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eWdDSpaZmhU 

 

 

ㅡ 김기림(1907. 4. 5. ~ 6.25 납북 ?)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1936년 3월 《조광(朝光)》에 발표.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0709

ko.wikipedia.org/wiki/%EA%B9%80%EA%B8%B0%EB%A6%BC

 

김기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기림(金起林, 1907년 4월 5일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이다. 본명은 김인손(金仁孫, 아명(兒名)은 金寅孫)이며, 편석촌(片石村)이라는 아호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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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金起林, 1907년 4월 5일 ~ ?)

함경북도 학성에서 출생하였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나온 후 일본의 니혼 대학 영문학과 중퇴를 거쳐 도호쿠 제국대학 영문학과를 학사 학위 취득하였다. 귀국하여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를 지내면서 조선일보에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또한 같은 신문에 평론 〈시의 기술 인식 현실 등 제문제〉를 발표하며 문학평론에도 뛰어들었다. 1933년 이상이효석조용만박태원 등과 함께 구인회를 결성하였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36년에는 첫 시집 《기상도》를 발표하였다. 1942년 낙향하여 고향 근처 경성중학교(鏡成中學校)의 영어 교사로 부임했으며, 영어 과목이 폐지되자 수학을 가르쳤다. 당시 제자로 시인 김규동이 있다.

1945년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였으나, 다음 해 소련이 점령한 북한 지역으로부터 월남하여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즈음에 탈퇴하였다. 중앙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강사로 일하다 서울대학교 조교수가 되었고, 신문화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한국 전쟁 때 납북되었고,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시기는 불명이다.

시집

  • 《기상도》(장문사, 1936)
  • 《태양의 풍속》(학예사, 1939)
  • 《바다와 나비》(신문화연구소, 1946)
  • 《새노래》(아문각,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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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꽃으로 불타는 황매산(黃梅山)/ [펌]황매산 산행

길 ㅡ 김기림(1907. 4. 5. ~ 6.25 납북 ?)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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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UKCKbhUgzvs 

 

 

www.youtube.com/watch?v=u_pUioO6eGA  

 

 

www.youtube.com/watch?v=aNe_7sGUAGI

 

 

www.youtube.com/watch?v=35w9QPnjX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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