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419화 - 네 조 속에서 나왔다 (汝粟中出)
어느 시골에 사는 한 선비가
농부의 밭 근처에 집이 있어,
그 농부가 심어 놓은
조밭(粟田)을 지나
큰길로 나가면 매우 가까웠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나가면
빙 돌아가야 하니 매우 멀었다.
이에 선비는 늘
멀리 돌아가기 싫어,
농부가 가꾸는 조밭 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어
큰길로 나가곤 했다.
그렇게 다니는 사이,
처음에는 겨우 발목에 오던
조 포기가 어느덧 자라서
이삭이 나고 좁쌀도 제법 영글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선비가 그 사이를 지날 때면
잎과 이삭을 헤치며
아주 조심스럽게 다녀야 했고,
조 이삭의 키 또한 높이 자라
거의 가슴 부분에 와 닿는 것이었다.
하루는 선비가
아침 일찍 나갈 일이 있어
그 조밭을 지나 큰길에 이르고 보니,
조 포기에 맺혀 있던
이슬이 온몸에 묻어
옷이 거의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역시 그 조밭을 지나오는데
밭 임자인 농부를 만났다.
이에 선비는
잘 자란 농부의 조를 칭찬하느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 조가 어느새 무성하게 자라,
내 오늘 아침 일찍
네 조 속에서 나오는 동안
온몸이 물로 흥건하게 젖었구나.“
이 때 마침 짓궂은 친구 하나가
듣고 있다가 이렇게 놀렸다.
"아니 자네가 그 농부의 '조'1) 속에서
온몸이 물에 젖어 나왔다면,
1)조 :남자의 음경을 이르는 말.
자네는 농부의 아들로
금방 태어났단 말이 되지 않는가?"
이 말에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더라 한다.
'고전문학 > 국역고금소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421화 - 한량들의 농담 (熊川接長) (0) | 2016.09.13 |
---|---|
제420화 - 종이 대신 과거를 본다네 (奴替科行) (0) | 2016.09.13 |
제418화 - 佛本麻滓(불본마재), 들추면 다 그렇다 (2) | 2016.09.10 |
제417화 - 나귀는 저쪽에 있다 (有牽驢) (0) | 2016.09.10 |
제416화 - 영남 무인 김씨 (嶺南有金姓者) (1) | 2016.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