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양지사석
良志使錫
-삼국유사 義解 제4
[은자주]향가 작품 가운데는 시가 못지 않게 기술물이 탁월한 작품도 있다.
이 설화에는 오토매틱 스틱이 등장한다. 양지 스님의 신통력을 표현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물이다.
어떤 부사를 동원해도 그의 신통력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 설화의 기술자는 자루를 걸어두면 시주하는 집을 돌다가 자루가 가득차면 그 지팡이는 저절로 석장사로 날아왔다는 자동지팡이를 창안한 것이다. 얼마나 판타스틱한 지팡이인가? 신라인의 상상력은 그런 지팡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석장사 터는 동국대 경주캠퍼스 뒷산에 있다. 이 학교 박물관에서 십여 년전 그곳을 발굴하여 불상이 조각된 벽돌도 여러 장 찾아냈다. 그 벽돌은 대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釋良志, 未詳祖考鄕邑, 唯現迹於善德王朝.
중 양지는 그 조상이나 고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신라 선덕왕 때에 자취를 나타냈을 뿐이다.
錫杖頭掛一布帒,
석장의 끝에 포대 하나를 걸어두면
錫自飛至檀越家, 振拂而鳴,
그 지팡이는 저절로 날아가 시주의 집에 가서 흔들면서 석장 끝에 달린 방울소리를 울렸다.
戶知之納齋費, 帒滿則飛還.
그 집에서는 또 이를 알고서 재에 쓸 비용을 여기에 넣었고, 포대가 다 차면 이 석장은 다시 날아서 돌아온다.
故名其所住曰錫杖寺,
그러므로 그가 거주한 곳을 석장사라고 했다.
其神異莫測皆類此. 旁通雜譽, 神妙絶比,
양지는 신기하고 특이하여 남이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으며, 여러 가지 技藝에도 두루 통달하여 신묘함이 비길 데가 없었다.
又善筆札.
또 필찰(筆札-원래는 편지라는 의미이나 여기서는 서화 조각등의 손재주)에도 능하여
靈廟丈六三尊‧天王像幷殿塔之瓦,
영묘사 장육삼존상과 천왕상, 또는 전탑의 기와와
天王寺塔下八部神將, 法林寺主佛三尊‧左右金剛神等, 皆所塑也.
천왕사 탑 밑의 8부신장과 법림사의 주불 삼존과 좌우 금강신 등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書靈廟‧法林二寺額. 又嘗彫磚造一小塔,
영묘사와 법림사의 현판을 썼고, 벽돌로 탑을 하나 만들었으며,
竝造三千佛, 安其塔置於寺中, 致敬焉.
아울러 삼천불을 만들어, 그 탑을 절 안에 모시고 예를 드렸다.
其塑靈廟之丈六也, 自入定以正受所對爲揉式,
그가 영묘사의 장육상을 만들 때에는 입정(入定)해서 정수(正受-마음을 바르고 밝게하여 잡념에서 벗어나 法心만이 있는 경지)의 자세로 만드니
故傾城士女爭運泥土.
온 성안의 남녀들이 다투어 진흙을 날라 들였다.
風謠云:
그때 부른 풍요(風謠)는 이러하다.
來-如-來-如-來-如
來-如-哀-反*-多-羅
哀-反-多-矣-徒-良
功德-修-叱-如*-良-來-如
[원문/풀이]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다라/ 오다 서럽더라!
서럽다 의내여/ 서럽다 우리들이여!
功德 닷가라 오다/ 공덕 닦으러 오다.
至今, 土人舂相役作皆用之, 蓋始于此.
지금까지도 시골에서는 방아를 찧거나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모두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대개이 노래에서 비롯되었다.
像(初)成之費, 入穀二萬三千七百碩(或(云)(改)金時租).
장육상을 처음 만들 때에 든 비용은 곡식 2만 3천 7백석이었다.
議曰:
논평해 보면,
師可謂才全德充,
양지스님은 가히 재주가 온전하고 덕이 충만하였다.
而以大方隱於末技者也.
여러 방면의 대가로서 하찮은 재주만 드러내는 데 숨어지낸 자라고 하겠다.
讚曰:
기리어 읊는다.
齋罷堂前錫杖閑, 재 마치니 법당 앞에 석장은 한가한데
靜裝爐鴨自焚檀. 오리 모양 향로를 손질하여 홀로 단향(檀香)피우네.
殘經讀了無餘事, 남은 불경 다 읽어 할일 없으니,
聊塑圓容合掌看. 애오라지 소상의 부처님 얼굴 합장하고 쳐다보네.
8.風謠 해설
https://www.youtube.com/watch?v=MWBy6Wdaz0s
https://kydong77.tistory.com/2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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