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420- 종이 대신 과거를 본다네 (奴替科行)

[유사작품]고금소총 제522- 커다란 병폐 (趙石磵尹江陵)

 

과거 시험 중에서

식년과(式年科)라는 것은,

과거를 실시하는 해를

고정적으로 정해 놓고 보는 시험이다.

곧 지지(地支)

'(), (), (), ()' 해에

실시하는 과거를 말한다.

 

한 시골 선비가 집은 가난한데,

3년마다 오는 식년과를 놓치지 않고

응시하여 여러 번 낙방했다.

그런데 또다시 식년과가 다가오니,

과거를 보기 위해

말을 타고 종을 거느리고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 비용 때문에 무척 걱정이 되었다.

 

이에 선비가

"시험을 보려면

또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 비용을 어떻게 해야 한담?"

하고 한숨을 내쉬니

옆에서 종이 듣고 있다가 물었다.

 

"도련님은 무슨 일로

그렇게 애를 태우시는지요?"

"과거를 보러 가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많이 들어 걱정이 되는구나.

서울 한번 가는 데

적잖은 돈이 들지 않느냐?"

 

그러자 종은 한참 있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도련님!

이번 과거에는

소인만 혼자 올라가서

과거를 치르고 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리하면 과거 시험을 볼

종이 값과

소인이 걸어서 혼자 다녀올

여비만 있으면 되니

큰돈은 필요 없을 것이고,

그러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글공부한 양반이 보는 과거를

종놈인 네가 어떻게 본단 말이냐?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에 종은 웃으면서

천천히 대답했다.

"도련님! 소인이 도련님의 과거 길을

한두 번 모셨습니까?

그 동안 따라다니면서 보았사온데,

도련님은 과거장에서

시험지를 제출하지 않으시고

그냥 들고 나와,

항상 다리 밑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그와 같이 하는 일이라면

소인이 못할 것이 뭐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말에 선비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못했더라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