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417- 나귀는 저쪽에 있다 (有牽驢)

한 겨울 추위가 지나고

해동되기 시작하는 때였다.

 

한 사람이 나귀를 몰고

큰 냇가에 이르러

반대편으로 건너가야 했다.

 

보통 때라면 물이 좀 많아도

바지를 걷고

나귀와 함께 건너갈 만했으나,

지금은 냇물이

꽁꽁 얼었다 녹는 때라서

얼음 위를 걸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녹으려는 얼음 위를

나귀와 함께 걸어가는데,

이 사람은 나귀의 고삐를

단단히 거머쥐고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면서

얼음만 내려다본 채

조심조심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계속,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을 외우며,

겸손하게 부처님의

자비와 은총을 빌었다.

 

이리하여 내를 다 건너서

반대편 언덕에 닿자,

더 이상 부처님은

무슨 부처님이냐는

거만한 마음으로 이렇게 내뱉었다.

"! 부처님?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아미타불이냐?"

하고는 훌쩍 언덕으로 건너뛰었다.

 

그리고는 이제 다

끝났다는 안도감에

뒤를 돌아보자,

어찌된 영문인지

나귀는 건너편 냇가에

그대로 서 있고,

손에 쥔 나귀 고삐만

졸졸 따라온 것이었다.

 

이에 그 사람은

다시 얼음 위로 올라서서

조심스럽게 건너가며,

입으로는 역시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것이었다.

 

흔히 속담에

'도로아미타불'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