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432- 선비들의 낙방은 당연하오 (上舍閔釋)

선비 민석(閔釋). 최탁(崔倬). 윤심(尹深)

이 세 사람은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번번이 낙방했다.

그런데 또다시 과거 날이 다가오니,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서로 상의했다.

"우리들의 운수가 기박하니,

마땅히 아라한(阿羅漢) 앞에 나아가서

정성드려 재를 올리고

복을 빌어야 할 것 같네."

이리하여 삼각산 흥덕사(興德寺)

나한전(羅漢殿)을 찾아가,

스님에게 재를 올리겠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스님은 합장 배례하면서

이르는 것이었다.

"우리 절의 아라한은

매우 신령스러우니,

이왕 재를 올릴 바에는

지성으로 경건하게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이에 세 선비는

정성을 쏟아 재를 올리기로 하고

목욕재계하여 몸을 깨끗이 한 다음,

산삼을 캐서 떡을 만들어

공양을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산삼을 캐러

산속을 헤매고 다녔으나

눈에 띄지 않으니,

해학을 좋아하는 윤심이 심심하여

노래를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神通羅漢聖 신통한 영험이 있는 나한 신령은

(신통나한성)

酷好山蔘餠 산삼 떡을 지나치게 좋아하도다.

(혹호산삼병)

采采不盈筐 아무리 캐도 광주리 차지 않으니

(채채불영광)

將以親供養 장차 직접 몸으로써 공양을 하리로다.

(장이친공양)

 

이렇게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면서 찾아다니니,

스님이 듣고서

소리를 질러 꾸짖는 것이었다.

"지금 바야흐로 재를 올리고자

정성을 쏟으면서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것은

부처님을 비방하는 거나

같은 일입니다."

이러한 스님의 말에 윤심은,

", 스님!

이것은 '음성공양(音聲供養)'

하고자 함입니다."

라고 말하며 웃었다.

드디어 세 선비가

나한전 앞에 꿇어앉으니,

스님이 재를 올리기에 앞서

경계하여 말하기를,

"예를 올리는 동안,

결코 방탕한 마음을 갖지 마십시오."

라고 하면서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리고 스님은 재를 올리면서

큰소리로 세 번 외치는 것이었다.

"제 일에, 빈두노존자(賓頭盧尊者)!"

이 때 윤심은 참지 못하고

그만 왈칵 웃음을 터뜨렸다.

왜냐하면 민석의 눈은

안광(눈자위)이 결여되어,

평상시 그를 '빈두노존자'라고

놀려 왔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윤심이 크게 웃자,

긴장하고 있던 두 사람 역시

서로 쳐다보며 따라 웃었다.

곧 스님은 화를 내며 꾸짖었다.

"세 선비의 행동으로 보아,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일이로고.

그만 돌아가시오."

이러면서 스님은

안으로 들어가 버렸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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