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蜀道難(촉도난)/ 구성
촉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
제1단:신화와 태백산의 광경
아, 위험하고 높음이여,
촉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이여.
푸른 하늘 오름보다 더 어렵구나.
촉나라 임금의 선조들이여
개국은 아득하여
그 뒤로 사만 팔천년
처음으로 진나라 변방과 통하였다.
서쪽으로 태백산
새 다니는 길 겨우 있어
아미산 꼭대기를
가로 자른다.
땅이 무너지고 산이 꺾이고
장사가 죽고서야
구름다리 돌다리
비로소 놓였다.
위에는 정상에서
여섯 룡이 해를 끌고
아래는 회천에서
부딪치는 파도가 물을 되돌린다.
황학은 날아도
정산엔 못 가고
원숭이가 넘으려 해도
등반을 걱정한다.
제2단:靑泥嶺으로부터촉으로 들어가는景象
청니령 영마루
얼마나 구부러져
백 걸음에 아홉 번 꺾여
바위산을 감쌌다.
손 펴면 삼태성을 잡을 듯, 井星을 거칠 듯.
우르러 숨죽이고
손으로 가슴 만져
앉아서 길이 탄식한다.
묻노니, 그대여, 서방 여행
어느 때에 돌아오나?
두려운 건 바위산을
오르지 못하리라.
보이나니 산새들
고목에서 슬피 울며
수놈 날고 암논 쫓고
바위산을 돌아간다.
들리나니
자규새 울음이여
달밤에 슬피 울어
쓸쓸한 산 위에서 근심이 인다.
촉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이여,
푸른 하늘 오름보다 더 어렵구나.
이 말 들은 사람
붉던 얼굴 창백해진다.
3단:連山의 絶壑과 물이 우레처럼 솟아나는 險阻함
잇달은 봉우리, 하늘과의 거리는
한 자도 못되고
마른 소나무 거꾸로 걸리어
절벽에 기대었다.
나는 여울물 사나운 물결
다투어 시끄럽게
물결치는 낭떠러지 구르는 돌들
골짝마다 우레 친다.
그 험함이여,
이와 같은데
아, 먼 길 간 사람이여
어떻게 오시려나?
4단:險閣의 崢嶸함과 險要, 자기의 돌아옴을 그리는 심정.
검각산 가파르고
높고도 높아
한 사람이 관문 지키면
만 사람도 못 여나니.
관문지기
친한 사람 아니면
이리나 승냥이에게
먹히우리라.
아침에는 맹호를 피하고
저녁에는 긴 뱀을 피할지니
이를 갈고 피를 빨아
죽인 사람 삼대 같이 많았다.
금성
비록 즐겁다지만
일찍
집에 돌아옴만 못하리라.
촉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이여,
푸른 하늘 오름보다 어렵구나.
몸돌려 서천 향해
길게 탄식한다.
번역문의 원활한 의미 소통을 위해 한문과 국역을 함께 소개한다.
079 촉도난(蜀道難)-이백(李白;701-762)
촉도의 어려움
噫吁戱,
(희우희),아∼
*[운영자 주]噫吁戱 - 세 글자 모두 감탄사. 감탄사를 세 번이나 사용한 점이 주목된다. 한 번 가지고는 제2구의 의미를 전달하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겠지요.
危乎高哉!
(위호고재)!험하고도 높구나!
蜀道之難難于上靑天!
(촉도지난난우상청천)!촉도의 여려움이 푸른 하늘 오르는 것보다 어렵구나!
蠶叢及魚鳧,
(잠총급어부),잠총과 어양 같은 촉나라 왕들이
開國何茫然!
(개국하망연)!나라를 연 것이 어찌 그리 아득한가!
爾來四萬八千歲,
(이내사만팔천세),개국이래로 사만팔천년에
始與秦塞通人煙.
(시여진새통인연).비로소 잔나라 변방과 인가가 통하였다네
西當太白有鳥道,
(서당태백유조도),서쪽으로 태백산과 통하여 험한 좁은 조도가 있어
可以橫絶峨眉巓.
(가이횡절아미전).아미산 꼭대기를 가로 자른다
地崩山摧壯士死,
(지붕산최장사사),땅이 무너지고 산이 꺾기고 장사가 죽어서야
然后天梯石棧方鉤連.
(연후천제석잔방구련).구름다리와 돌길이 비로소 놓였다네
上有六龍回日之高標,
(상유륙룡회일지고표),산 위에는 육룡이 해를 둘러싸는 정상을 알리는 표시가 있고
下有沖波逆折之回川.
(하유충파역절지회천).밑에는 물결을 찌르고 거슬러 껶어지는 돌아가는 냇물이 있다 .
黃鶴之飛尙不得,
(황학지비상부득),황학이 날아도 이르지 못하고
猿猱欲度愁攀援.
(원노욕도수반원).원숭이가 건너려 해도 근심스러워 나뭇가지를 휘잡는다.
靑泥何盤盤,
(청니하반반),청니령 고개는 어찌 그렇게 돌아가나
百步九折縈岩巒.
(백보구절영암만).백 걸음에 아홉 번을 꺾어 바위 봉우리를 감쌌네.
捫參歷井仰脅息,
(문삼력정앙협식),참을 만지고 정을 지나 우러러 숨죽여
以手撫膺坐長嘆.
(이수무응좌장탄).손으로 가슴 만지며 앉아서 길게 탄식하나니
問君西游何時還?
(문군서유하시환)?그대에게 묻노니, 서방으로 떠나면 언제 돌아오나
畏途巉岩不可攀!
(외도참암부가반)!두려워라, 길이 험한 바위라 잡고 오르지 못하겠구나!
但見悲鳥號古木,
(단견비조호고목),다만 슬픈 새 고목에 앉아 슬피 울고
雄飛雌從繞林間.
(웅비자종요림간).수컷 날면 암컷 따라다니며 숲 속을 돌아다닌다.
又聞子規啼,
(우문자규제),또 자규새 울고
夜月愁空山.
(야월수공산).밤에 뜬 달은 빈산을 슬퍼한다.
蜀道之難難于上靑天!
(촉도지난난우상청천)!촉도의 어려움은 푸른 하늘을 오르기보다 어렵구나!
使人聽此凋朱顔.
(사인청차조주안).사람이 이를 들으면 붉던 얼굴 창백해진다.
連峰去天不盈尺,
(련봉거천부영척),연이은 봉우리들 하늘에서 떨어진 거리 한 자도 못되고
枯松倒挂倚絶壁.
(고송도괘의절벽).마른 소나무 거꾸로 걸리어 절벽에 의지해 있네.
飛湍瀑流爭喧豗,
(비단폭류쟁훤회),나는 듯한 여울, 사납게 흐르는 물결 다투어 소란하고
冰崖轉石萬壑雷.
(빙애전석만학뇌).얼음 언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는 돌, 온 골짜기에 우뢰 소리
其險也如此!
(기험야여차)!그 험함이 이와 같도다
嗟爾遠道之人,
(차이원도지인),아, 당신 길 떠나는 사람이여
胡爲乎來哉?
(호위호내재)? 어떻게 오시려오?
劍閣崢嶸而崔嵬.
(검각쟁영이최외).검각산은 가파르고도 높아라.
一夫當關,
(일부당관),한 남자가 관을 지키면
萬夫莫開.
(만부막개).만 명의 남자들도 열지 못하리.
所守或匪親,
(소수혹비친),지키는 곳이 익숙하지 못하면
化爲狼與豺.
(화위낭여시).변하여 이리나 승낭이 되리라.
朝避猛虎,
(조피맹호),아침에는 사나운 호랑이 피하고
夕避長蛇.
(석피장사).저녁에는 긴 뱀을 피하네.
磨牙吮血,
(마아연혈),이를 갈고 피를 빨아
殺人如麻.
(살인여마).사람 죽인 것이 삼대같이 많다네.
錦城雖雲樂,
(금성수운낙),금성이 비록 즐거우나
不如早還家.
(부여조환가).일찍 집에 올아옴만 못하도다.
蜀道之難難于上靑天!
(촉도지난난우상청천)!촉도난이여 푸른 하늘로 올으는 것보다 어렵도다.
側身西望常咨嗟!
(측신서망상자차)!몸 돌려 서쪽 바라보며 늘 탄식 하네.
https://kydong77.tistory.com/8157
行路難 三首
ㅡ李白
其一
金樽清酒斗十千,玉盤珍羞直萬錢.
(금준청주두십천, 옥반진수치만전)
금항아리 맑은 술 한 말 값이 일만 냥
옥반에 좋은 안주 일만 냥의 값어치라.
停杯投箸不能食,拔劍四顧心茫然.
(정배투저불능식, 발검사고심망연)
잔 멈추고 젓가락 던져 먹지 못하고
칼 빼어 동서남북 둘러봐도 마음은 아득하다.
欲渡黄河冰塞川,將登太行雪滿山.
(욕도황하빙색천, 장등태항설만산)
황하를 건너려니 얼음이 내를 막고
태행산에 오르려니 눈이 하늘을 가린다.
閑來垂釣碧溪上,忽復乘舟夢日邊.
(한래수조벽계상, 홀부승주몽일변)
한가로이 시냇물에 낚싯대 드리우다
홀연히 배를 타고 서울 가기 꿈꾼다.
行路難,行路難,多歧路,今安在?
(행로난, 행로난, 다기로, 금안재)
살아가기 어려워라, 살아가기 어려워라.
갈림길도 많았거니 지금 어디 있는거냐?
長風破浪會有時,直掛雲帆濟滄海.
(장풍파랑회유시, 직괘운범제창해)
바람을 타고 물결을 깨트리는 그 큰 뜻 때가 오리니
높은 돛 바로 달고 창해를 건너리라.
<춘향전>
변학도 생일연에서 암행어사 이몽룡의 시구의 모델은
이백의 <行路難> 제1수이다. 제1~2구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金樽美酒千人血
금준미주천인혈.
玉盤佳肴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 옥소반의 맛좋은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燭淚落時民淚落
촉루락시민루락, 촛불의 눈물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歌聲高處怨聲高
가성고처원성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
시에서는 낙천주의자로 보이는 이백의 아버지는 서역길을 오가는 상인어서 天山 아래 살아기에 잔도가 아니면 오를 수 없는 天山 아래서 살았고 청년시절엔 무술을 하는 道家의 무리들과 어울려 무술을 익히기도 했다.
蜀道難(촉도난)은 인샐길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B%B0%B1
이백의 아버지가 장사를 하던 무역상이었기 때문에 이백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25세나 26세까지 고향인 촉나라에서 살면서 동암자라는 선인과 사천(四川)의 산들을 오르며 도교를 수양하였다.
25세나 26세에 고향을 떠나 강남을 여행하였으며, 아버지의 유산을 소비하며 몰락한 귀족의 자제들과 어울렸다.
744년 43세에 현종(玄宗)의 칙령을 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어 장안에 머물렀으나 관리의 따분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여 44세에 현종의 측근인 고역사와 다투고 사직하였다.
사직 후에 뤄양시에서 산둥까지 두보와 함께 여행하였다.
54세에 다시 강남으로 돌아와 56세에 현종의 열여섯 번째 아들인 영왕 인의 군대에 참여하였으나 영왕의 군대가 당 숙종에 의해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이백도 야, 지금의 구이저우에 유배되었다.
다행히 삼협(三峽) 부근까지 왔을 때에 은사(恩赦)를 받아 다시 강남으로 돌아왔다.
만년에는 강남의 각지를 유람하였고, 61세에 안휘성(安徽省) 당도(當塗)의 현령(縣令)이었던 종숙 이양빙(李陽冰)의 집에서 사망하였다.
이백이 잔간(長江)에 비치는 달 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도 있다.
이백은 고시와 절구를 특기로 했다. 그의 절구는 '신품'이라고 평해졌고, 그의 시재는 천래의 재, 즉 '천재'라고 했다.
그의 시는 스케일이 크고, 또한 박진감이 있으며, 때때로 환상적이다.
또한 그의 시는 매우 자유로우며 많은 고민을 하지 않고 한 번에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동시대에 살았던 11세 연하의 시인 두보가 1자 1구의 조탁에 뼈를 깎는 고심을 기울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편 술을 몹시 좋아하여 술에 취해 있을 때 현종의 부름을 받고 그대로 궁전으로 들어가 계속해서 시를 읊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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