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위 사진 2장과 박물관의 조각 2징을 퍼다 실었다.

시스티나 소성당

 

로마 시내는 경주처럼 시가지 전체가 유적지였는데

30 미터도 넘는 교황청 담벽이 聖과 俗을 구분해 주었습니다.

나는 새도 넘기 힘든 담벼락 높이였습니다.

 

8시인가 그 사람들 출근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9시에 문을 연다 하여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벌써 궁전 담벽 밑으로 넉 줄로 500미터쯤 줄을 서 있었습니다.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거죠. 유럽이 카톨릭 국가임이 실감났습니다. 10월 18일즘이었는데,입에서는 찬 찬김이 보이는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그러나 교황청 박물관을 관광하고 말로만 듣던 시스티나 소성당에서 미켈란젤로라는 거장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온 관광객들은 들떠 있는 눈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술의 전당이라는 말을 쓰는데 시스티나 소성당이야말로 세계 사람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예술의 전당의 극치였습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343명의 인물을 재현하는데 천재 거장도 4년6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건물 내부의 벽과 돔 천정을 빈 틈없이 메꾼 당대 최고의 천재화가들의 사실적 그림과 만나는 건 생각만 해도 신바람이 나는 일이었습니다.

을유문화사의 세계사상전집인가 하는 책의 표지에 나오는, 아들에게 다가가려는 여호와의 손길과 죄의 속성을 지닌,자신감을 잃어버린 아담의 맥빠진 모습도 미켈란젤로 할아버지는 천정을 쳐다보며 그렸습니다. 여호와는하늘의 속성을 부여하려는 듯이손길을 뻗치지만 아들의 손은 자신의 미래를 예감한 듯 죄책감에 빠져 그 손가락이 꼬부라지고 맙니다. 유태인들의 논리대로 인간이 여호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면 죄의 산물인 인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통제할 애들이 없으니 여호와께서는 심심해 죽을 지경이었겠지요? 홍수를 퍼붓거나 화산 폭발이나 쓰나미 같은 걸 일으키며 지내지 않았을까요? 건물 내벽과 천정이 그림으로 가득찬, 예술의 극치를 제공하는시스티나 소성당은 과연 로마관광의 압권이었습니다.

광대한 규모의 성베드로 성당 또한 관광객들을 압도했습니다.

아래 두 개의 퍼온 글에서 시스티나 소성당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스티나 소성당은 1475년에서 1483년 사이에 건축됐다. 1473년 교황 식스투스 4세가 교황의 기도실로 조성한 것으로 당시 보티첼리, 페루지노 등에 의해 양쪽의 벽이 구약성서의 내용 ‘모세의 일생'과 신약성서의 내용 ‘예수님의 일생'으로 각각 8점의 그림들이 좌우측 벽면에 벽화로 꾸며져 있었다. 그 후 율리우스 2세의 명에 의해 미켈란젤로가 천정과 정면의 큰 벽화를 그렸다.

 

천장 중앙부에 《창세기》를, 그 주위에 《12명의 무녀(巫女)와 예언자》를, 삼각형 모양의 요면벽(凹面壁)과 반월형 벽면에 《그리스도의 조상》을, 그리고 네 모퉁이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각각 그렸다.

1534년 그는 다시 바울로 3세의 위촉으로 정면의 제단화(祭壇畵)를 그렸다. 벽면전체를 상하 4층으로 나누어 7년에 걸쳐 위에서부터 천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심판의 장면, 묵시록의 7천사, 그리고 맨 아래층에는 지옥을, 지난번의 고전적 작풍과는 다른 격렬한 터치로 표현하였다.

 

이탈리아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년 3월 6일 - 1564년 2월 18일 ) 는 1508년 5월 천정화 그림 작업에 착수하여 4년 6개월 동안 정열과 창작력을 총 동원하며 1512년 10월 불후의 대작인 창세기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재현한 ‘천지창조'를 인류에게 선물했습니다.누구나 시스티나 소성당에 가보면 예술의 영원성을 부인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인간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는 법인데, 게다가 천재는 단순하고 반복되는 작업에 쉽게 지치는 법인데, 그는 40대 중반을 소스티나 소성당의 천정에 매달려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밑그림에 욕을 썼다가 덧칠한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는군요.

 

1534년 그는 다시 바울로 3세의 위촉으로 7년에 걸쳐 정면의 제단화(祭壇畵)까지 그렸다고 합니다. 후면의 벽에는 '최후의 만찬'이 큰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천장화 제작 이후 24년이 지난 61세의 나이에 정면벽화 '최후의 심판'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사전에도 실린, 정제된 지식은 좀 부족하지만 후덕한 농부 같은 탈진한 모습의 그의 자화상은 아마도 이 7년간의 작업 후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 왜, 자신의 에너지를 몽당 쏟아부운 후의 멍한 허탈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삶에 지친 피곤에 찌들은 모습요. 누가 아래의 이 맥빠진 사진을 보고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와 함께 르네상스기를 대표하는 3대화가의 한 사람이라고 감히 상상이나 하겠어요? 거장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스스로도 벽화에 혼이 다 배앗긴 지친 모습이 자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핑계로 주교가 환쟁이인 자기를 만나주지 않자 피렌체로 달아나 자기를 찾아온 주교의 사자에게 나 없다고 전하란 말을 남기기도 하고, 최후의 심판을 그릴 때 벌거벗은 모습을 탓하자 지옥의 인물에다 주교의 얼굴로 대체한 그런 패기는 얼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기 삶에 대한 자조, 시니컬한 냉소 같은 건 부여해도 될 것 같기도 하군요.

 

 

호인연인가, 악연인가?

또 시스티나 성당에 갇히게 되다니....

나는 미켈란젤로 할아버지가 불쌍해 죽는 줄 알았어유.

 

그렇다고 그의 신앙을 의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는 갖가지 물감을 뿜어내는 붓끝에서 자기 존재의 의의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창세기를 읽으며 그 장면을 시각화하여 비주얼한 세계로 바꾼 건 어릴 적부터 기독교 문화에 익숙한 그가 기독교 국가의 백성임을 입증한다. 잡념이 신성성에 개입되었다면 모든 이들로부터 추앙받는 여호와를 경외의 대상으로형상화하는 작업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당대 최고 화가들(?)이 동원되어 돔형의 천정과 벽을 천정화와 벽화로 가득채운 시스틴 소 성당은 오래 머물러도 지루하지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형편만 허락된다면 그곳은 하루 종일 쳐박아 두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 방이었습니다.

예술이 경전과 만나면 그건 불후의 명작이 되는거죠. 그게 초능력을 발휘하는 예술가의 신앙의 힘이 아닐까요?

 

나의 불찰을 사죄하는 심정으로 소성당을 소개한 블로그를 여러 개 소개하고 천정화도 함께 공부해 보기로 한다. 맨아래 사진2장은 성베드로 성당의 피에타와 외관 모습을 실었다.

 

아래 블로그에서 미켈란젤로(1475-1564)의 역작 성 시스티나 성당(1508-1512)의 천장벽화를 상세히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300여명의 인물들이 관광객들을 압도한다.

http://blog.naver.com/jpk85/90004184726

http://blog.naver.com/swwyang/100009731859

 

아래 블로그를 보면 천정화 그림의 대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swwyang/100009785251

 

숫자는 밑에서 천장을 올려다 보았을 때의 천정화의 배치도

중앙 주제
(Genesis)
1.빛과 어둠의 창조 2. 해와 달과 초목의 창조 3.물과 땅의 분리
4. 아담의 창조 5. 이브의 창조 6. 원죄와 낙원추방
7. 노아의 번제 8. 대홍수 9. 노아의 술취함
네 모서리
(Pendentives)
10.유디스와 Holofernes 11.다윗과 골리앗 12.교활한 독사
13.하만의 형벌    
주제의 좌우
(Prophets &
Sibyls)
14.예레미아 15.Persian 무녀 16.에스겔
17.Erythrean 무녀 18.요엘 19.스가랴
20.Delphian 무녀 21.이사야 22.Cumaean 무녀
23.다니엘 24.Libyan 무녀 25.요나
26-39.그리스도의 조상들 27a-38a.그리스도 선조의 가족들
아홉 주제 그림의 네 모서리마다 <Ignudi>가 그려져 있습니다

출처:http://db.hs.kr/pjs1104/fineart.html

 

*아래 그림은 위, 아래가 반대임, 아래에서 위로 가면서 숫자를 맞춰가면 됩니다. 4번 아담의 창조를 기준으로 해도 됩니다.

2. 해와 달과 초목의 창조에서 엉덩이를 까고 달아나는 사람은 뉘신고? 미켈란젤로 할아버지의 유머여! 안 그러고는 지루해서 미쳐버렸을 겁니다.

대칭구도상 한 사람 배치하긴 해야 허는디, 구름 아줌마를 그린 건가?

1.빛과 어둠의 창조 2. 해와 달과 초목의 창조 3.물과 땅의 분리
4. 아담의 창조 5. 이브의 창조 6. 원죄와 낙원추방
7. 노아의 번제 8. 대홍수 9. 노아의 술취함

 

아래에서는 장면을 절단한 사진과 설명을 수록함.

http://blog.naver.com/swwyang/100009785305

 

[미켈란젤로]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배치2

Michelangelo Buonarroti 미켈란젤로는 바로크의 아버지로도 칭송을 받는데 그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

blog.naver.com

 

[은자 주] 더 상세한 내용을 알고자 하시는 분은 구약성서 <창세기>를 통독하실 것.

주야로<창세기>를 묵상하는 기독교도라면 그림만 봐도 무슨 얘기인 줄 알 수 있음.

 

http://massay.egloos.com/1755222

 

[이탈리아/로마] 로마인 이야기 - (11) 시스티나 성당

 

massay.egloos.com

 

천지창조, 아담의 탄생

http://blog.daum.net/skj2607/9190100

http://blog.daum.net/luci52/15638115

 

아래 블로그에는 10꼭지가 넘는,잘 찍은바티칸 사진이 있다.

내가 놓친 장면들도 많았다. 이 블로그에 비하면 나의 소개는 소품에 불과하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커녕 나는 코끼리란 말만 듣고 말았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http://blog.paran.com/newbell/18178928







 

https://ko.wikipedia.org/wiki/%ED%94%BC%EC%97%90%ED%83%80

 

피에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비슷한 이름의 피에스타에 관해서는 해당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피에타(이탈리아어: Pietà)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뜻하는 말로 기독교 예술의 주제 중의 하나이다. 주로 성모 마리아가 십

ko.wikipedia.org

 

이 블로그 운영자

  1. 시스티나성당 [Cappella Sistina] http://100.naver.com/100.nhn?docid=100592건축가 조반니 데 도르티의 설계로 1473년 착공, 1481년에 완성하였다. 건물 자체는 깊이 40.5m, 너비 13.2m의 장당(長堂)을 높이 약 30m의 요면(凹面) 궁륭천장(穹窿天障)으로 덮고, 좌우에 고창(高窓)을 배열한 평범한 것에 불과하나, 내부의 벽화와 천장화(天障畵)는 르네상스 회화의 보고(寶庫)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본당(本堂)의 완성에 이어 교황 식스토 4세는 피렌체와 움브리아의 대표적 화가를 불러 좌우 벽면에 《모세의 생애》와 《예수의 생애》 등 도합 12점의 벽화를 제작하도록 명령하였다. 보티첼리를 중심으로 D.기를란다요, P.디코시모, L.시뇨렐리, 페루지노, 핀트리코 등이 3개년에 걸쳐 그린 이들 그림에는 성기(盛期) 르네상스의 도래가 가까운 젊은 이탈리아 회화의 싱싱한 감각이 넘치고 있다. 그 뒤 얼마간의 시기를 두었다가 미켈란젤로에 의한 유명한 천장 그림의 제작이 시작된다. 1508년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로부터 이 대역(大役)을 명령받은 그는, 먼저 화필로 넓은 천장에 기둥과 인방(引枋) 등의 건축적인 구조부분을 그리고,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틀 안에 여러 장면을 그려 넣는 수법을 썼다. 이런 식으로 1512년까지는 천장 중앙부에 《창세기》를, 그 주위에 《12명의 무녀(巫女)와 예언자》를, 삼각형 모양의 요면벽(凹面壁)과 반월형 벽면에 《그리스도의 조상》을, 그리고 네 모퉁이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각각 그렸다. 1534년 그는 다시 바울로 3세의 위촉으로 정면의 제단화(祭壇畵)를 그렸다. 벽면전체를 상하 4층으로 나누어 7년에 걸쳐 위에서부터 천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심판의 장면, 묵시록의 7천사, 그리고 맨 아래층에는 지옥을, 지난번의 고전적 작풍과는 다른 격렬한 터치로 표현하였다. 이 회화의 완성으로 최초의 12점의 측벽화(側壁畵)와, 미켈란젤로의 고전적 화경(畵境)을 말하는 천장화, 그리고 앞으로 닥칠 바로크 회화의 선구적 역할을 하는 제단화, 바꾸어 말하면 성기(盛期) 르네상스를 중간 시기로 하는 전후 세 시기에 속한 작품이 이 성당 안에 모이게 되었다.


'해외여행 > 이탈리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의 휴일  (0) 2008.05.19
교황청 박물관  (0) 2008.05.19
카프리섬  (0) 2008.05.17
나폴리항구 & 산타루치아  (1) 2008.05.17
피사의 사탑  (0) 2008.05.13

세계 굴지의 유명인사들이 많이 찾아 요트도 타고, 또, 유럽 사람들은 육지에 사니까
휴양지로 카프리섬을 이야기 하지만 한라산이나 울릉도에 비하면 댈 것도 아입니다.
그건 섬도 아니라예. 카프리섬은 한국의 섬에 비하면 섬도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의 산방산 용머리해안과 성산일출봉, 백록담, 산굼부리, 울릉도의 기암괴석과

성인봉은 세계자연유산에 등록해도 손색이 없다 아입니꺼?
아참, 제주도는 발씨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군요.
울릉도는 작은 섬이지만 그래도 섬 일주도로라도 있잖아요.

카프리는 중턱으로 오르는 짧은 도로가 있고 중간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오르는 작은 섬입니다.
정상에서 해안의 바윗돌 하나 보고 사진을 찍어대는데, 유럽인들이
한려수도의 바위섬이나 울릉도의 삼선암에 오면 아매 뒤로 나자빠질 겁니다.















'해외여행 > 이탈리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황청 박물관  (0) 2008.05.19
예술의 극치 시스티나 소성당  (1) 2008.05.19
나폴리항구 & 산타루치아  (1) 2008.05.17
피사의 사탑  (0) 2008.05.13
트레비 분수  (1) 2008.02.15




[사진] 위 첫 번재 사진은 소렌토 절벽, 두 번째 사진은 카프리 섬에서 나폴리 항구로 돌아오며 노을을 배경으로 고물의 스크류엔진이 일으키는 흰 물살과 포말을 찍으려 했으나 물살의 넓이가 너무 넓게 잡혀 실패한 것 같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기냥 싣는다.아직 별이 빛나기엔 이른 시각이었지만"내 배는 살 같이 바다를 지"나니까.

이탈리아는 유럽대륙의 관광왕국이라 할 만하다. 말이 12일짜리 서유럽관광 패키지이지 관광을 마치고 나면 이탈리아에만 머문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오늘 관광코스 말고도 밀라노, 로마 교황청 및 시내 관광, 인문학의 산실인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베네치아,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모두 이탈리아의 관광상품이었다.

폼페이는 나폴리 항구에 붙어 있었다. 언덕에서 구경만 한 산타루치아 항구는 세계3대미항의 하나인 나폴리항구의 인접지역이었다. 이날 일정은 폼페이 관광, [점심], 산타루치아역, 나폴리 항구, 카프리섬 순서로 진행되었다.

나폴리 항구와 산타루치아를 한 꼭지로 묶엇다. 산타루치아 사진 3장은 사전에서 퍼왔다. 백사장 피서지에는 안 갔걸랑요.

현지가이드 퀴즈 하나.

세계에서 이탈리아에 음악공부를 하러 오는데 이태리 노래 가사의 특징은?

가이드가 심심해 할 것 같아 내가 유식을 좀 떨었다. 미움의 눈총을 받을 각오를 하고.

비강에서 비음을 많이 냅니다. 그런데 그것은 불행하게도 정답이 아니었다.

정답은 어절의 끝소리가 모음으로 끝난다였다. 그래서 세계 테너 삼인방인 플라시도 도밍고,호세 카레라스, 루치아노 빠바로티가 모여도 이들은 줄창 이탈리아 가곡만 목청껏 불러대는군요. 소리의 막힘이 없으니까 구름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도록 소리를 내질러대는거죠.막힘이 없는 소리를음운론에서는개구음(開口音)이라 합니다.


나폴리 민요

http://100.naver.com/travelworld/theme.php?codestr=10040207_2_1_2_0_1

원래 나폴리민요는 포딜리포에 있는 마돈나 델라 페에데그로타성당의 제전(祭典) 때 만들어져 헌납된 곡으로, 일반적인 의미의 민요는 아니다. 제전은 9월 7일과 8일에 성대하게 거행되는데, 18세기에는 나폴리악파의 작곡가들의 아리아도 헌납된 것 같다. 이 제전이 대중적인 노래제전의 양상을 띠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초부터이며, 당시의 나폴리 왕에 의해서 나폴리 전시(全市)의 음악제가 되었다. 이 가요제는 한때 중단되었으나, 1953년부터 나폴리 칸초네 페스티벌(나폴리가요제)로서 부활되어 산레모가요제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대중음악의 제전이 되었는데, 매년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내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나폴리민요로는 1835년에 만들어진 《당신이 제일 좋아》(R.사코 작시, G.도니체티 작곡)라고 하며, 오늘날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는 《후니쿨리 후니쿨라》 《산타루치아》 《말레키아레》 《오솔레미오》 등은 19세기 말경에 만들어졌다. 이 민요들은 나폴리가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아랍이나 동양의 음악과 친근성이 많으며, 벨칸토가 발달한 곳인만큼 노래하기 쉽고 선율적이다.

《오솔레미오》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 나의 마음에는 사랑스런 나의 햇님뿐 비친다 오 나의 햇님…”



산타루치아 [Santa Lucia]

http://100.naver.com/100.nhn?docid=85585

산타 루치아나폴리 수호신의 이름이며 나폴리 해안거리의 지명이기도 하다. 이 해안에서 황혼의 바다로 배를 저어 떠나는 광경을 노래한곡으로, 1850년에 발표되고 그 후 나폴리의 어부들 사이에서 애창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코트라우가 도니체티의 오페라 《루크레치아 보르지아:Lucrezia Borgia》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아리아 《그 얼마나 아름다운 마술사인가》를 듣고 암시를 받아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오래전부터 애창되고 있다.


Santa Lucia / Bass. Ivan Rebroff

https://www.youtube.com/watch?v=8CiXj-Q4eVw

Sul mare luccica L'astro d'argento
Placida e' l'on-da Prospero e' il vento
Venite all'agile Barchetta mia
Santa Lucia Santa Lucia .....

창공의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내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











'해외여행 > 이탈리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술의 극치 시스티나 소성당  (1) 2008.05.19
카프리섬  (0) 2008.05.17
피사의 사탑  (0) 2008.05.13
트레비 분수  (1) 2008.02.15
유럽여행  (2) 2008.02.11

피사의 사탑(斜塔)

파리에서 버스로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 밀라노로 이동하던 중에 피사에 들렸습니다.

유럽여행은 대부분 버스를 탑승하고 이동한다고 보면 됩니다.

어쩌다 런던- 파리 해저터늘을 통과할 때와

이탈리아에서 제네바로 이동할 때 고속철로를 이용하긴 했습니다만.


이 삐딱하니 기울어진 사탑(斜塔)은 저층 바닥에서 쇠밧줄로 끌어당겨
더 이상 기울어지진 않는답니다.

현재는 높이 55.8m나 되는 탑이 꼭대기에서 수직으로 5m 기울어진 채 멈춘 상태라나요?
말하자면 돌연변이 탑이이지요.

탑내부는 나선형으로 된 294개의 계단을 통해 종루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종루에는 각각 다른 음계를 가진 7개의 종이 걸려있다고 합니다.

한국인이라면 그 역학을 계산해 낼 방도는 생각 않고

쉽게 위에서 줄울 걸어 당길 텐데 밑에서 당겨도 되는군요.


그래서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니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탑을 기울이면
세계의 관광객들이 운집할까 궁금했다.

탑의 높이가 50m는 되어야 할 텐데 그런 높이의 탑은 남산타워면 될까?

[N서울타워(엔서울타워, N Seoul Tower)높이는 236.7 미터]

지상 60층, 지하 3층의 규모이며, 지상높이 249m인 63빌딩이 기운다면,

그리고 기운 상태로 기울기를 멈춘다면 세계의 관광객이 떼거지로 몰려올 것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라는 한국 속담도 있는데.

정성이 부족했던가?

지반을 잘 다져서 탑을 앉힐 일이다.

하필 탑을 세운 곳의 지반이 매년 1mm 정도 기울어지도록 가라앉을 일이 뭐람?

허긴 그 때문에 관광객이 몰려오지 않는가?

끝에 이탈리아 현대 산업도시 밀라노대성당 사진 2장을 싣는다.

그들은 기능보다 장식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예술인가?

전면과 옥상의 모습이다.

아래 창에도 멋진 탑의 모습이 있네요. 그 설명의 일부를 옮깁니다.

http://k.daum.net/qna/openknowledge/view.html?qid=3OCgo

피사의 사탑
이탈리아 중서부에 위치한 피사 대성당(Duomo di Pisa)의 부속건물(대성당, 세례당, 종탑)중 3번째이며 마지막 구조물로써, 중세 도시국가 피사가 팔레르모 해전에서 사라센 함대에 대승한 것을 기념하기위해 세워진 종탑이다.

흰대리석으로 지어졌으며, 꼭대기 종루를 포함해 8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높이는 55.8m, 무게는 14,500t 이나 된다.
탑내부는 나선형으로 된 294개의 계단을 통해 종루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종루에는 각각 다른 음계를 가진 7개의 종이 걸려있다.

1174년에 착공된 피사의 사탑은 이탈리아 천재건축가 보라노 피사논의 설계도에따라 탑을 만들어가던 중, 3층까지 쌓아올렸을 때 공사관계자들은 지반 한쪽이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책임 기술자였던 보나노 피사노는 기울어진 모양을 보정하기 위해 새로 층을 올릴 때 기울어져 짧아진 쪽을 더 높게 만들었으나, 추가된 석재의 무게로 건물은 더욱 가라앉게 되었다. 기술자들이 해결방안을 찾으려고 몇 번씩 공사를 중단했으나 결국 1350년에 맨 꼭대기층이 기울어진 채 완성되었다.
물론 건축당시부터 의도적으로 기울어진 탑을 세운것은 아니다.

1년에 1mm정도 기울어지는 미세한 자연 현상이 누적되다보니 오늘날과 같이 탑의 꼭대기가 수직선에서 무려 5m나 기울어졌다.

현재는 탑의 기울기가 멈춘 상태다. 최근 영국 런던대학의 토질 기계학과 존 부를랜드 교수는 "피사의 사탑은 이제 기우는 것은 멈췄다. 이는 지난 7세기만에 이룩한 개가"라고 말했다. 사탑이 이처럼 위태로운 상태에서도 수천년 동안 용케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피사 시당국은 지난 93년 사탑의 수직기울기가 5m나 되는 것을 감안할 때 2050년경이면 붕괴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자 부를랜드 교수에게 매달렸다. 특히 지난 89년 3월 파비오에 있는 8백년된 탑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무너지는 사고까지 난 터라 더 이상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부를랜드 교수의 처방은 의외로 간단했다. 탑의 기초를 강철 케이블로 묶어두고 콘크리트로 기초를 보강하는 한편 탑이 기울어지는 반대편 지반에 무거운 납덩어리를 쌓아두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예상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보이고 있다.
1년이 안되는 사이에 탑꼭대기가 약 5cm 정도 되돌아섰다.









'해외여행 > 이탈리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프리섬  (0) 2008.05.17
나폴리항구 & 산타루치아  (1) 2008.05.17
트레비 분수  (1) 2008.02.15
유럽여행  (2) 2008.02.11
베니스의 수로 1  (1) 2008.02.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