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Btaj7tlKyoY 

 

 

https://kydong77.tistory.com/19510

 

한글 창제의 독창성/ 신숙주, 동국정운/ 신미대사 창제설, 불경譯의 범어

www.youtube.com/watch?v=tbcjsQX-DAY 한글의 독창성과 그 우수성은 자음은 발음기관의 형상에 따라 아설순치후를, 중성인 모음은 천지인을 형상화 한 점이다. 아설순치후 오음의 발음기관을 형상화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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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대사의 법호는 나옹화상(懶翁和尙)임(아래사진 제목의 오류 정정)

https://kydong77.tistory.com/18370

 

이색, 나옹화상 탑명 (塔銘)/ 청산은 나를 보고, 청산별곡

https://www.youtube.com/watch?v=lXZAOStsPY0 https://kydong77.tistory.com/17179 고려가요 총목 및 작품 해설 이참에 무애 양주동 선생님이 향가 다음으로 힘을 기울였던 고려가요 경기체가 등에 대하여 재정리해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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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은 나를 보고 - 나옹선사 시, 송은 곡

www.youtube.com/watch?v=SHjtZpVonu4

 

위 노래는 한물간 인기곡의 가사로 나옹회상의 시는 아래와 같습니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료무애이무증혜]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료무노이무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한글 칭제 이전이어서 한자를 빌어 쓴 우리말 시구.

한자를 모르는 민중들에게 문자로 불교를 전하자니 얼마나 갑갑하면 이런 기록을 남겼을까요?

5행과 7행의 兮 : 어구를 맞추기 위해 덧넣은 字.

나머지 兮 는 7언한시가 아님을 나타낸, 우리말답게 표현한 덧글자.

위 청산시에서 훈민정음 창제이전에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無常이라는 불교적 세계관에 의거하여 우리말의 의미전달에 고심한 나옹화상의 불심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hcr7K8ugaU 

 

 

https://www.youtube.com/watch?v=MxPTb961NZg&t=3174s 

훈민정음-병음> 변문

 

 

https://kydong77.tistory.com/21371

 

신미대사, 산스크리트어> 한글창제/ 실담어(悉曇語,범어) 1편

수암화상 신미(1405?~1480?)  眞影, 조선 전기 승려이다. 우측에는 선교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 (禪敎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碍 慧覺尊者)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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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21372

 

신미대사, 산스크리트어> 한글창제/ 실담어(悉曇語,범어) 2편

수암화상 신미(1405?~1480?)  眞影, 조선 전기 승려이다. 우측에는 선교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 (禪敎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碍 慧覺尊者)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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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20997

 

훈민정음 해례본/ 신미대사, 범어의 영향

세종께서 왼손에 들고 계신 책이 훈민정음 해례본 https://www.youtube.com/watch?v=wnGt6IOnqmY https://www.youtube.com/watch?v=PLK6yBSRE_A&t=83s https://www.youtube.com/watch?v=XJV6URY-5BI https://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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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21523

 

천수경, 신묘장구대다라니경/信眉, 禪敎宗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礙 慧覺尊

[세종이 유언한 신미대사의 시호] 信眉, 禪敎宗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礙 慧覺尊者 * 密傳正法 - 범어[산스크리트어]를 통해 붓다의 가르침을 바로 접근할 수 있게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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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유언한 신미대사의 시호]

信眉, 禪敎宗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礙 慧覺尊者

* 密傳正法 - 범어[산스크리트어]를 통해 붓다의 가르침을 바로 접근할 수 있게 함.

*신미대사의 시호중 "悲智雙運"의 '悲智'는 '자비'와 '지혜'의 의미임.

*'祐國利世' - 표음문자인 한글 창제를 선도함.

세종이 지은 시호를 종합해 보면, 범어에 능통한 信眉는 '祐國利世'한 한국의 붓다였다.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47258 

 

세종대왕은 왜 불교경전을 한글번역 했을까 - 불교신문

훈민정음, 그리고 불경언해김무봉 지음/ 역락한글 창제 후 국가 주도로총 30여 종 언해본 발행그 중 80%가 불교 경전반야심경 금강경 능엄경 등언해로 불교 대중화 노력역대 국왕 가운데 가장 위

www.ibulgyo.com

경전 언해는 1447년 석보상절을 시작으로 월인석보, 금강경, 반야심경, 능엄경20여 종에 걸쳐 진행됐다.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26_0020_0020_0060_0030 

 

우리역사넷

(3) 간경도감의 불경언해  세종 6년(1460) 6월에 설치된 刊經都監은 정음 창제 이후에 이 문자로 책을 간행한 가장 큰 기관이었으니 정음의 초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contents.history.go.kr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중요한 책들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楞嚴經諺解≫  능엄경언해10권(세조 7년;1462)

≪妙法華經諺解≫ 묘법화화경언해 7권(세조 8년)

≪金剛經諺解≫ 금강경언해 1권(세조 9년)

佛說阿彌陀經諺解불설아미타경언해1권(세조 9년) 

≪禪宗永嘉集諺解≫ 선종영가집언해 2권(세조 9년)

≪般若心經諺解≫ 반야심경언해 1권(세조 9년)

≪圓覺經諺解원각경언해 12권(세조 10년)

≪牧牛子修心訣諺解≫ 목우자수심결언해 1권(세조 13년)

 

[참고] 언문(諺文) 에 대하여.

언문청(諺文廳): 조선 시대에, 훈민정음 창제 후 서적의 편찬과 인쇄를 위하여 궁중에 임시로 설치한 관아. 세종 때 설치하여 단종 때 없앴다가, 연산군 때 다시 설치하여 중종반정 후 다시 없앴다.

언문지(諺文志): 조선 순조 24년(1824)에 유희가 지은 한글 연구서. 훈민정음의 자모(字母)를 초성ㆍ중성ㆍ종성의 세 가지로 나누어 해설한 것으로, 종래의 한자음 위주의 연구 방법을 지양하고 우리말 위주로 훈민정음을 다룬 첫 연구서이다. 1권 1책.

*언문청(諺文廳)은 국가설립의 관청을 의미하므로 '언문'이란 '우리말과 글'의 뜻이었다. 결코 비하하는 의미는 없었다.

문제의 발단은 한자를 아는 지식인들이 '眞書'라는 단어를 만들자 언청(諺文)은 자연 비하의 관념이 추가된 것으로 추정된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4%9D%EB%B3%B4%EC%83%81%EC%A0%88

 

석보상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석보상절》(釋譜詳節)은 1447년(세종 29년)에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주요설법을 뽑아 한글로 편역한 서적이다. 불교서적중에 한글로 번역, 편찬된 최초의 책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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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釋譜詳節)은 1447년(세종 29년)에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주요설법을 뽑아 한글로 편역한 서적이다. 불교서적중에 한글로 번역, 편찬된 최초의 책으로[1] 소헌왕후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수양대군이 세종의 명을 받아 만들었다. ‘석보’(釋譜)는 석가모니의 전기(傳記)를 의미하고, ‘상절'(’詳節)은 중요로운 내용은 자세히(詳) 쓰고, 그렇지 않은 내용은 줄여서(節) 쓴다는 뜻이다.[1] 금속 활자에 의한 15세기 한글 산문 자료로서 한국 어학, 한국 문학, 한국 서지학, 한국 불교학에서 귀중한 자료 중의 하나이다.

 

https://kydong77.tistory.com/21576

 

한말연구회,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

https://ko.wikipedia.org/wiki/%EC%84%9D%EB%B3%B4%EC%83%81%EC%A0%88 석보상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석보상절》(釋譜詳節)은 1447년(세종 29년)에 석가모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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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1523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0505

 

간경도감(刊經都監)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늘날의 시각에서 그 사업이 지니는 의의는, 첫째 귀중한 국어학 자료를 많이 생산하여 국어학사의 체계화에 크게 기여한 점에 있다. 특히, 국역본 불전은 훈민정음 창제 직후의 일이므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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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경도감은 고려 때 한역 정장(正藏)과 교장(敎藏)을 간행하기 위하여 설치한 대장도감(大藏都監)과 교장도감(敎藏都監)의 취지와 규모를 본떴으며, 그 중에서도 의천(義天)이 교장을 수집하여 판각한 사적을 본받은 바가 많다. 중앙의 간경도감을 본사(本司)로 하고 지방의 여러 곳에 분사(分司)를 두었는데, 현재까지 밝혀진 지방의 간경도감 분사로는 개성부·안동부·상주부·진주부·전주부·남원부 등이 있다.
직제는 처음에 도제조(都提調)·제조·사(使)·부사·판관으로 구성되었으나, 그 이듬해인 1462년에 간행한 『능엄경언해』에서부터는 제조 다음에 부제조가 더 표시되고 있다. 이는 직제를 다시 고쳤거나 또는 임용을 더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각 관직에는 한 사람만이 임용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사람이 임용되었다.
보직된 인원은 그 수가 일정하지 않았으나 대체로 20여 인을 넘었다. 간경에 종사한 역부(役夫)는 170여 인에 이르렀는데, 이는 한때 설치되었던 기관으로 상당히 큰 규모였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또한 당시 간역(刊役)에 30일 이상 종사한 이들에게는 도첩을 주어 승려가 됨을 허락하였는데, 그 수에 정원이 없어 인원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따라서 그에 소요된 경비 또한 상당했던 대규모의 사업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변천과 현황
1461년(세조 7) 6월에 왕명으로 설치하여, 1471년(성종 2) 12월에 폐지하기까지 11년간 존속하였다. 세조는 대군 때부터 불교를 좋아하여 부왕인 세종의 불서 편찬 및 간인(刊印)을 적극 도왔으며, 왕위에 오른 뒤에는 찬탈을 속죄하고 불교에 심취하였다.
1457년(세조 3) 왕세자가 병으로 죽자 왕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친히 불경을 사성(寫成)하였다. 또한 대장경 한 질을 비롯한 많은 불경을 경판에서 찍었으며, 『법화경』 등 여러 종류의 불경을 활자로 인출하기도 하였다.
1458년에는 신미(信眉)·수미(守眉)·학열(學悅) 등을 시켜 해인사 대장경 50부를 인출하여 각 도의 명산대찰에 분장(分藏)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세조의 숭불정책 구현을 위한 첫 사업이었다.
또한, 1459년 유신(儒臣)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국역 증보판 『월인석보』를 간행하였다. 이와 같은 간경사업의 경험을 살려, 불경 간행을 국가사업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왕권으로 간경도감을 신설하고 제도화하였다.
간경도감에서 불경의 국역 및 간행이 세조의 강력한 왕권에 의하여 한때 추진되었기 때문에, 그의 숭불정책과 이념이 당시의 지배층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다만 왕실과 일부 계층 그리고 서민층에 의해 받아들여졌으나 성종의 등극 이후 폐지되었다.


내용
주요 사업은 명승과 거유를 초빙하여 불경을 국역하고 교감하여 간행하는 일을 위주로 하였지만, 그 밖에도 불서를 구입 또는 수집하고 왕실에서 실시하는 불사와 법회를 관장하였으며, 때로는 고승을 접대하는 일까지 맡아보았다. 간경도감의 주된 사업인 간경의 내용은 2종으로 대별된다.
하나는 한자본 불경의 간행 및 반포이다. 고려의 의천이 송나라·요나라·일본 및 국내에서 교장을 수집하여 『신편제종교장총록 新編諸宗敎藏總錄』을 엮고 판각하였으나, 그때 간행된 고승들의 장소(章疏)인 교장이 별로 전래되지 않아 주로 그 교장의 판각에 치중하였다. 이는 간경도감 개판본들이 고려의 교장을 번각(飜刻)한 것과 새로 판서본(板書本)을 써서 새겨낸 것이 섞여 있음을 보아 알 수 있다.
다른 또 하나는 국역본 불경의 간행 및 반포이다. 숭유억불책을 써왔던 조선시대에 침체되어 가는 불교신앙을 부활시키기 위하여, 가장 기본이 되는 주요 경전을 알기 쉽게 한글로 번역, 간행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 국역본은 당대의 명필가를 총동원하여 모두 일정한 체재와 형식으로 독특하게 판서본을 써서 정각한 판본인 것이 그 특징이다.
특히, 1462년(세조 8) 『능엄경언해』 발간을 시작으로 1463년에 『법화경언해』, 1464년에 『금강경』·『심경』·『미타경』·『영가집』, 1465년에 『원각경』, 1467년에 『수심결』·『법어』·『몽산법어약록』 등의 경전을 국역, 간행하였다.
이 때 간경도감에서 간인(刊印)된 불경은 거의 대부분이 세조가 직접 중심이 되어 구결하고 번역한 것이며, 당시의 고승 신미·수미·홍준(弘濬) 등과 대신 윤사로(尹師路)·황수신(黃守身)·김수온(金守溫)·한계희(韓繼禧) 등 간경도감 도제조 및 제조들의 도움과 힘이 컸다. 간행된 불서 가운데 현재까지 밝혀진 것을 한자본 불경과 국역본 불경으로 나누어 열거하면 다음 [표 1]·[표 2]와 같다.
 
 
[표 1] 한자본 불경

연번/          서명                                                                                     /권수     /저자                     /간행연도    /비고

1 금강반야경소개현초(金剛般若經疏開玄鈔) 6 공철(公哲) 1461 본사
2 대반열반경의기원지(大般涅般經義記圓旨) 14 공공(鞏空) 1461 본사
3 대승아비달마집집논소(大乘阿毘達磨雜集論疏) 16 현범(玄範) 1461∼1462 낙질본
4 묘법연화경찬술(妙法蓮華經讚述) 2 혜정(慧淨) (?) 낙질본
5 정명경집해관중소(淨名經集解關中疏) 4 도액(道液) 1461∼1462 낙질본
6 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觀世音菩薩普門品三玄圓贊科文) 1 사효(思孝) 1461∼1462 낙질본
7 대반열경경소(大般涅槃經疏) 20 법보(法寶) 1461∼1462 낙질본
8 개사분율종기의경초(開四分律宗記義鏡鈔) 20 행만(行滿) (?) 낙질본
9 수능엄경의소주경(首楞嚴經義疏注經) 20 자선(子璿) (?) 낙질본
10 화엄경론(華嚴經論) 100 영변(靈辯) (?) 낙질본
11 원각예참약본(圓覺禮懺略本) 4 종밀(宗密) 1461∼1462 낙질본
12 사분율상집기(四分律詳集記) 14 징연(澄淵) 1461 상주·안동분사
13 능엄경계환해산보기(楞嚴經戒環解刪補記) 1 (?) 1461 본사
14 대승기신론필삭기(大乘起信論筆削記) 6 자선(子璿) 1462 전주분사
15 대방광불화엄경합론(大方廣佛華嚴經合論) 120 이통현(李通玄) 1462 전주분사
16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의석연밀초(大毘盧遮那成佛神變加持經義釋演蜜鈔) 10 각원(覺苑) 1462 본사
17 유가론소(瑜伽論疏) 40 지주(智周) 1462 안동분사
18 능엄경의소(楞嚴經義解) 30 함휘(咸輝) 1462 본사
19 오삼련약신학비용(五杉練若新學備用) 3 응지(應之) 1462 본사
20 진실주집(眞實珠集) 3 묘행(妙行) 1462 본사
21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2 실차난타(實叉難陀) 1462 본사
22 구사론송소초(俱舍論頌疏鈔) 8 상진(常眞) 1463 진주·상주분사
23 노산집(盧山集) 10 혜원(慧遠) 1463 본사
24 보리달마사행론(菩提達磨四行論) 1 달마(達磨) 1464 남원분사
25 선문삼가염송집(禪門三家拈頌集) 6 구암(龜庵) 1464 본사
26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3 종밀주해(宗密注解) 1464 본사
27 자애화상광록(慈愛和尙廣錄) 2 (?) 1466 본사
28 무주묘법연화경(無注妙法蓮華經) 7 구마라습(鳩摩羅什) 1467 본사
29 원종문류집해(圓宗文類集解) 22 의천(義天) 1468 개성분사
30 석문홍각범림한록(石門洪覺範林閒錄) 2 각범(覺範) 1468 상주분사
31 금강명경문구소록(金光明經文句疏) 3 지의(智顗) (?) 낙질본
 
 
[표 2] 국역본 불경
 
연번/          서명                                                         /권수  /        저자                                                            /간행연도 /비고
1 대불정수능엄경언해(大佛頂首楞嚴經諺解) 10 반자밀제역(般刺密帝譯), 계환해(戒環解) 1462 본사
2 묘법연화경언해(妙法蓮華經諺解) 7 구마라습역(鳩摩羅什譯), 계환해(戒環解), 일여집주(一如集注) 1463 본사
3 선종영가집언해(禪宗永嘉集諺解) 2 현각찬(玄覺撰), 연정정원수정(衍靖淨源修正), 세조구결(世祖口訣) 1464 본사
4 금강반야바라밀경언해(金剛般若波羅密經諺解) 2 구마라습역(鳩摩羅什譯), 혜능주해(慧能註解) 1464 본사
5 반야바라밀다심경언해(般若波羅密多心經諺解) 1 현장역(玄奬譯), 중희술(仲希述) 1464 본사
6 불설아미타경언해(佛說阿彌陀經諺解) 1 구마라습역(鳩摩羅什譯), 지의주석(智顗註釋), 세조역해(世祖譯解) 1464 본사
7 대방광원각수다라료료의경언해(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諺解) 10 종밀소초(宗密所抄), 세조구결(世祖口訣) 1465 본사
8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 1 지눌찬(知訥撰), 비현각결(丕顯閣訣), 신미역(信眉譯) 1467 본사
9 법어언해(法語諺解) 1 신미역(信眉譯) 1467 본사
10 몽산화상법어약록(蒙山和尙法語略錄) 1 신미역(信眉譯) 1467 본사
의의와 평가
 
오늘날의 시각에서 그 사업이 지니는 의의는, 첫째 귀중한 국어학 자료를 많이 생산하여 국어학사의 체계화에 크게 기여한 점에 있다. 특히, 국역본 불전은 훈민정음 창제 직후의 일이므로 오늘날 학계의 연구에 귀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은 물론, 한자본 불서를 국역한 세조의 문화사적 의의도 그 가치를 크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당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주요 불전의 국역본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널리 보급되어 사람들이 불교의 근본 이념과 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고, 얻어 보기 어려운 귀중한 장소자료(章疏資料)를 많이 생산, 전유시킴으로써 불학연구에 크게 기여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간경도감(刊經都監))]의의와 평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간경도감(刊經都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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