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435- 아내에게 속은 낭관 (一郎官)

 

한 낭관(郎官)1)이 젊은 시절에는

잘 생겼다고 큰 칭송을 받았지만,

나이를 먹으니

어느새 수염이 반백이 되고 말았다.

1)낭관(郎官) : 각 부처의 실무를 맡은 당하관.

어느 날 하루 밤에는

잔치에 참석했다가

아리따운 기생을 보고

마음에 들어

가까이 하려고 하자,

그 기생이 귀에 대고

가만히 속삭였다.

", 나리는 너무 늙었사옵니다.

어찌 하오리까?"

 

이에 부끄러움을 느낀 낭관은

급히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에게 부탁했다.

"여보, 내 흰 머리가 많아

보기 싫으니 힘들더라도

잠시 이것 좀 뽑아 줄 수 없겠소?"

", 그거야 어렵지 않지요.

여기 누우시면 내 뽑아 드리리다."

이러면서 아내는

순순히 뽑아 주겠다고 하니,

낭관은 매우 고맙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아내는

흰머리를 뽑은 것이 아니고

검은 머리만 뽑아,

낭관을 백발노인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낭관에게 말했다.

"여보, 이제 당신은

소년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연세가 드니

얼굴이 많이 검어졌습니다.

오늘부터 세면을 하실 때

녹두 가루를 이용하시면

얼굴이 하얘질 것입니다."

 

이에 낭관은 기분이 좋아,

그저 시키는 대로 며칠 동안

계속 그렇게 세면을 했다.

그러자 하루는 아내가 말했다.

"근래 당신이 많이 애쓴 결과,

전날처럼 검은 얼굴에

흰수염의 노인이 아닙니다.

이제는 젊은 소년이나 같습니다."

 

그러자 낭관은 크게 기뻐하면서

곧 기생집으로 달려가 자랑하듯 말했다.

"내 얼굴이 소년처럼 붉고

머리털은 옻칠한 듯 검으니,

풍류 생활에 역시

늦었다고 할 수 없구나."

 

이에 기생은 빙그레 웃으며,

일부러 거울을 병풍 사이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었다.

그러자 낭관이 방안을 둘러보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허연 노인임을 알아차리니,

크게 부끄러워하면서

급히 집으로 돌아가 버렸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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