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440화 - 손을 올려서 홀을 가장하다 (昔有衿川守)
옛날 금천(衿川) 고을에
관찰사가 순시를 나온다는
연락이 왔다.
이에 관찰사가 도착한다는 날,
관장이 공복(公服)을 차려입고
말에 올라
멀리 마중을 나가게 되었다.
시간이 늦으면 안 되기에
일찍 출발하여
마을을 벗어난 산길에서 기다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마침 길가에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가 있어
그 나무 그늘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말에 탄 채 위를 쳐다보자,
손을 뻗으면 닿을락 말락한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밤송이가
탐스럽게 벌어져 있는 것이었다.
이에 관장은 문득 손에 쥔 홀(笏)로
그 가지를 툭툭 쳤는데,
그만 그 홀이 손에서 튕겨 나가면서
밤나무 가지 사이로 올라가 버렸다.
이에 그 홀을 내려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순간 저쪽에서
관찰사의 행차가 나타났다.
그러자 관장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당황해 하다가,
별 수 없이 한 팔을 꼿꼿이 세운 채
홀을 쥐고 있는 척 가장했다.
그러고는 행차의 앞에 서서
관찰사 일행을 의젓하게 인도해 들어오니,
보는 사람들이 우스워서 배를 잡고 웃었다.
한편, 문씨 성을 가진 한 선비가
서울 동부의 주부(主簿)에 제수되어
한성부로 나아가
당참례(堂參禮)1)에 참석했는데,
도착하고 나니
홀을 어디다 빠뜨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1)당참례(堂參禮) : 처음 인사하는 의식.
이에 팔을 몸 앞으로 세우고는,
손바닥을 펴서
홀을 쥔 척 가장하고 서 있었다.
그리고 의식을 진행하니
좌윤 이훈(李塤)이 보고는 우스워
우윤 이파(李坡)에게 눈짓을 해보였다.
두 사람은 이를 보고 웃음이 났지만,
의식이 진행되고 있어서
참느라 애를 먹었다.
행사가 끝난 뒤 그들은
앞서 금천 관장의 일과 연관지어,
"앞에는 금천이 있고,
뒤에는 동부가 있도다."
라는 시를 읊으며
서로 쳐다보고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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