 이 몸은 제멋대로 구는 일개 천신(賤臣)이건만 임금의 말씀은 측근의 신하를 대할 때나 차이가 없으며, 엄한 스승으로서 임하시고 자애로운 아버지로서 가르치시어 임금의 총명을 현혹시킨 죄로 처형을 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한 편의 순수하고 바른 글을 지어 속죄하도록 명하셨으니, 서캐나 이 같은 미천한 신하가 어이하여 군부(君父)께 이런 은애(恩愛)를 입는단 말이오.


[주D-003]임금의 …… 처형을 : 원문은 ‘以兩觀熒惑之誅’인데, 양관(兩觀)은 원래 궁궐 정문의 좌우에 있는 망루(望樓)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궁궐이란 뜻도 가지게 되었다. 공자는 노(魯) 나라의 재상 직무를 대행하게 되자 난신(亂臣)인 대부(大夫) 소정묘(少正卯)를 노 나라 궁궐의 양관 아래에서 처형했다고 하여 ‘양관지주(兩觀之誅)’란 성어(成語)가 생겼다. 또한 노 나라 임금과 제(齊) 나라 임금이 회합한 자리에서 제 나라 측이 광대와 난쟁이의 유희를 공연하자 공자는 필부로서 임금의 총명을 현혹케 한 죄를 물어 그자들을 처형하도록 했다고 한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아! 명색이 선비로 이 세상에 태어난 자가 몸소 요순(堯舜)과 같은 임금이 교화를 펴는 시대를 만나고도, 물줄기가 모여 강을 이루듯이 화목하고 평온한 음향을 발하고, 《서경(書經)》 · 《시경(詩經)》과 같은 저작을 본받아 임금의 정책(政策)을 아름답게 표현함으로써 국가의 융성을 드날리지 못하니 이는 진실로 선비의 수치입니다. 더구나 나 같은 자는 중년(中年) 이래로 불우하게 지내다 보니 자중하지 아니하고 글로써 장난거리를 삼아, 때때로 곤궁한 시름과 따분한 심정을 드러냈으니 모두 조잡하고 실없는 말이요, 스스로 배우와 같이 굴면서 남에게 웃음거리를 제공했으니 진실로 이미 천박하고 누추하였소이다.


[주D-004]국가의 융성을 드날리지 : 원문은 ‘鳴國家之盛’인데, 한유(韓愈)의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 글에서 한유는 맹교(孟郊)와 같은 그의 벗들을 뛰어난 작가라는 뜻의 ‘선명자(善鳴者)’라고 하면서 그들이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노래하지 말고 크게 발탁되어 국가의 융성을 노래할 날이 오기를 염원하였다.
[주D-005]글로써 장난거리를 삼아 :
원문은 ‘以文爲戱’인데, 궁귀(窮鬼)와의 가상적인 문답을 통해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한 한유(韓愈)의 송궁문(送窮文) 같은 작품이 ‘글로써 장난거리를 삼은’ 글로 비난을 받았다.


게다가 본성마저 게으르고 산만해서 수습하고 단속할 줄 몰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화로(畵蘆) · 조충(雕蟲) 따위의 잔재주가 이미 자신을 그르치고 또한 남까지 그르쳤으며, 부부(覆瓿) · 호롱(糊籠)에나 알맞은 글로 하여금 혹은 잘못된 내용이 전파됨에 따라 더욱 잘못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차츰차츰 패관소품(稗官小品)으로 빠져 든 것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이요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위항(委巷)에서 흠모를 받게 된 것도 그러길 바라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주D-006]화로(畵蘆) · 조충(雕蟲) : 화로는 호로(葫蘆 표주박)를 그대로 따라 그린다는 말로 참신함이 없이 단순하게 남을 모방하는 것을 말하며, 조충은 벌레 모양의 글자〔蟲書〕를 새기듯이 자구(字句)를 수식하여 글을 짓는 것을 말한다.
[주D-007]남까지 그르쳤으며 :
원문은 ‘人誤’로 되어 있으나, 《과정록》과 김택영(金澤榮)의 《중편연암집》 등에는 ‘誤人’으로 되어 있다.
[주D-008]부부(覆瓿) · 호롱(糊籠) :
부부는 항아리를 덮는다는 뜻이고 호롱은 종이로 농을 바른다는 뜻으로, 항아리 덮개로 삼거나 농이나 바르기에 족한 시원치 않은 글을 가리킨다.
[주D-009]패관소품(稗官小品) :
명(明) 나라 말 청(淸) 나라 초에 크게 유행했던 패관소설(稗官小說)과 소품산문(小品散文)을 가리킨다.


문풍(文風)이 이로 말미암아 진작되지 못하고 선비의 풍습이 이로 말미암아 날로 퇴폐하여진다면, 이는 진실로 임금의 교화를 해치는 재앙스러운 백성이요 문단의 폐물이라, 현명한 군주가 통치하는 시대에 형벌을 면함만도 다행이라 하겠지요.


제 자신은 웅대하고 전중한 문체를 거역하면서
후생들이 고문(古文)의 법도를 계승하려 하지 않음을 탄식하고, 벌레 울고 새 지저귀는 소리나 좋아하면서 ‘옛사람들은 듣지도 못한 것이다’라고 말했으니, 이로 말하자면 나나 그대나 마찬가지로 죄가 있다 하겠소.

지금에 와서는 도깨비가 요술을 못 부리고 상곡(桑穀)의 재앙이 저절로 소멸되게 되었으니, 그 본심을 따져 보건대 비록 잔재주에 놀아난 결과이기는 하지만 이는 진실로 무슨 심보였던가요? 스스로 종아리를 치며 단단히 기억을 해야겠소.


[주D-010]후생들이 …… 탄식하고 : 원문은 ‘嗟小子之不肯構’인데, 《서경》 대고(大誥)에 출처를 둔 표현이다. 주(周) 나라 무왕(武王)이 이룩한 왕업을 계승하는 일을 집 짓는 데 비유하여, 아버지가 집 짓는 법을 확립해 놓았는데도 “그 아들이 기꺼이 집터를 닦으려 하지 않으니 하물며 기꺼이 집을 얽어 만들겠는가?〔厥子乃不肯堂 矧肯構〕”라고 하였다.
[주D-011]벌레 …… 소리 :
자질구레한 소재를 다룬 소품산문을 풍자하여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주D-012]나나 …… 하겠소 :
남공철도 패관소품을 즐겨 읽고 그 영향을 받았다. 1792년 음력 10월 그는 초계문신으로서 지어 올린 책문(策文) 중에 패관소품의 문체를 구사했다는 정조의 견책을 받고 지제교(知製敎) 직함을 박탈당했으며, 어명으로 규장각으로부터 죄를 추궁하는 편지를 받고 그에 대한 답서를 지어 올려야 했다. 《正祖實錄 16年 10月 19日 · 24日 · 25日》
[주D-013]상곡(桑穀) :
뽕나무와 꾸지나무를 말한다. 은(殷) 나라 태무(太戊) 때 상과 곡이 조정 뜰에 솟아나 하루 만에 한 아름이나 자랐다. 그것을 본 태무가 두려워서 이척(伊陟)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이척의 말이 “요얼(妖蘖)은 덕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는데 임금의 정치에 결함이 있는가 봅니다. 그러니 임금께서는 덕을 닦으소서.” 하였다. 태무가 그 말에 따라 덕을 닦자 상과 곡이 말라 죽었다고 한다. 《史記 卷3 殷本紀》


허물을 용서하고 죄를 용서하시니 임금의 덕화(德化)에 함께 포용되었음을 확실히 알았으며, 마음을 고치고 생각을 바꾸어 청아(菁莪)에 거의 자포자기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는 나나 그대나 죽도록 같이 힘쓸 바요. 어찌 감히 지난날의 허물을 고치고 뒤늦게나마 만회할 것을 급히 도모하여 다시는 성세(聖世)의 죄인이 되지 않도록 하지 않으리오

[주D-015]지난날의 …… 것을 : 원문은 ‘黥刖之補’인데,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출처를 둔 표현이다. 형벌을 받아 훼손된 몸을 온전하게 회복한다는 뜻으로, 개과천선과 같은 말이다. 식경보의(息黥補劓)란 성어가 있다. 또한 원문의 ‘상유지수(桑楡之收)’는 ‘아침에 잃은 물건을 저녁에 되찾는다(失之東隅 收之桑楡)’는 속담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처음의 실수를 나중에 만회한다는 뜻이다.
[주D-016]어찌 …… 않으리오 :
《운산만첩당집》에는 그다음에 “차츰 순수하고 바르게 되고자 했으나 그래도 《맹자》에 나오는 풍부(馮婦)처럼 예전 솜씨를 다시 발휘하려는 버릇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이 어찌 《장자》에서 말한 ‘제 그림자를 피하려 하면서 해를 향해 달려가는 자’가 아니겠는가?〔稍欲醇正 而猶不脫攘臂下車習氣 無乃畏影而走日中者耶〕”라는 평어가 있어 글을 감상하는 데 참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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