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419- 네 조 속에서 나왔다 (汝粟中出)

어느 시골에 사는 한 선비가

농부의 밭 근처에 집이 있어,

그 농부가 심어 놓은

조밭(粟田)을 지나

큰길로 나가면 매우 가까웠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나가면

빙 돌아가야 하니 매우 멀었다.

 

이에 선비는 늘

멀리 돌아가기 싫어,

농부가 가꾸는 조밭 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어

큰길로 나가곤 했다.

 

그렇게 다니는 사이,

처음에는 겨우 발목에 오던

조 포기가 어느덧 자라서

이삭이 나고 좁쌀도 제법 영글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선비가 그 사이를 지날 때면

잎과 이삭을 헤치며

아주 조심스럽게 다녀야 했고,

조 이삭의 키 또한 높이 자라

거의 가슴 부분에 와 닿는 것이었다.

 

하루는 선비가

아침 일찍 나갈 일이 있어

그 조밭을 지나 큰길에 이르고 보니,

조 포기에 맺혀 있던

이슬이 온몸에 묻어

옷이 거의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역시 그 조밭을 지나오는데

밭 임자인 농부를 만났다.

 

이에 선비는

잘 자란 농부의 조를 칭찬하느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 조가 어느새 무성하게 자라,

내 오늘 아침 일찍

네 조 속에서 나오는 동안

온몸이 물로 흥건하게 젖었구나.“

 

이 때 마침 짓궂은 친구 하나가

듣고 있다가 이렇게 놀렸다.

"아니 자네가 그 농부의 ''1) 속에서

온몸이 물에 젖어 나왔다면,

1):남자의 음경을 이르는 말.

자네는 농부의 아들로

금방 태어났단 말이 되지 않는가?"

이 말에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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