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안민가 -충담사

安民歌

景德王 忠談師․表訓大德


[註,누락부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9 孝成王 二年(738)

夏四月. 唐使臣邢瓙以老子道德經等文書獻于王.]

4월에 당사 형숙이 노자도덕경 등 문서를 왕에게 바쳤다.


[누락]德經等 大王備禮受之.

당에서 도덕경(德經-노자의 도덕경) 등을 보내니 대왕이 예를 갖추어 이를 받았다.

王御國二十四年 五岳三山神等 時或現侍於殿庭.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24년만에 오악삼산의 신들이 간혹 모습을 나타내어 대궐의 뜰에서 왕을 모시었다.

三月三日 王御歸正門樓上 謂左右曰

3월3일에 왕은 귀정문의 누상에 나아가 좌우의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誰能途中得一員榮服僧來?”

“누가 도중에서 능력 있는 스님을 한 사람 데리고 올 수 있겠소?”

於是適有一大德 威儀鮮潔 徜徉而行.

이 때 마침 큰 스님이 위의를 갖추고 지나가고 있었다.

左右望而引見之.

좌우의 신하가 바라보고 그를 데리고 와서 왕께 뵈었다.

王曰“非吾所謂榮服僧也 退之.”

왕:“내가 말하는 위의를 갖춘 스님이 아니다. 물러나라”


更有一僧 被衲衣

다시 스님 한 사람이 납의(納衣)를 걸치고

負櫻筒(一作荷簣) 從南而來.

앵통(櫻筒)을 혹은 삼태기를 걸머지고 남쪽에서 왔다.

王喜見之 邀致樓上

왕은 기뻐하며 누상으로 인도하였다.

視其筒中 盛茶具已.

앵통의 가운데를 바라보니 다구(茶具)만이 가득했다.

曰“汝爲誰耶?”

왕: “그대는 누구인가?”

僧曰“忠談.”

중: “충담이라 하옵니다.”

曰“何所歸來?”

왕: “어디에서 왔소?”

僧曰“僧每重三重九之日

중: “저는 3월 삼짇날과 9월 중양절이면

烹茶饗南山三花嶺彌勒世尊.

차를 다려서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께 드립니다.

今玆旣獻而還矣.”

오늘도 차를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王曰“寡人亦一甌茶有分乎?”

왕: “나에게도 차를 한 사발 주시겠소?”

僧乃烹茶獻之. 茶之氣味異常 甌中異香郁烈.

스님은 차를 다려 왕께 드렸는데 차 맛이 이상하고 그릇 속에 향기가 그윽하였다.

王曰“朕嘗聞師歌讚耆婆郞詞腦歌

왕: “내가 듣건대 스님께서 기파랑을 찬미한 사뇌가(思腦歌)가

其意甚高 是其果乎?”

그 뜻이 매우 높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요?”

對曰“然.”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王曰“然則爲朕作理安民歌.”

왕: “그렇다면 짐을 위하여 백성을 다스려 편안히 할 노래를 지어 주시오.”

僧應 時奉勅歌呈之.

스님은 즉시 명을 받들어 노래를 지어 바쳤다.

王佳之 封王師焉.

왕이 그를 가상히 여겨 왕사(王師)로 봉하니

僧再拜固辭不受.

스님은 두 번 거듭 절하고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安民歌曰,


君-隱-父-也

臣-隱-愛-賜-尸-母-史-也

民-焉-狂-尸-恨-阿-孩-古-爲-賜-尸-知

民-是-愛 -尸-知-古-如

窟 -理-叱-大-肹-生-以-支 -所-音-物-生

此-肹-喰-惡-攴-治 -良-羅

此-地-肹-捨 -遣-只-於-冬-是-去-於-丁

爲-尸-知-國 -惡-攴-持 -以 支-知-古-如

後句

君-如 -臣-多-支-民-隱-如

爲-內-尸-等-焉

國 -惡-太-平-恨-音-叱-如


君은 어비여

臣은 다사샬 어시여

民은 얼한 아해고 하샬디

民이 다살 알고다

구믈ㅅ다히 살손 物生

이흘 머기 다사라

이따흘 바리곡 어듸갈뎌 할디

나라악* 디니디 알고다

아으 君다이 臣다이 民다이 하날단

나라악 太平하니잇다.

[현대역]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요

백성은 어린 아이로다!’ 하신다면

백성이 사랑을 알 것입니다.

꾸물거리며 사는 중생이

이를 먹어 다스려져

‘이 땅을 버리고 어디 가시렵니까?’ 한다면

나라가 유지될 줄 알리라.

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늘 태평할 것입니다.


◇安民歌 해설

󰋬경덕왕 24년(765) 3월 충담사에게 <安民歌>를 짓게 함. 경덕왕은 후사가 없어 의상의 십대제자 중 한 분이며 화엄학의 고승인 表訓에게 청해 재차 하늘에 올라가 딸을 아들로 바꾸는 데는 성공했으나 예언대로 나라가 위태로움. 19년 二日竝現에 이어 764년 진골 金良相이 시중이 되어 더욱 불안을 느낌. 765년 6월에는 8세의 혜공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 비운을 맞음. 결국 780년 김양상은 37대 선덕왕이 되어 반왕당파에게로 권력 이동.

󰋬三花嶺에서 미륵에게 차를 공양하고 돌아오는 충담사를 부른 것은 반대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권력에서 소외된 화랑세력과의 결탁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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