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표기는 좌에서 우측 방향으로 쓰는 게 원칙이나 이 문의 표기는 한글 표기법을 따랐다. 문자는 한자인데.....

 

http://world.kbs.co.kr/special/unesco/contents/excellent/e2.htm?lang=k 

 

해인사 장경판전 I 한국의 유산, 세계의 유산 I KBS WORLD Radio

최고의 목판 경전,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의 본 이름은 ‘고려대장경’ 이었으나 경판이 81,340 여 장에 이르고 8만4천 법문을 수록했다 하여 ‘팔만대장경’으로 불리게 됐다. 이 경판의 길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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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r200500&code=kc_age_20 

 

우리역사넷

팔만대장경은 현재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하고 있는 고려의 재조대장경을 지칭한다. 경판의 수가 81,258매에 달한다고 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 일컫고 고려의 초조대장경을 다시 새긴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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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은 현재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하고 있는 고려의 재조대장경을 지칭한다.

경판의 수81,258매에 달한다고 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 일컫고 고려의 초조대장경을 다시 새긴 것이므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한다. 오늘날에는 흔히 고려대장경이라고 부른다.

고려의 팔만대장경은 13세기 중반에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기를 기원하고자 국가가 주도하여 조성하였다. 불교가 보편적인 문화로 향유되던 중세 동아시아에서 대장경의 조성은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과 기술을 상징하였다. 고려의 국력을 대내외에 과시했던 고려 팔만대장경은 현재에도 그 경판이 국보 3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2007년 등재)으로, 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은 국보 5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95년 등재)으로 등재되어 있다.

팔만대장경은 동아시아의 현존하는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완본(完本)이다. 팔만대장경에 포함되어 있는 서적 가운데에는 불교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유일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들 서적은 팔만대장경이 현존하고 있기에 우리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또한 팔만대장경은 당대에 유통되던 초조대장경과 개보장, 거란장 등을 세밀하게 교감하여 제작한 것인 까닭에, 대장경 가운데 내용이 가장 정확하고 오자가 적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일본이 1885년 『대일본교정대장경(大日本校訂大藏經)』과 1924년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을 간행할 때 모두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삼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불교가 보편적인 문화로 향유되던 중세 동아시아에서 대장경의 조성은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과 기술을 상징하였다. 경판과 장경판전이 국보일 뿐만 아니라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그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oBuKj3baETc 

 

 

https://www.youtube.com/watch?v=EWnkM7-InMc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합천 해인사 삼층석탑 (陜川 海印寺三層石塔<庭中塔>)

 

https://www.youtube.com/watch?v=JoIU9aHwO78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5122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광명의 부처를 의미하는 신앙대상. 법신불(法身佛)

이 부처님은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광명(光明)의 부처이다. 범어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음역하여 비로자나라고 한다.

법신은 빛깔이나 형상이 없는 우주의 본체인 진여실상(眞如實相)주1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부처를 신(身)이라고 하였을망정 평범한 색신(色身)주2이나 생신(生身)주3이 아니며, 갖가지 몸이 이것을 근거로 나오게 되는 원천적인 몸을 뜻한다.

이 부처님을 형상화시킬 때는 천엽연화(千葉蓮華)의 단상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왼손은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은 가볍게 들고 있다.

불상의 화대(華臺) 주위에 피어 있는 1,000개의 꽃잎 하나하나가 100억의 국토를 표현한 것으로, 이 부처님이 있는 세계의 공덕무량함과 광대장엄함은 헤아릴 길이 없음을 조형화한다.

*참고로 법신불(法身佛)의 '法'이란 불교에서는 진리의 의미로 사용한다. 따라서 佛法은붓다가 설한 불교의 진리의 의미다.

그 핵심은 계정혜 3학, 4성제, 8정도, 12연기로 요약된다.

 

3學 · 4성제(四聖諦) · 8정도(八正道) · 12연기(緣起)

https://kydong77.tistory.com/20640

 

3學 · 4성제(四聖諦) · 8정도(八正道) · 12연기(緣起)

www.youtube.com/watch?v=NEr14e7C5-M ko.wikipedia.org/wiki/%EC%82%AC%EC%84%B1%EC%A0%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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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불의 수인(손모양)

                                                                          ↑ 대웅전 측면

 

 

https://www.youtube.com/watch?v=rcE-RdDUAu8 

 

 

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C%B9%98%EC%9B%90

 

최치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최치원(崔致遠, 857년 ~ 908년? )은 신라 말기의 문신, 유학자, 문장가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해부(海夫)이며, 시호는 문창(文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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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진성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올리고 이어 아찬(阿飡)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귀족들의 거센 반발로 인하여 그 후 관직을 내놓고 난세(亂世)를 비관, 산림과 각지를 유랑하다가 경주 남산, 강주(현, 영주시)의 빙산, 합천 청량사, 지리산 쌍계사, 합포현의 별서 등에서 은거하다가 마지막에 가족을 데리고 가야산 해인사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그의 작품으로는 난랑비서문이 있어 신라 화랑도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으며, 계원필경과 동문선 등에 그의 시문이 일부 전하며, 금석총람에도 비문이 전한다.

 

최치원, 격황소서(檄黃巢書)·쌍녀분기(雙女墳記 )·사산비명(四山碑銘)/ 현승환, 최치원설화의 형성(논문)

https://kydong77.tistory.com/22184

 

최치원, 격황소서(檄黃巢書)·쌍녀분기(雙女墳記 )·사산비명(四山碑銘)/ 현승환, 최치원설화의

중국 양주 최치원 기념관 얖 백옥석상 https://kydong77.tistory.com/3613 최치원,격황소서(檄黃巢書) 최치원(崔致遠) ,격황소서(檄黃巢書)동문선 제49권 격서(檄書) http://www.minchu.or.kr/index.jsp?bizName=MK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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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OqaIJzKwCWU 

 

위 전서체 글씨를 해서체로 바꾸면.

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역천겁이불고 긍만세이장금
영겁의 시간이 흘렀어도 옛날이 아니요.
만세의 앞날이 오더라도 늘 지금이다.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https://www.youtube.com/watch?v=kDXjMVYwzWA 

 

가야산 홍류동계곡 물소리길

https://www.youtube.com/watch?v=RQLVdoSw1H4 

 

 

합천 롱산정(陜川 籠山亭)

https://ko.wikipedia.org/wiki/%ED%95%A9%EC%B2%9C_%EB%86%8D%EC%82%B0%EC%A0%95

 

합천 농산정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o.wikipedia.org

합천 농산정(陜川 籠山亭)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에 있는 건축물이다.

1990년 1월 16일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172호 농산정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경상남도 고시 제2018-485호,《경상남도 지정문화재(문화재자료) 명칭변경 고시》

..

신라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857∼?)이 지은 정자로, 은거 생활을 하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유교학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나라로 유학가서 과거에 급제한 후, 중국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이라는 글을 써서 이름을 날렸다. 귀국 후 정치개혁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떠나 가야산에 은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건물을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922년 해체해서 원래대로 다시 지은 것을 1936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2칸씩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https://www.youtube.com/watch?v=9g60FD-H3OU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 가야산 독서당에서 짓다

최치원(崔致遠,  857년 ~ 908년? 신라말)

狂奔疊石吼重巒
광분첩석후중만, 첩첩한 바위에 무겁게 달려 겹겹한 산이 울려

人語難分咫尺間
인어난분지척간, 지척에서도 사람들의 말 분간하기 어렵네.

常恐是非聲到耳
상공시비성도이, 항상 시비의 소리 귀에 닿을까 두려워

故敎流水盡籠山
고교류수진롱산, 일부러 흐르는 물로 다 산을 둘렀네

孤雲集』 卷一

 

*경주에도 시무10조를 상소한 上書莊이 있는데....

문창후 고운 선생은 사실적 표현이나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한 측면에서 한국 최고의 천재 문장가이고 현실주의자이시다.

ㅡ 운영자 생각

 

https://kydong77.tistory.com/22184

 

최치원, 격황소서(檄黃巢書)·쌍녀분기(雙女墳記 )·사산비명(四山碑銘)/ 현승환, 최치원설화의

중국 양주 최치원 기념관 얖 백옥석상 https://kydong77.tistory.com/3613 최치원,격황소서(檄黃巢書) 최치원(崔致遠) ,격황소서(檄黃巢書)동문선 제49권 격서(檄書) http://www.minchu.or.kr/index.jsp?bizName=MK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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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21641

 

咸陽上林공원, 신라 최치원 홍수방지용 인공숲/최치원의 時務十條

https://ko.wikipedia.org/wiki/%ED%95%A8%EC%96%91_%EC%83%81%EB%A6%BC 함양 상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o.wikipedia.org 함양 상림은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1962년 12월 3일 지정되었다. 상림의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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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선생의 은거지를 내려오면서 찍은 紅流門 사진이다.

山中問答(산중문답)
ㅡ 李白(이백, 701~762)


問余何事棲碧山

(문여하사서벽산) 왜 산에 사냐고 내게 묻기에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대답 없이 웃으니 마음 절로 한가로워

桃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 복사꽃 물에 떠서 아득히 흘러가니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여기는 신선세계, 인간 세상 아니라오.

 

'紅流'란 陶潛(도연명)의 <五柳先生傳(오류선생전)> 이후 이상향을 대변한다.

상류엔 복사꽃잎보다 고귀한 팔만대장경이 있으니 이보다 더한 이샹향이 세상천지 또 어디에 있겠는가!

 

https://kydong77.tistory.com/20749

 

陶潛(도잠), 五柳先生傳(오류선생전)

www.youtube.com/watch?v=J_OLAY1YzQA blog.daum.net/1958hms/175 五柳先生傳(오류선생전) -陶潛(도연명) 五柳先生傳(오류선생전) -陶潛(도연명) 도잠(365 - 427) 자는 淵明 자호는 오류선생. 동진대의 시인. 강서성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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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0ntn3Q28BD4 

 

 

https://www.youtube.com/watch?v=iJz74_p8Cds 

 

 

https://www.youtube.com/watch?v=t_rKxEQ6__8 

 

 

https://www.youtube.com/watch?v=RTfctYjq9l4 

 

http://kr.buddhism.org/%EB%B6%80%EC%B2%98%EB%8B%98%EC%9D%98-10%EB%8C%80%EC%A0%9C%EC%9E%90/

 

부처님의 10대제자 – 디지털 불교

1. 지혜(智慧)제일 사리자(舍利子) – 사리푸트라 최초에는 코올리타(목련)와 함께 산자야의 제자였다. 어느날 산정제(山頂祭:제사)를 구경 간 두 사람은 무상을 느끼고 출가하여 산자야의 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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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10대제자

1. 지혜(智慧)제일 사리자(舍利子) – 사리푸트라

최초에는 코올리타(목련)와 함께 산자야의 제자였다. 어느날 산정제(山頂祭:제사)를 구경 간 두 사람은 무상을 느끼고 출가하여 산자야의 교단에 출가하였다.
어느날 왕사성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고 있는 한 사문(앗사지라고 함)을 만났다.
사리자 : 사문이여, 당신의 정은한 그 태도에 나는 매혹이 되었소. 그 비결을 가르쳐 주시구려. 당신의 스승은 누구시며, 그리고 그 스승이 무엇을 가르치고 계시는지를..
사문 : 사문이여, 나의 스승은 석존이옵니다.

사문은 자신이 불제자임을 밝히고 그 스승인 석가모니에 대해서는, 자기는 비구가 된지 얼마 안된 사람이라 그것을 자세히 설명할 능력이 없다고 했다.그래서 그 요강만 을 말해 주겠다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경전에서는 전하고 있다.
제법(諸法)은 인연에서 생겨나고 여래는 그 인연을 말씀하신다.
제법의 소멸역시 대사문은 이같이 말씀하신다.

사리불은 이 말을 듣고 그 석가모니란 스승의 가르침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가를 납 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리불은 이 사실을 친구인 목련에게 알렸으며, 함께 석가모 니의 제자가 될 것을 결심하였다. 두 사람은 산자야를 설득하였으나 그는 완고하게 응하지 않았다. 마침내 산자야는 뛰어난 두 제자와 그 두 사람을 따라서 2백50명 의 제자들이 석가모니에게로 가는 것을 보고 피를 토하며 쓰러져 절명했다고 한다.

2. 신통(神通)제일 목련존자(目連尊者) – 목갈리나

석가모니의 십대 제자 중 두 번째는 목련존자( 또는 목건련 – 못가라나)이다. 지혜 제일인 사리불에 대해 목련은 {신통 제일}이라 한다.
목련은 왕사성 근교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다. 사리불과 함께 산정제를 구경 나 갔다가 무상을 느끼고 그것이 동기가 되어 둘이서 출가를 결심한다.
처음에는 산자야의 제자로 있다가 나중에 사리불과 함께 불교 교단에 귀의하게 된다. 불교 교단에 귀의한 후에도 두 사람이 함께 행동하는 기회가 많았던 것 같은데, 예를 들면 데바닷다의 반역 행위에 의해서 교단이 분열의 위기에 직면 했을 때 이 데 바닷다를 따라서 교단을 빠져나간 비구들을 다시 설득해 데려온 것이 이 두 사람이었 다. 그리고 두 사람은 때를 같이하여 입멸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성격은 대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리불이 {지혜 제일}이라 고 불리우는 사색형의 사람인데 반하여 {신통 제일}의 목련은 오히려 행동형의 사람이었다.

불교에서는 {사통행(四通行)}이라는 말이 있다. 사통행은 정각(正覺)에 이르는 길을 네 가지로 분류한 것으로써, 최종적인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이, 빠른가 느린가, 그리 고 또 그 길이 편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괴로움을 참고 견디어 거기에 이르는가 하 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낙(樂) – 고(苦), 속(速) – 지(遲)의 조합으로 네 가지가 된 다. 즉 낙속통행 – 고속통행 – 낙지통행 – 고지통행의 네 가지가 그것이다.
사리불은 낙속통행의 타입이었고, 목련은 그의 자기 평가에 따르면 고속통행의 타입 인 것 같다. 사리불이 천재형인데 비해 목련은 노력형의 불교자라할 수 있다.

◈육신통
신통력에 관해서 불교에서는 {육신통}을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 – 원하는 장소에 자유로이 출현할 수 있는 능력.
2) 천안통(天眼通) – 사람들의 미래의 운명까지도 내다보는 능력.
3) 천이통(天耳通) – 예민한, 초인적인 청력.
4) 타심통(他心通) – 남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능력.(독심술)
5) 숙명통(宿命通) – 자신이나 남의 전생의 모습을 아는 능력.
6) 누진통(漏盡通) – 세계와 인생에 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
누진통은 다른 종교로써는 얻어질 수 없는 불교 특유의 초능력인 것이다. 석가모니 는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이 누진통을 얻어 부처가 되셨으며, 깨달음을 얻은 자는 누구나가 누진통을 포함한 여섯가지의 신통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석존은 육신통 가운데 누진통을 제외한 다섯 가지 신통력의 사용을 금지하고 계셨다. 불교는 어디까지나 지혜의 종교이지, 다른 종교처럼 기적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석가모니의 만년 무렵의 사건이다.
코오사라국의 유리왕이 석가모니의 고국인 석가국을 침공했 을 때의 일이다. 유리왕은 젊은 시절에 석가국에 유학을 했었 는데, 그때 석가국 사람들에게 모욕을 받았었으므로, 말하자 면 복수를 해 주겠노라고 맹세를 하고 나선 공격이었다. 석 가모니는 처음에는 석가국으로 통하는 거리의 큰 나무 아래 서 조용히 참선을 하고 계셨다. 두 번, 세 번까지는 유리왕 도 석가모니에게 경의를 표하고 진격의 일시 중단을 명령했 다. 그렇지만 끝까지 단념한 것은 아니었다.왕의 심경은 분 노에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던 것이었다.석가국의 멸망의 날 은 가까웠다. 그래서 목련은 석가모니에게 제안했다.
[어떻게 신통력을 가지고 석가국을 지켜 구원하지 않 으렵니까?]
석가국을 쇠울타리로 탁 쳐 덮어 버릴 것을 목련은 간절히 진언했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목련의 이 간청을 단호히 물리쳤다. 석 가국 전체의 사람들이 쌓은 업(業)의 응보(應報)를 그 누가 대신 받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즉, 석가국이 멸망하는 것도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원인이 있다는 말이다. 그 원인을 간파하여 그 원인으로부터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불교의 깨달음의 지혜이다. 원인과 결과의 관 계는 {연기}의 이법이지만 그것을 분명히하는 것이 곧 누 진통이다. 즉 지혜를 젖혀 두고 우선 신통력(기적)에 의 해서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려는 것은 큰 착각이다. 석 가모니는 그와 같이 생각하여 목련에게 신통력의 사용을 금 지시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석가모니도 거리의 나무 아래에서의 좌선을 중지하셨다. 유리왕은 석가국을 공략하여 석가국의 사람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여 버렸다. 그렇지만 유리왕 역시 귀국 후 뱃놀이를 즐기고 있을 때에, 갑자기 인 폭풍우에 배가 전복하여 그대로 익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불교를 미워하는 외도( ⇒ 타종교 )의 사람들은 이 목련 존자를 최대의 적으로 생각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석가모니의 불교 교단이 그처럼 흥성하는 것은 거기에 목련이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도적을 사주하여, 그 목련 존자를 죽이게 했던 것이다.
목련은 한 번은 그 위기를 모면했었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업을 자각하고 스승인 석 가모니에게 하직 인사를 드린 후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목련 존자는 무턱대 고 신통력을 사용하여 도망쳐 다니지는 않았다.

3. 두타(頭陀)제일 마하가섭(摩訶迦葉) – 마하카샤파

◈구도자
인도의 마가다국 왕사성 근교의 바라문촌에 핏파리라는 이름을 가진 한 청년이 있었 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종교심이 많았는데, 양친을 여의고 난 다음에는 출가를 하여 수행에 전념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렇지만 그의 부모님은 그에게 결혼할 것을 권한다. 처음에는 단호하게 거절하던 그도 마침내 한 가지 타협안을 내 놓는다.
즉 핏파리는 순금으로 실물 크기의 예쁜 여성상을 만들게 해 가지고, 이러한 이상적 인 여성이라면 결혼을 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행운이지, 불행인지 꼭 닮은 여성이 있었던 것이다. 황금상 그 자체를 약혼 선물로 하여, 핏파리의 부모는 서둘러 결혼을 시키려고 청혼을 했다. 여성의 부모는 기꺼이 승락을 하였다.
핏파리는 20세였고, 아릿다운 아내는 16세의 바들러였다.

◈석존과의 만남
청년 핏파리의 양친은 돌아가셨고 그의 나이 32세가 되었다.
핏파리는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쟁기로 파 젖어 놓은 흙더미 속에서 한 마리의 작은 벌레가 머리를 내민다. 공중으로부터 작은 새가 내려와 그 벌레를 탁 쪼아 가지 고 다시 날아간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핏파리는, 순간 자신이 간접적으로 살생의 죄 를 범했음을 느끼고 깜짝 놀랬다. 그리고 확고히 출가할 결심을 굳히는 것이다.
아내인 바들러도 뜰에다 참깨를 널어 말리우고 있었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작은 새 가 날아와서는 참깨 위에 기어 가고 있는 벌레를 쪼아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간접적으로 살생의 죄를 범한 것을 알고, 출가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
두 사람은 함께 같은 결심을 이야기하고 나서, 그리고 둘이서 함께 동시에 출가한 다. 도중까지는 같은 길을 갔지만, 남녀가 함께 같은 곳에 있는 것은, 수행자로서 걸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갈림길에서 바들러는 왼쪽 길로, 핏파리는 오른쪽으로 간다. 오른쪽 길로 든 핏파리는 거기서 석가모니 스승을 만나게 된다.
핏파리 부부가 출가하던 순간에 대지가 진동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석가모니는 그의 출가를 알고, 그가 오는 길을 미리 알고 나무 아래에서 좌선을 하며 기다리고 계 셨다. 찾아온 핏파리에게,{마하가섭이여, 이리 와서 앉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석가모니 쪽에서 먼저 부르셨다고 한다.핏파리, 즉 마하가섭도 나무 아래에 서 좌선을 하고 있는 석가모니를 본 순간, 이 사람을 젖혀 두고 달리 내가 귀의할만한 스승은 없다고 깨달았던것 같다.
이리하여 석가모니에게 귀의한 마하가섭은 스승의 교설을 금방 이해했던 것이다. 일 설에 의하면, 그는 스승을 만난 후 8일 후에 깨달음을 얻고 아라한(성자)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또 석가모니의 의발을 물려 받은 인물이다. 즉 후계자가 된 것이다.

◈두타행
마하가섭은 {두타 제일}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두타란, 의.식.주에 대한 집착의 마음을 떨쳐 버리기 위한 수행 실천을 말하는 것이 다..
두타의 실천 항목으로서는 열 두가지가 있는데, 예로부터 그것을 {십이두타행}이라 고 한다
1. 재아란약처(在阿蘭若處) 마을과 떨어진 산림에서 산다.
2. 상행걸식(常行乞食) 언제나 탁발걸식에 의해서 생활한다.
3. 차제걸식(次第乞食) 걸식을 하는데 있어서 집의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4. 수일식법(受一食法] 하루 한 끼만 먹는다.
5. 절량식(節量食) 많이 먹지 않도록 양을 절약한다.
6. 중후부득음장(中後不得飮漿) 중식 이후에는 음료(국물)를 마시지 않는다.
7. 착폐납의(着弊納依] 폐물인 누더기로 만든 옷을 입는다.
8. 단삼의(但三依) 세 개 옷밖에는 갖지 않는다.
9. 총간주(塚間住). 무덤 사이에서 산다.
10. 수하지(樹下止) 나무 아래에서 산다.
11. 노지좌(露地坐) 한 곳에 앉아 지낸다.
12. 단좌불와( 但坐不臥) 언제나 앉아 있고 드러눕지 않는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모든 욕망을 버리고 나선 금욕의 성자상이다.

4. 천안(天眼)제일 아나율(阿那律) – 아우룻다

◈일곱 사람의 집단 출가
아나율은 석가모니와 마찬가지로 석가족의 출신으로서, 부귀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나율에게는 형제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 형제에게 출가의 결심을 이야기 했 다. 그러나 아나율이 털어놓은 결심을 들은 형제 또한 출가의 결심을 굳히고 있는 터 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 모두 출가를 해 버리면 가계를 이을 사람이 없어, 대가 끔ㅎ 기게 되었으므로, 두 사람은 함께 의논한 끝에 아나율이 출가하고 그 형제가 집에 남 게 되었다. 아나율은 마침내 어머니에게 출가를 승락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절 대로 출가를 승락하지 않았다..
{죽어도 내 자식을 내 놓을 순 없어. 하물며 살아 있는 자식을 집을 나가게 하다니! 무슨 소리냐.}
이것이 그의 어머니의 진심이었다.
{그렇다면 내 자식아, 만일 밧디야가 출가를 한다고 한다면 그 때는 너한테도 출가 를 허락해 주지.}.
어머니가 무심코 내뱉은 그 말을 포착하고, 그 때부터 아나율은 밧디야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밧디야는 석가족 중에서도 명문의 귀족이었으며, 이미 정치적으로 좋은 지 위에 올라 있던 인물이다. 그러니까 설마 그 밧디야가 출가할 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한 것이, 그의 어머니의 계산이었는데, 아나율의 열의는 이 밧디야의 마음을 움직이고 말 았던 것이다. 아나율과 밧디야, 거기에 다섯 친구를 합해 모두 일곱 사람이 동시에 출가한 것이 다. 이 중에는 십대 제자로 꼽히는 아난타와 우바리도 있었으며, 데바닷타 또한 이 때 같이 출가를 했다.

◈아나율의 심안
기원정사에서의 일이었다.코오사국 사위성의 교외에 있는 기타태자의 임원에 건립되 어진 정사이다. 그 때 석존은 기원정사의 강당에서 설법을 하고 계셨다. 청중들은 출 가자만이 아니었고 재가의 사람들도 와 있었던 모양이다..
석가모니의 설법을 들어면서, 기분이 좋은 듯 지긋이 눈을 감고 좌수를 하고 있는 승려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아나율이었다.
그를 슬쩍 흘겨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석가모니는 재빨리 그것을 눈치채셨다..
{설법을 들으면서 기분 좋게 잠을 잔다. 그것도 좋겠지.}.
석가모니는 그런 식으로 말하여 사람들 앞에서는 아나율을 별로 나무라지 않았다. 그렇지만 법좌가 끝난 다음, 석가모니는 아나율을 한 사람만을 불렀다. 그리고 조용히 그에게 충고를 하는 것이었다.
{아나율이여, 그대는 도를 찾아 출가한 것이 아니었던가. 출가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대가 설법을 들으면서 선잠을 자다니, 도대체 그 최초의 결심은 어디로 간 거 지. 정신이 해이되었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군 그래.}
아나율은 석가모니 앞에 납작 엎드렸다. 스승의 날까로운 지적에 그는 마음의 눈이 번쩍 뜨였다.
{분명히 내 마음이 해이된 탓입니다. 오늘 이후로 저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 가 령 이 몸이 썩어 부서질지라도 세존 앞에서 절대로 자는 일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아나율은 잠와 싸우기 시작했다. 잠을 거부할 것을 맹세한 아나율을 눈은, 감겨질 줄을 모르고 언제나 초롱초롱 빛나기만 했다. 의사를 치료를 부탁했으나 백약 이 무효였다. 그리하여 아나율은 눈동자만 멀뚱멀뚱 뜬 상태로 시력을 완전히 잃고 말 았다.
그는 결국은, 육체의 눈은 잃어버렸지만 그 대신 법(진리)의 눈인 {천안(天眼).심안 (心眼)}을 얻었던 것이다.

5. 해공(解空)제일 수보리(須菩提) – 수부티

수보리의 숙부인 수닷타가 업무차 마가다국에 갔다가 석가모니를 만나 간청해서 코 오사라국을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그리고 그때부터가 큰 일이었다. 석가모니의 일행을 묵게할 장소가 문제였다. 수행 을 계속하기에 가장 알맞은 한적한 장소가 있어야할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가에서 너무 떨어진 곳이어서는 곤란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석가모니 자신도 그러하지만 불제자들은 탁발에 의해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수닷타가 마침내 결정을 내린 곳이 기타태자가 소유하고 있는 임원이었다.
{이 땅을 제게 물려 주십시오!}
수닷타는 태자에게 제의를 했지만, 그곳은 태자도 마음에 드는 땅이어서, 황금을 깔 아 채워 준대도 떼어 줄 생각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리하여 한 장관에게 중재를 부탁했는데, 그 장관은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했는 데 {태자의 땅에 황금을 깔아 채워 주고서라도 사는게 어떻겠소?}
장관은 설마 그렇게까지 많은 돈을 주고 살 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말해 본 것 이었다. 그런데 수닷타는 그 장관의 말대로 했다고 한다. 그는 다음날 날이 새기가 바 쁘게 기타태자의 임원으로 황금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황금을 절반쯤 깔았 을 때, 기타태자가 승락을 하였다.
{당신의 열의에 감동했소. 나머지 절반의 땅은 내가 그분에게 기증하기로 마음을 굳 혔소.} 이리하여 기타태자의 임원에 정사가 세워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가리켜 {기원정사} 라고 불렀다.

석가모니를 맞는 날이었다. 기타태자도 일찍부터 정사에 나와 석가모니가 도착하기 를 기다리고 있었고, 수닷타는 어린애들처럼 부산을 떨며 서둘러댔다.
마침내 기원정사에 도착하신 석가모니는 그 자리에서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수보리는 석가모니에게 귀의하여 불제자가 되었다. 불제자가 되 어 그는 수행에 힘썼어며, 훗날 석가모니의 십대제자의 한 일컬어지기에 이른다. {해 공제일}이라고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이 때에 실제로 맨 앞에서 석가모니를 맞았던 것이 연화색 비구니였던것 같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를 최초로 맞아 준 것은, 그대가 아니라 수보리인 것이다. 그는 하늘을 보고 내 법신을 최초로 본 것이다.}라고
즉 다른 사람은 석가모니의 육체적인 모습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석 가모니 바로 그 사람이라고 믿어, 그런 생각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집착 을 초월한 자유의 경지가 바로 {공}이며, 그것을 수보리만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공}의 입장에 서서 참 석가모니를 배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수보리가 {해공제일}이라 불리우는 연유라고 한다.

6. 설법(說法)제일 부루나(富樓那) – 푸르나

부루나는 수나아파란타국의 수퍼라카라는 곳의 출신이다. 그곳은 인도의 서해안에 있는 항구로 옛날에는 무역항으로서 번영을 누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부루나의 아버지는 수퍼라카의 부호였다. 그러나 부루나는 아버지와 여종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으므로 아버지가 죽었을 때는 재산을 나누어 받지를 못했었다. 그는 무 일푼으로 집을 나왔다.집을 나온 부루나는 하나의 행운을 만났다. 때마침 입수한 우두전단 ( 향나무의 일 종 )을 밑천으로 하여 큰 돈을 모은다. 이리하여 그는 부자가 되었으며 해양 무역을 하기에 이른다.
부루나의 일곱 번째 항해 때의 일이었다. 이번의 항해에는 사위성의 상인들이 동성 해 있었다. 부루나는 이 상인들의 기이한 행동에 시선이 멎었다. 그들은 배에서 모두 목소리를 같이 하여 무언가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노래입니까?}
{이건 노래가 아닙니다.}
{그럼 주문입니까?}
{아뇨, 주문도 아닙니다. 이것은 불타의 가르침입니다.}
{불타요? 불타라니, 어떤 분입니까?}
이런 대화가 오고간 끝에, 부루나는 석가모니의 불교 교단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항해가 끝난 후, 그는 단숨에 사위성을 찾아갔다.
사위성에는 전부터 아는 수닷타가 있었다. 부루나는 이 수닷타의 소개로 석가모니를 뵈었다. 그리고 곧 출가하고 말았다.
후년에 그는 {설법제일}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다음은 석가모니와 부루나 존자와의 문답의 일부이다.
{세존이여,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 거기에서 불도 수행에 힘썼으면 합니다.
원하옵건대, 나에게 일상에 명심해야 할 사항을 말씀해 주십시오.}
{부루나여, 그 지방의 사람들은 성질이 사납고 흉악하다고 듣고 있는데, 만일 사람들이 그대를 대중의 면전에서 비난하고 비방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려는가?}
{그 때는 그들이 지팡이나 돌맹이, 혹은 손질 발길질로 나를 때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렵니다.}
{그럼 그들이 나무나 돌을 가지고 그대를 때린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때는 칼을 가지고 나를 상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훌륭한 사람 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면, 만일 그들이 칼로 상처를 입히는 날에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칼로 가지고 상처를 입힌다 할지라도,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칼로써 그대를 죽일 때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 때는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불자들 가운데는 인생의 온갖 고뇌가 따 르는 것을 싫어하여. 칼이나 독물로서 자신의 생명을 끊으려고 했던 자도 있 었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곳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끊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번거로움을 덜어 준 것이라고 생각하기 로 하겠습니다.}
여기에 이르자 석가모니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부루나여, 나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구나. 그대에게 그만한 각오가 서 있다면 분명히 괜찮을 거다. 너의 고향으로 가서 법을 펼치고 오도록 하라.}

7. 논의(論議)제일 가전연(迦전延) – 카트야나

가전연은 중인도의 서쪽 변방에 위치하고 있는 웃제니의 출신이다. 불서의 기록에 따르면, 웃제니는 석가모니가 전연 발을 들여 놓지 않았던 도성의 하나로 들어지고 있 다.
웃제니의 왕은 석가모니와 불교 교단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가능하면 석가모니를 자 기 나라로 초청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라도 그 가르침이 어떤 것 인지 그 개략만이라도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왕은 일곱 명의 사신들을 사위성의 기 원정사로 파견했다. 그 일곱 명 가운데 한 사람이 가전연이였다. 그는 아버지가 왕을 보필하는 스승으로 있었기 때문에 일곱 명 속에 끼어 들어 갈 수 있었다.
가전연은 석가모니를 만나자마자 그대로 출가하여 불제자가 되었다. 가전연은 수행 한 후 귀국하여 왕으로 하여금, 불교에 귀의케 했다. 왕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도 출가시켰다.

◈일야 현자의 게(偈)
가전연 존자가 석가모니의 문하에서 수행을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왕사성의 타포우다(온천) 정사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사밋디라는 비구가 온천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사밋디가 온천에서 일을 하고 있으려니까 천인(天人)이 찾아와서 그에게 말을 건다.
{당신은 일야 현자의 게를 알고 있습니까?}
{아뇨, 모릅니다.}
하고 사밋디는 대답을 했다. 그러자 천인은 {그렇다면 그것을 스승인 석가모니에게 가르쳐 달라면 될 거 아니오?}라는 말을 남 기고 떠나갔다.
사밋디는 석가모니에게 찾아가 {일야 현자의 게}를 가르쳐 주었으면 한다고 부탁을 했다. 석가모니는 즉석에서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과거를 ㅉ지 마라
미래를 바라지 마라
과거는 이미 버려진 것
그리고 미래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그러니 다만 현재의 것을
그것이 있는 곳에서 관찰하고
흔들림 없이, 움직이는 일 없이,
잘 간파하여 실천하라.
다만 오늘에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라.
누가 내일, 죽음이 있는 줄을 알랴.
참으로 그 사신의 대군과
만나지 않아도 될 리가 없다.
이와 같이 간파하여, 열심히
밤낮을 게으르지 않고 노력하는 자,
이러한 사람을 일야 현자라고 하고,
적정자(寂靜者), 적묵자(寂默者)라고 하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일야 현자의 게를 사밋디에게 가르쳐 준 채로 일어서서 가 버렸다. 사밋 디는 게의 문구만으로써는, 그것이 무엇을 가르쳐 주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어서 가전 연 존자를 찾아 갔다. 그 게에 대해서 설명을 해 달래기 위해서였다.
{친구여, 사밋디여, 세존이 계시지 않습니까? 세존 그 어른을 젖혀 두고 나한테 해 설을 요구하는 것은 큰 나무가 우뚝 솟아 있는데도, 작은 나무에 의지하려는 것과 같 은 짓이요.}
가전연은 이와 같이 사양하는 말을 했다. 그렇지만 사밋디는 다시 이렇게 말하면서 부탁을 하는 것이다.
{석존에게 게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 이상 더 해설까지 해 달 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가전연 존자는 이것을 상세히 해설할만한 학식의 소유 자라고 모든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터이니 염치 불구 하고 제발 세존을 대신해서 나에 게 게의 의미를 가르쳐 주십시요.}
그래서 가전연 존자는 그 게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사밋디는 그것을 감격적으로 경청했던 것이다.
후에 석가모니께서는 가전연의 해설을 전해 들었을 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고 한 다. {그거 옳은 말이다. 내가 해설을 했더라도 분명 가전연과 마찬가지로 말했을 것이다.}

일야 현자 : 오늘 하루라는 <현재>를 결코 게으르지 말고 바르게 노력하는 현자라는 의미

그의 교화 활동을 나타내주는 이야기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소오나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고향인 웃제니로 돌아온 가전연의 시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직 비구는 아니었고 재속의 신자였다.
그러나 소오나는 가전연 존자를 시중 들고 있는 동안에 자기 자신도 출가 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스승에게 그와 같이 요청을 한 다. 스승은 최초에는 그에게 단념하라고 권했지만, 그의 열의를 간파하고서 결국에는 승락을 했다.그런데 출가에는 수계의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수계의식을 할 때 열 사람 의 비구가 거기에 입회를 하도록 정해져 있다. 웃제니는 변방 땅이기 때문에 그 열 명의 비구를 쉽사리 모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소오나의 출가의 염원이 이루어진 것은, 그로부터 3년 후의 일이었 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후 소오나는 석가모니 그 분을 배알하고 싶다고 생각하기 식 작했다. 스승인 가전연 존자와 상담을 했는데, 스승도 그 일을 추진해 주었 다. 이리하여 소오나는 머나먼 사위성 기원정사까지, 석가모니를 찾아 여행 길을 떠난다.

그가 기원정사에 도착했을 때 석가모니는 이 먼 길을 찾아온 비구에게, 위 로의 말을 해 주셨다. 웃제니의 사정을 묻는 데로 이야기하는 중에, 변지라 서 비구를 모으기가 무척 힘들어 그의 출가가 늦어졌다는 까닭을 말씀드리 자, 석가모니는 무척 딱하게 여기시고 동정의 뜻을 표했다고 한다. 그래서 출가의 작법에 다음과 같은 특례 조항을 설정했던 것이다.
그것은 변지에서는 다섯 명의 비구로써 구족계를 주어도 좋다는 조항이었 다.
구족계란 출가자를 위한 계율이다.

8. 지계(持戒)제일 우바리(優婆離) – 우팔리

우바리 존자는 석가모니의 입멸 후 이루어진 제1회 결집에서 율(律)을 송출(誦出)한 분이며, 세존과 같은 석가족 출신이다. 출가 전 그의 직업은 이발사였다고 한다.
우바리 존자는 붙임성이 좋은 성격의 비구였는데, 아란야(= 인가에서 동떨어진 삼림 이나 들판)에서 수행을 하고 말한 때의 일이었다. 그 말을 들은 세존은, {우바리여, 그대에게는 아란야에서의 수행은 반드시 어울린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러니 그만 두는 게 좋겠다}고 충고 했던 것이다. 많은 불제자들이 아란야에서 들어가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자신에게는 금지시키시는지 의아해 하는 우바리 존자에 게, 세존께서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연못이 하나 있었다. 코끼리가 찾아와서 목욕을 했다. 귀를 씻고, 등을 닦 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기분이 좋은 것 같앗다. 이 모습을 토끼가 물끄 러미 바라보고 있었다.코끼리가 목욕을 다 끝 마치고 돌아간 다음 토끼는 자신도 목욕을 해야겠 다고 생각을 했다.하지만 코끼리 흉내를 내어 못으로 들어 간 토끼는 곧 무서운 생각이 들었 다. 몸집이 작으므로, 못이 깊고 꼿꼿 설 수도 없기 때문이다. 토끼는 허둥 지둥 도망쳐 나와 버렸다.

석가모니는 말씀을 계속하셨다.
{그러니까 우바리여, 아란야로 들어가서 수행을 할 수 없게 되는 사람도 있다. 우바 리여, 그대에게는 아란야는 걸 맞지가 않다. 그대는 교단 안에서 수행을 계속하도록 하라. 그대는 그러는 편이 좋다.}
세존은 간절히 우바리 존자를 설득했다. 물론 우바리 존자는 세존의 말씀을 받아들 였다. 아란야에 들어 가지 않고 교단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계속 수행을 하여 {지계 제일}이라고 불리우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9. 밀행(密行)제일 라후라(羅候羅) – 라훌라

라후라의 출생에 대해서 불전 속에서는 약간 이상스러운 말을 하고 있는 대목이 있 다.그것은 라후라가 세존이 성도를 하던 날 밤에 태어났다는 설과, 세존이 출가하기 전 에 태어났다는 설이다. 물론 일반적인 설은 세존이 출가하기 전에 태어났다는 설이다.앞의 설에 의하면 라후라는 석가모니께서 성도하시던 날 밤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석가모니의 부인인 아쇼다라는 불륜의 자식을 낳았다고 하여 친척들로부터 비 난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큰 돌 위에 라후라를 얹어 놓고
{이 애가 내 남편의 자식이라면 이 돌은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돌 을 못에 던졌다. 분명히 돌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리하여 그녀의 정절이 입증되었던 것이다.기쁘한 정반왕은 연못 속으로 들어가서 라후라를 안아 올렸다. 그러자 라후라가 없 어져 가벼워진 돌이, 곧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라후라}라는 이름은, 그가 태어난 날 밤에 월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 다.(산스크리트어로 [월식]을 [라후라]라고 한다.)

후설에 의하면, 아들의 탄생 소식을 들은 세존은 그 때,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장애가 생겼구나, 계박이 생겼구나}라고 이미 일찍부터 출가의 뜻을 품고 있던 석가모니는 후계자를 얻음으로써, 출가의 조 건은 갖추어졌지만, 반면 자식에 대한 애정 때문에 출가의 결심이 무디어질 것을 걱정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출가하는데 [장애]와 [계박(얽매임)]이 생겼다고 말했던 것이 다.
그리고 이 [장애]라는 말이 원어로 [라후라]라고 한다.(월식은 [빛을 방해한다]는 의미에서 [라후라]라고 부르는 것이다.)
{라후라(장애)가 생겼다.}는 세존의 중얼거림이, 그대로 {라후라}라는 이름이 되었 다.

◈라후라의 출가
귀향을 하신 석가모니는, 가비라성의 거리로 탁발을 다니셨다. 단 한 번도 궁전으로 는 찾아가지 않으셨다. 참다 못한 정반왕은 사자를 보내 이렇게 전했었다.
{우리 왕가의 부로 말하면, 수천 명의 출가자에게 공양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아들 이여, 제발 비렁뱅이 짓만은 그만 둬 다오!}
그러나 석가모니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이것은 출가자의 바른 생활 방법입니다}라고
ㅌ발하며 돌아다니는 석가모니를 가리키며, 아쇼다라는 아들인 라후라 이렇게 들려 주었다.
{저분이 너의 아버지란다. 어서 빨리 갔다 오렴, 가서 재산을 받아 오는 거다. 자식 은 누구나 자기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나눠 받을 권리가 있는 거니까.}
라후라는 어머님의 말씀에 따라 부친인 석가모니에게로 달려갔다.
{아버지, 내게 재산을 주십시오.}
그는 어머니가 가르쳐 준 대로 반복한다. 석가모니는 아무 대답도 없이 교외의 니그 로오다원으로 돌아갔다.
석가모니는 고제자인 사리불을 불러서 라후라의 문제를 상의했다. 그리고 사리불에 게 부탁하여 아들인 라후라를 출가 시켰다. 또 라후라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한 사란 의 비구로는 취급할 수 없어므로, 그의 지도를 목련에게 맡겼다.

10. 다문(多聞)제일 아난(阿難) – 아난다

아난 존자는 석가족 출신으로서 세존의 사촌 아우라고 한다.
불전에 그 이름이 나온 횟수는 아마 십대 제자들 가운데 이 아난 존자가 가장 많을 것이다. 그는 석가모니의 시자(= 비서)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가 누군가에게 시자 노릇을 맡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장로들이 차례차례 그 역을 맡고 싶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석가모니께서는 모두 나이를 먹어 체 력도 쇠약해졌다는 이유로 그들의 제안을 물리쳤다. 석가모니가 바라던 것은 아난이었 다.
하지만 정작 제안을 받은 아난이 주저했다. 너무 무거운 임무라는 것이 그 이유였 다.
그렇지만 아난은 세가지의 조건을 제시하고 세존의 제안을 수락했다.
1) 석존을 위해서 만들어진 의복은 받지 않는다.
2) 석존을 위한 식사는 받지 않는다.
3) 비시에 석존과 만나지 않는다.
석가모니는 교단의 주재자이시다. 따라서 재가 신자가 석가모니를 초대해서 석가모 니를 특별히 식사라도 대접한다거나 특별히 좋은 옷을 공양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그 러한 때에 시자에게도 몫을 나누어 줄 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양하고자 한다는 것이 다.
가령 시자가 될 지라도 자신은 어디까지나 모두 똑같은 불제자이기 때문에 특별 취 급을 받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비시에 석존과 만나지 않는다. – 언제든지 석존과 만날 수 있다는 특권을, 자신의 수행상 편의 때문에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아난의 자계였다.

아난 존자는 25년 동안의 시자 노릇을 한 자로서의 체험에 의해 결집을 시종 리이드 하여, 경전을 완성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오늘날 우리들이 원시 불교의 성전을 읽어 수가 있는 것은 이 아난 존자의 힘이 큰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AueNwP4raWs 

 

 

https://www.youtube.com/watch?v=6NIe7ZgPoEQ 

 

 

https://www.youtube.com/watch?v=aiqYN5jCYgI&t=103s 

 

 

http://m.buan114.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49 

 

능가산 관음봉 기슭에 있는 관음성지 내소사

부안군 진서면에는 관선불 정녕 관세음보살 영험이 스며든 곳일까?백제 무왕 34년(633) 헤구두타惠丘頭陀 스님이 세운 내소사來蘇寺는 능가산 관음봉 기슭에 있다. 당시 이름은 소래사蘇來寺였

m.buan114.com

 

https://www.youtube.com/watch?v=W8pMRcrA3f4 

 

https://www.youtube.com/watch?v=SVRzVcaOW9M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2487

 

내소사(來蘇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가 창건한 사찰. 시도기념물.
 
이칭, 소래사(蘇來寺)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가 창건한 사찰. 시도기념물.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633년(무왕 34)혜구(惠丘)가 창건하여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다. 그 뒤 1633년(인조 11)에 청민(靑旻)이 대웅보전을 지어 중건하였고, 1604년(인조 18)청영(淸映)이 설선당과 요사를 지었다.

1902년관해(觀海)가 수축한 뒤 1983년 일주문을 세우고 1985년 대웅보전을 중수하였으며, 1986년 천왕문을 짓고 설선당과 요사를 보수하였다.

1987년 봉래루를 해체 복원하였으며 1988년 요사인 진화사(眞華舍)를 건립하였다.

1995년 수각(水閣)과 종각을 짓고 범종을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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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주문(呪文)은 산스크리트어(영어의 뿌리)

산스크리트어> 한자 음역> 한글 독음, 따라서 한자나 한국어로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음.

https://www.youtube.com/watch?v=0ntn3Q28BD4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 가, 깨달음에 뿌리를 내려 주소서.)


*위 주문(呪文)의 산스크리트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토말 :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 스와하 <=== 억양을 부드럽게 했을 때

 

(산스크리트어 한역)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한자음 한국어 음역)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한국말 :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영   어 :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해   석 : 
Gate Gate          가라. 가라. 
paragate            피안으로 건너가라.
parasamgate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가라. 
bodhi svaha      깨달음에 뿌리를 내려라.

* bodhi > 보리(菩提) - 불타 정각(正覺)의 지혜. 

가라. 가라. 
피안으로 건너가라.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가라. 
깨달음에 뿌리를 내려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299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https://www.youtube.com/watch?v=bTizqvC5X9o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


일체를 초월하는 지혜로 피안에 도달하는 가장 핵심되는 부처님의 말씀.
觀관自자在재菩薩보살 行행深심般若반야波羅蜜多바라밀다時시 照조見견 五蘊오온皆개空공 度도一切일체苦고厄액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6]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을 건너느니라.[7][8]
舍利사리子자 色색不불異이空공 空공不불異이色색 色색卽즉是시空공 空공卽즉是시色색 受수想상行행識식 亦역復부如여是시
사리자여! 색[9]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10],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니, 감각ㆍ생각ㆍ행동ㆍ의식[11]도 그러하니라.
舍利사리子자 是시諸제法법空공相상 不불生생不불滅멸 不불垢구不부淨정 不부增증不불減감
사리자여! 모든 법의 공한 형태는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是시故고 空공中중無무色색 無무受수想상行행識식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실체가 없고 감각ㆍ생각ㆍ행동ㆍ의식도 없으며,
無무眼안耳이鼻비舌설身신意의 無무色색聲성香향味미觸촉法법 無무眼안界계 乃내至지無무意의識식界계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12]도, 의식도 없고,
색깔도, 소리도, 향기도, 맛도, 감촉[13]도, 법[14]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15]
無무無무明명 亦역無무無무明명盡진 乃내至지 無무老노死사 亦역無무老노死사盡진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16]
無무苦고集집滅멸道도 無무智지亦역無무得득
고집멸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以이無무所소得득故고 菩提薩埵보리살타 依의般若반야波羅蜜多바라밀다故고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心심無무罣괘礙애 無무罣괘礙애故고 無무有유恐공怖포 遠원離리顚전倒도夢몽想상 究구竟경涅槃열반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17]
三삼世세諸제佛불 依의般若반야波羅蜜多바라밀다 故고得득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느니라.
故고知지 般若반야波羅蜜多바라밀다 是시大대神신呪주 是시大대明명呪주 是시無무上상呪주 是시無무等등等등呪주 能능除제一切일체苦고 眞진實실不불虛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故고說설 般若반야波羅蜜多바라밀다呪주 卽즉說설呪주曰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말하니 이러하니라.
揭諦아제揭諦아제 波羅揭諦바라아제 波羅僧揭諦바라승아제 菩提모지 娑婆訶사바하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18]
揭諦아제揭諦아제 波羅揭諦바라아제 波羅僧揭諦바라승아제 菩提모지 娑婆訶사바하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19]
揭諦아제揭諦아제 波羅揭諦바라아제 波羅僧揭諦바라승아제 菩提모지 娑婆訶사바하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20]

 

[1] 로마자 표기는 Bhagavatī prajñāpāramitā hṛdaya Sūtra

[2] 와일리식 로마자 전사로는 bcom ldan 'das ma shes rab kyi pha rol tu phyin pa'i snying po이다. '모든 박가범(붓다)의 어머니가 되는 반야바라밀의 정수'라는 뜻으로, 여기서 말하는 붓다는 석가모니 부처 한 사람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의 붓다가 아니라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진리'를 인식하는 깨달음의 지혜를 얻은 모든 이들''' 즉 넓은 의미의 붓다를 가리킨다. 티베트어 한글표기안을 따름.

[3] 불교에서도 이나 지방마다 음이나 속도가 조금씩 다른데 가장 빠르기로 유명한 곳이 송광사와 해인사. 실제 송광사 예불에서는 더 빠르다. 그래서 지방의 불자가 서울에 와서 반야심경을 봉독할 때 가끔 삑사리 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또한 2022년 현재, 송광사 유튜브 채널의 예불영상들을 보면 녹음 당시와는 달리 반야바라밀다주 부분을 공식 번역에서의 한자 음역이 아닌 원어에 가까운 발음을 사용한다.

[4] 풀버전. 분량은 현장역본의 약 두배 정도가 된다. 반대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현장역본을 학계에서 (대조의 의미를 담아) 소본小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5] 조계종 측에서 이렇게 발표했는데, 개념적으로는 한국어(국어, 국문) 반야심경이라고 해야 옳다.

[6] '5가지 쌓임'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색ㆍ수ㆍ상ㆍ행ㆍ식, 즉 물질ㆍ감수작용ㆍ지각작용ㆍ의지작용ㆍ인식작용을 말한다. 쉽게는 존재하는 모든 실체, 감각과 생각과 행함과 의식이라 하기도 한다.

[7] 불교의 근본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오온은 물질ㆍ감각ㆍ지각ㆍ행동ㆍ의지를 뜻하는데, 부처의 모든 가르침은 이것을 전제하고 근거해서 모든 개념을 설명한다. 즉 초자연적 존재와 초능력, 기적 등을 근거하지 않는다.

[8] 이전 한글 반야심경에는 "온갖 고통에서 건지느니라."라고 했는데 오역이다. ‘度’는 ‘건너다(渡)’는 뜻으로,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여 온갖 고통을 초월하다.’는 뜻으로 풀어야 한다. # 이는 라는 한자가 불교에서 '(부처나 보살이) 지옥도나 아귀도 등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건진다'거나, 기도 혹은 천도재를 통해 이런 중생들을 천도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된 적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 오역이다. 혹은 관세음보살이 지닌 '구원자'의 이미지로부터 비롯된 오역일 수도 있다.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배가 뒤집혀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읊는다면 죽음을 피할 것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의 영향으로 관세음보살이 해상무역을 하던 상인들의 수호신 역할을 했던 역사도 있으니만큼. 이런 이유로 바닷가에 세워둔 관세음보살상을 '해수관음(海水觀音)'이라고 부른다.

[9] 여기서의 색(rupa)이 말하는 건 물질을 포함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뜻한다. 비어있다는 뜻의 공과 일반적인 의미에서 대립하는 개념이라 생각하면 된다.

[10] 산스크리트 원본에서는 '색과 구별되는 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공과 구별되는 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되어 있다.

[11] 산스크리트 원문에서는 '외부 자극을 받아들임', '대상에 대한 분석적 앎', '습관과 지어가는 행위에 의해 길들여지거나 훈습되는 것', '판단력 혹은 식별력'에 각각 해당한다.

[12] 산스크리트 원문에서는 이 부분이 '접촉'에 해당한다.

[13] 산스크리트 원문에 따르면 '인식 대상'에 해당한다.

[14] '오근의 인식을 종합하는' 기관이나 기능에 해당한다.

[15] 6근과 6식(이를 합쳐서 12처라고 한다.), 그리고 6계, 즉 안식계, 이식계, 비식계, 설식계, 신식계, 의식계가 모두 없다는 뜻. 이를 모두 합치면 18계가 된다.

[16] 12연기, 즉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의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이 모두 없다는 뜻.

[17] '괘애'를 '가애'로 읽는 경우도 많다. 한자사전에는 '罣'를 '괘'로만 표기한다 되어있으나, 예로부터 '가' 발음이 굳어져 전해진 것으로 본다.이는 불교식 한자발음인 '가애'로 하는 것이 옳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찰과 불자들은 '가애'로 발음한다.

[18] 이 부분은 범어를 한문으로 음역한 것으로, 우리말로 원어에 가깝게 새기자면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쓰와하 Gate Gate Pāragate Pāra-Saṃgate Bodhi Svāhā'. 산스크리트어를 해석하자면 '가자 가자, 피안(彼岸; 저 '언덕')으로 가자, 피안으로 (완전히) 넘어가자, 영원한 깨달음이여.' 여기서 넘어간다는 비유는, 앞서 서술된 '일체고액'에 휩쓸리지 않고 그것을 건넌다는 뜻이다. 최근의 해석 중에서는 '가떼'를 계, '빠라가떼'를 정, '빠라상가떼'를 혜, '보디'를 해탈, '쓰와하'를 해탈지견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19] 저 '가떼' 부분은 동사 gam(가다)의 피동분사이기 때문에, 원문 기준으로 보면 청유형으로 직역되지는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 설명 참조.

[20] 조계종 표준 한글반야심경은 관례에 따라 진언은 번역하지 않고 "아제아제 바라아제..." 하는 한문 음사로 되어 있다. 참고로 菩提의 실제 한자 발음은 보제이며, 불교 용어라면 보리라고 읽어야 하나, 반야심경에서 이 구절 한정으로 모지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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