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2번 본선(封禪)

 

태사공자서3

-사마천

http://giant.x-y.net/sagi/etc/preface_2.htm

 

240.而太史公留滯周南(이태사공유체주남),
그러나 태사공은 주남(周南)에 머물러

♣주남(周南)
지금의 하남성 낙양시 일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241.不得與從事(부득여종사),
봉선을 행하기 위해 태산으로 간 천자를 따라갈 수 없었다.

242.故發憤且卒(고발분차졸).
그것 때문에 울화병이 들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243.而子遷適使反,(이자천적사반)
이때 마침 그의 아들 사마천이 천자의 사자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244.見父于河洛之間.(견부우하락지간)
하수와 락수 지간에 그의 부친을 뵙자

245.太史公執遷手而泣曰:(태사공집천수이읍왈)
태사공은 사마천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246.“ 余先周室之太史也.(여선주실지태사야)
우리들의 선조들은 주나라의 태사였다.

247.自上世嘗顯功名于虞夏, (자상세상현공명우우하)
우리 종족들은 까마득한 옛날인 하나라 때부터 공명을 세상에 들어낸 이래

248.典天官事. (전천관사)
하늘에 관한 일을 주관해왔다.

249.後世中衰, (후세중쇠)
그러나 후세에 이르자 쇠락해지기 시작하더니

250.絶于予乎?(절우예호)
나의 대에 이르러 끊어지려 하고 있지 않느냐?

251.汝復爲太史,(여복위태사)
너는 다시 나의 뒤를 이어 태사가 되어

252.則續吾祖矣. (즉송오조의)
우리들 조상들이 해 왔던 일을 계승해야 할 것이다.

253.今天子接千歲之統, (금천자접천세지통)
지금 천자께서는 천년 대통을 이어 받아

254.封泰山, (봉태산)
태산에 봉선을 행하시려고 가셨는데

255.而余不得從行, (이여부득종행)
나는 부득이 따라가 수행할 수 없었다.

256.是命也夫, (시명야부)
이것은 천명이로다!

257.命也夫! (명야부)
진실로 천명이로다!

258.余死, (여사)
내가 죽으면

259.汝必爲太史;(여필위태사)
너는 반드시 나의 뒤를 이어 태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260.爲太史, (위태사)
너는 태사가 되어

261.無忘吾所欲論著矣 (무망오소욕론저의),
내가 논하여 저술하려고 했던 바를 결코 잊으면 안 될 것이다.

262.且夫孝始于事親, (차부효시우사친)
무릇 효도라는 것은 그 부친의 뜻을 받드는 것에서 시작하여

263.中于事君, (중우사군)
출사하여 그 군주를 섬기다가

264.終于立身. (종우입신)
입신하는데서 끝나며

265.揚名于後世, (양명우후세)
후세에 이름을 남겨

266.以顯父母, (이현부모)
그 부모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는 것이야말로

267.此孝之大者. (차효지대자)
효도의 가장 큰 도리라 할 것이다.

태사공자서(8)

268.夫天下稱誦周公,
무릇 천하 사람들이 주공을 칭송하고 있는 것은

♣주공(周公)/주나라를 세운 주무왕의 동생이다. 무왕이 죽고 어린 그의 아들 성왕이 즉위하자 스스로 섭정의 자리에 앉아 주나라를 통치하다가 성왕이 장성하자 섭정의 자리에서 내려와 신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예악을 정비하고 전장(典章)제도를 만들어 주나라의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공자를 비롯한 유가들에게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269.言其能論歌文武之德,
그가 능히 문왕과 무왕의 덕을 시가(詩歌)로서 논했으며

■문왕(文王)/원래 지금의 섬서성 기산(岐山) 일대에 거주하던 주족(周族)의 수장으로 상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에 의해 서백(西伯)에 봉해졌다.

270.宣周邵之風,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의 노래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시경 국풍(國風)에 실려 있는 장의 이름이며 주공(周公) 단(丹)과 소공(召公) 석(奭)이 함께 문왕의 명을 받들어 남쪽의 양자강 유역에 원정을 나갔다가 그곳의 시가를 수집해 왔는데 주공이 수집한 시가집을 주남, 소공이 수집한 시가집을 소남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271.達太王王季之思慮,
결국은 태왕(太王)과 왕계(王系)의 사려 깊은 지혜에 통하게 되고

■태왕(太王)과 왕계(王季)/태왕은 주문왕의 할아버지인 고공단보(古公亶父)를 말한다. 원래 주족은 지금의 섬서성 순읍현(旬邑縣) 서남의 빈( ) 땅에 살았으나 이민족인 훈육(燻 )의 침입을 받자 고공단보는 주족을 이끌고 칠수(漆水)와 저수(沮水)를 건너 기산 밑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고공단보는 아들을 셋을 두었다. 장자가 태백, 둘째는 우중이고 막내는 계력(季歷)이다.. 그러나 고공단보는 주족들을 번성하게 할 사람은 왕계의 아들인 창(昌)(후에 주문왕)이 라는 것을 알고 자기의 족장 자리를 계력에게 넘기려고 하자 태백과 우중은 남쪽으로 달아나 오랑캐의 습속으로 바꾸고 그곳의 추장이 되었다.

272.爰及公劉,
마침내는 공유의 공적에 미치고

■공유(公劉)/후직의 자손으로 사방으로 흩어졌던 주족을 다시 일으키고 후직이 시작했던 농사의 일을 부흥시켰다. 다음은 주본기(周本紀)에 나오는 공유 부분이다.

< 후직이 죽고 그의 아들인 불줄(不 )이 뒤를 이었다. 불줄 말년에 하후씨의 정치가 문란하게 되어 농사(農師)의 관직을 폐하여 다시는 농사(農事)의 일을 돌보지 않았다. 불줄이 농사(農師)의 직을 잃게 되자 여러 곳을 유랑하다가 융적(戎狄)의 땅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불줄이 죽고 아들 자국(子鞠)이 뒤를 잇고 다시 자국이 죽고 그의 아들 공유(公劉)가 뒤를 이었다. 공유(公劉)는 비록 융적의 땅에서 살았지만 다시 후직의 업을 일으켜 농사의 일을 돌보며 농사짓기에 적합한 땅과 곡식의 종자를 찾아 나섰다. 칠수(漆水)와 저수(沮水)를 건너고 다시 위수(渭水)를 건너 목재를 벌목하여 가져와 종족들이 같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나누어주었으며 종족들 중 외지로 나가는 사람에게는 여비를 주고 나가지 않고 종족들과 같이 사는 사람에게는 그들을 위해 저축을 해 주었다. 백성들의 생활은 모두 그에게 의지하여 편안하게 되었다. 다른 종족들도 모두 그의 선행에 감격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에게 귀의하였다. 주나라의 기업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인들이 노래를 불러 그의 덕을 칭송했다.

273.以尊后稷也.
후직까지 높인 까닭이다.

■후직(后稷)/ 주족의 시조로 요임금과 순임금 때 농사의 일을 관장했던 기(棄)를 말한다. 후직은 농사의 일을 관장했던 벼슬 이름이다. 다음은 사기 주본기의 후직에 관련된 부분이다.

< 주나라의 시조는 후직(后稷)이며 이름을 기(棄)다. 그의 모친은 유태씨(有邰氏) 부족의 딸로써 이름을 강원(姜原)이라고 했다. 강원은 제곡(帝?)의 정비가 되었다. 강원이 성밖의 야외로 나가게 되었는데 거인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즐거워져 밟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몸 속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더니 마치 애를 밴 것 같이 되었다. 실제로 애를 밴지 10 달이 되자 아들을 낳았다. 이상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 아이를 상서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사람이 다니지 않는 좁은 길에다 버렸다. 그러나 지나가는 말이나 소 등이 아기의 주위를 돌며 몸을 피하며 밟지 않고 지나갔다. 그래서 다시 그 아이를 깊은 숲 속으로 데려가 버리도록 하였더니 이번에는 인적이 드물던 숲 속에 사람의 왕래가 갑자기 많아졌다. 그래서 다시 그 아기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이번에는 그 아기를 얼어붙은 도랑의 얼음 위에 버렸으나 새들이 날아와 그 날개로 아기의 밑을 깔아 주기도 하고 위를 덮어 주기도 하였다. 강원이 매우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결국은 아이를 데려와 기르기로 하였다. 그래서 처음에 아기를 버리려고 했기 때문에 이름을 기(棄)라고 부른 것이었다.

기(棄)는 어렸을 때부터 인물이 출중하고 마음속에 높은 뜻과 원대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놀 때는 항상 삼나무나 콩 종류의 작물을 즐겨 심었으며 그가 심은 삼나무와 콩은 크게 자라서 무성하게 되었다. 그가 성인이 되자 농사를 짓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농사에 적합한 땅을 살펴 좋은 종자를 파종하여 많은 량의 곡식을 수확하였다. 백성들이 기에게 와서 농사짓는 법을 배웠다. 요 임금이 기를 농사를 관장하는 관직인 농사(農師)에 임명하였다. 천하가 기(棄)로부터 농사짓는 법을 배워 많은 이를 얻게 되어 기는 큰공을 세우게 되었다. 순(舜) 임금이 말했다.

“ 기(棄)는 백성들이 굶기 시작하자 농사를 관 장하는 관직을 맡아 백곡(百谷)을 골라 파종하여 백성들의 허기를 면하게 했다. ”
순임금이 기(棄)를 태(邰)에 봉하고 관직을 이름으로 부르게 하여 후직(后稷)이라 하고 희(姬) 성을 하사하였다. 후직의 자손들이 번창하여 당요(唐堯), 우순(虞舜), 하우(夏禹)를 거치면서 세상에 아름다운 선행을 베풀어 덕망이 높았다.

274.幽?之后,
유왕과 여왕 이후

■유왕/ 서주의 마지막 왕으로 포사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다가 이민족인 견융의 침입을 받아 유왕은 싸움 중에 살해 되었고 그의 아들 평왕이 그 도읍을 지금의 낙양으로 옮겼다. 이때가 기원전 771년 동주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여왕( 王)/ 서주의 11대 왕으로 공포정치를 펼치다가 기원전 841년 국인(國人)들의 반란으로 지금의 산서성 곽현인 체( ) 땅으로 달아나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한편 서주는 달아난 려왕을 대신해서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서로 협력하여 왕대신 나라를 다스리다가 려왕이 체 땅에서 죽자 려왕의 아들인 선왕을 왕으로 추대했다. 선왕의 아들인 유왕(幽王)이 서주의 마지막 왕이다.

275.王道缺,
왕도가 무너지고

276.禮樂衰,
예악이 쇠하게 되자

277.孔子脩舊起廢,
공자께서 옛것을 고치고 버려진 것을 다시 일으켜

278.論<詩>, <書>,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논하셨고

279.作<春秋>
춘추(春秋)를 논하자

280.則學者至今則之.
후세의 학자들이 그것을 규범으로 삼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281.自獲麟以來四百有餘歲,
획린한 이래 400여 년 동안

♣획린(獲麟)/공자가 편찬한 춘추는 춘추시대 때인 노은공(魯隱公) 식고(息姑) 원년 기원전 722년에 시작하여 노애공(魯哀公) 장(將) 39년 기원전481년에 끝나는 240년 간의 노나라 역사책이다. 노애공 치세 때 노나라에 기린이 나타났으나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죽여 버리자 공자는 그것은 군주들이 무도하여 하늘의 뜻을 받들지 못한 것이라고 한탄하며 춘추를 끝냈다. 이를 획린(獲麟)이라고 한다. 공자는 2년 후인 기원전 479년에 죽었다.

282.而諸侯相兼,
제후들은 서로 다투어 나라를 넓히는 일에만 몰두하여

283.史記放絶,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명맥이 끊기게 되었다.

284.今漢興,
지금 한나라가 흥기하여

285.海內一統,
온 세상이 하나로 통일되었고

286.明主賢君忠信死義之士,
밝고 어진 임금과 충신들과 의로운 선비들이 가득하니

287.余爲太史而弗論載,
내가 태사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논평하여 기록하지 않음으로서

288.廢天下之史文,
천하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폐하고 말았구나!

289.余甚懼焉,
나는 이를 심히 두려워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290.余其念哉!”
너는 나의 이 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291.遷俯首流涕曰:
사마천이 머리를 수그리며 눈물을 흘리며 그의 부친에게 말했다.

292.“ 小子不敏,
소자가 불민하나

293.請悉論先人所次舊聞,
선조들이 정리하여 놓은 옛날의 기록들을 논하여 기록하도록 하고,

294.弗敢闕.”
하나도 빠뜨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309.卒三歲而遷爲太史公(졸삼세이천위태사공),
사마천은 그 부친이 세상을 뜬지 삼 년 후에 태사공이 되어,

310.紬史記石室金櫃之書(유사기석실금궤지서).
역사 기록과 석실의 금궤 속에 보관되어 있던 서책들을 편철(編綴)하였다.

311.五年而當太初元年,
그리고 5년 뒤인 태초(太初) 원년,

■태초(太初) 원년/ 한무제 37년인 기원전 104년이다. 진나라가 통일한 역법은 그 시작을 매년 10월로 했으나 1월을 그 해의 시작으로 고쳐 태초력이라 하고 연호를 원봉(元封)에서 태초(太初)로 개원했다. 태초력은 그때부터 1911년 신해혁명까지 2000여 년 동안 중국의 역법으로 사용되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음력(陰曆)을 말한다. 한무제(漢武帝)는 그의 재위 54년 동안 연호를 모두 11번 바꿨다. 태초(太初)는 한무제 기원전 104년부터 기원전 101까지 사용했던 한무제의 7번 째 연호이다.

312.十一月甲子朔旦冬至,
11월 갑자일 초하루 동짓날에

313.天曆始改,
역법을 개정하여 새롭게 시작하고

314.建于明堂,
명당을 세워

■명당(明堂)/중국 고대에 있어서 천자나 황제가 정사를 돌보던 곳으로, 조회, 제사 등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거행되었다.

다음은 명당을 노래한 명당부(明堂賦)이다.

‘ 빛나는 명당은 양지 녘에 자리 잡고 하늘을 향하여 우뚝 솟아 천하를 내려다본다. 하늘 아래 한 명뿐인 천자가 정령을 발하면 만국의 제후들이 달려와 배알하며 조공을 바친다. 명당의 내부는 종횡(縱橫)으로 각각 세 개씩의 방을 만드니 모두 아홉 개의 방으로 나누어지고 정 가운데의 큰방에 태묘(太廟)를 모시고 태묘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태실(太室)을 두었다. 또한 각 태실의 한 가운데는 토지신(土地神)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유(溜)를 두었다. 열고 닫는 단짝 문으로 36개의 문을 내고 72개의 창문을 열을 지어 달았다. 왼쪽 것과 오른 쪽 것은 윗사람과 아랫사람은 그 직분이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명당의 윗 모습은 둥글고 아래 모양은 네모진 것은 하늘과 땅이 기수(奇數)와 우수(隅數)로 이루어진 법칙에 따른 것이다. 관리들이 서는 곳을 여러 군데 만들어 놓은 것은 관리들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은 삼공(三公)이라 마땅히 명당의 가운데 계단에 늘어서서 여러 군신들과는 같이 서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며, 작위가 후작(侯爵)인 제후들은 동쪽 계단의 동쪽 편에 서서 서쪽을 쳐다보다가 천자가 나타나면 북쪽으로 몸을 돌려 절을 올리고, 백작(伯爵)들은 서쪽 계단의 서쪽으로 서서 동쪽을 바라보며 천자에게 절을 올린다. 자작(子爵)들은 정문의 동쪽 편에 늘어서고, 남작(男爵)들은 자작들의 서쪽 맞은편에 도열한다. 융족은 금(金)이니 서문 밖에, 이(夷)족은 목(木)이니 동문 밖에, 북문 밖에는 화(火)의 종족인 적(狄)족이, 남문 밖에는 수(水)의 종족인 만(蠻)족이 선다. 천하 구주(九州)의 지방 관원들은 명당 담장 밖에서 오른 쪽으로 열을 서서 도열하고, 변경을 지키는 수장들은 담장 밖에 도열하여 지방 관원들의 맞은편인 왼쪽에 서서 도열한다. 주홍색 방패와 옥으로 자루를 장식한 의장용 도끼들은 마치 수많은 나무들이 우뚝 솟아나서 앞 다투어 천자에게 배알하듯이 하고, 표범 가죽으로 깃대를 장식한 용이 그려진 천자의 깃발은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며 또한 엄숙하고 무성한 모습에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이룬 듯 하다. 연기가 걷히고 여러 백관들이 일제히 도열하면 하늘에서 태양이 나타나면, 천자께서 주옥을 꿰어 늘어뜨린 면류관을 쓰시고 임하시어 명당의 용좌에 앉으신다. 비단에 도끼의 문양을 수놓은 병풍을 뒤에 둘러치시고, 남쪽을 향하여 앉으시어 천하 제후들과 구름 같은 관리들이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는 것을 굽어보시면서 온 천하가 복종하고 있음을 아신다.

315.諸神受紀.
여러 신들에게 기년이 바뀌어 천하가 다시 시작되었음을 고했다.

■제신수기(諸神受紀)/남북조 때 남송(南宋)의 배인(裵 馬+因)이 쓴 사기집해(史記集解)의 “ 告于百神, 與天下更始, 著紀于是”를 따랐다.

316.太史公曰:
태사공이 말했다.

317.“ 先人有言:
돌아가신 부친께서 나에게 당부하시기를

318.‘自周公卒五百歲而有孔子
“ 주공이 죽고 5백 년이 지나 공자(孔子)가 태어나셨고

■주공(周公)의 정확한 사망 연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대체적으로 기원전 1100년에서 1000년 사이로 보며 고 공자의 탄생은 기원전 551년이다.

319.孔子卒后至于今五百歲,
다시 공자가 돌아가신 이래 지금 500년이 되었으니,

■공자는 춘추 후기인 기원전 479년에 죽고 사마담이 사마천을 만나 죽을 때 유언을 한 시점은 기원전 113년의 일이니 공자탄생부터 사마담이 죽을 때까지의 기간은 500년이 아니라 사실은 363년 만의 일이다.

 

320.而能紹明歲,
누가 나타나 능히 그 뜻을 이어받아 밝은 시대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321.正<易經>,
주역(周易)과 그 해설서들을 바르게 하고

322.繼<春秋>,
춘추를 계승하여 끊어진 역사기록을 잇게 할 것이며

323.本<詩>, <書>, <禮>, <樂>, 之際.’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경(禮經), 악경(樂經)의 근본을 밝힐 시기로다." 라고 말씀하셨다.


324.意在斯乎! 意在斯乎!
아버님의 뜻이 여기에 있도다!
여기에 있도다!

325.小子何敢讓言.”
소자가 어찌 감히 그 일을 사양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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