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단이라는 지명은 할미당에서 유래한 것으로 ‘할미’는 도교(道敎)의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西述聖母) 또는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일컫는다. 통일 신라 시대까지 지리산의 최고봉 천왕봉 기슭에 ‘할미’에게 산제를 드렸던 할미당이 있었는데, 고려 시대에 이곳으로 옮겨져 지명이 한자어인 노고단으로 된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현재의 노고단 위치에서 서쪽으로 2㎞ 지점에 있는 종석대(鍾石臺, 1,361m) 기슭으로 할미당을 옮겨 산제를 드렸다.
어린 왕자는 전 세계적으로 약 1억 4천만 부가 팔렸으며, 이는 지금까지 출판된 책들 중 가장 많이 팔리고 번역된 책들 중 하나이다. 현재까지 301개의 언어와 방언으로 번역되었다.#
미국에서 처음 발간된 소설이다. 이 소설의 유래가 참 재밌는데, 생텍쥐페리가 뉴욕에 체류 중이었을 당시, 미국의 담당 출판업자인 유진 레이널(Eugene Reynal)과 저녁식사를 하던 도중에 냅킨에 낙서로 아이 한 명을 그렸다. 유진 레이널이 그 그림을 보고 생택쥐페리에게 "크리스마스 전까지 그 아이를 소재로 동화를 쓰면 참 좋을 텐데요."라고 제안한 것이 이 소설을 탄생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유진 레이널이 그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제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그림이나, 동화 창작에 관심이 많았다. 1940년 당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던 도중에, 어느 여배우가 그에게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읽게 했고, 또 다른 친구가 그에게 수채화 물감을 선물해주었던 것이다. 침대에 누워 기분전환으로 끼적인 아이디어가 실제 작품이 된 케이스라고 하겠다. 일러스트를 다른 삽화가들에게 부탁했으나, 느낌이 오지 않았는지 결국 자신이 직접 그리게 된다.
뉴욕의 펜트하우스에서 원고를 쓰기 시작했지만, 뉴욕의 여름 날씨와 시끄러운 소음에 괴로워 하던 차에,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여 뉴욕에서 기차로 45분 거리에 있는 롱아일랜드 노스포트 근처 이튼 네크의 Asharoken이란 마을에서 식민지풍의 하얀 3층집을 세내어 살게 된다. 그는 여기에서 주로 밤에 커피와 담배의 도움을 받으며 창작했는데, 한밤중에 친구들을 깨워서 작품에 대한 조언이나, 드로잉의 자세에 대해서 논의했다고 한다. 친구 중 한 명이 어린 왕자나 여타 다른 사람들의 포즈를 담당하는 식으로 도와주기도 하였다. 양에 대한 영감은 그 집에서 기르던 푸들을 보고 떠올렸고, 호랑이는 역시 같은 집에서 기르던 복서에게서 영향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작업하다가 책상에서 자던 일도 흔했다고 한다.
그렇게 1942년 여름에서 가을까지 작업한 원고를 같은 해 10월에 끝마쳤다. 그렇게 1943년 4월 6일, 뉴욕에서 영어판과 프랑스어판을 동시 출간하게 된다.[3] 이때 유진 레이널의 회사가 프랑스의 갈리마르 사(社)와 분쟁을 겪기도 했는데, 생텍쥐페리의 모든 원고의 저작권은 갈리마르 사(社)가 가지고 있다는 계약 때문이었다. 비시 프랑스에서 몰래 출판되다가, 갈리마르 사는 출판된 원고의 타자기 본을 바탕으로 1945년 11월에 프랑스어 판을 정식으로 출간한다.(그러나 전후 종이 사정으로 인해 1946년에서야 본격적으로 서점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왕자의 번역이 역자마다 미묘하게 다른 이유는 이러한 판본의 차이 때문이다.
약 30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전세계 160개국에서 출판되었는데, 단 한 나라에서는 '어린 왕자'라고 말하면 못 알아듣는다고 한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에선 별의 왕자님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기 때문.[4]
기본적으로 동화와 비슷한 분위기를 띠고 있으면서도 풍자적인 내용이 섞여 있다. 혼자밖에 없는 별에서 왕을 칭하는 사람 등등. 이 때문에 어린 시절의 느낌과 어른이 되어 읽는 느낌이 사뭇 다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수많은 매체에서 동심의 상징으로 다루고 있다. 작중 동심에 관련된 이야기로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이 유명하다.
<어린 왕자>로 유명한 보아뱀. 코끼리를 한 번에 삼킨 뱀은 코끼리를 소화하는 데 온 힘을 다 쓰다 못해, 코끼리를 삼킨 죄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 라는 말이 있다.
이후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 이야기가 널리 퍼져 아이든 어른이든 그 유명한 그림을 보여줬을 때 모두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이라고 답하게 되자, 작가인 생텍쥐페리는 이 사실에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생텍쥐페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들의 동심에서 비롯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생각'을 말하고자 한 것인데, 정작 이 우화를 통해 '또 하나의 틀'이 생겨나버리게 된 셈이니 말이다.
작중 삽화가 대부분의 판본에서 동일한 이유는, 이것 역시 작가가 직접 그린 오리지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잘 그렸다고는 말하기 힘들고, 작중 화자 스스로가 자신은 보아뱀 그림 이후에 그림 공부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고, 어린 왕자가 화자가 그린 그림을 보고 이상하게 그렸다고 지적하는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묘한 매력이 있으며, 우화스러우면서도 풍자적인 면모가 잘 살아나는 글의 분위기와도 당연히 가장 잘 어울린다. 근래에 화려한 일러스트로 수정되어 새로 출판되는 경우도 많지만, 원작의 그림을 선호하는 경우가 꽤 많다.
B-612라는 소행성에서 살고 있던 소년. 명칭은 '왕자'이지만, 사실 왕자라고 하기엔 뭣한 구석이 좀 있다. 일단 자기 별에서 사람이라곤 어린 왕자 하나뿐이어서 왕국이라 할 것도 없다. 만나는 사람들도 딱히 그를 왕자로 취급하며 존대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일단 왕자라고 칭해진다.[5]
어린 왕자는 B-612에서 바오바브나무 싹을 캐거나 석양을 보며 살고 있다. B-612는 크기가 너무 작아서, 바오바브나무 같은 게 자라나면 통째로 산산조각이 날 수 있다고 한다. 어린 왕자가 조종사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한 이유도, 양에게 바오바브나무 싹을 먹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어린 왕자는 게으름뱅이가 혼자 사는 별을 본 적이 있는데, 게으름뱅이는 '아직 작으니까'라는 생각으로 3그루나 되는 바오바브나무를 방치해두었다고. 어린 왕자가 그 뒤에 말을 잇지 못하는 걸 보면, 아마 게으름뱅이의 별은 산산조각이 난 모양이다.
어린 왕자는 석양도 즐겨 본다. 본인 말로는 우울하거나, 쓸쓸하거나, 어쨌든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석양을 본다고 한다. 어린 왕자의 별은 하도 작아서 그저 의자 방향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석양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는데, 어린 왕자는 "언젠가는 하루에 석양을 44번이나 본 적이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자 조종사는 "그날은 네가 정말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날이었겠구나"라고 말한다. 이에 어린 왕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왕자와 조종사가 만난 지 4일째 되던 날, 어린 왕자는 조종사에게 "석양을 보고 싶어. 석양을 보러 가자."고 말했다가, "이곳(지구)이 내가 살던 별이 아님을 깜빡 잊고 있었다"는 말을 한다.
어린 왕자의 별에는 화산이 3개나 있는데, 어린 왕자는 손수 그 화산들을 청소한다. 1개는 사화산이지만 그래도 폭발할 수 있을지도 몰라서 청소한다고 한다. 어린 왕자는 화산에서 나오는 열로 요리를 편하게 했다고 한다. 음식을 데우는 데 안성맞춤이라고. 지구의 화산도 검댕 청소를 해주면 마찬가지로 폭발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불을 뿜을 뿐이지만, 어린 왕자의 화산에 비해 너무 커서 청소가 불가능하기에 폭발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느 날 어린 왕자의 별에 들어온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장미꽃을 하나 피운다. 어린 왕자는 장미꽃과 함께 살게 되었지만, 장미와 다툰 후 철새 무리를 이용해 이 별 저 별 떠돌아다니다가 지구에서 조종사와 만난다. 조종사와 사막에서 만나기 전에도 지구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으며 사막여우, 상인, 장미꽃들과 만났다. 거기서 여우를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뱀(독사)에겐 "네가 원한다면 내가 너를 너의 별로 돌려보내 줄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어린 왕자는 조종사와 만난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사막을 돌아다니다가 자신의 별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방식은, 앞서 등장했던 독사가 어린 왕자를 무는 것. 얼핏 보면 죽는 것 같지만, 어린 왕자의 말에 따르면 "몸을 가지고 돌아가긴 어려우니, 몸을 버리고 가는 거야"라고 한다.
상자 속의 양 그림을 그대로 믿고 상자 속의 양을 상상하는 등 순수한 아이이지만, 나름대로 성깔은 있는지, 조종사가 아무렇게나 말하자 화를 내기도 한다. 정확히는 조종사가 자신의 일로 바빠서, 어린 왕자가 말하는 말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말해서이다. 그 '본질'이란 것이 어린 왕자에게는 소중한 것이라서, 어린 왕자는 처음에는 화를 내다가 나중에는 울어버린다. 물론 조종사의 바쁜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 이야기만 주절주절 해댔기에 조종사에게서 그런 반응을 얻은 것이다. 이런걸 보면, 아이답게 자기 입장만 먼저 생각하는 구석도 있다.
그래도 나름대로 사려 깊은 성격이기도 하다. 어린 왕자가 방문한 5번째 별은 하루에 무려 1,440번이나 노을을 볼 수 있는 별이라, 어린 왕자는 그곳을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 하지만 하루에 1,440번이나 가로등 불을 켰다껐다 해야 하는 점등인의 딱한 처지 때문에, 차마 그 말은 입 밖에 내지 못한다.
의외로 어린 왕자는 자신에 대한 말을 그리 많이 하지 않았다. 작품에서 조종사가 전하는 어린 왕자에 대한 얘기는, 거의 다 어린 왕자가 했던 말에서 조종사 본인이 나름대로 추측한 것이다. 예를 들면 어린 왕자는 직접적으로 "바오바브나무는 위험해"라고 가르쳐준 적이 없고, 단지 조종사에게 "양이 나무를 먹을 수도 있어?"라고 묻기만 했다. 또한 "일은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좋아", "게으름뱅이가 사는 별은 바오바브나무 때문에 박살이 났어"라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들을 통해, 조종사는 바오바브나무의 위험성을 추측한 것이다.
상림은 함양읍 서쪽을 흐르고 있는 위천의 냇가에 자리잡은 호안림이며 신라진성여왕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에 조성한 숲이라고 전한다. 당시에는 지금의 위천수가 함양읍 중앙을 흐르고 있어 홍수의 피해가 심하였다고 한다. 최치원선생이 둑을 쌓아 강물을 지금의 위치로 돌리고 강변에 둑을 쌓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서 지금까지 이어오는 숲을 조성하였다. 당시에는 이숲을 대관림이라고 이름지어 잘 보호하였으므로 홍수의 피해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후 중간부분이 파괴되어 지금같이 상림과 하림으로 갈라졌으며, 하림구간은 취락의 형성으로 훼손되어 몇 그루의 나무가 서 있어 그 흔적만 남아있고 옛날 그대로의 숲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상림만이 남아있다.
國有玄妙之道曰風流(국유현묘지도왈풍류) : 나라의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設敎之源(설교지원) : 그 교를 창설한 내력은 備詳仙史(비상선사) : 선사에 자세히 실려 있으니 實乃包含三敎(실내포함삼교) : 실은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여 接化群生(접화군생) : 군생을 접화하는 것이다. 且如入則孝於家(차여입즉효어가) : 들어와서는 집에서 효도하고 出則忠於國(출즉충어국) : 나아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魯司寇之旨也(노사구지지야) : 노사구 공자의 뜻과 같은 것이요. 處無爲之事(처무위지사) : 무위로 일을 처리하고 行不言之敎(행부언지교) : 말하지 않은 교를 행함은 周柱史之宗也(주주사지종야) : 주주사의 종지와 같은 것이요. 諸惡莫作(제악막작) : 악한 일은 하지 말고 諸善奉行(제선봉행) : 선한 일은 받들어 행하는 것은 竺乾太子之化也(축건태자지화야) : 축건태자의 교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