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상도는

①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상(兜率來儀相),

② 룸비니 동산에 내려와서 탄생하는 상(毘藍降生相),

③ 사문에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상(四門遊觀相),

④ 성을 넘어가서 출가하는 상(踰城出家相),

⑤ 설산에서 수도하는 상(雪山修道相),

⑥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상(樹下降魔相),

⑦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포교하는 상(鹿苑轉法相),

⑧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1531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붓다의 생애, 팔상도(八相圖)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9745 팔상도(八相圖)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찰의 팔상전(八相殿, 捌相殿)이나 영산전(靈山殿)에 많이 봉안된다. 우리 나라의 팔상도는 대개 『불본행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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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등명 법등명 자귀의 법귀의

自燈明法燈明 自歸依 法歸依

https://www.youtube.com/watch?v=m1yoC0VzTEs

 

https://www.youtube.com/watch?v=ScT7DcBApMA

 

 

https://kydong77.tistory.com/22091

 

마명보살, 佛所行讚 28品/ 25.열반품(涅槃品)

25. 열반품(涅槃品) 佛所行讚 涅槃品第二十五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곳으로 떠나시자 비사리(鞞舍離)는 텅 비고 쓸쓸하여 마치 밤에 어두운 구름이 끼어 별과 달이 그 광명 잃은 듯했네. 佛至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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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22092

 

마명보살, 佛所行讚 28品/ 26. 대반열반품(大般涅槃品)

https://www.youtube.com/watch?v=m1yoC0VzTEs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너희들은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에게 의지하라. 또한 법을 등불로 삼고 법에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은 의지하지 마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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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22093

 

마명보살, 佛所行讚 28品/ 27. 탄열반품(歎涅槃品)

27. 탄열반품(歎涅槃品) 佛所行讚歎涅槃品第二十七 그때 어떤 천자가 천백 개의 흰 고니궁전[白鵠宮]을 타고 하늘 위 허공에서 부처님 반열반하심을 보고 널리 모든 하늘신을 위하여 무상게(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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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22094

 

마명보살, 佛所行讚 28品/ 28. 분사리품(分舍利品)

28. 분사리품(分舍利品) 佛所行讚分舍利品第二十八 그 모든 역사 무리들 사리(舍利)를 받들어 섬길 때 훌륭하고 묘한 향과 꽃으로 위없는 공양을 일으켰네. 彼諸力士衆, 奉事於舍利, 以勝妙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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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wank99/30020440609

 

김동리 : 소설 <등신불(等身佛)>

 <등신불(等身佛)> 【해설】    [사상계](1961. 11)에 발표된 김동리의 단편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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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계](1961. 11)에 발표된 김동리의 단편 소설. 태평양전쟁에 학병으로 끌려나간 주인공 '나'가 학병에서 탈출하여 불교에 귀의한 사건이 작품 구성의 골격을 이루고 있지만, 주제와 관련된 무게 중심은 작품 중간에 삽입된 '등신불'에 얽힌 만적의 불교 설화에 실려 있다. 

   이 작품은 <무녀도>와 마찬가지로 토속적이고 종교적 색채가 배어 있는 전통적 서정주의 세계를 보여 준 김동리의 후기 작품 세계를 대표한다. 인간의 운명은 추구하는 서정성과 순수 문학의 옹호라는 김동리의 문학관이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만적소신공양을 통해 종교적으로 승화되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J69sW8rLGg

 

 

 

https://www.youtube.com/watch?v=BD6IHqSyuok

 

 

 

 

https://www.youtube.com/watch?v=rrHZfAyCHyY

 

 

자승스님 열반송(대한불교조계종 제공)

 

 

https://namu.wiki/w/%EC%84%9D%EA%B0%80%EB%AA%A8%EB%8B%88/%EC%9D%BC%EC%83%9D

 

석가모니/일생 - 나무위키

석가모니 부처의 생애를 여덟 장의 그림으로 그린 팔상도는 가장 앞에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이라는 그림으로 시작한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의 탄생 이전에 거쳐온 여러 전생들과 그 전

namu.wiki

1. 개요

2. 탄생 이전

3. 탄생

카필라[17]는 기원전 6세기 어느 때에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 부근 히말라야 기슭에 위치한 샤카족의 작은 나라였다. 싯다르타는 그 나라의 왕 슈도다나[18]와 마야 부인[19] 사이에서 태어났다. 숫타니파타에는 석가모니 부처를 가리켜 "감자왕(甘蔗王)의 후예"라고 언급하는데, 석가족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감자왕으로부터 니구라 - 구로 - 구구로 - 사자협 - 정반(숫도다나)에 이르는 부계로 이어지는 것으로 계보를 전하고 있다.

어머니 마야 부인은 상아가 여섯 개 달린 흰 코끼리[20]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선 임신했다.[21] 마야 부인은 당시 풍습에 따라 친정인 천비성(데바다하)으로 향했는데[22], 도중에 룸비니 동산[23][24]에서 탐스러운 무우수(無憂樹) 나뭇가지를 잡고선,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서 석가모니를 낳았다.[25]

싯다르타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26]을 걸었는데 그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올랐다. 그리고는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다.[27] 하지만 마야 부인은 임신 중 무리해서 여행을 나간 게 원인이 되어 그 후유증으로 출산 7일 뒤[28]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후 이모 마하파자파티가 사별한 슈도다나와 결혼하여 어린 고타마를 돌보았다.

싯다르타가 태어나고 난 후에 히말라야 산정에서 수행하던 현자 아시타 선인이 신들이 서른이나 모여 기뻐하고 제석천이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신들은 "비할 데 없이 뛰어난 보배이신 저 보살께서 모든 사람의 이익과 평안을 위해 인간 세계에 태어나 석가족 마을 룸비니 동산에 나셨기로 우리가 이렇게 기뻐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아시타 선인은 곧 내려와 카필라 국에 있는 슈도다나 왕의 궁정으로 찾아가서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했다.

3.1. 출생년도
3.2. 성장

4. 사문유관(四門遊觀)

4. 사문유관(四門遊觀)

  자세한 내용은 사문유관 문서 참고하십시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 사문유관이라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석가모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가운데 하나로 팔상도에서 세 번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에 해당한다.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 및 《불본행집경》에 실려 있는 이 일화는 싯다르타가 네 개의 성문에서 각기 인간의 생로병사를 목격하고 그의 일생 처음으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싯다르타의 나이 스물아홉 살 되던 때, 싯다르타는 궁밖으로 나가보고 싶어서 아버지에게 허락을 구하고 마차에 올라 마부 찬다카와 함께 궁을 나섰다.

첫날, 궁궐 동문으로 나간 싯다르타는 늙어 힘도 없는 노인을 발견했다.[45] 싯다르타가 목격한 노인의 모습을 수행본기경에서는 이렇게 묘사한다.
머리는 희고 이는 빠졌으며 살갗은 느슨하고 얼굴은 주름지고 살도 없고 등은 앞으로 구부러졌으며, 뼈마디는 시들어서 굽고 눈물과 콧물과 침은 뒤섞여 흐르며 상기(上氣)가 되어 어깨로 숨을 쉬고 몸의 빛깔은 검으며, 머리와 손은 쓸데없이 흔들고 몸은 벌벌 떨며 오로(惡露)는 저절로 흐르는데 그 위에서 앉았다 누웠다 하였다.

너무도 추레한 노인의 모습을 본 태자는 옆에 있던 종에게 저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고, 종이 왕년에는 용맹하기로 유명한 전사였던 늙은이라고 대답하자 다시 "무엇을 늙음이라 하는가?" 하고 물었다. 이에 종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대저 늙음이란 나이가 많아서 감관이 완숙하고 모양이 변하고 빛깔이 쇠하며 기운이 미미하고 힘이 다하며 음식은 소화가 안 되고 뼈마디는 끊어지려 하며, 앉고 일어남에는 사람이 필요하며, 눈은 멀고 귀머거리가 되며, 문득 돌아서면 곧 말을 잊어버리고 갑자기 슬퍼지며,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늙음이라 하옵니다.

라고 하였다. 노인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싯다르타는 "사람이 세상에 사는 데에 이런 늙음이란 근심이 있었구나. 어리석은 사람이야 탐내고 사랑하겠지마는 어찌 즐거워 할 수가 있겠느냐? 만물이 봄에 나서 가을과 겨울이면 시들고 마르며, 늙음이 번개처럼 닥쳐오거늘 몸에 만족하고 의지하겠느냐?"라고 탄식하고 돌아왔고, 동쪽 성문에서 있었던 일을 들은 숫도다나 왕은 나라 안에 명을 내려서 태자가 다니는 길에 노인들이나 슬프고 불편한 감정을 자아낼 만한 것은 모두 치우게 했다.

다시 남쪽 성문으로 나간 싯다르타는 이번에는 병든 사람을 보게 되었다.
몸은 파리하고 배는 크며 몸은 샛노랗게 되었으며 기침을 하고 구역질을 하며, 온갖 마디는 몹시 쑤시고 아홉 구멍에서는 썩은 물이 새며, 부정한 것이 저절로 흐르고 눈으로는 빛깔을 보지 못하며, 귀로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신음하면서 숨을 쉬며, 손발은 허공을 더듬으며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짖고 ‘아내야, 아들아’ 하며 슬퍼하고 그리워하는지라.

역시나 충격을 받은 싯다르타는 종에게 "저 사람은 왜 저러느냐"고 물었고, 종은 "이 마을 부자인데 병들어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싯다르타가 다시 "병들었다는 것이 어떤 것이더냐?"라고 묻자, 종은 대답했다.
사람에게는 네 가지 요소[四大]인 땅[地]ㆍ물[水]ㆍ불[火]ㆍ바람[風]이 있어서 하나의 요소에 101가지 병이 있으며, 차츰 서로가 모여서 404가지 병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데, 이 사람은 반드시 극도로 춥고 극도로 덥고 극도로 굶주리고 극도로 배부르고 극도로 마시고 극도로 목마르는 등, 때와 자리를 잃었고 눕고 일어나는 데 법도가 없기 때문에 이런 병이 걸리게 되었습니다.

태자는 다시 충격을 받고 "나는 부귀한 곳에서 살고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음식으로 입을 상쾌하게 하고 마음을 놓아 제멋대로 하며 다섯 가지 욕심에 빠져서 스스로 깨달을 수가 없으므로 역시 이런 병이 있을 터인데, 저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느냐?"라며 한탄하며 궁으로 돌아왔다. 부왕은 이번에도 태자가 유람하는 곳에 길을 평탄하게 닦아 놓고 더러운 것을 길 가까이에 없게 하라는 명을 내렸다.

태자는 이번에는 서쪽 성문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싯다르타는 상여가 성을 나가고 집안 사람들이 상여를 따라 가면서 울부짖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번에도 태자는 옆에 있던 종에게 "저건 무슨 일이냐?"라고 물었고, 종은 마을에서 잘생긴 청년이 사고로 사망해 지금은 죽은 사람이라 그의 가족들이 장례를 치르고 있다고 대답했고 다시 싯다르타가 죽음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종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들은 바에 따르면, 죽음이란 다함입니다. 정신이 떠나간다는 것입니다. 네 가지 요소가 흩어지려 하면서 혼신(魂神)이 편안하지 못하며 바람 기운이 떠나가서 숨이 끊어지고 불기운이 스러져서 몸이 차가워지며, 바람이 먼저, 불이 다음으로, 그리고 혼령(魂靈)이 떠나갑니다. 신체는 뻣뻣해지고 다시는 느끼는 것이 없어지며 10여 일 동안이면 살이 무너지고 피가 흐르며 띵띵 부풀고 문드러져 냄새나며, 취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몸 속에 있던 벌레가 도리어 그 살을 뜯어먹으며, 힘줄과 맥은 문드러져 다하고 뼈마디는 흩어져서 해골은 제 자리를 달리하며 척추ㆍ옆구리ㆍ어깨ㆍ팔ㆍ넓적다리ㆍ정강이와 발이며 손발가락은 저마다 제 자리에서 떨어지고 날짐승ㆍ길짐승은 다투어 와서 뜯어먹으며, 하늘과 용ㆍ귀신ㆍ제왕ㆍ인민 등,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 간에 이 환난만은 멸한 이가 없습니다.

5. 성을 넘어 출가하다

5.1. 고행의 시작과 끝

6. 마왕의 꾐을 물리치다

6.1. 깨달음을 전파할 것인가, 말 것인가

7. 초전법륜(初轉法輪)

나는 일체에 뛰어나고 일체를 아는 사람.
무엇에도 더럽혀짐 없는 사람.
모든 것에서 떨어져나와
애욕을 끊고 해탈한 사람.
스스로 체득했으니
누구를 가리켜 스승이라 하랴.
나에게는 스승 없고, 같은 이 없으며
이 세상에 비길 이 없도다.
나는 곧 성자요 최고의 스승,
나 홀로 정각(正覺) 이루어 고요롭도다.
이제 법을 설하려 카시(迦尸)[108]로 가거니
어둠의 세상에 감로(甘露)[109]의 북을 울리리라.

『방광대장엄경』 11권. 득도 후 처음으로 만난 우파카[110]라는 자의 질문에 답하여.[111]

8. 열반

조선 전기에 그려진 쌍림열반도. 열반에 드는 장면에 이르러 슬퍼하는 제자들과, 석가모니의 다비 이후 사리를 거두는 사부대중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남송 시대 화가 목신충의 불열반도(仏涅槃図).[136]

 

석가모니의 열반은 석가모니 부처의 마지막 순간이자 그의 인생과 모든 설법을 총망라하는 클라이막스이기도 하다.[137] 다만 '열반'에 대해 언급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열반'이라는 이름이 붙은 경전 즉 열반경(대반열반경)이라는 경전만을 놓고 본다면 상좌부 불교에서 전해지는 열반경(디가 니까야 16)은 대중부 불교에서 전해지는 열반경과 달리 석가모니 부처에게 마가다국의 아자세사트루 왕이 대신 바르사카라를 보내 바이샬리에 거점을 두고 있던 밧지족의 나라를 멸망시킬 방법을 묻는 데서 시작한다.[138] 이때 석가모니 부처는 옆에서 자신을 따르고 있던 아난에게 밧지족의 모습에 대해 몇가지 질문을 한다.
  • 밧지족은 자주 모임을 개최하고 그 모임에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데, 정말 그런가.
  • 밧지족은 모일 때도 의기투합하여 모이고, 헤어질 때도 뜻을 모으고, 또한 일족의 행사도 뜻을 모아 거행한다는데, 정말 그런가.
  • 밧지족은 정해지지 않는 것은 새로 정하거나, 반대로 이미 정해진 것은 깨뜨리지 않고, 과거에 정해진 일족의 옛 법대로 행동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 밧지족은 나이 든 이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숭배하고 공양하며, 나이든 어른의 말을 경청하고자 한다는데, 정말 그런가.
  • 밧지족은 양가의 부인이나 여자를 폭력으로 붙잡아 가거나 구속하거나 가두지 않는다는데, 정말 그런가.
  • 밧지족은 그들의 성(城) 안팎에 있는 밧지족의 성지를 경애하고, 존중하고 숭배하고 공양하며 아끼고 봉납하는 제식(祭式)을 폐하지 않는다는데, 정말 그런가.
  • 밧지족은 존경받을 만한 아라한(阿羅漢)에 대하여 법에 적합한 대우를 해드리고자 능히 마음을 기울이고, 또한 아직 자기 나라에 오지 않은 존경받을 만한 이가 있다면, 그가 자기 나라를 찾아오도록 노력하며, 그리고 존경받을 만한 이들이 찾아오면 마음 편히 머물도록 항상 기원하고 있다는데, 정말 그런가.

아난다는 석가모니 부처가 묻는 일곱 가지 밧지족의 풍속에 대해서 모두 그렇다고 대답했고, 석가모니는 그때마다 "그러한 풍속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밧지 족에게는 번영이 있을 뿐 쇠망은 없을 것이다."라고 대답해 돌려보냈다.

사실 석가모니 부처가 밧지족을 치려는 아자세사트루 왕의 자문 요청을 정중하게 돌려보낸 것은 석가모니 자신이 전쟁에 개입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종교 지도자로서도 온당하지 못한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석가모니 자신이 바이샬리라는 도시를 마음에 들어했고,[139] 이 바이샬리가 다름 아닌 밧지족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이후 석가모니는 같은 내용의 설법을 영축산에서 행한 뒤, 영축산을 떠나서 죽림정사로, 다시 파릉성(巴陵弗城)[140]으로, 다시 발지국의 구리촌(拘利村)으로, 나다촌(那陀村)으로, 그리고 비사리국(毘舍利國) 즉 바이샬리로 왔다. 이곳에서 석가모니 부처는 유녀 암바팔리로부터 망고나무 정원을 희사받아 암바팔리에게 설법을 행한다.

법현이 번역한 대반열반경에 따르면 열반을 석 달 앞두고 바이샬리에서 마지막 하안거를 보내고 건다 마을로 가려던 석가모니 부처가 바이샬리를 돌아보며 조용히 웃었는데, 옆에서 이를 본 아난다가 이유를 묻자 석가모니 부처는 "내가 저 바이샬리를 보는 것이 지금이 마지막이 될 테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불경에서는 이때 석가모니 부처가 바이샬리를 돌아보던 모습을 상왕회수(象王廻首) 즉 '코끼리가 자신이 태어난 숲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것 같았다고 묘사하고 있다. 바이샬리를 떠난 석가모니 부처가 다시 돌아온 것은 마가다 국의 죽림총(죽림정사)이었다.

그때 석가모니 부처는 온 나라를 휩쓴 흉년으로 제대로 공양도 받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곡식이 귀해져서 탁발도 어렵게 된 가운데 안거가 다가오자 석가모니 부처는 마가다 안에 있는 비구들에게 "이 나라에 흉년이 들어 구걸하기가 매우 어렵다. 너희들은 각각 무리를 나누어 아는 곳을 따라 비사리나 발지국으로 가 그곳에서 안거(安居)하도록 하라. 그러면 궁색한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조언해 흩어 보낸 뒤, 자신은 아난과 함께 그대로 마가다에 머물렀다. 그리고 하안거 동안에 석가모니 부처는 병을 얻게 되었다.
비구들이여, 자기의 섬에 머물고 자기에게 귀의하라.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 법의 섬에 머물고 법에 귀의하라.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

해당 발언은 디가 니까야 16경 <대반열반경>과 26경 <전륜성왕사자후경>에서 전하는 석가모니 부처의 유명한 가르침이자 석가모니 부처의 유언으로 알려져있다. 보통 한역(漢譯)으로 자등명 법등명 자귀의 법귀의(自燈明法燈明 自歸依 法歸依)으로 옮기거나 현대한국어로는 "스스로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라. 스스로를 진리의 등불로 삼아, 그 진리에 의지해 살아가라.”라고 번역한다. 형식적으로 a-c와 b-d가 대구를 이루고 있다. 즉, atta dīpā | dhamma dīpā가 대구를 이루고 atta saraṇā | dhamma+saraṇā가 대구를 이루는 것. 문장 전체의 핵어(head)가 vihar '살다'로서 전체를 관할하는 것으로 무리없이 해석할 수 있으나 분석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무리하게 번역하지 않고 '디빠'로 옮기는 팔리어 단어 dīpā는, 전통적으로 등불로 번역되었으나 섬으로 번역할 수 있다. 어떤 번역을 취하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와 법을 지침으로 삼으라"는 의미는 동일하다.

a.
atta+dīpā
 
vihar+atha
재귀사+'디빠'
 
살다+순접
"스스로를 '디빠'로 삼아 살고"
b.
atta+saraṇā
an
añña+saraṇā
재귀사+피난처
부정어
다른 것+피난처
"스스로를 피난처로, 다른 것을 피난처로가 아니라"
c.
dhamma+dīpā
 
 
법+'디빠'
 
 
"법을 '디빠'로"
d.
dhamma+saraṇā
an
añña+saraṇā
법+피난처
부정어
다른 것+피난처
"법을 피난처로, 다른 것을 피난처로가 아니라"

자현 비구는 <붓다 순례>에서 해당 발언이 나온 상황을 제시한다. 바이샬리를 좋아해서 생의 마지막 안거도 바이샬리에서 했던 석가모니 부처는 그 무렵 바이샬리를 휩쓴 기근에 그 자신의 노쇠 탓에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명상으로 감관을 제어해 고통을 이기고 기적적으로 회복하였는데[141] 제자 아난다가 "저는 부처님께서 회복하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고, 석가모니 부처가 그 근거를 묻자 아난다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아직 교단(상가)와 관련된 후계 문제를 언급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때 석가모니 부처는 "스승에게는 사사롭게 쥔 주먹(師拳)은 없다."[142]고 대답하면서 "나는 교단(상가)의 지배자도 명령자도 아니며, 내가 열반에 든 뒤에도 따로 교단(상가)의 지도자는 세울 필요가 없다." 단언하고, 그때 그러면 누가 교단을 이끌어야 하느냐는 아난다의 질문에 석가모니 부처가 바로 '자등명 법등명' 발언이 나왔다는 것이다. 즉 자등명 법등명이라는 구절은 자신의 사후 교단(상가)를 가톨릭이나 이슬람처럼 어떤 통합된 지도자가 선출되어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남긴 법과 가르침, 계율 대로 이끌면 된다는 취지로 말한 것.[143]

바이샬리를 떠난 석가모니 부처는 파바 성에서 금 세공업자[144] 춘다에게 공양을 받았다. 이때 춘다가 올린 음식이 붓다가 받은 마지막 공양 '수까라 맛다와(sukaramaddava)'이다.[145] 전승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는 춘다의 수까라 맛다와 공양을 받고는 "이 음식은 붓다 이외에는 소화시킬 수 있는 이가 없으니, 아무에게 주지 말고 버려라." 하고는 사람이나 동물이 접할 수 없도록 땅을 파고 묻으라고 지시했다. 숫까라 맛다와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146] 춘다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만 먹고 다른 사람은 먹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석가모니 자신이 먹은 것은 공양받은 음식을 버릴 수가 없없기 때문이고.

결국 석가모니 부처는 이 음식을 먹고 극심한 복통과 설사에 시달린다. "석가모니 부처께서 곧 돌아가실 것 같았다"고 불전에서 그리고 있을 정도.[147] 자신 때문에 부처가 아픈 것을 눈치 챈 춘다가 흐느껴 울자, 울고 있는 춘다에게 "걱정 말게나. 무릇 세상에는 훌륭한 보시가 둘 있다네. 하나는 정각을 얻으려는 자에게 행한 보시[148] 나머지 하나는 깨달은 자가 열반에 이르렀을 때 행하는 보시일세."라며 다독여주었다고 한다. 이는 춘다를 추켜올려 석가모니를 죽였다는 죄목을 뒤집어 쓰게 하지 않기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는 주장도 있다.

석가모니 부처는 히란야바티 강을 건너서 말라족의 땅 쿠시나가라로 가서 두 그루의 사라수 아래에 자리를 잡고, 머리를 북쪽으로 놓고 오른쪽으로 누웠다.[149]

동아시아의 불교 전승에서 석가모니 부처의 열반일은 2월 15일이지만, 장아함경 유행경은 붓다의 탄생, 출가, 성도, 열반이 모두 2월 8일이었다고 기록하고, 반니원경은 탄생, 출가, 성도, 열반을 모두 4월 8일이라고 적시한다. 이와 달리 인도를 직접 견문하고 기록을 남긴 현장은 대당서역기 권6에서 열반일에 대한 일반론은 3월 15일이지만 설일체유부(상좌부 불교)는 9월 8일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자현 비구는 대당서역기의 언급과 석가모니 부처의 열반을 전하는 기록들에서 공통적으로 '승상(繩床)'이라는 그물침대(해먹)를 언급한 부분이 있음을 주목했다. 사라수 두 그루 사이에서 열반한 이유는 바로 그물 침대를 매는 것과 관련된 것이라는 말이며, 계절상 야외에서 그물 침대를 걸고 자기에는 2월은 아직은 쌀쌀하고 추운 날씨이므로 대당서역기에서 현장이 기록한 대로 9월의 더운 날이 석가모니 부처의 열반일이고 2월 15일은 어떤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50] 석가모니가 수까라 맛다와라는 공양을 받고 식중독 증세를 보였다는 전승과 대조해 보면 자현 비구의 추정도 설득력이 있다.
爾時,世尊與阿難俱,漸次遊行,到諸國界、村邑、聚落廣說諸法,所可化度,不可稱計。漸次復到鳩尸那竭國,力士生地,熙連河側,娑羅雙樹閒,而語阿難:‘可安繩牀而令北首,我今身體,極大苦痛,入於中夜,當取涅槃。’ 阿難受教,施繩牀已,佛卽就臥,右脅著地。爾時,阿難見佛臥已,隱於佛後悲泣流淚,極大苦惱。
이때 세존께서 아난과 함께 차례로 여러 나라와 고을과 마을들을 찾아다니면서 모든 법들을 자세히 설하니 그 교화하여 제도된 자들이 이루 일컬어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는 다시 구시나갈국(鳩尸那竭國)의 역사(力士)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서 희련하(熙連河) 곁에 있는 사라쌍수(娑羅雙樹) 사이에 이르러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지금 저 승상(繩床)에다 머리를 북쪽으로 하여 눕혀라. 지금 나는 몸이 지극히 고통스럽다. 그러니 오늘 밤에 열반에 들어야겠다.”
아난이 지시를 받고 승상을 마련하자 부처님께서 오른쪽 가슴을 땅에 붙이고 자리에 누우셨다. 이때 아난이 이처럼 부처님께서 누우신 것을 보고는 부처님 뒤에 숨어서 슬피 울면서 몹시 괴로워하였다.

마하마야경(摩訶摩耶經) 권하(卷下)
彼時,佛勅賢者阿難,汝於蘇連雙樹閒,施繩牀令北首,我夜半當滅度。受敎卽施,還白已具。佛到雙樹,就繩牀側右脅而臥。阿難在牀後,垂頭啼忼愾言 “一何駛哉!佛取泥洹。一何疾哉!世閒眼滅。我諸同志,從四方來,欲見佛者,望絕已矣。佛難復睹,難復得侍,來而不見,皆當悲慕,子何心哉。”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현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사라쌍수[蘇連雙樹] 사이에 승상(繩床)을 차려 놓고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게 하여라. 내가 밤중에 마땅히 열반에 들겠노라.”
아난은 곧 분부대로 하고 돌아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다 준비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쌍수 아래로 가시어 승상에 나아가 오른쪽 옆으로 누우셨다. 아난은 승상 뒤에서 머리를 숙이고 울면서 목 메인 소리로 말하였다.
“어찌하여 그렇게 빠른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심이여. 어찌하여 그렇게 빠른가, 세상의 눈이 없어지는구나. 나의 모든 동지들이 사방에서 부처님을 뵈려 하는데 그들은 절망하고 말 것이며, 또 다시는 뵙기도 어렵고 다시는 모시기도 어렵고 와서 뵙지 못하니, 모두 슬피 사모할 뿐이니 나의 마음을 어찌할까?”

『반니원경』(般泥洹經) 2권(ABC, K0654 v19, p.217c02-c09)

석가모니 부처의 열반이 가까워졌을 때, 조금 떨어진 나무 뒤에서 아난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 흘리는 이유가 절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굉장히 웃긴데, 스승이 곧 열반에 드는 것이 슬퍼서가 아니라 자신이 석가모니 부처를 25년이나 모셨음에도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는데 이제 열반에 드신다니 그것이 슬퍼서 울고 있었던 것이다. 이걸 알아챈 석가모니 부처는 아난을 불러 가까이 오게 하고는 "너는 내가 열반한 뒤에 머지 않아 반드시 깨달음을 완성할 것이다."라고 수기를 주었고, 이에 아난은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는 자신의 장례법과 탑을 세우는 위치와 주관자까지 세심하게 지시한 다음, 아난에게, 말라족 사람들에게 가서 '오늘밤 수행을 완성한 위대한 성인이 열반에 든다.'고 알려주도록 했다. 당시 말라족 사람들은 마침 일이 있어 공회당에 모여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구름같이 몰려나와 석가모니 부처의 발에 예배를 올렸다. 이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번거롭자, 아난은 한 사람씩 인사하지 말고 가족끼리 나와서 할 수 있도록 규칙을 수정하여 처리하였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에 대한 말라족의 예배가 모두 끝나고 겨우 번잡함을 넘어선 안정이 찾아왔을 때, 수바드라라는 수행자가 석가모니 부처의 친견을 요구했다. 수바드라는 당시 120세[151]나 되었다는 말라족의 이름난 수행자였다. 그러므로 이전에 이미 석가모니 부처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석가모니 부처를 찾아가서 묻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든다고 하자, 더 이상 자신을 속이는 허울을 벗고 진실한 무지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석가모니 부처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수바드라는 예배자라기 보다는 논쟁하러 온 사람 같아 보였던 아난다는 “당신은 너무 늦었소”라는 말로 친견을 차단하였고, 석가모니 부처는 이를 듣고는 아난에게 “나에게 묻고자 하는 것이니 막지 마라. 그가 내 마지막 제자가 되리라.“라며 수바드라를 불렀다. 석가모니 부처를 만난 수바드라는 자신이 알고 경험한 수행의 가치들을 장황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석가모니 부처는 평생 없었던 행동, 그러니까 말을 중간에 끊는(!) 행동을 하면서 “당신이 말하려는 것을 안다. 다만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당신이 부족한 것만을 지시해 주도록 하겠다.“라고 말했고, 수바드라가 이를 받아들이자, 석가모니 부처는 녹야원의 첫 설법에서 했던 것과 같은 주제의 사성제와 팔정도의 가르침을 준다.[152] 수바드라는 그의 완성되었던 수행자였기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을 듣자 곧장 깨달음을 얻었는데, '석가모니 부처의 열반을 차마 볼 수 없다.'면서 스스로 석가모니 부처보다 먼저 열반에 들기를 희망했다. 석가모니 부처가 뜻대로 하라고 하자, 수바드라는 바로 그 자리에서 열반에 들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석가모니 부처는, 제자들에게 최후로 더 질문할 것이 없는지를 물었지만 대중은 말이 없었고, 석가모니 부처는 다시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물어볼걸.' 하면서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물어보라."라고 재차 종용했지만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석가모니는 "내가 현재 열반에 가까웠다고 부담스러워서 못 묻는 것이라면, 친구의 일이라고 하면서 물어보라." 하고 다시금 말했지만 대중은 말이 없었다. 아난다가 "이 대중 가운데는 따로 궁금한 것이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사뢰었다. 그러자 석가모니 부처는 “나도 그런 줄 안다. 이 대중들 중에 가장 어린 비구도 모두 도적(道迹)을 증득하여 악한 세계[惡道]에 떨어지지 않고 일곱 번을 오가고 나서 반드시 괴로움의 끝을 다할 것이다.”라며 그 자리에 있던 1,200명의 제자들에게 그들이 얻게 될 도과(道果)에 대하여 기별하고, 팔을 내밀어 모든 비구들에게 “너희들은 마땅히 생각하라. 여래가 가끔씩 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은 마치 우담발꽃이 가끔 한 번씩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말한 다음, 게송을 읊었다.
오른팔은 자금(紫金)의 빛깔
부처의 나타남은 영서화(靈瑞華)와 같아라.
오고 가는 행(行)은 항상함 없으니
멸(滅)을 나타냄에 방일(放逸)함이[153] 없어라.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석가모니 부처가 의식이 있을 때 남긴, 사실상 석가모니 자신의 유언이었다.
handa dāni, bhikkhave, āmantayāmi vo,
vayadhammā saṅ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a
"이제 그대들에게 마지막 말을 해야겠다. 비구들이여,
조건 따라 움직이는 물질과 정신, 몸과 마음
이 모든 것은 사라지는 법이다.
그러니 방일하지 않음으로(appamādena)[154]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을 완벽하게 하라.

《디가 니까야》 중 『마하빠리닙바나 숫딴따』, 6. 7
是故, 比丘! 無爲放逸. 我以不放逸故, 自致正覺, 無量衆善, 亦由不放逸得. 一切萬物, 無常存者, 此是如來末後所說.
그러니 그대들이여, 방일하지 말지어다. 나는 방일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정각에 이르렀나니, 나의 한량없는 모든 올바름도 또한 방일하지 않음에서 연유하였을 따름이다.
일체의 모든 존재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상일 뿐이나니,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설법이니라.

《불설장아함경》(佛說長阿含經) 4권(ABC, K0647 v17, p.848a07-a10) 중 '유행경(遊行經)'

석가모니 부처가 숨을 거두는 장면을 불경은 선정의 순서에 따라 비유하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가 눈을 감는 순간 초선에 들었고, 초선에서 출정하여 제2선· 제3선·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 무소유처정 ·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에 차례로 든 후 멸수상정(滅受想定)[155]에 들었다.
이때까지 아직 수다원이었던 아난다는 이때 부처가 완전히 열반에 들었는지 궁금하여 천안이 열린 아누룻다 존자에게 물었으나, 아누룻다 존자는 부처가 멸수상정에 들어 있는 것이라고 정정하면서, 제4선에서 출정하여야 열반이라는 설법을 생전의 부처로부터 들었음을 이야기해준다.
이후 부처는 멸수상정에서 깨어나 비상비비상처정에, 비상비비상처정에서 깨어나 무소유처정에, 그렇게 차례로 식무변처정 · 공무변처정 · 제4선 · 제3선 · 제2선 ·초선에 들었다가 초선에서 깨어나 제2선 ·제3선 · 제4선에 들고 제4선에서 반열반, 즉 열반에 들었다.
대승불교에서는 기원전 544년 2월 15일의 일이라고 일컬어지며, 이 날을 음력으로 열반재일(涅槃齋日)로 기린다.

최후에 열반한 후 다비를 거행하였을 때, 사리가 무려 8 4이 나왔는데, 당시 석가모니를 조문하러 온 8부족 왕들이 서로 가지려고 다투다가 어느 바라문이 중재하여 나눠 받았다고 한다.[156] 
뒤늦게 온 한 나라는 남은 재를 가져갔고, 조정을 맡은 바라문은 사리가 들어있던 병을 가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전승에 따르면 이 바라문의 이름은 도로나 또는 향성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의 열반 이후 마하가섭의 주도로 석가모니 부처의 생전 언행과 설법에 대한 결집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제1차 경전 결집이라고 부른다.

 

[참고] 사리

산스크리트어로 시신(Śarīra: शरीर)

https://namu.wiki/w/%EC%82%AC%EB%A6%AC(%EB%B6%88%EA%B5%90)

 

사리(불교)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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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는 원래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시신(Śarīra: शरीर)을 가리키던 말일 뿐이었다. 하지만 중국 문화권에서 불교를 받아들일 때 고승이나 여래의 시신을 가리키는 말로 쓰기 위해 번역할 때 일부러 음역하였다. 이미 신라시대 문서에서부터 나오는 이야기로 산스크리트어의 본디 의미와 달라졌다. 불교계에서는 크게 사리진신사리(眞身舍利)법신사리(法身舍利)[1], 그리고 승사리(僧舍利)로 나눈다.

진신사리는 석가모니의 실제 유해, 법신사리는 불법(佛法, 불교의 가르침)이 부처의 또다른 몸이라 하여 불경을 사리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승사리는 고승의 시신, 또는 그들을 화장하면 나온다는 돌 조각을 가리킨다. 한국에서 일반대중에게 다짜고짜 '사리'라고 하면 대개는 고승을 화장하면 나온다는 승사리를 떠올린다. 한국 불교계에서도 승려의 시신을 높여서 법구(法軀)라고 부름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불자들조차도 '사리'라고 하면 보통은 화장하면 나오는 구슬 같은 승사리를 떠올린다.

3.1.1. 승사리의 정체?

다비식을 하면 나온다는 구슬 같은 승사리의 정체를 두고는 여러 주장이 있다. 아직 '이것이다!'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명쾌한 연구는 없지만, 와 화장에 쓰이는 장작의 성분이 특정 온도에 반응하여 얻어지는 결정이 사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추측이다. 실제로 본차이나는 의 뼈와 장석, 카오리나이트를 고온에 구워 만들어진다. 이 추측은 고행을 한 사람들에게서 사리가 많이 나온다는 이론을 뒷받침하는데,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해 뼈의 성분이 정상적인 성분 외 중금속이나 기타 이물질이 많아 사리 생성에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3.2. 법신사리

불교에서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부처의 몸은 금빛이나 보석의 색을 띤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의 몸과 색이 비슷하다는 보석을 진신사리를 대신하여 안치하였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 더 넓게는 불교의 가르침, 즉 불법(佛法)이야말로 부처님의 또다른 몸이라는 개념이 태동했다. 같은 이치로 불법의 가르침을 담은 불경은 또다른 부처의 몸(사리), 즉 법신사리가 되어 탑에 봉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경을 탑 안에 봉안하는 것은 종이에 글씨를 쓰면 되니까[14] 진신사리를 구해 안치하는 것보다 훨씬 쉬우므로 점차 이런 방식으로 탑을 제작하는 것이 대중화되었다.

3.3. 진신사리

사리들 중에서도 석가모니를 화장하여 나온 것을 진신사리(眞身舍利)라고 부른다. '부처의 진짜 몸(진신眞身)에서 나온 사리'라는 뜻이다. 불경에 따르면 석가모니를 화장하자 사리가 8섬 4말이나 나왔다고 하는데, 다비식을 하고 나온 재까지 모두 합친 분량이다.[18] 개요에서 설명했듯 본래 '사리'라는 용어는 구슬 같은 결정체가 아니라, 산스크리트어의 본래 의미대로 시신 자체를 가리킨다. 스리랑카의 진신사리가 치아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불경의 기록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자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나무를 모아 전륜성왕의 예법에 맞추어 화장을 하다가 향수를 부어 불을 끈 뒤, 불에 타고 남은 를 인근 8개 나라/부족의 대표들에게 분배하였다. 대표들이 저마다 사리를 분배받아 고국으로 돌아가 탑을 하나씩 세우니, 최초로 세운 불탑이라 하여 '근본8탑'이라고 부른다.[19] 석가모니가 열반하고 2-3백 년 남짓 지나 아쇼카 왕이 인도를 통일한 뒤 불교에 귀의하자, 근본8탑 중 한 기만 제외하고 나머지 탑들을 해체하여 사리를 꺼내 인도 각지에 진신사리를 담은 불탑 8만 4천 기를 세웠다고 한다.[20] 아쇼카 왕이 열지 않은 한 기는 오늘날 네팔 람그람에 있는 탑인데, 전설에 따르면 아쇼카가 탑을 열려고 하자 용왕이 나타나 막았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 내외, 자승 대종사 조계사 분향소 조문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오늘 오후 4시경 해봉당 자승 대종사 분향소가 있는 서울 조계사를 찾았습니다.총무부장 성화스님 안내로 조계사로 이동한 윤 대통령 내외는 총무원장 진우스님

m.btnnews.tv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3/12/02/IDLRYUTUFZB3HBZBQSKBRRG57M/

 

자승 스님,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자승 스님,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www.chosun.com

 

 

 

 

 

https://altanhouse.tistory.com/2902

 

석가탑 이야기 -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전문

- 2010년 8월 5일 오후 6시 14분에 찍은 사진인데 석가탑이 황금빛으로 빛난다. 휠체어에 앉은 이는 어머니, 미는 이는 나, 돌아선 이는 동생. 저 뒤에 보이는 건 다보탑. 석가탑이 황금빛으로 빛나

altanhouse.tistory.com

 

 

https://www.youtube.com/watch?v=UM56CFFkxBE&t=450s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국역

- 위키문헌

* 내가 아는 부처님은 탑 세운다고 복받는 거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늘 마음을 잘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경을 읽어보니 부처님 말씀 같지 않다. 아마도 후대의 누군가가 지어낸 위경일 것이다. 부처님은 남의 약점 파고들어 불법을 파시는 분이 결코 아니다. 다만 자료로서 기록한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이 가비라성의 큰 절에서 큰 비구 대중 한량없는 이들과 함께 계셨다. 또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 보살 마하살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제일체개장보살(除一切盖障菩薩), 집금강주(執金剛主)보살, 관세음보살, 문수사리보살, 보현보살, 무진의보살, 미륵보살들이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또 한량없는 하늘,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사람인 듯 아닌 듯한 대중들이 공경하고 둘러 있는 가운데서 법을 말씀하시었다.

 

그 때 그 성중에 카필라전다라는 바라문이 있어 외도에 귀의하여 불법을 믿지 아니하였다.

어떤 관상쟁이가 카필라전다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당신은 칠일 후에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소. "

바라문은 이 말을 듣고 놀랍고 걱정되어 이렇게 생각하였다.

"누가 나를 구해줄 것인가, 누구에게 의지하면 좋을까? 옳지! 사문 `고오타마`는 온갖 지혜를 얻은 이라고 하니, 내가 이제 그에게 가리라. 그가 진실로 온갖 지혜를 얻은 이라면 반드시 나의 걱정하는 일을 말하리라."

 

바라문은 곧 부처니 계신 데 가서 대중이 모인 가운데 멀리 부처님을 바라 뵈옵고 말을 물으려하면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석가여래께서는 세 세상을 법을 모르시는 것이 없었는데, 바라문의 마음을 아시고 자비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이제부터 칠일 후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죽어서는 그 무서운 아비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아비지옥에서 나와서는 다시 十六지옥에 들어갈 것이고, 거기서 나와서는 다시 찬다아라가 될 것이다. 찬다아라가 죽어서는 또 돼지가 되어서 더러운 데 살면서 똥을 먹을 것이다. 돼지 몸으로 오래 살면서 무한한 천하고 더럽고 고약한 냄새가 나고 얼굴이 누추하고 검둥이가 되어 조갈병이 들고 대풍창에 걸려서 사람들이 상대하기를 싫어할 것이다. 목구멍은 바늘 같아서 항상 굶주릴 것이며 남에게 얻어맞고 채이는 괴로움을 한없이 받을 것이다.”

 

바라문은 이 말씀을 듣고 무섭고 근심이 되어 슬피 울면서 부처님 앞에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시는 어른이옵니다. 제가 지금 지성으로 참회하고 귀의하오니, 세존이시여, 저의 지옥의 고통을 건지어 주옵소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이 가비라성의 세 길거리에 오래된 탑이 있고, 그 탑 속에는 여래의 사리가 있느니라. 지금 그 탑이 무너져 가는 터이니, 그대가 가서 탑을 중수하면서 상륜당(相輪당)을 만들고 그 속에 다라니를 외우라. 그리하면 그대의 수명이 오래갈 것이며, 오랜 뒤에 목숨을 마치면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백천 겁 동안 복락을 받을 것이다. 그 뒤에는 다시 묘희(妙喜)세계에 왕생하여 역시 백천 겁 동안 복락을 받고, 또 그 뒤에는 도솔천에 태어나서 백천 겁 동안 복락이 계속될 것이다. 태어나는 곳마다 지난 세상의 일을 분명히 알며, 모든 장애를 제멸하고 모든 죄업이 소멸되어서 온갖 지옥의 고통을 여의고, 항상 부처님을 뵈옵고 부처님의 보호함을 받을 것이다.

바라문이여, 어떤 비구나 비구니가 우파아사카나 우파아시카아나 선남자 선여인으로서 단명하거나 병이 많은 이가 있거든, 오래된 탑을 중수하거나 진흙으로 작은 탑을 만들고 법 대로 다라니를 써넣고 또 다라니로 단을 모으라. 그 복으로 단명한 사람은 목숨이 중장하고 병이 있는 이는 곧 쾌차할 것이며, 지옥이란 소리를 귀로 듣지도 않을 터인데, 어찌 몸으로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되겠느냐? ”

 

바라문은 이 말을 듣고 오래된 탑이 있는 데로 가서 수리하려 하였다.

그때에 회중에 있던 제개장보살이 일어나서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 다라니는 어떠한 것이 오며, 어떠한 복덕과 착한 뿌리를 내나이까?”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큰 다라니의 이름은 최승무구청정광명대단장법(最勝無垢淸淨光明大壇場法)이다. 여러 부처님들이 이것으로 중생을 위로하시느니라. 이 다라니를 들은 사람은 다섯 가지 역적죄가 소멸되어 지옥문이 닫히게 되고, 간탐하고 질투한 죄업을 멸하게 되며, 명이 짧은 이는 수명이 장원하며 여러 가지 상서스러운 일이 저절로 생기게 되느니라."

 

제개장보살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이 다라니 법을 말씀하시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수명이 장구하게 하오며, 모든 죄업을 제멸케 하오며, 모든 중생의 광명이 되게 하옵소서.”

그때 세존께서 이 청을 들으시고 정수리로 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시어 모든 부처님을 깨우치시고, 다시 돌아와서 부처님의 정수리로 들어갔다. 그때 부처님은 화평하고 아름답고 뜻에 맞는 카라빈카의 음성으로 다라니를 말씀하시었다.


나무삽다삽다디뱌 삼약삼몯다구디남 반리숟다마나사 바짇다반리딧디다남 나무바가바디아미다유사사다다아다사 옴 다다아다숟뎨 아유비수달니 싱하라싱하라 살바다다아다비리야바리나 반라디싱하라아유 살마라살마라 살바다다아다삼매염 몯디몯디 몯댜비몯다 몯다야몯다야 살바바바아바라나비숟뎨 비아다마라배염 소몯다몯뎨 호로호로스바하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제개장보살이여, 이것이 근본 다라니 주문이니라. 만일 이 법을 행하려거든, 초팔일이나 십삼일이나 십사일이나 십오일에, 사리탑을 오른쪽으로 칠십칠 바퀴를 돌면서 이 다라니 칠십칠 번을 외우고, 단을 만들어 위를 깨끗이 하고 이 다라니 칠십칠 벌을 쓰되, 법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다라니를 쓰는 사람에게 향과 꽃과 음식과 의복을 이바지하고, 목욕하고 향을 바르고 향을 풍기어 공양하며, 혹은 칠보로 보시하고 힘을 따라서 보시할 것이니라. 쓴 주문은 탑 속에 넣고 그 탑에 공양하며, 혹은 진흙으로 작은 탑 칠십칠을 만들고 주문 한 벌씩을 탑 속에 넣어 공양할 것이니라. 이렇게 법대로 행하면 명이 짧아 죽을 이는 목숨을 증장하고, 모든 업장과 나쁜 갈래에 떨어질 업이 모두 소멸되어 지옥 아귀 축생을 아주 여의고, 태어나는 곳마다 숙명통을 얻고 모든 소원이 만족할 것이며 칠십칠억 여래에게 착한 뿌리를 심은 것과 같을 것이니, 여러 가지 질병과 모든 번뇌가 아주 소멸되리라.

 

어떤 사람이 병이 위중하여 죽게 되거든 네 모난 단을 만들고 그 위에 여러 가지 형상(바퀴형상, 금강저형상, 소라형상, 삼지장형상, 달월자형상, 연꽃형상이며, 네 모에 연꽃을 그리고 그 위에 병을 놓는다)을 그릴 것이며 병에 향수를 담아 네 귀에 놓고, 향로를 벌여 놓고 여러 가지 좋은 향을 사루며, 오색 바루에 여러 가지 음식과 세 가지 흰 밥(우유. 타락. 쌀밥)을 담고, 다시 다섯 바루를(각각 향과 꽃과 물과 멥쌀을 담는다) 단 위에 놓아 공양하되, 갖가지 음식을 한 그릇에 담고 물 한 병을 단 복판에 놓을 것이다. 단의 곁에는 비나아야카의 형상을 그리되 정수리에 등불을 이게 하며, 병난 사람은 단의 서쪽에 단을 향하여 있게 하고, 밥 한 그릇을 담아 병인과 상대한 단위에 놓을 것이며, 주문 외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청정하고 법답게, 이 병인에게 주문 칠십칠 번을 읽으면 이 죽게 된 사람이 칠일 동안을 혼수상태에 있다가 정신을 차리며 살아나되, 꿈에서 깨어나는 듯 하리라.

 

만일 정성드리는 때에 하루 한 번씩 이 주문을 읽어 백 년을 채우면 이 사람은 죽어서 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이요, 만일 온갖 때에 항상 외우면 이 사람은 보리를 증득할 때까지 숙명통을 항상 얻을 것이며, 요사하거나 나쁜 갈래에 떨어지는 일이 아주 없으리라. 만일 죽을 사람을 위하여 그 이름을 부르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이 주문은 칠십칠 번 외우면, 그 사람이 나쁜 갈래에 태어났더라도 즉시 나쁜 갈래의 고통을 떠나서 천상에 태어날 것이니라. 혹은 즉은 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법대로 이 주문을 써서 탑 속에 넣고 법답게 공양하면, 죽은 이가 나쁜 갈래를 떠나서 천상에 태어날 것이며, 혹은 도솔천궁에 태어나서 보리를 이룰 때까지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이 부처님 탑을 오른쪽으로 돌거나 예배하거나 공양하면 마땅히 수기를 받고 아누다라삼약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모든 업장과 온갖 죄업이 모두 소멸할 것이며, 내지 나는 새나 축생들까지도 이 탑 그림자에 들어가면 축생의 갈래를 영원히 여읠 것이고, 오무간 죄를 지었더라도 탑 그림자 속에 들어가거나 탑에 몸만 스쳐도 모든 죄업이 소멸되느니라. 탑이 있는 곳에는 모든 사귀나 도깨비나 야차, 나찰, 푸우타나, 피샤아자 따위와 나쁜 짐승, 악한 용, 독한 벌레, 독한 풀이 없으며 망량귀, 악귀, 요정들이 없고 난리, 화재, 수재, 우박, 흉년, 횡사, 악몽, 불상사들이 없으리라.

 

그 나라에 나쁜 일이 있게 되어 징조가 나타날 적에는 그 탑에서 변화가 생기며 큰 빛이 나와서 모든 나쁜 재변을 소멸시키며, 만일 악심을 품은 중생이나 원수나 원수의 무리나 강도나 불한당들이 일어나 그 나라를 괴란케 하려할 적에는 탑에서 화광이 나오며 군대가 나타나서 나쁜 무리들로 하여금 자연히 물러가게 하고, 항상 모든 하늘 신장들이 그 나라를 수호하며, 그 나라의 사방으로 백 유순 안이 결계(結界)한 곳이 되어 그 가운데 있는 남자나 여인이나 짐승들까지도 나쁜 괴질이나 열병이나 싸우는 일이 아주 없어지고, 법에 어기는 일을 하지 아니하며, 다른 주문들도 이것을 파괴하지 못하리니, 이것을 근본 다라니 법이라 하느니라. 착한 남자여, 이제 그대를 위하여 상륜당 안에 넣는 다라니 법을 말하리라.


옴 살바다다아다비보라옛디 마니갈나가아라젯다 비몯다옛디 두로두로 사만다미로기뎨 살라살라반비미수다니 몯다니삼몯다니 반라바라옛디바리 마니타세 호로지라마라비숟뎨 훔훔스바하


착한 남자여, 마땅히 법대로 이 주문 구십구 벌을 써서 상륜당의 사방 주위에 두고, 또 이 주문과 주문의 공덕을 써서 상륜당의 속에 비밀하게 넣어 두라. 그렇게 하면 곧 구만 구천의 상륜당을 세우는 것이 되며 구만 구천의 부처님 사리를 모시는 것이 되며, 구만 구천의 부처님 사리탑을 조성하는 것이 되며 구만 구천의 보리장(菩리場) 탑을 조성함이 되느니라. 만일 진흙으로 작은 탑을 만들고 그 안에 이 다라니를 모시면 이것은 곧 구만구천의 작은 보배탑을 만드는 것과 같느니라. 만일 어떤 중생이 이 탑을 오른쪽으로 돌거나 한 번 예배하거나 합장하거나 꽃 한 곳이나 향 한 개나 사루는 향, 바르는 향, 풍경, 깃발, 일산 등으로 공양하면 구만구천의 부처님 탑에 공양함과 같아서 광대한 선근과 복덕을 성취하리라. 만일 나는 새나 모기나 등에나 파리 따위가 탑 그림자 속에 들어오면 수기를 받아 아누다라삼약삼보리에서 퇴전하지 아니할 것이며 먼데서 이 탑을 바라보거나 탑의 풍경 소리를 듣거나 그 이름만 듣더라도 그 사람이 지은 오무간죄와 모든 죄업이 모두 소멸되고 모든 부처님의 호념하심을 받아 여래의 청정한 도를 얻으리니 이것을 상륜 다라니 법이라 하느니라. 착한 남자여, 이제 그대에게 부처님 탑을 수리하는 다라니 법을 말하리라.


옴 살바다다아다 마라비수다니 건다비리반나바리 반라디싱사가라 다다아다다도다리 다라다라 산다라산다라 살바다다아다 아딧뎨스바하


만일 비구 비구니 우파아사카 우파아시카아들이 스스로 탑을 조성하거나 남을 시켜 조성하거나 낡은 탑을 중수하거나 작은 탑을 흙으로 만들거나 벽돌로 만들거나 할 적에는 먼저 주문을 일천팔 번 외운 뒤에 탑을 조성할 것이며 크기는 혹 손톱만 하게, 혹 한 자쯤 되게 혹 한 유순쯤 되게 조성하면 이 주문의 신력과 정성으로 인하여 그 만든 탑에서 기묘한 향기를 낼 것이니 이른바 우두전단(牛頭 檀) 향기, 적전단 향기, 백전단 향기, 용뇌, 사향, 울금 등의 향기와 천상의 향기들이니라. 스스로 조성하거나 남을 시켜 조성하거나 간에 다 같이 엄청난 착한 뿌리와 복덕을 성취할 것이며, 명이 짧은 이는 장수하게 되고, 후에 운명할 때에는 구십구억 백천 나유타 부처님을 뵈옵고, 항상 부처님들의 생각하심을 받으며 수기를 받고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수명이 구십구억 백천 나유타 세가 될 것이요, 항상 숙명통과 하늘눈과 하늘몸과 하늘귀와 하늘코를 얻으며 천상의 전단향기가 몸에서 풍기고 입에서는 우바라꽃 향기가 나며 다섯 신통을 얻고 아누다라삼약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아니하리라. 만일 주문을 외워 넣은 향가루 반죽을 겨자씨 만큼이라도 그 탑에 바르면 그 사람도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큰 복덕을 얻으리라.

 

만일 비구 비구니 우파아사카 우파아시카아들이 다라니를 법대로 써서 청정한 마음으로 존중하고 공양하기를 부처님과 같이 하며 주문을 쓰는 사람에게도 앞서서 말한 대로 공양하고, 주문을 써서 탑속에 넣거나 중수한 탑에나 상륜당 속에 넣어서 법 대로 회향하면 이 사람은 엄청난 착한 뿌리와 복덕을 얻으리라. ”

 

부처님께서 이 다라니 인법(印法)을 말씀할 때에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이 같은 소리로 칭찬하시었다.

“잘하시나이다! 석가모니 여래 응공 정등각이시여. 이 다라니 인법을 말씀하시어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큰 이익을 얻게 하시며 큰 복덕을 받게 하시며 내지 아누다라삼약삼보리에서 퇴전하지 않게 하시나이다.”

그때 대중 가운데 있던 하늘과 용과 팔부신중과 여러 보살과 집금강주와 사천왕과 제석천왕과 범천왕과 나아라아야나와 마혜수바라와 마니바드라와 푸우나바드라와 발라신과 야마신과 바루마신과 굼파이라신과 바삽파신과 모든 신선들이 이 법을 듣고는 싫어서 떠나려는 생각이 조화되고 부드러워져서 매우 즐거워하면서 큰 소리로 서로 말하였다.

“희유한 일이외다! 부처님 여래시여. 희유한 일이외다! 진정하고 묘한 법이여. 희유한 일이외다! 이 다라니 인법이여. 여래의 말씀하심은 매우 만나기 어렵나이다.”

 

이때 카필라전다 바라문은 이 공덕이 크고 이익이 수승한 큰 다라니 법인을 듣고 법의 성품을 밝게 깨달았으며, 티끌을 떠나고 때를 여의어 번뇌를 끊고 죄업을 소멸하고, 목숨이 연장되어 매우 즐거워하면서 한량없이 뛰놀았고 모든 중생들도 마음이 깨끗하여지게 하였다.

 

이때 제개장보살 마하살이 한 보배로 된 좌대를 가졌으니, 갖가지 보배로 사이사이 꾸미었고 부처님의 장엄으로 장엄한 것이다. 법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큰 다라니 단장법인(壇場法印)은 만나기 어려운 것이거늘, 세존께서 일체 중생들의 묘한 법장을 말씀하시어서 남섬부주에 머물러주시니 중생들로 하여금 착한 뿌리를 심게 하심이며, 목숨을 보시하심이며, 번뇌를 소멸케 하심이옵니다. 저도 지금 중생들로 하여금 착한 뿌리를 심게 하오며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하여, 부처님 앞에서 ` 제 마음의 인발인 다라니 법`을 말하겠나이다.


나무바가바뎨나바나바디남 삼약삼몯다구지나유다사다사하살라남 나무살바니바라나비스감비니몯다살다야 옴 도로도로 살바아바라나비숟다니 살바다다아다마유반라니 비보리 니마리살바싣다남마사가리뎨 바라바라 살바살다바로가니 훔살바니바라나비스감비니 살바바바비소다니스바하


세존이시여, 이 다라니는 구십구억 부처님께서 말씀하시 것이오니 지극한 마음으로 잠깐만이라도 외우면 온갖 죄업이 모두 소멸되나이다. 만일 법대로 이 주문 구십구 벌을 써서 탑 속에 넣거나 탑의 네 귀에 두거나, 어떤 이가 이 탑에 예배하고 찬탄하며, 혹 향과 꽃과 바르는 향과 등촉으로 공양하면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모든 죄를 멸하고 모든 업장을 녹이고 일체 소원이 만족할 것이니 이것은 곧 구십구억 백천 나유타 항하사 여래께 공양하는 것이며 구십구억 백천 나유타 항하사 사리탑에 공양하는 것이니 엄청난 착한 뿌리와 크나큰 복덕을 성취하리이다.

만일 비구가 초팔일이나 십삼일에나 십사일에나 십오일에 목욕하고 정성드리고 새옷 입고, 하루낮 하루밤을 먹지 아니하거나 혹은 세 가지 흰밥만 먹고, 부처님 탑을 오른쪽으로 돌면서 이 다라니를 일백팔 번을 외우면 백천겁 죄업과 오무간 죄가 소멸될 것이오니 제가 몸을 나타내어 그의 소원을 만족케 하겠사오며 모든 부처님 여래를 뵈옵게 하겠나이다.

 

만일 이백팔 번을 외우면 여러 가지 선정을 얻고, 삼백팔 번을 외우면 일체 업장을 깨끗이 하는 삼매를 얻고, 사백팔 번을 채우면 사천왕이 항상 와서 친근하고 몸을 나타내어 호위하며 그의 몸과 마음에 가피를 주어 위엄과 공덕이 늘게 되고, 오백팔 번을 채우면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아승지 큰 선근을 얻고, 육백팔 번을 채우면 이 주문의 근본법을 성취하여 주문을 지니는 신선이 되고, 칠백팔 번을 채우면 큰 위덕을 얻어 광명이 구족하고, 팔백팔 번을 채우면 마음이 청정하여지고, 구백팔 번을 채우면 다섯 감관이 청정하여지고, 일천팔 번을 채우면 수다원과를 얻고, 이천 번을 채우면 사다함과를 얻고, 삼천 번을 채우면 아나함과를 얻고, 사천 번을 채우면 아라한과를 얻고, 오천 번을 채우면 벽지불과를 얻고, 육천 번을 채우면 보현의 지위를 얻고, 칠천 번을 채우면 초지(初地)의 지위를 얻고, 팔천 번을 채우면 제 오지(五地)를 얻고, 구천 번을 채우면 보문(普門)다라니를 얻고, 十천 번(만 번)을 채우면 부동지(不動地)를 얻고, 十一천 번(만천 번)을 채우면 여래지를 얻어서 어른다운 몸매(大人相)를 이루어 크게 사자후할 것이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이생에서 공덕과 큰 이익을 성취하려거든 낡은 탑을 중수하고 오른쪽으로 돌면서 이 주문 일백팔 번을 외우면 소원하는 일이 모두 원만히 성취되리이다.”

 

이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개장보살을 칭찬하시었다.

“착하다 착하다! 착한 남자여, 그대가 이렇게 여래가 말씀한 주문의 법을 따라서 연설하는구나.”

이때에 집금강 대야주차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큰 주문의 왕인 다라니법은 여래장(如來藏)과 같사오며 부처님 탑과도 같나이다. 세존께서 이 훌륭한 법을 남섬부주에 머물러 두어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오며, 이 다음 세상에서 부처님 일을 하게 하시나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시었다.

“집금강주여, 이 큰 주문의 법이 세상에 있으면 여래가 살아 있는 것과 같나니, 부처님이 하실 일을 능히 하는 연고이니라. 이 주문이 조금만 작용하여도 큰 복덕이 되거든, 하물며 많은 작용을 하면 그로 말미암아 생기는 착한 뿌리는 백천억 나유타 항하사 부처님들이 말하여도 다할 수 없으며, 부처의 눈으로 보는 것이라 비유할 수도 없으며 헤아릴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느니라.”

집금강주가 여쭈었다.

“무슨 인연으로 조금만 작용하여도 큰 복을 이루나이까?”

 

부처님이 말씀하시었다.

“그대에게 말하리니 자세히 들으라. 만일 비구나 비구니나 우파아사카나 우파아시카아들이 큰 공덕을 만족하려거든, 앞에 말한 법대로 이 네 가지 큰 다라니 주문의 왕을 각각 구십구 벌씩 쓴 뒤에, 부처님의 탑 앞에 네 모난 단을 만들되 소똥으로 땅에 맥질하고 단의 네 귀에는 병에 담은 향수와 향로를 벌여 놓고, 공양하는 바루를(향과 꽃과 물과 멥쌀을 담아)단 위에 놓으며, 세 가지 음식(검은깨와 녹두와 멥쌀을 섞어 익힌 것)과 세 가지 흰 밥을 따로따로 항아리에 담아 단 위에 놓고, 각색 과일 구십구 종류와 네 가지 음식과 다른 필요한 것과 여러 가지 향과 꽃을 그 위에 놓고, 다라니 주문을 상륜당 가운데와 탑의 네 귀에 두고, 주문왕의 법(呪王法)을 탑 속에 넣고, 시방의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정성껏 이 다라니를 외울 것이니라.


나무나바나바디남다다아다구디남 긍가나디바로가삼마남 옴 비보리비마리 반라바리 시나바리 살라살라 살바다다아다다도아비 살댜딧디뎨살하 아야도도반니스바하 살바디바나바아야미 몯다아딧다나 삼마야스바하


향을 사루며 계속하여 이 다라니를 이십팔 번을 외우면, 즉시 八대 보살과 八대 야차왕과 집금강 야차주와 사천왕과 제석천왕과 범천왕과 나아라아야나와 마혜수라바라들이 손으로 그 탑과 상륜당을 호지할 것이며, 또 구십구억 백천 나유타 항하사 부처님들이 거기 와서 탑을 가지(加持)하고 부처님 사리를 모실 것이요, 부처님이 가지하시므로 그 탑이 큰 마니보배와 같이 되리라. 그래서 이 사람은 구십구억 백천 나유타 보배탑을 조성함과 같을 것이며 그러므로 엄청난 착한 뿌리를 얻고 수명 장수하여 몸에 때가 없고 모든 병고가 소멸되고 재앙이 없어지느니라.

만일 이 탑을 보는 이는 오역죄가 소멸되고, 탑의 풍경소리만 들어도 모든 악업이 소멸하고 죽어서는 극락세계에 왕생하며, 이 탑의 이름을 들은 이는 물러가지 않는 지위에 이르고, 내지 새와 짐승들이라도 이 소리를 들으면 축생 갈래에서 벗어나 다시 짐승의 몸을 받지 아니하며 광대한 복덕을 얻게 되리라.

 

만일 어떤 사람이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만족하려거든 네 모난 단을 만들되 먼저 소똥을 땅에 바르고 다음에 깨끗한 흙을 위에 펴고 향탕을 뿌려서 깨끗하고 평탄하게 다지고, 다섯 가지 공양하는 바루를 단위에 놓고, 앞에서 말한 네 가지 다라니를 각각 구십구 벌씩 쓰고, 작은 탑 구십구 개를 손수 만들어 그 안에 주문 한 벌씩 넣으며, 상륜 다라니는 작은 탑과 상륜당 속에 넣어서 단 위에 벌여 놓고 여러 가지 향과 꽃으로 공양하고 일곱 번 단을 돌면서 이 다라니를 외우라.


나무나바나바디남다다아다 긍가나디바로가 구디나유다세다사하살라남 옴 보보리 제리니 제리모리흘리 다라바리스바하


만일 이 법대로 행하면 여섯 가지 바라밀다가 모두 성취되리니 이것은 곧 구십구억 백천 나유타 항하사의 칠보탑을 쌓는 것과 같으며, 구십구억 백천 나유타 여래 응공 정등각에게 공양하되 여러 천상의 큰 공양구름과 가지가지로 장엄한 하늘 궁전과 천상의 공양거리로 공양함이 되느니라. 저 여래들이 이 착한 남자와 여인을 생각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엄청난 착한 뿌리와 복덕 더미를 얻게 하느니라.

 

어떤 이가 이 주문을 법대로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공양하고 공경하며 몸에 차면, 주문의 위력이 이 사람을 옹호하여, 여러 원수와 원수의 무리들과 모든 야차와 나찰과 푸우타나들이 이 사람의 말을 듣거나 그 그림자 안에 들어가거나 그 몸에 닿으면 그들의 전세에 지은 모든 죄업이 모두 소멸되고, 여러 가지 독한 것이 해롭게 하지 못하며, 불이 태우지 못하고 물이 빠뜨리지 못하고 양밥과 삿된 매귀가 짬을 얻지 못하며, 뇌성과 벼락이 시끄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항상 부처님의 가피를 입으며 여러 여래께서 위로하고 보호하시며 천인과 선신들이 세력을 증장케 하므로 다른 주문들이 능히 건드리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온갖 곳에서 이 주문을 구하여 쓰고, 써서는 큰길가에 있는 탑 속에 넣어, 오고 가는 중생들과 새와 짐승과 나비, 파리, 개미들까지 모두 지옥이나 여러 나쁜 갈래를 여의고 천궁에 태어나서 항상 숙명통을 얻고 퇴전하지 않게 하라.”

 

그때 부처님이 제개장보살 마하살과 집금강주와 사천왕과 제석천왕과 범천왕과 그 권속들과 나아라아야나천과 마혜수바라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착한 남자여, 내가 이 주문의 왕으로 너희들에게 부촉하노니, 너희들이 마땅히 수호하고 머물러 있어 옹호하며, 어깨에 짊어지고 좋은 상자에 담아서 이 다음 세상까지 끊어지지 말게 하며, 잘 유지하고 잘 보호하여 오는 세상 중생들에게 전하여 주어, 그들이 보고 듣고 오무간 지옥을 여의게 하라.”

 

이 때 제개장보살과 집금강주와 사천왕과 제석과 범천왕과 나아라아야나천과 마혜수바라와 하늘과 용과 팔부 신중들이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함께 여쭈었다.

“저희들이 세존의 보호하심을 입시와 이 주문을 외우는 법과 탑을 조성하는 법을 받았사오니, 모두 수호하고 머물러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공양하겠사오며, 모든 중생을 보호하기 위하여 오는 세상에서 중생들로 하여금 듣고 알게 하여 지옥이나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나이다. 저희들이 여래의 큰 은덕을 갚기 위하여 함께 수호하고 널리 유통하오며, 존중하고 공경하기를 부처님과 같이 하여 이 법이 없어지지 않게 하겠나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시었다.

 

“착한 일이다! 너희들이 이 다라니 법을 견고하게 수호하여 유지케 하는구나.” 그때 모든 대중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즐겁게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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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Ihnn0EIGMV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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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유흥준, 한국의 문화유산 ㅡ 온달산성, 경주남산, 

 

https://www.youtube.com/watch?v=RNP-B-JOaPM&t=367s

 

 

구산선문(九山禪門)

흔히 신라시대에 다섯의 교종 즉 오교(五敎)와 선법(禪法)에 9개 산문의 선맥 즉 구산선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료에 의하면 오교가 신라시대에 성립되었다는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고 구산선문도 신라 때가 아닌 고려시대에 완성됐다.

 고려시대에는 화엄종 자은종 남산종 조계종 천태종 시흥종 신인종 총지종 중도종 도문종 등의 많은 종파가 있었다. 이 중 뚜렷한 활동상을 보인 것은 오교가 아나라 사교(四敎) 조계종 화엄종 자은종 천태종이다.

 조계종은 신라 말에 남종선이 전래되어 가지산 실상산 동리산 성주산 사굴산 사자산 봉림산 등 7파가 차례로 산문(山門)을 연 데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이어 고려대에 들어 오면서 진철대사(眞澈大師) 이엄(利嚴)이 수미산문(須彌山門)을 열고, 이어서 정진대사(靜眞大師) 긍양(兢讓)이 희양산문(曦陽山門)을 이룩함으로써 비로소 구산선문이 형성되었다.

 홍척(洪陟) 남한조사(南漢祖師)는 실상사를 창건하고 선법을 선양함으로써 실상산문(實相山門)을 열었다.

 사굴산문을 개조한 범일(梵日)은 흥덕왕 6년 (831)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마조도일의 제자인 염관제안에게 사사 받았다. 범일은 중국이 회창의 페불로 혼란할 때 귀국하여 현재 강원도 명주군에 굴산사를 창건하였다.

 동리산문(桐裡山門)을 연 혜철(惠哲)도 헌덕왕 6년 (814)에 당에 유학하여 서당지장에게서 사사받고 문상왕 원년 (389)에 귀국하여 지금의 전남 곡성에 있는 태안사(泰安寺) 를 열었다.

 성주산문(聖住山門) 의 무염(無染)은 당에서 화엄을 공부하고 마조동일의 제자 마곡모철의 인가를 받고 귀국하여 충남 보령군의 성주사를 본거지로 선맥을 형성하였다. 
 사자산문(獅子山門)은 강원도 영월군 흥령사지를 개조한 일파로 825년 당에서 남전보원의 선법을 전수 받은 도윤(道允)의 제자, 절중(折中)이 사자산사를 창건했다.

 봉림산문(鳳林山門)은 당에 유학하여 마조도일의 제자 장경회휘에게서 선법을 인가받은 현욱(玄昱)이 개창한 것으로 현재 경남 창원군의 광조사를 본거지로 개창했다. 이엄은 895년에 당에 유학하여 동산양개(洞山良价)의 제자 운거도응에게서 인가받았으나 청원행사(淸原行思) 계통인 조동종(曹洞宗)의 법문도 전했다. 희양산문의 긍양은 경북 문경군의 봉암산(鳳巖山)에 절을 새로 짓고 선실(禪室)을 다시금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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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선문(九山禪門)의 개창

 

구산선문(九山禪門)의 개창

통일신라 후기에 접어들자 한국에는 선법이 전래되어 새로운 불교를 태동시켰다. 선은 중국에서 달마이래 종풍이 확립되어 종파로 성립 발전한 것으로 6조 혜능(慧能)에 이르러 남돈선(南頓禪)과 신수(神秀)의 북종선(北宗禪)으로 나누어졌다. 우리나라에는 북종선이 전래되었다는 흔적만 있을 뿐 그 자취를 알 수 없고 오직 남돈선 계통만이 크게 유포되었다.

남돈선을 처음으로 전래한 사람은 784년 입당(入唐)해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 서당지장(西堂智藏)에게서 심인(心印)을 얻어 귀국한 도의(道義)였다. 그는 귀국 후 선법을 크게 일으키려하였으나 당시 신라에서는 선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므로 설악산에 은거하면서 제자 염거(廉居)에게 법등을 전했다. 염거는 다시 체징(體澄)에게 법맥을 전했는데 그는 나중에 가지산문(迦智山門)을 개창 구산선문의 일파를 이루었다. 구산선문은 가지선문을 포함 홍척에 의한 실상산문(實相山門)․혜철(惠哲)의 동리산문(桐裡山門)․현욱(玄昱)의 봉림산문(鳳林山門)․도윤(道允)의 사자산문(師子山門)․범일(梵日)의 사굴산문(사 山門)․이엄(利嚴)의 수미산문(須彌山門)․무염(無染)의 성주산문(聖住山門)․도헌(道憲)의 희양산문(曦陽山門)을 말한다.

구산선문의 흥기는 교학(敎學)불교 일색이었던 한국불교를 선풍(禪風)으로 바꿔놓은 일대 전기가 되었다.

신라의 뒤를 이어 일어난 고려는 태조왕건 이래 진호국가(鎭護國家), 산천비보(山川裨補)의 사상이 크게 유행했다. 고려불교는 풍수도참의 속신(俗信)과 더불어 기복(祈福)과 양재(穰災)로 흘러 각종 법회가 범람했다.

그러나 이같은 기복양재와 법회남설의 와중에서도 고려불교는 민족의 문화유산인 고려대장경을 완성하고 승과(僧科)의 실시로 교단의 질적향상을 꽤해 의천(義天)․지눌(知訥)․태고(太古)와 같은 고승을 배출, 선(禪)과 교(敎)를 중흥시키기도 했다.

의천(義天:1055~1101)은 당시 불교계가 혼미해짐을 우려하여 교학(敎學)과 관행(觀行)을 함께 닦을 것을 강조했다. 합리적으로 교리를 이해함이 없이 종교적 체험만을 위주로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그 반대로 논리에만 치중하는 것도 불교의 이상을 실천하는데는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지눌(知訥:1158~1210)은 중국에서 발전한 남종선을 그 사상적 근간으로 삼기는 했으나 전반에 걸쳐 폭넓게 공부하여 한국선(韓國禪) 확립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그는 선을 중심으로 하되 선과 교를 혼합하여 독특한 불교를 선양했다. 또 어떤 특수한 종파나 교리에 구애됨이 없이 불교의 진수가 되는 것은 자유롭게 수용하여 독자적으로 체계화시켰다.

이같은 지눌의 사상은 그의 선배인 원효와 의천이 지향하였던 종파불교 통합재창조의 노력을 계승한 것이다.

이밖에도 고려일대는 지눌의 뒤를 이은 혜심(慧諶),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一然) 등이 배출됐다.

고려일대의 불교는 교종과 선종이 각기 종파를 형성하여 종풍을 진작시켰는데 교종은 나말(羅末)이래 5종이던 것이 여말(麗末)에는 9종으로 늘어났다. 또 선종은 나말(羅末)이래 9산문파가 개창됐으나 의천이 천태종을 개창하고 선교(禪敎)의 융화를 꾀하자 그 교세가 약화되어 천태종에 흡수되지 않은 문파만 유지되었다. 그러나 말기에 이르러서는 다시 9개 문파로 갈라져 서로 대립과 경쟁을 일삼았다. 이 때 태고(太古)가 나와 사상적 통합을 주도하여 고려불교 혁신에 노력했다.

고려불교는 지나치게 왕실과 밀착해 많은 법회를 가짐으로써 많은 폐해가 일어났다. 사탑조영과 불사의 번다로 국가경제마저 곤핍해 했고 교단의 문란으로 승풍은 땅에 떨어졌다. 이같은 폐해는 이미 성종(成宗)때 최승로의 상소에 의해 지적된 후 그 시정을 요구하는 소리가 유자(儒者)들 사이에서 심심치않게 제기됐다.

관련글 : 구산선문(九山禪門)  봉림산문(鳳林山門) 동리산문 성주산문 실상산문
오교구산  수미산문  가지산문  사자산문 사굴산문 희양산문

 

 

 

 

 

https://www.youtube.com/watch?v=o4kwWLVYO1A 

 

 

https://www.youtube.com/watch?v=QSqVmXMtaDc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jsessionid=I7UGrHQD4typxv3shfzCuHjbyhzznt1gTLaBH8XEJcJhWyNQnUczZYD2nIFrfQME.cpawas2_servlet_engine1?pageNo=1_1_1_0&ccbaCpno=1123119420000 

 

보물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華城 龍珠寺 大雄寶殿)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청

문화재 검색 보물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華城 龍珠寺 大雄寶殿) Daeungbojeon Hall of Yongjusa Temple, Hwaseong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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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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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龍珠寺)는 조계종의 절로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화산

에 위치해 있다.

이 절은 신라 말기인 854년에 廉巨和尙(염거화상)이 지었고, 원래 이름은 갈양사(葛陽寺)였다. 고려 때인 10세기에 확장되었다. 조선 정조때에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서 정조의 명으로 18세기에 다시 지어졌다.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이다.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든 효찰 대본산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갈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창건주는 염거화상으로 도의국사에 이어 가지산문 제2대 조사이다. 고려 광종 때는 혜거국사가 머물며 국가의 축원도량으로 삼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지만 갈양사는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

갈양사가 다시 중창하게 된 것은 조선 제22대 정조 임금 때다. 정조는 즉위 13년을 맞던 해 전농동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하고, 수원화성 행궁을 만드는 대대적인 역사를 벌인다. 아버지 묘와 화성의 건설과정을 보기 위해 수시로 이곳까지 거둥하게 되자 아예 시흥으로 질러가는 새로운 길을 만들기도 하고 안양의 만안교라는 돌다리도 새로 만들어 놓게 된다.

이때 정조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 스님이 보일당 사일스님이다. 장흥 가지산 보림사 출신이었던 보일스님은 정조에게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설해주었다고 한다. 정조는 보일스님이 들려준 부모은중경의 내용에 깊은 감명을 받아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하고 그 주변에 폐사된 갈양사터에 절을 새로 중창하여 용주사라 이름 붙여서 사도세자 묘의 능침사찰로 삼았다.

용주사는 이렇듯 정조대왕의 효성이 깃든 효심의 본찰이자 경기도 남부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80여 사찰을 거느린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로 오랜 역사와 문화재 그리고 수행의 전통을 간직한 사찰이다.

보물

호성전에는 사도세자 내외분과 정조 내외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고, 곁에는 부모의 영정을 두고 명복을 비는 이들도 보였다. 지장전의 공간으로도 활용되는 듯하다. 

 

영상한국사 I 298 용주사 후불탱화는 과연 김홍도의 작품일까?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NcQSquT_tPA 

 

 

 

 

https://www.youtube.com/watch?v=BXrJ0ByYozQ 

YouTube에서 보기 를 클릭하시면 열립니다. 이 노래는 어버이날 노래가 아니라 <어머니 마음>입니다.

 

 

1.懷耽守護恩

累劫因緣重 今來托母胎 月逾生五臟 七七六精開

(누겁인연중 금래탁모태 월유생오장 칠칠육정개)

體重如山岳 動止?風災 羅衣都不掛 裝鏡惹塵埃

(체중여산악 동지겁풍재 나의도불괘 장경야진애)

 

⊙ 나를 잉태하시고 지켜 주신 은혜⊙

여러 겁을 내려오며 인연이 중하여서  어머니의 태를 빌어 금생에 태어날 때

-임신부터 분만까지 자식하나가 태어 날때까지 소비된 피의 양과 

출산시 하혈까지 그 양이 서말 서되나 될정도 많다는 비유- 

날이 가고 달이 져서 오장이 생겨나고 일곱 달에 접어드니 육정이 열렸어라

한 몸이 무겁기는 산악과 한가지요 가나오나 서고 안고 바람결 겁이 나며

아름다운 비단옷도 모두 다 뜻 없으니 단장하던 경대에는 먼지만 쌓였더라.

 

2, 臨産守苦恩

懷經十個月 産難欲將臨 朝朝如重病 日日似昏沈

(회경십개월 산난욕장임 조조여중병 일일사혼침)

惶怖難成記 愁漏滿胸襟 含悲告親族 惟懼死來侵

(황포난성기 수누만흉금 함비고친족 유구사래침)

 

⊙해산에 임하여 고통을 받으신 은혜⊙

아기를 몸에 품고 열 달이 다 차서 어려운 해산달이 하루하루 다가오니 

하루하루 오는 아침 중병든 몸과 같고 나날이 깊어가니 정신조차 아득해라

두렵고 떨리는 맘 무엇으로 형용할까 근심은 눈물 되어 가슴속에 가득하니 

슬픈 생각 가이없어 친족들을 만날 때면 이러다가 죽지 않나 이것만을 걱정 하시네

 

3, 生子妄愚恩

慈母生君日 五臟憁開張 身心俱悶絶 血流似屠羊

(자모생군일 오장총개장 신심구민절 혈류사도양)

生己開兒建 歡喜倍可常 熹定悲還至 痛苦徹心腸

(생기개아건 환희배가상 희정비환지 통고철심장)

 

⊙자식을 낳았다고 근심을 잊어버리는 은혜⊙

자비하신 어머니가 그대를 낳으신 달 오장육부 그 모두를 쪼개고 헤치는 듯

몸이나 마음이나 모두가 끊어 졌네. 짐승 잡은 자리같이 피는 흘러 넘쳤어도

낳은 아기 씩씩하고 충실하다 말 들으면 기쁘고 기쁜 마음 무엇으로 비유할까

기쁜 마음 정해지자 슬픈 마음 또 닥치니 괴롭고 아픈 것이 온몸에 사무친다.

 

4, 咽苦吐甘恩

父母恩深重 恩憐無失時 吐甘無所食 咽苦不嚬眉

(부모은심중 은련무실시 토감무소식 인고불빈미)

愛重情難忍 恩深復倍悲 但令孩子飽 慈母不詞飢

(애중정난인 은심부배비 단령해자포 자모불사기)

 

⊙입에 쓰면 삼키고 단 것이면 뱉어서 먹이신 은혜⊙

중하고도 깊고 깊은 부모님 크신 은혜 사랑하고 보살피심 어느 땐들 끊일 손가 

단 것이란 다 뱉으니 잡수실 게 무엇이며 쓴 것만을 삼키어도 밝은 얼굴 잃지 않네.

사랑하심 중하시사 깊은 정이 끝이 없어 은혜는 더욱 깊고 슬픔 또한 더하셔라

어느 때나 어린 아기 잘 먹일 것 생각하니 자비하신 어머님은 굶주림도 사양하지 아니 하네

 

5, 廻乾就濕恩

母自身俱濕 將兒以就乾 兩乳充飢渴 羅袖掩風寒

(모자신구습 장아이취건 양유충기갈 나수엄풍한 )

恩怜恒廢寢 寵弄振能歡 但令孩子穩 慈母不求安

(은령항폐침 총농진능환 단령해자온 자모불구안)

 

⊙마른자리에 아기를 눕히고 진자리에 누우신 은혜⊙

어머니 당신 몸은 젖은 자리 누우시고 아기는 받들어서 마른자리

눕히시며 양쪽의 젖으로는 기갈을 채워 주고고운 옷소매로는 찬바람 가려 주네

은혜로운 그 마음에 어느 땐들 잠드실까 아기의 재롱 으로 기쁨을 다하시며 

오로지 어린 아기 편할 것만 생각하고 자비하신 어머니는 단잠도 사양했네.

 

제6, 乳哺養育恩

慈母象於地 嚴父配於天 覆載恩將等 父孃意亦

(자모상어지 엄부배어천 복재은장등 부양의역연 )

不憎無眼目 父嫌手足격 誕腹親生子 終日惜兼憐

(불증무안목 부혐수족격 탄복친생자 종일석겸련)

 

⊙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

아버님의 높은 은혜 하늘에 비기오며 어머님의 넓은 공덕 땅에다 비할 손가 

아버지 품어 주고 어머니 젖 주시니 그 하늘 그 땅에서 이 내 몸 자라났네.

ㅡ출산 부터 다음 임신이 될 때까지 2~3년간 먹여 준 젖의 양이 여덟 섬 너말이나 된다는 뜻이며

당시 한 말이란 개념은 소두이며 요즘 5되(9리터)이다.ㅡ

아기 비록 눈 없어도 미워할 줄 모르시고 손과 발이 불구라도 싫어하지 않으시네.

배 가르고 피를 나눠 친히 낳은 자식이라 종일토록 아끼시고 사랑하심 한이 없네.

 

제7 洗濯不淨恩

憶昔美容質 姿媚甚豊濃 盾分翠柳色 兩검奪蓮紅

(억석미용질 자미심풍농 순분취유색 양검탈련홍)

恩深玉貌 洗濯損盤濃 只爲憐男女 慈母改顔容

(은심옥모 세탁손반농 지위련남여 자모개안용)

 

⊙깨끗하지 못한 것을 씻어 주신 은혜⊙

생각하니 그 옛날의 아름답던 그 얼굴과 아리따운 그 모습이 풍만도 하셨어라

갈라지 두 눈썹은 버들잎 같으시고 두 뺨의 붉은 빛은 연꽃보다 더했어라

은혜가 깊을수록 그 모습 여위었고 기저귀 빠시느라 손발이 거칠었네. 

오로지 아들딸만 사랑하고 거두시다 자비하신 어머니는 얼굴 모양 바뀌셨네.

 

제8, 遠行憶念恩

死別誠難忍 生離亦悲傷 子出關外出 母意在他鄕

(사별성난인 생리역비상 자출관외출 모의재타향 )

日夜心相逐 流淚數千行 如猿泣愛子 憶念斷肝腸

(일야심상축 류누수천행 여원읍애자 억념단간장)

 

⊙자식이 멀리 가면 생각하고 염려하시는 은혜⊙

죽어서 헤어짐도 참아가기 어렵지만 살아서 헤어짐은 아프고 서러워라 

자식이 집을 나가 먼 길을 떠나가니 어머니의 모든 마음 타향 밖에 나가 있네.

밤낮으로 그 마음은 아이들을 따라가고 흐르는 눈물 줄기 천 줄긴가. 만 줄긴가.

원숭이 달을 보고 새끼 생각 울부짖듯 염려하는 생각으로 간장이 다 끊기네.

 

제9, 爲造惡業恩

父母江山重 深恩報實難 子告願代受 兒勞母不安

(부모강산중 심은보실난 자고원대수 아노모불안)

聞道遠行去 行遊夜臥寒 男女暫辛苦 長使母心酸

(문도원행거 행유야와한 남여잠신고 장사모심산)

 

⊙자식을 위해 나쁜 일을 하시는 은혜⊙

부모님의 은혜가 강산같이 중하거니 깊고 깊은 그 은덕은 실로 갚기 어려워라 

자식의 괴로움은 대신 받기 원하시고 자식이 고생하면 부모 마음 편치 않네.

자식이 머나먼 길 떠난다 들을 지면 잘 있는가. 춥잖은가 밤낮으로 걱정하고

자식들이 잠시 동안 괴로운 일 당할 때면 어머님의 그 마음은 오래 두고 아프셔라

 

제10, 究竟憐愍恩

父母恩深重 恩憐無失時 起座心相逐 遠近意相隨

(부모은심중 은련무실시 기좌심상축 원근의상수)

母年一百歲 常憂八十兒 欲知恩愛斷 命盡始分離

(모년일백세 상우팔십아 욕지은애단 명진시분리 )

 

⊙자식을 위해 나쁜 일을 하시는 은혜⊙

부모님의 은혜가 강산같이 중하거니 깊고 깊은 그 은덕은 실로 갚기 어려워라

자식의 괴로움은 대신 받기 원하시고 자식이 고생하면 부모 마음 편치 않네.

자식이 머나먼 길 떠난다 들을 지면 잘 있는가. 춥잖은가 밤낮으로 걱정하고

자식들이 잠시 동안 괴로운 일 당할 때면 어머님의 그 마음은 오래 두고 아프셔라

 

단기4348년. 불기 2559년,(서기 2015년 9월 4일)

글 쓴이 청파(靑波). 취람(翠嵐). 여포(呂布). 편집(編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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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은중경 요약

어머니명절에 즈음해 어머니의 크고 깊은 은혜에 보답하라고 가르치는 불교 경전,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 떠올려 봅니다.

부처님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제자 아난에게 길가 숲속에 뼈 무더기를 여자의 뼈와 남자의 뼈로 나누라고 명했다. 

아난이 난색을 표하자 부처님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남자의 뼈는 희고 무겁지만 여자는 아기를 한번 낳을 때마다 서 말 서 되의 피를 흘리고

여덟 섬 너 말의 젖을 먹여야 하므로 뼈가 검고 가벼 우니라”

 

이어 부처님은 어머니의 은혜로 10가지를 꼽았습니다.

1.임신 후 아기를 태중(胎中)에 잘 보호해준 은혜, 

2.산고를 겪으며 아기를 낳아준 은혜,

3.자식을 낳고 나면 모든 고통을 잊어버리는 은혜,

4.입에 쓴 것은 자신이 먹고 단 것만 자식에게 먹이는 은혜,

5.마른 자리에는 자식을 눕히고 젖은 자리에는 자신이 눕는 은혜,

6.젖을 물려 키워준 은혜,

7.손발이 닳도록 깨끗이 씻어준 은혜,

8.자식이 먼 길 떠나면 내내 걱정해주는 은혜,

9.자식을 위해서라면 나쁜 일도 마다 않는 은혜,

10.자식을 끝까지 염려하고 사랑해주는 은혜”

 

어머니의 마음(양주동詞, 이홍렬曲)

https://www.youtube.com/watch?v=N7RwLrwla5M 

 

 https://kydong77.tistory.com/8221

 

아! 어머니 -신달자

아! 어머니 -신달자 어디에도 펼 곳이 없어서 둘둘 말아 가슴 밑바닥에 숨겨둔 그 꿈 어머니 지금은 어느 곳으로 흘러 한 자락 구름이라도 되었을 까요? 구름이 되어 애끊는 비가 되어 맨몸으로

kydong77.tistory.com

 

1.회탐수호은(懷眈守護恩) or 『회태수호은(懷胎守護恩)』

아이를 배어 지키고 보호해준 은혜, 임신과 임신중 태내 성장

 

2.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해산함에 임하여 고통받으신 은혜

 

3.『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자식을 낳고서야 근심 잊으시는 은혜

 

4.『인고토감은(咽苦吐甘恩)』

쓴 건 삼키고 단 건 뱉아 먹여준 은혜

 

5.『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신 은혜

 

6.『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젖먹이고 사랑으로 길러주신 은혜

 

7.『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목욕 세탁 더러움을 씻어주신 은혜

 

8.『원행억염은(遠行憶念恩)』

멀리 떠나가면 근심 걱정하신 은혜

 

9.『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자식을 위해서는 모진 일 하신 은혜

 

10.『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

임종 때도 자식 위해 근심하신 은혜

 

https://kydong77.tistory.com/22007

 

佛說 부모은중경 10도(圖),어머니 마음&정조의 지극한 효심/무애(无涯) 양주동선생님 偉業

*진행이 느려터진 카눈을 보내고 나니, 문득 노래가 생각키우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zLgmEOMuUHU * 어버이날 노래로 불러왔던 이 노래는 의 어머니의 은혜 10가지를 바탕으로 양주동 선생님께

kydong77.tistory.com

『부모은중경』은 이민수 현대역 을유문고본도 있습니다.

 

http://nabizone.net/nara/sub2_5/79394

 

漢 詩 -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원문 및 해석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원문 및 해석 1.懷耽守護恩 累劫因緣重 今來托母胎 月逾生五臟 七七六精開 (누겁인연중 금래탁모태 월유생오장 칠칠육정개) 體重如山岳 動止?風災 羅衣都不掛 裝鏡惹塵埃 (체중여산악 동지겁풍재 나의도불괘 장경야진애) ⊙ 나를 잉태하시고 지켜 주신 은혜⊙ 여러 겁을 내려오며 인연이 중하여서 어머니의 태를 빌어 금생에 태어날 때 -임신부터 분만까지 자식하나가 태어 날때까지  소비된 피의 양과 출산시 하혈까지  그 양이 서말 서되나 될정도 많다는

nabizone.net

 

https://www.youtube.com/watch?v=29QfJN9VBdA 

 

 

https://www.youtube.com/watch?v=y2A5moP44j8 

 

 

 

무여스님과 함께 하는 사찰여행 - 용주사(경기 화성), Yongjusa Temple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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