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願往生歌 -광덕의 처

광덕과 엄장

廣德 嚴莊 -삼국유사 感通 第七

[은자주] 앞 꼭지의 노힐부득 달달박박의 이야기와 동궤[同軌]의 설화이다.

“노힐부득:달달박박:낭자”의 캐릭터는 “광덕:엄장:분황사비(광덕의 처)”에 대응하여 재현된다.

이름도 관대한 성격의 광덕에, 계율에 빛나는 엄장이 수도승이고, 여성인 광덕의 아내는 수도의 조력자

로서 두 수도승을 차례로 극락왕생케 한다. 원효 이후 민중불교시대의 매력적인 설화라 말할 수 있다.

게다가 광덕이 부르던 <원앙생가>가 있어 설화의 매력은 배가된다.

본문의 “盖十九應身之一德嘗有歌云,”에서 종전의 “一德, 嘗有歌云”로 구두점을 찍어오던 것을

고 김동욱님은 “一, 德嘗有歌云”로 구두점을 찍어 노래의 작가를 광덕에서 광덕의 처로 바로잡은

공적을 남겼다. 더군다가 ‘作歌’가 아니고 ‘有歌’인 점도 이론(異論)의 문제제기를 차단했다.

그 문맥만으로도 광덕이 이 노래의 작가가 아님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文武王代 有沙門名廣德嚴莊二人友善. 日夕約曰

문무왕 때에 중 광덕과 엄장 두 사람은 서로 친하여 밤낮으로 약속했다.

“先歸安養者須告之.”

“먼저 안양[극락]으로 돌아가는 이는 마땅히 서로 알리도록 하자.”

德隱居芬皇西里(或云 皇龍寺有西去房. 未知孰是) 蒲鞋爲業 挾妻子而居.

광덕은 분황 서리에 숨어서 신 삼는 것을 업으로 하면서 처자와 함께 살았으며,

莊庵栖南岳 大種力耕.

엄장은 남악에 암자를 짓고, 대종도경(大種刀耕)하면서 살았다.

一日日影拖紅 松陰靜暮 窓外有聲 報云

어느 날 해그림자가 붉게 노을지고 솔그늘이 고요히 저무는데 창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某已西往矣. 有君好住 速從我來.”

‘나는 이제 서쪽으로 가니 그대는 잘지내다가 속히 나를 따라 오게나.’

莊排闥而出顧之 雲外有天樂聲 光明屬地.

엄장이 문을 열고 나가보니 구름 밖에서 하늘의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밝은 빛은 땅까지 드리웠다.

明日歸訪其居 德果亡矣.

이튿날 엄장은 광덕이 사는 곳을 찾아갔더니 광덕은 과연 죽어 있었다.

於是乃與其婦收骸 同營蒿里 旣事.

이에 그의 아내와 함께 광덕의 유해를 거두어 함께 호리(蒿里)에 장례지냈다.

乃謂婦曰

그리고 그 부인에게 말했다.

“夫子逝矣. 偕處何如?”

“남편이 죽었으니 나와 함께 지내는 것이 어떻겠소?”

婦曰“可.”

부인 : “좋습니다.“

遂留 夜將宿欲通焉.

드디어 머물며 밤에 잠자리에 들어 욕정을 통하고자 했다.

婦慚之曰.

부인은 그것을 부끄러워했다.

“師求淨土 可謂求魚緣木.”

“스님께서 서방정토를 구하는 것은 물고기를 구하면서 나무에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莊驚怪問曰

엄장이 놀라서 괴이하게 여겨 물었다.

“德旣乃爾 予又何妨?”

“광덕도 이미 그러했는데 나 또한 득도에 어찌 방해가 되겠는가?”

婦曰

광덕의 아내는 말했다.

“同居十餘載 未嘗一夕同床而寢.

“남편은 나와 십여 년을 살았지만 일찍이 하룻밤도 침대를 같이하여 잔 적이 없었거늘,

況觸汚乎?

어찌 몸을 더럽혔겠습니까?

但每夜端身正坐 一聲念阿彌陀佛號.

다만 밤마다 단정히 앉아서 한결같은 목소리로 아미타불을 염송했습니다.

或作十六觀. 觀旣熟

혹은 16관을 만들어 달관하여

明月入戶 時昇其光 加趺於上

밝은 달빛이 창에 비치면 때때로 그 빛 위에 올라 가부좌하였습니다.

竭誠若此 雖欲勿西奚往?

정성을 쏟음이 이와 같았으니 비록 서방정토에 가지 않으려 한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夫千里者 一步可規

대체로 천리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그 첫걸음부터 알 수 있으니,

今師之觀可云東矣 西則未可知也.”

지금 스님의 관법은 동쪽으로 간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서방으로 가는 것은 알 수 없습니다.”

莊愧赧而退.

엄장은 이 말을 듣고 몹시 부끄러워하며 물러나왔다.

便詣元曉法師處 懇求津要.

그 길로 원효법사의 처소로 가서 득도의 요체[津要]를 간곡하게 구했다.

曉作鍤(주,‘淨’일 듯.이동환)觀法誘之.

원효는 삽[정]관법을 만들어 그를 지도했다.

藏(주,莊)於是潔己悔責.

엄장은 자기 몸을 깨끗이 하고 잘못을 뉘우쳐 스스로 꾸짖고,

一意修觀 亦得西昇.

한 뜻으로 도를 닦았으므로 또한 서방정토로 승천했다.

鍤觀在曉師本傳與海東僧傳中.

삽[정]관법은 원효법사의 본전과 해동고승전 속에 있다.

其婦乃芬皇寺之婢 盖十九應身之一.

그 부인은 바로 분황사의 여자종이니 대개 관음보살 19응신 가운데 하나였다.

德嘗有歌云,

광덕에게는 일찍이 부르던 노래가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月-下-伊-底-亦

西方-念-丁-去-賜-里-遣

無量壽佛前-乃

惱-叱-古-音-多-可-攴 -白-遣-賜-立

誓 -音-深-史-隱-尊-衣-希-仰 -攴

兩-手-集-刀-花乎-白-良

願往生 願往生

慕人-有-如-白-遣-賜-立

阿邪, 此-身-遺 -也-置-遣

四十八大願-成-遣-賜-去


양주동 역[아래아는 'ㅏ'로 바꿈]

달하 이뎨 달님이시여,

西方까장 가샤리고 이제 서방까지 가셔서

無量壽佛前에 무량수불 전에

닏곰다가 삷고샤셔 일러다가 사뢰소서.

다딤 기프샨 尊어 울워러 “다짐 깊으신 부처님을 우러러

두손 모도호 살바 두 손을 올려

願往生 願往生 ‘원왕생 원왕생‘

그릴사람 잇다 삷고샤셔 그리는 사람이 있다!”고 사뢰소서.

아으, 이몸 기텨 두고 아, 이 몸을 남겨 두고

四十八大願 일고샬가 사십팔대원을 이루실까.


◇願往生歌 해설

󰋬신을 삼아 생계를 유지하던 광덕이 서방정토에 가다. 귀족불교에서 민중불교로 이동.

미천한 백성들은 신라가 불국토임을 내세우거나 미륵이 下生해서 나라를 이끌어 간다는 자부심을 귀족과 함께 느끼기엔 불리한 처지였다. 그렇다고 화엄사상의 오묘하고 치밀한 체계에 기대를 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현세에서 관음이 출현하여 구원을 해주는 기적을 기다리거나 내세에는 서방정토에 태어나도록 열심히 염불을 하면서 나날의 고통을 잊고자 했다.(통사1, p155.)

󰋬수도의 두 방법: 진실한 신앙과 계율에 의존하는 신앙.

󰋬광덕은 부부로 살았지만 한 번도 동침하지 않은 생활의 실상과 정신적 지향을 함께 표현함. 노힐부득 달달박박의 이야기와 同軌임.

󰋬(1구)月下伊 底亦:①(소창)달애 믿예.

②(양주동)갈하 이제

[김완진]다랄-아래-이 엇뎨-역 다라리 엇뎨역. 底엇뎨:어찌하여

󰋬(7구)[김완진] ‘三句六名’은 1․3․7행의 세 句가 6音節로 되어 있음을 말함.

󰋬‘三句六名’은 향가, 려요, 시조에 이어지는 형식. 시조의 3章6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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