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르코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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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의 상인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져온 성마르코 유골의 납골당(納骨堂)으로 세워진

것(829~832)이다. 그 후 성마르코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호성인(守護聖人)이 되었다. 11세기

말에 현재의 산마르코성당이 재건되었는데 이 재건공사에 롬바르디아의 건축가와 석공(石工)이

상부구조(上部構造) 건축에 참가했다. 산마르코성당의 건축양식은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유명하다. 그리스 십자형(十字形)의 바실리카로 다섯 개의 동방적(東方的)인 돔을

받치고 있으며, 파꽃형[蔥花形]의 아치와 고딕풍의 천개(天蓋)가 이어진 정면(파사드)을 가지고

있고 아름다운 대리석 건축으로 황금빛의 배경을 지닌 모자이크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산마르코성당이 재건되면서부터 도제(총독)를 비롯한 베네치아 시민(市民)은 동방을 침략할

때마다 이 건축을 장식할 여러 가지 물건과 조상(彫像)·부조(浮彫) 등을 가져오는 습관이 생겨

이 건물은 그런 것들로 장식되었다. 예컨대 정면 위의 회랑(回廊)에 놓여 있는 네 개의 브론즈

말(높이 1.6m)은 고대 그리스시대의 것으로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에

옮겨놓은 것을 1204년에 도제가 베네치아로 가져온 것인데 이런 조상이나 부조들은 수없이 많다.

또 외부와 내부를 뒤덮듯 장식된 모자이크 벽화는 12~17세기에 계속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미술사적(美術史的)으로도 귀중한 자료로 되어 있다. 내부는 그리스 십자형 위의 다섯 개의 큰

원천정(圓天井)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 성마르코의 업적을 말해주는 12~13세기의 그림을

비롯하여 티치아노의 바탕그림에 의한 모자이크 등이 장식되어 있다.

산마르코 광장 주변의건물 너머 자리잡은 성당의 우뚝한 종탑과 여러 개의 돔형 지붕, 수많은 첨탑들,

모자이크 벽화가 가관이다. 카메라를 세워 찍어도 종탑의 첨탑은 잘려나갔다.
















성당의 시계탑 위에는 종도 매달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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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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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는 베니스(Venice)라고 한다. 베네치아만(灣) 안쪽의 석호 위에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섬과 섬 사이의 수로가 중요한 교통로가 되어 독특한 시가지를 이루며, 흔히 ‘물의 도시’라고 부른다. 대안의 메스테르와는 철교·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나, 철도역은 철교가 와 닿는 섬 어귀에 있고, 다리를 왕래하는 자동차도 시내에는 들어올 수 없다. 시가지는 본래 석호의 사주(砂洲)였던 곳에 들어섰기 때문에 지반이 약하고, 따라서 근래 지반침하와 석호의 오염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567년 이민족에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만(灣) 기슭에 마을을 만든 데서 시작된다. 6세기 말에는 12개의 섬에 취락이 형성되어 리알토섬이 그 중심이 되고, 이후 리알토가 베네치아 번영의 심장부 구실을 하였다. 처음 비잔틴의 지배를 받으면서 급속히 해상무역의 본거지로 성장하여 7세기 말에는 무역의 중심지로 알려졌고, 도시공화제(都市共和制) 아래 독립적 특권을 행사하였다.

10세기 말에는 동부지중해 지역과의 무역으로 얻은 경제적 번영으로 이탈리아의 자유도시들 중에서 가장 부강한 도시로 성장하였다. S자형의 대운하가 시가지 중앙을 관통하고, 출구 쪽의 운하 기슭에 장대한 산마르코 광장(廣場)이 자리한 기본적인 도시형태는 산마르코 대성당을 비롯한 교회·궁전 등과 더불어 13세기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산마르코 대성당의 5개의 원형 지붕에서 볼 수 있듯이, 베네치아의 몇몇 건축물에서는 동방의 영향을 반영하는 비잔틴풍(風) 또는 오리엔트풍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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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크로체 성당도 장식이 대단하다. 균형를 갖춘 장식은 예술이다.

아래 창에 성당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203XX77700095

 

플로렌스는 안 가나요?

플로렌스 다녀오는 길인데요.

플로렌스를 떠나며 관광객의 질문에 대한 가이드의 답변이다.

영국인들의 건방은 남의 나라 지명을 제 입맛에 맞게 고쳐 부른다.

피렌체를 시골말인 사투리로, 플로렌스를 문화인의 교양어로 착각하는 듯하다.

그걸로 문화의 수월성을 착각하는 건 못난 오만이고 편견일 따름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투리를 쓰면 입을 삐쭉거리는 것처럼.

사투리는 소중한 문화자산이고 그 지방의 뿌리를 대변하는 교양어라 나는 확신한다. [첨언] 최근 강상원님은 진도지역 사투리에는 우리말의 뿌린인 동이족의 산스크리트어[범어]가 그대로 남아있다고 실레를 들어 주창한다. 그러니 촌스럽게 사투리라 하지 말고 '토속어', 한참 양보하더라도 '지방말'로 불러야 한다.

베네치아도 그들은 베니스로 고쳐 불렀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도 있지 않은가?

맨아래 금박을 입힌 문은 천국의 문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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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문학도로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발상지라는 말에 가슴 밑바닥이 콩닥거렸다. 책에서만 읽던, “14-15세기 이탈리아 반도에서....”하던 말을 그 현장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었다. 개인의 인생에 비유하자면 그 고뇌에 휩싸였던 젊은 시절, “How to live?"의 문제로 밤잠을 설치던 그런 시기를 세계사에서는 르네상스라 하는데, 천재들의 도시인 이 피렌체가 그 중심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중세는 교부철학을 맹신하던 철부지 시절이었고, 삼위일체설 등을 확립한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1225~1274.3.7] 의 방대한 저술 <신학대전>은 중세의 완결편이었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인간학이다. 세계의 중심에 인간의 문제를 최상위에 두고 존엄성을 지켜 나아가자는 학문이다. 말을 바꾸면 “How to live?"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비전과 메시지는 다르지만 무게 중심을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옮겼다는 의미이다. 그것을 문예부흥, 르네상스라 이름한다. 사람들은 <데카메론>에서처럼 싸롱에 모여 생활에 대한 담론을 즐겼고, 헤브라이즘에 대한 회의를 증폭시키고 헬레니즘의 진정성에 몰두했다. 이를 받쳐준 저술이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데카르트[1596.3.31~1650.2.11] 의 <방법론 서설>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사전은 그의 “형이상학적 사색은 방법적 회의(懷疑)에서 출발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근본원리가 《방법서설》에서 확립되어, 이 확실성에서 세계에 관한 모든 인식이 유도된다.”고 적고 있다. 이성적 회의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지식을 거부하고 헬레니즘 사상이 제시한 인간학에 경도되었다.

경제럭 성장에만 몰두한 나머지, 현정부의 연령제한을 푼, SRM(specified risk materials)에 관대한 미국 소고기 수입에 대한 변명은 인문학에 대한 철학의 빈곤과 그 경박성을 반증한다. 상술(詳述)해 놓은 위험물질을 굳이 수입할 이유가 뭐람? 곱창골목 음식점도 있고, 몸보신용으로 곰탕과 설렁탕을 상용하고, 소풍이나 운동회 때면 소머리 고기를 안주감으로 상비하고, 소의 내장탕까지 먹는 한국인들인데. 게다가 미국의회는 꼼짝도 않는데 그네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국회비준을 서두르는 행위는 인문학과는 너무 먼 거리에 있는 발상이 분명하다.

부시맨 때 통과 안되면 폐기될지도 모른다는데,제발 한국인 자존심만 구기지 않기를 빈다. 우린 없이 살아도 크게 하 은 주 춘추 전국 한 육조 당 송 원 명 청으로 중원의 왕조가 수없이 명멸해가는 동안, 삼국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외기 좋게 자그만치 500년 간씩이나 왕조를 지켜왔고, 외침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지킨 자주독립의 투혼이 살아 있는 이 땅이다.

참으로 희한한 일은 음식맛은 소금과 지방이 내는데, 고거이 섭취가 과다하면 인체에는 치명적이걸랑요.

최근에는 모태의 염도가 바닷물 염도가 일치는데, 짜게 먹는 외국 이민자들이 병원을 찾지 않아 위기에 처한 부자들인 의료 기업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추가]

*아래 내용을 추가함.

도덕경은 메타포임. 體用론의 불교 해석은 오류.

https://www.youtube.com/watch?v=wdihDpqySOs&t=892s

 

아, 인생의 모순투성이여. 삶의 부조리여!

비가 내려 우산을 받치고 피렌체 시가지를 도보로 이동하느라 바지가랭이가 진흙탕물에 젖었지만 내 기분은 전혀 우중충하지 않았다 도리어 쿨했다. 시가지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방문하는 외부의 차량에 세금을 물리고 관광버스 통행을 시가지 입구로 제한한 것도 인문학적 발상이라 여겨졌다. 인문학을 실천하는 시민들이었다. 오롯한 자존심도 부러웠다.

인문학이여, 부활하라!

사진은 산타마리아델피오레대성당 광장의 건물 앞에 세워진 미켈란젤로 할아버지의 작품. 다비드모세상이다. 여기에 피에타상을 합하면 그의 3대 걸작 조각인 된다. 맨아래 사진은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조감한 피렌체 시가지. 단연 벽돌색 돔 지붕과 옆의 종탑이 보이는 산타마리아델피오레대성당이 피렌체의 브랜드 건축물로 보인다.이 거대한 원개[돔지붕]는 바닥에서 91 m의 높이에 이른다.

끝에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비탄에 잠긴 마리아를 재현한피에타상 추가했다. 앞에 실은 베드로성당 내부의 작품이다.

산타마리아 델피오레대성당에 대한 설명은 아래 포스트 참조.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08754&cid=40942&categoryId=33081

두 문화의 브랜드를 비너스와 마리아로 내세운 600원 짜리 논문도 파는군요.

‘비너스’와 ‘마리아’-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Ⅰ. 머리말
Ⅱ. 헬레니즘 시대의 ‘비너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여신-‘비너스’
Ⅲ. 헤브라이즘 시대의 ‘마리아’-신적인, 너무나 신적인 여성 ‘마리아’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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