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명사 도솔가

月明 兜率歌

-삼국유사 감통 제7


景德王十九年庚子四月朔 二日竝現

경덕왕 19년 경자(760) 4월 초 하루에 두 해가 나란히 나타나서

挾(註,當作浹)旬不滅.

열흘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日官奏請緣僧 作散花功德則可禳.

일관이 아뢰기를,

“인연있는 중을 청해서 산화공덕(散花攻德)을 지으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於是潔壇於朝元殿

이에 조원전에 제단을 정결히 하고

駕幸靑陽樓 望緣僧.

임금이 청양루에 행차하여 인연있는 중이 오기를 기다렸다.


時有月明師 行于阡陌之南路.

이 때 월명사가 천맥(阡陌)의 남쪽 길을 가고 있었다.

王使召之. 命開壇作啓.

왕은 그를 부르게 하여 제단을 열고 기도하는 글을 짓게 하니

明奏云,

월명사가 아뢰었다.

“臣僧但屬於國仙之徒

“신승(臣僧)은다만 국선의 무리에 속해 있으므로

只解鄕歌 不閑聲梵.”

다만 향가만 알 뿐, 성범(聲梵,범패)에는 익숙치 못하옵니다.”

王曰“旣卜緣僧 雖用鄕歌可也.”

왕:“이미 인연 잇는 중을 점복했으니 비록 향가를 사용하여도 좋소.”

明乃作兜率歌賦之 其詞曰,

월명은 이에 도솔가를 지어 바쳤는데 그 가사는 아래와 같다.


今日-此-矣-散花-唱-良

巴寶-白-乎-隱-花-良-汝-隱

直-等-隱-心-音-矣-命-叱-使 -以-惡-只

彌勒座主-陪-立-羅-良


오늘 이에 散花 블라

빠쌀반 고자 너는

고든 마으매 命ㅅ 브리압디

彌勒座主 뫼셔라

 

 


오늘 여기서 산화노래 부르면서

뿌리는 꽃아, 너는

곧은 마음의 명을 부릴 수 있으니

미륵좌주를 모셔라!


解曰,

한시로풀이하면,


龍樓此日散花歌 오늘 용루에서 산화가 부르며

挑送靑雲一片花 흰 구름에 꽃 한 송이 띄워 보낸다.

殷重直心之所使 정중하고 곧은 마음에서 하는 일이니

遠邀兜率大僊家 저 멀리 도솔천의 미륵보살 뫼셔라.


今俗謂此爲散花歌 誤矣.

지금 세간에서는 이를 산화가라고 하지만 잘못이다.

宜云兜率歌

마땅히 도솔가라고 해야 하며

別有散花歌.

별도의 산화가가 있는데,

文多不載;

그 글이 많아서 싣지 않는다.

[은자주]'산화가'는 한문 내지는 다라니로 추정됨.

旣而日怪卽滅.

조금 후에 이내 해의 변괴가 사라졌다.

王嘉之 賜品茶一襲水晶念珠百八箇.

왕은 이것을 가상하게 여겨 품다(品茶) 한 봉과 수정염주 108개를 하사했다.


忽有一童子

이 때 문득 한 동자가

儀形鮮潔 跪奉茶珠.

외모가 곱고 깨끗했는데 꿇어앉아 차와 염주를 받들고서

從殿西小門而出.

대궐 서쪽의 작은 문으로 나가버렸다.

明謂是內宮之使. 王謂師之從者.

월명은 이 동자를 내궁의 사자로 알고 왕은 스님의 시종으로 알았다.

及玄微而俱非.

그러나 서로 알고 보니 모두 잘못이었다.

王甚異之 使人追之.

왕은 심히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뒤를 쫓게 했더니

童入內院塔中而隱.

동자는 내원의 탑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茶珠在南壁畵玆氏像前.

차와 염주는 남쪽의 벽화 미륵상 앞에 있었다.

知明之至德與至誠能昭假于至聖也如此.

월명의 지극한 덕과 지극한 정성이 미륵보살을 소격(昭假, 가는 格과 같다.밝게 감동시킴)시킴이 이와 같음을 알겠다.

朝野莫不聞之.

조정이나 민간에 널리 퍼져 이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王益敬之 更贐*絹一百疋 以表鴻誠. *贐신:전별하다.

왕은 더욱 그를 공경하여 다시 비단 백 필을 주어 큰 정성을 표했다.

 

◇兜率歌 해설

◊3대 儒理王代의 도솔가

신라 제3대 儒理王이 순행 중 죽어가는 노파를 발견하고 이는 자신의 잘못이라며 구해줌. 鰥寡孤獨 돌봄. 그 해에 풍년. 도솔가 지어 부름.

부족사회의 행사적 집단가요로 원시가요임. 신라 초기의 詩歌.

(梁柱棟) 愛國歌的 성격 지님.

◊도솔의 語義: 도솔천에서 옴(梁柱東)

두릿노래(집단행사시 부름)

텃노래(국토의 노래)

두리 ‘圓’

‘두리’하다 ― 길쌈 時

예) 쾌지나칭칭나네(경상도), 강강수월래(전라도)

◊두릿노래:국태민안을 비는 국가의 공식 지정 가요.

󰋬작품명이라기보다 노래 갈래 이름.

󰋬‘嗟辭’를 악기반주에 맞추어 되풀이한 여음으로 이해하고, 여러 章이 중첩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 감탄사.

󰋬是年民俗歡康始製兜率歌 此歌樂之始也.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 유리왕5년)

󰋬始作兜率歌有嗟辭詞腦格(삼국유사 권1,노례왕)

◇도솔가와 사뇌가의 관계 규명에 대한 논의.

◊이동근,사뇌가의 해석,『한국문학사의 쟁점』,집문당,1986)

[최남선] 嗟辭詞腦格을 頌祝體 차사격과 表白體 차사격으로 해석하여, 차사격을 도솔가의 격조 중 하나로 봄.(육당최남선전집,현암사,1973)

[정병욱] 도솔가는 종교적 요소가 표백된 순전한 서정적 가요로, 사뇌가는 사뇌야 지방에서 유포되어 후일에 신라가요 전체를 대표하게 된 10구체 정형시로 봄. 위의 양자는 별도의 양식으로 구분함(향가의 역사적 形態論試攷,『국문학논문선』1,민중서관,1977)

[양주동] 도솔가는 民俗歡康, 時和豊年, 王道稱頌의 민중의 노래로 羅代의 國風, 雅頌의 남상으로 추단함.(增訂古歌硏究,일조각,1965)

[지헌영,김동욱] 향가의 범주 안에 무가(도솔가?), 민요, 사뇌가를 포함시키고, 有嗟辭詞腦格은 도솔가와 사뇌가가 동격인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一然의 시대에 와서 과거를 회고해 보니 사뇌가 격식의 민요 형태의 노래가 도솔가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야 함. (지헌영,‘次肹伊遣’에 대하여,『최현배선생환갑기념논문집』,사상계사,1954), 김동욱,향가의 하위장르,『신라시대언어와 문학』,형설출판사,1974)

[조지훈 서수생] 유리왕 때 이미 도솔가를 지었다고 했으니, 이것이 國定 사뇌가 시가의 시원인 동시에 신국가 노래의 효시로 볼 수도 있지만 모든 가악의 시원으로 보는 것은 무리임. 도솔가는 사뇌가의 한 종류임.(조지훈,신라가요연구론고『고대민족문화연구』1, 1964.10. 서수생,도솔가고『국문학논문선』1,민중서관,1977)


[참고] 月明師 兜率歌

◊제35대 경덕왕 19년(760) 월명사의 도솔가

 

◊산화공덕가 ― 범패. 범어 또는 한시(칠언시)(文多不載):중국의 불교의식 수용

도솔가 ―우리말 노래:토착화

󰋬경덕왕 16년에 전국의 지명을 한자로 바꾸는 등 중앙집권제 강화함. 二日竝現은 왕당파의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김양상 등) 등장.

󰋬경덕왕 23년(764) 반왕당파의 金良相이 시중으로 등장. 김양상은

제29대 무열왕계를 대신한 제17대 내물왕계의 왕통을 이어 제37대 선덕왕이 됨(780).

󰋬화엄사상 위주로 질서를 존중하는 사회 지향. 월명사를 부른 것은 퇴조하는 화랑세력 등 불만 세력에 대한 무마용일 수도 있음.

󰋬꽃은 미륵에게 바친 공양물이며 미륵을 모셔올 수 있는 매개자인데, 시인은 “꽃아, 너는” 이라고 불러 주술을 걸었다.

󰋬미륵은 다양한 모습을 지닌 신앙대상인데, 미륵이 불을 끌 수 있는 물의 상징으로서 용을 뜻하는 ‘미리’와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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