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421- 한량들의 농담 (熊川接長)

고려 때 학문을 연마하던 학교로

학자 개인에 의해 창설된 것이

12개가 있어,

흔히 12(十二徒)라고 했다.

 

이 중에 해동공자(海東孔子)로 일컬어지는

최충(崔沖)에 의해 설립된

'문헌공도(文憲公徒)'

최초에 창설된 것으로

가장 이름이 높았고,

다음이 정배걸(鄭倍傑)에 의해 설립된

'홍문공도(弘文公徒)'가 유명했는데,

그 다른 이름이 지명을 따서 붙인

'웅천도(熊川徒)'였다.

 

이로 인해 조선 시대에도

웅천에는 서당을 중심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글공부를 하면서,

무리를 지어 인근 지역을 유람하며

멋을 부리고 놀았는데,

사람들은 이들 무리를 일컬어

웅천한량(熊川閑良)이라고 했다.

 

한번은 이 한량들이 모여 놀면서,

밤에 몰래 인근 가정집의

돼지 한 마리를 훔쳐 왔다.

 

그리하여 곧 돼지를

죽이려고 할 즈음,

주인이 그 사실을 발견하고

이들을 의심하여

곧장 이곳으로 찾아왔다.

 

이에 한량들은

돼지가 발견될까 두려워,

방으로 들고 들어가

아랫목에 두고 이불을 씌워 놓았다.

 

돼지 주인이 와서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아랫목의 이불을 가리키며,

"저 이불 속에는

무엇이 들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 때 한 젊은이가 나서서 대답했다.

", 그 이불 속에는

'웅천접장(熊川接長)'이 누워 계십니다.

접장(接長) 1)께서

오늘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꼼짝을 못하고 계시지요."

1)접장(接長) :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을 뜻함.

 

그러자 돼지 주인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 저도 웅천 한량들이 몰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문을 닫고는 그냥 물러가는 것이었다.

 

이후로 이들은 무슨 숨길 일이 있으면

저희들끼리 '웅천접장'이라 말하고,

서로 쳐다보면서 웃곤 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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