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 제목의 '나홍하상'은 나옹화상의 잘못임. 나홍하상> 나옹화상으로 바로잡습니다.

위 사진 제목은 '나옹화상의 법통'이 되겠습니다.

중국의 지공(북방)· 평산(강남) ㅡ나옹ㅡ무학ㅡ함허ㅡ신미대사(표음문자인 범어에 능통함, 한글창제)

 

훈민정음과 불교 : 33쪽>33天, 서문 한문54자, 언해문108자>108번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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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과 불교 : 33쪽>33天, 서문 한문54자, 언해문108자>108번뇌

https://kydong77.tistory.com/18120 나옹화상 歌頌: 완주가翫珠歌·백납가百衲歌·고루가枯髏歌/ 漢詩 Simon & Garfunkel - El Condor Pasa (철새는 날아가고) https://www.youtube.com/watch?v=WGBNUaAX19A 베네주엘라의 엔젤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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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지 '禪覺王師之碑'(새로 만듦)

 

https://kydong77.tistory.com/18370

 

이색, 나옹화상 탑명 (塔銘)/ 청산은 나를 보고, 청산별곡

https://www.youtube.com/watch?v=lXZAOStsPY0 https://kydong77.tistory.com/17179 고려가요 총목 및 작품 해설 이참에 무애 양주동 선생님이 향가 다음으로 힘을 기울였던 고려가요 경기체가 등에 대하여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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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명 (塔銘)
   
   전조열대부 정동행중서성좌우사랑 중문충보절동덕 찬화공신 중 대광한산군
   예문관대제학지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 지서연사 신이색 봉교찬
   前朝列大夫 征東行中書省左右司郞 中文忠報節同德 贊化空臣 重 大匡韓山君
   藝文官大提學知春秋官事*成均大司成知書硏事 臣 李穡 奉敎撰

   수충찬화공신 광정대부 정당문학예문관대제학 상호군제점서운관사 신권중화 봉교서병단전액
   輸忠贊化空臣 翠紛大夫 政堂文學藝文官大提學 上護軍提點書雲觀事 臣權仲和 奉敎書幷丹傳額

   현릉(玄陵) 20년(1370) 경술 9월 10일에 왕은 스님을 서울로 불러들이시고, 16일에는 스님이 머무시는 광명사(廣明寺)로 나아가셨다. 양종오교(兩宗五敎)의 제방 납자들을 많이 모아 그들의 공부를 시험하고, 그것을 공부선(功夫選)이라 하여 임금이 친히 나가 보셨다.
  
   스님은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고금의 격식[臼] 을 모두 부수고 범성(凡聖)의 자취를 다 쓸어버리며, 납자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중생의 의심을 떨어버린다. 잡았다 놨다 함이 손안에 있고 신통 변화는 작용[機] 에 있으니, 3세 부처님이나 역대 조사님네나 그 규범은 같도다. 이 법회에 있는 여러 스님네는 사실 그대로 대답하시오."
  
   그리하여 차례로 들어와 대답하게 하였는데, 모두 몸을 구부리고 땀을 흘리면서 모른다고 하였다. 어떤 이는 이치는 알았으나 일에 걸리기도 하고, 혹은 너무 경솔하여 실언하기도 하며, 한마디 하고는 물러가기도 하였으므로 임금은 매우 불쾌한 빛을 보이는 것 같았다. 끝으로 환암 혼수(幻庵混修) 스님이 오자 스님은 3구(三句) 와 3관(三關)을 차례로 묻고, 법회를 마치고는 회암사(檜岩寺)로 돌아가셨다.
  
   신해년(1371) 8월 26일에 임금은 공부상서 장자온(工部尙書 張子溫)을 보내 편지와 도장과 법복과 바루를 내리시고는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로 봉(封)하시고, 동방 제일 도량인 송광사(松廣寺)에 계시라고 명하셨다.
  
   임자년(1372) 가을에 스님은 우연히 지공스님이 예언하신 삼산양수(三山兩水)를 생각하고 회암사로 옮기려 하였는데, 마침 임금의 부름을 받고 회암사 법회에 나아갔다가 임금께 청하여 거기 있게 되었다. 스님은 "돌아가신 스승 지공스님이 일찍이 이 절을 중수하셨는데, 전란에 탔으니 어찌 그 뜻을 이어받지 않으랴" 하고는 대중과 의논하여 전각과 집들을 더 넓혔다. 공사를 마치고 병진년(1376) 4월에 낙성식을 크게 열었다.
   대평(臺評)의 생각에 회암사는 서울과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으므로 혹 생업에 폐가 될까 염려되어 왕래를 금하였다. 그리하여 영원사(瑩源寺:경남 밀양에 있음)로 옮기라는 임금의 명령이 있었고, 빨리 출발하라는 재촉이 있었다. 스님은 마침 병중에 있었으므로 가마를 타고 절 입구의 남쪽에 있는 못가로 나갔다가 스스로 가마꾼을 시켜 열반문으로 나왔다. 대중이 모두 의아하게 여겨 소리내어 우니 스님은 대중을 돌아보고 말씀하셨다.
  
   "부디 힘쓰고 힘쓰시오. 나 때문에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지 마시오. 내 걸음은 여흥(瘻興)에 가서 멈출 것이오."
   한강에 이르러 호송관 탁첨에게 말씀하셨다.
   "내 병이 심하오. 배를 빌려 타고 갑시다."
   그리하여 물길을 따라간 지 7일 만에 여흥에 이르렀다. 거기서 또 탁첨에게 말씀하셨다.
   "조금 쉬었다가 병세가 좀 나아지면 가고 싶소."
   탁첨은 기꺼이 그 말을 따라 신륵사(神勒寺) 에 머물렀다. 5월 15일에 탁첨은 또 빨리 가자고 독촉하였다.
   스승은 입을 열었다.
   "그것은 어렵지 않소. 나는 아주 갈 것이오."
   그리고는 그날 진시(辰時)에 고요히 돌아가셨다.
  
   그 고을 사람들은 오색 구름이 산꼭대기를 덮는 것을 보았고, 화장하고 뼈를 씻을 때에는 구름도 없이 사방 수백 보에 비가 내렸다. 사리 150개가 나오니 거기에 기도하고 558개로 나누었다. 사부대중이 재 속에서 그것을 찾아 감추어 둔 것만도 부지며, 신령한 광채가 나다가 3일 만에야 그쳤다.
   석달여(繹達如)는 꿈에 화장하는 자리 밑에 용이 서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말과 같았다. 초상 배가 회암사로 돌아올 때에는 비도 오지 않았는데, 물이 넘쳐흘렀다. 사람들은 그것이 여룡(瘻龍) 의 도움이라 하였다.
   8월 15일에 회암사 북쪽 언덕에 부도를 세우고 정골사리(頂骨舍利)는 신륵사에 두었다. 화장을 하고 석종(石鍾)으로 덮은 것은 감히 잘못되는 일이 있을까 하여 경계한 것이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선각(禪覺)이라 시호를 내리고, 신 색에게는 글을 지으라 명하고, 신 중화에게는 단전액을 쓰게 하였다.
   신이 삼가 생각을 더듬어보니, 스님의 휘(諱)는 혜근(惠勤)이요, 호는 나옹(懶翁)이며, 본래 이름은 원혜(元惠)이다. 향년(享年) 57세, 법랍(法瀘)은 38세이며, 영해부(寧海府) 사람으로 속성은 아(牙) 씨다. 아버지의 휘는 서구(瑞具)로서 선관령(膳官令)을 지냈고, 어머니 정(鄭) 씨는 영산군(靈山郡) 사람이다.
   정씨는 꿈에 황금빛 새매가 날아와 머리를 쪼으며 갑자기 오색빛이 찬란한 알을 떨어뜨려 품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기를 가져 연우(延祐)  경신년(1320) 1월 15일에 스님을 낳았다. 스님은 스무 살에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어른들에게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는데 모두들 모른다 하였다. 매우 슬픈 심정으로 공덕산(功德山)에 들어가 요연(了然)스님께 귀의하여 머리를 깎았다. 요연스님은 물었다.
  
   "그대는 무엇하러 출가했는가?"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지금 여기 온 그대는 어떤 물건인가?"
   "말할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이것이 이렇게 왔으나 다만 수행하는 법을 모릅니다."
   "나도 그대와 같아서 아직 모른다. 다른 스승을 찾아가서 물어 보라."
  
   지정(至正)  갑신년(1344)에 회암사로 가서 밤낮으로 혼자 앉았다가 갑자기 깨치고는, 중국으로 가서 스승을 찾으리라 결심하였다.
   무자년(1348) 3월에 연도(燕都)에 들어가 지공스님을 뵙고 문답하여 계합한 바 있었다. 10년(1350) 경인 1월에 지공스님은 대중을 모으고 법어를 내렸으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스님이 대중 속에서 나와 몇 마디하고 세 번 절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지공스님은 서천(西天)의 108대 조사다.
  
   그 해 봄에 남쪽 강제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가을 8월에는 평산(平山) 스님을 찾아뵈었다. 평산스님은 물었다.
  
   "일찍이 어떤 사람을 보았는가?"
   "서천의 지공스님을 보았는데, 그 분은 날마다 천검(千劍)을 썼습니다."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그대의 일검(一劍)을 가져 오라."
   스님은 좌복으로 평산스님을 밀쳤다. 평산스님은 선상에 쓰러지면서 "이 도둑놈이 나를 죽인다!" 하고 크게 외쳤다.
   스님은 "내 검(劍)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하고 붙들어 일으켰다. 평산스님은 설암(雪艤)스님이 전한 급암(及艤)스님의 가사와 불자를 전해 신표를 삼았다.
  
   신묘년(1351) 봄에 보타락가산(寶陀洛迦山)으로 가서 관음보살께 예배하고 임진년(1352)에 복룡산(伏龍山)으로 가서 천암(千巖)스님을 뵈었다. 천암스님은 마침 스님네들을 천여 명 모아놓고 입실(入室) 할 사람을 뽑고 있었다. 천암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스님이 대답하자 천암스님이 다시 물었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어디서 왔는가?"
   "오늘은 4월 2일입니다."
   그러자 천암스님은 입실을 허락하였다.
  
   그 해에 북방으로 돌아와 다시 지공스님을 뵈오니 지공스님은 법의와 불자와 범서(梵書)를 주었다. 그리하여 스님은 연대(燕代)의 산천을 돌아다니는 말쑥하고 한가한 도인이 되었다.
   스님의 명성이 궁중에 들어가 을미년(1355) 가을에 황제의 명을 받들어 대도(大都)의 광제사(廣濟寺) 에 머물렀고, 丙申년(1356) 10월 15일에는 개당법회를 열었다. 황제는 원사 야선첩목아(院使 也先帖木兒)를 보내 금란가사와 비단을 내리시고, 황태자는 금란가사와 상아불자(象牙拂子)를 가지고 참석하였다. 스님은 가사를 받아 들고 대중에게 물었다.
  
   "맑고 텅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찬란한 이것은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은 천천히 말씀하셨다.
   "구중 궁궐의 금구(金口)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가사를 입고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하고 나서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가로 잡고 두어 마디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무술년(1358) 봄에 지공스님에게 수기(授記)를 얻고 귀국해서는 다니거나 머무르거나 인연 따라 설법하다가, 경자년(1360)에는 오대산에 들어가 살으셨다.
   신축년(1361) 겨울에 임금님은 내첨사 방절(方節)을 보내 서울에 맞아들여 마음의 요체에 대한 법문을 청하고 만수가사(滿繡袈裟) 와 수정불자(水精拂子)를 내리셨다. 공주(公主)는 마노불자를 올리고, 태후는 친히 보시를 베풀고 신광사(神光寺)에 계시기를 청하였으나 사양하자 임금이 "나도 불법에서 물러가겠다" 하시므로 부득이 부임하셨다.
   11월에 홍건적이 서울 근방(京幾)을 짓밟았으므로 도성 사람들이 모두 남쪽으로 옮겼다. 스님네들이 두려워하여 스님에게 피란하기를 청하자 스님은, "명(命)이 있으면 살겠거늘 도적인들 어찌하겠는가" 하셨다. 그러나 며칠을 두고 더욱 졸라대었다. 그날 밤 꿈에, 얼굴에 검은 글이 쓰여진 신인(神人) 하나가 의관을 갖추고 절하며, "대중이 흩어지면 도적은 반드시 이 절을 없앨 것이니, 스님은 뜻을 굳게 가지십시오" 하였다. 이튿날 토지신(土地神)을 모신 곳에 가서 그 용모를 보았더니 꿈에 본 그 얼굴이었다. 도적은 과연 오지 않았다.
  
   계묘년(1363) 에 구월산(九月山)에 들어갔더니 임금은 내시 김중손(金仲孫) 을 보내 돌아오기를 청하였다.
   을사년(1365)  3월에 대궐에 들어가 물러가기를 청하여 비로소 숙원(宿願)을 이룬 뒤에는, 용문(龍門) ·원적(元寂) 등 여러 산에서 노닐다가 병오년(1366)에는 금강산에 들어갔고, 정미년(1367) 가을에는 청평사(淸平寺)에 머물렀다. 그 해 겨울에는 예보암(猊¿岩)이 지공스님의 가사와 친필을 스님에게 주면서 치명(治命:죽을 무렵에 맑은 정신으로 하는 유언) 이라 하였다.
   기유년(1369)에 다시 오대산에 들어갔다. 경술년(1370) 봄에는 사도 달예(司徒 達睿)가 지공스님의 영골(靈骨)을 받들고 와서 회암사에 두니 스님은 그 영골에 예배하였다. 그리고 곧 임금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 광명사(廣明寺)에서 여름을 지내고 가을에 회암사로 돌아왔으니, 그것은 9월에 공부선(工夫選)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이 거처하는 방을 강월헌(江月軒)이라 하였다. 평생에 세속의 문자를 익히지는 않았으나, 제영(題詠)을 청하는 이가 있으면 붓을 들어 그 자리에서 써주었는데 혹 경전의 뜻이 아니더라도 이치가 심원하였다.
   만년에는 장난삼아 산수화 그리기를 좋아하여 권도(權道)의 시달림을 받았으니, 아아, 도를 통하면 으레 재능도 많아지는가 보다.

 

 이색은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비명을 짓는다.

* 이색[  ] 호는 목은(). 포은()정몽주(鄭夢周), 야은()길재(吉再)와 함께 삼은()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찬성사이곡()이며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다. 

    展也禪覺  惟麟之角    

    王者之師  人天眼目

    진실로 선을 깨친 이시며〔禪覺]
    기린의 뿔이로다  * '코뿔소의 외뿔'의 표현인 듯. 기린은 두 뿔이니까.
    임금의 스승이요
    인천(人天)의 눈이로다. *人天 - 인간세계와 천상세계

    萬衲宗之  如水赴壑
    而鮮克知  所立之卓

    뭇 승려들 우러러보기를
    물이 골짜기로 달리는 듯하나
    선 바가 우뚝하여
    아는 이가 드물다

    隼夢赫靈  在厥初生
    龍神護喪  終然允藏

    신령한 새매 꿈이
    처음 태어날 때 있었고
    용신 (龍神) 이 초상을 호위함하여
    마지막 죽음을 빛냈도다


    矧曰舍利  表其靈異
    江之闊矣  皎皎明月

    하물며 사리라는 것이
    스님의 신령함을 나타냈나니 
    강은 넓게 트였는데
    달은 밝고 밟았도다

    空耶色耶  上下洞徹
    哉高風終  終古不滅

    공(空)인가 색(色)인가
    위아래가 훤히 트였나니
    아득하여라, 높은 모습이여
    깊이 멸하지 않으리라.

 [참고] 만해 한룡운 선생의 제자이신 춘성[] 스님은 사리 같은 나의 자취를 남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만상은 소멸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니까요. 부처님의 다비식에서 여러 나라의 왕들이 나눠 가져간 것은 덜 태운 부처님의 뼈조각이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사리탑이 생겼고, 불상이 조성된 것은 서력 기원 이후입니다.

於是世尊即說偈言。

어시세존즉설게언。그리고는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常者皆盡  高者必墮   合會有離  生者有死  

 상자개진 고자필타 합회유리 생자유사

  항상할 것 같아도 모두 다 없어지고  

   높은 데 있는 것도 반드시 떨어지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고  

   태어난 것은 언젠가는 죽느니라.

      <법구비유경> 제1 무상품 中에서

   7년 6월 어느 날 비를 세우다

   비는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 회암사(京畿道 楊州郡 檜泉面 檜岩里 檜岩寺)에 있다. 고려의 폐왕(廢王)인 우왕  정사년 (1377)에 세우다. 비의 높이는 5척, 너비는 3척 2촌, 글자의 지름은 7푼, 예서제액자(隷書題額字)의 지름은 3촌 3푼. 전서로 음기(陰記)한 것이 닳아 없어져 읽을 수 없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8118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나옹선사 생애

https://www.youtube.com/watch?v=A90UkmB9mlM 

 

 

나옹선사, 自讚(자찬)外 漢詩 모음/三歌:

완주가翫珠歌·고루가枯髏歌·백납가百衲歌

https://kydong77.tistory.com/21567

 

나옹선사, 自讚(자찬)外 漢詩 모음/三歌, 완주歌·고루歌·백납歌

완주가翫珠歌·고루가枯髏歌·백납가百衲歌 위 사진 제목의 '나홍'은 나옹화상의 잘못임. 나홍하상> 나옹화상으로 바로잡습니다. 중국의 지공(강북)· 평산(강남) ㅡ나옹- 무학- 함허 - 신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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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어> 한자어 음역> 한국어 음역

https://www.youtube.com/watch?v=Btaj7tlKyoY 

동영상 글씨 바로잡음

산스크리트어> 한자어> 한국어 음사

https://www.youtube.com/watch?v=0ntn3Q28BD4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 가, 깨달음에 뿌리를 내리자.)


*위 주문(呪文)의 산스크리트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토말 :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 스와하 <=== 억양을 부드럽게 했을 때

 

(산스크리트어 한역)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한자 한국어 음역)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한국말 :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영   어 :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해   석 : 
Gate Gate          가라. 가라. 
paragate            피안으로 건너가라.
parasamgate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가라. 
bodhi svaha      깨달음에 뿌리를 내려라.

가라. 가라. 
피안으로 건너가라.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가라. 
깨달음에 뿌리를 내려라.

 

산스크리트어> 한자어 음역> 한국어 음역
 
https://www.youtube.com/watch?v=0ntn3Q28BD4

 

[산스크리트어 해석]

 
아제 아제  바라아제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

바라승아제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 가,

모지 사바하

깨달음의 뿌리를 내려 주소서.)

*모지>보리. '깨달음'의 뜻.

* 사바하’는 기도를 마칠 때,  기도의 내용을 성취케 해 주소서 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원만하게 성취하다’라는 뜻으로 진언의 끝에 상용함.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소서라는 성취의 뜻을 담고 있음.

 

*보리(깨달음)란? > 4성제, 8정도

인생이란? > 4성제 > 니르바나(nirvāṇa, 열반)

 

어떻게 살 것인가? > 8정도



*위 주문(呪文)의 산스크리트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토말(산스크리트어 or 범어)
 :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 스와하 <=== 억양을 부드럽게 했을 때

 

[세종이 유언한 신미대사의 시호]

信眉, 禪敎宗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礙 慧覺尊者

신미, 선교종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리세 원융무애 혜각존자

 

* 密傳正法 - 범어[산스크리트어]를 통해 붓다의 가르침을 바로 접근할 수 있게 함.

* "悲智雙運"- '悲智'는 '자비'와 '지혜'의 의미임.

*'祐國利世' - 표음문자인 한글 창제를 선도함.

*한글창제로 민중들도 붓다의 말씀을 직접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세종이 지은 시호를 종합해 보면, 범어에 능통한 信眉는 '祐國利世'한 한국의 붓다였다.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6443 

 

9. 복천암과 신미 스님 - 법보신문

1446년(세종 28) 반포된 한글은 조선의 극심한 불교탄압 속에서 탄생됐다. 한글 창제는 세종(1397~1450)과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한

www.beopbo.com

당시 세종은 어려운 한자와 달리 백성들이 쓰고 읽기 쉬운 문자를 만들고자 오랫동안 노력했다. 하지만 실마리를 찾지 못해 난감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소리글자인 범어를 비롯한 범어와 티베트어에도 능통한 신미 스님을 알게 된다.

불교신자였던 세종은 산중에 머무르는 신미 스님을 궁궐로 불러 담소를 나눴다. 그리고 스님에 크게 감동했다. 스님의 말은 이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고 백성에 대한 애틋함은 어느 충신 못지않았다. 백성들이 누구나 글을 읽고 쓰기를 바랐던 세종은 “백성에게 널리 퍼진 불경을 우리글로 옮겨 배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며 신미 스님에게 한글 창제에 힘을 보태달라고 청한다.
신미 스님으로서도 반가운 청이었다. 불교가 전래된 지 1000년이 넘었지만 백성들은 미신과 기복에 머무르고 있었다. 한문을 익히지 못하면 부처님 가르침을 직접 읽는 일이 불가능했던 탓이다. 때문에 불경 언해는 불교를 신앙적인 측면뿐 아니라 사상적으로 민간에 깊이 뿌리내리는 일이었다. 신미 스님에게 번역은 백성들의 눈을 뜨게 하는 일이자 강력한 불교 대중화 운동이었다.

신미 스님은 속리산 복천암 등에 머무르며 4년에 걸쳐 모음·자음 소리글을 범어에서 참고해 28자를 기본으로 한글을 편찬하는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사제지간인 신미스님(우측)과 학조스님의 부도.

https://www.youtube.com/watch?v=zKM3Dtz2xeg 

 

https://www.youtube.com/watch?v=IQegkLMeb3Q 

 

 

https://www.youtube.com/watch?v=IocCm6DqYsE&t=11s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47258 

 

세종대왕은 왜 불교경전을 한글번역 했을까 - 불교신문

훈민정음, 그리고 불경언해김무봉 지음/ 역락한글 창제 후 국가 주도로총 30여 종 언해본 발행그 중 80%가 불교 경전반야심경 금강경 능엄경 등언해로 불교 대중화 노력역대 국왕 가운데 가장 위

www.ibulgyo.com

경전 언해는 1447년 석보상절을 시작으로 월인석보, 금강경, 반야심경, 능엄경20여 종에 걸쳐 진행됐다.
“1446년 한글이 창제되고 1447년 언해본 발행이 시작됐는데, 총 30종 가운데 21종이 불교 경전 언해였습니다. 경전 이외의 서적은 용비어천가와 의학서적이었고, 분량으로 볼 때 80%에 육박하는 자료가 경전이었습니다. 초기 언해본은 우리 글자가 어떻게 정착되고 대중에게 확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26_0020_0020_0060_0030 

 

우리역사넷

(3) 간경도감의 불경언해  세종 6년(1460) 6월에 설치된 刊經都監은 정음 창제 이후에 이 문자로 책을 간행한 가장 큰 기관이었으니 정음의 초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contents.history.go.kr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중요한 책들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楞嚴經諺解≫10권(세조 7년;1462) ≪妙法華經諺解≫7권(세조 8년) ≪金剛經諺解≫1권(세조 9년) ≪佛說阿彌陀經諺解≫1권(세조 9년) ≪禪宗永嘉集諺解≫2권(세조 9년) ≪般若心經諺解≫1권(세조 9년) ≪圓覺經諺解≫12권(세조 10년) ≪牧牛子修心訣諺解≫1권(세조 13년)

 

https://ko.wikipedia.org/wiki/%EC%84%9D%EB%B3%B4%EC%83%81%EC%A0%88

 

석보상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석보상절》(釋譜詳節)은 1447년(세종 29년)에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주요설법을 뽑아 한글로 편역한 서적이다. 불교서적중에 한글로 번역, 편찬된 최초의 책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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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釋譜詳節)은 1447년(세종 29년)에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주요설법을 뽑아 한글로 편역한 서적이다. 불교서적중에 한글로 번역, 편찬된 최초의 책으로[1] 소헌왕후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수양대군이 세종의 명을 받아 만들었다. ‘석보’(釋譜)는 석가모니의 전기(傳記)를 의미하고, ‘상절'(’詳節)은 중요로운 내용은 자세히(詳) 쓰고, 그렇지 않은 내용은 줄여서(節) 쓴다는 뜻이다.[1] 금속 활자에 의한 15세기 한글 산문 자료로서 한국 어학, 한국 문학, 한국 서지학, 한국 불교학에서 귀중한 자료 중의 하나이다.

 

https://kydong77.tistory.com/21576

 

한말연구회,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

https://ko.wikipedia.org/wiki/%EC%84%9D%EB%B3%B4%EC%83%81%EC%A0%88 석보상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석보상절》(釋譜詳節)은 1447년(세종 29년)에 석가모니의..

kydong77.tistory.com

 

 

https://www.youtube.com/watch?v=tbcjsQX-DAY 

 

 

 

https://www.youtube.com/watch?v=MFtPKDkynJI 

 

* 다라니(陀羅尼)란 주술적인 기도문, 곧 呪文(주문, 기도문)을 뜻한다.

千手經, 千手千眼觀自在菩薩廣大圓滿無崖大悲心大陀羅尼經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경

千手經의 정식명칭은위의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

https://namu.wiki/w/%EC%B2%9C%EC%88%98%EA%B2%BD

 

천수경 - 나무위키

디스코 버전으로도 나왔다.(성우스님 가창) 실제로 이런 시도 자체는 드물지만 있긴 했었다. 힙합 반야심경(안치행), 반야심경 랩(Midas X), 반야심경 리믹스 등등 보통 불교계에서도 긍정적으로

namu.wiki

밀교적 성격이 강한 불경이다.

정식명칭은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이다.

이름이 엄청 긴데 끊어서 보자면,

천수천안[1], 관자재보살[2], 광대원만[3], 무애대비심[4], 대다라니경[5]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한량 없는 손과 눈을 가지신 관세음보살이 넓고 크고 걸림없는 대자비심을 간직한 큰 다라니에 관해 설법한 말씀'이라는 뜻이다.

《천수다라니》라고도 한다.

'예불천수경'은 예불문과 천수경, 반야심경을 모두 포함하여 말하는 것이다.

당나라 때 가범달마(伽梵達磨)가 번역한 <천수천안대비심다라니>가 천수경의 원형이다.

또 다른 번역본으로는 당나라 지통(智通)의 《천안천비관세음보살 다라니신주경》과 보리류지(菩提流支)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 모다라니신경》이 있다.

한국 불교계에서 사용하는 '천수경'은 가범달마의 <천수천안대비심다라니>를 이리저리 편집하고 가감한, 한국 불교계의 독자적인 판본이다.

천수경은 여러 진언과 다라니, 찬가를 합한 텍스트인데, 이중 핵심은 신묘장구대다라니이다.

이 다라니의 다른 호칭이 바로 <천수천안대비심다라니>인데, 여기서 이름을 따서 '천수경'이라 하였다.

제목 자체가 '이 책의 핵심은 신묘장구대다라니예요' 하고 말해주는 셈이다.

원래 천수경은 신묘장구대다라니뿐이었는데,

후대의 한국 불교에서 옴 마니 반메 훔 같은 좋다는 진언이나 찬가를 합친 것이다.

과거에는 어떤 진언을 합칠지 서로 의견이 달라서 절에 따라 천수경의 구체적인 내용이 조금씩 달랐다.

현재의 천수경은 현대에 와서 본문을 통일한 것이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인도에서 시바 신비슈누 신을 불교로 수용할 때 쓰였다는 주장이 있다

 

*힌두교 主神 

트리무르티(삼주신)는 일반적인 나열 순서인 창조자 · 유지자 · 파괴자(변형자) 순으로 나열되어 있으며, 나머지 신들은 중요도에 관계 없이 가나다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https://kydong77.tistory.com/11384

 

천수경해석 10.신묘장구대다라니경 직역

https://www.youtube.com/watch?v=MFtPKDkynJI 산스크리트를 한문번역을 거쳐 오랜 기간 동안 한글로 독송하다 보니 독음에도 많은 오류가 생겼고 인터넷에 떠도는 번역들도 상당한 차이가 있어 김영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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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범어)한문번역을 거쳐 오랜 기간 동안 범어를 한글음독으로 독송하다 보니 독음에도 많은 오류가 생겼고

인터넷에 떠도는 번역들도 상당한 차이가 있어 김영덕 교수 번역본이라 밝힌 것을 중심으로 옮겨 본다.

 

신묘장구대다라니경

神妙章句大陀羅尼經

(1)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삼보께 귀의하옵니다.’

(2)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성(聖) 관자재보살님께 귀의하옵니다.'

(3)

모지사다바야 마하 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큰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자비의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4)

옴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아, 일체의 두려움에서 우리를 구제해 주시니'

(5)

다사명 나막 가리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나막 가리다바

'그런 까닭에 어질고 성스러운 관자재보살님께 귀의하고 또한 찬탄합니다.'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합니다.’

(6)

니라간타 나막 하리나야 마발다 이사미

‘푸른 목을 가진 관자재보살님의 마음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

[참고]파괴의 신인 '시바'는 중생을 위해 독물을 모두 마셔 목이 푸르게 변함.

         한자어로 고치면 ‘푸른 목의 성자’는 청경성자(靑頸聖者)임.

         천수경은 힌두교의 세 분 주신을 불교의 신으로 변신시키던 시기에 형성된 불교 경전임.

(7)

살발타 사다남 수반 아예여 살바 보다남

바바말아 미수다감 다냐타

'모든 목적을 성취하신 최상의 훌륭한 존재이시여!

모든 존재의 삶의 길을 청정하게 하시는 그런 삶을 살겠습니다.'

(8)

옴 아로계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혜혜하례

'아 광명보살이시여, 광명의 지혜의 보살이시여,

세간을 초월하신 보살이시여, 저 피안(彼岸)으로 우리를 실어 나르소서!

(9)

마하모지 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저희들이 마음의 진언을 기억하게 하소서!

깨달음에 이르는 마음의 진언을 우리가 가슴에 새기게 하소서. 새기게 하소서!'

(10)

구로구로 갈마 사다야

'진언을 염송하는 행위를 성취하게 하소서. 성취하게 하소서!’

(11)

도로도로 미연제 마하미연제

'진언을 염송하여 모든 것을 크게 성취한 분이시여!'

(12)

다라다라 다리나례 자라자라

보호하고 지켜주소서. 번개를 지닌 절대자여! 저희들을 지켜주소서!

(13)

마라 미마라 아마라 몰제

예혜혜

'더러움이 없고 티없이 깨끗한 원만한 보살이시여!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인 이 땅에 내려오소서!'

(14)

로계 새바라 라아 미사미 나사야

'세상의 주인이시여, 탐욕의 독을 소멸하게 하소서!'

(15)

나베 사미사미 나사야

'소멸하게 하소서, 성냄의 독을 소멸하게 하소서!'

(16)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

'어리석음의 독을 소멸하게 하소서!’

(17)

호로호로 마라호로

'아! 보살님이시여, 아아 찬탄하며 그 마음을 되새깁니다.'

(18)

하례 바나마 나바

연꽃의 마음을 간직한 보살님이시여,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시냇물이 흐르듯이

그렇게 흘러 작은 강물이 흐르듯이

그렇게 흘러 큰 강물이 흐르듯이

못쟈못쟈 모다야 모다야

그렇게 흘러 어서 빨리 깨닫게 하소서!

*[진언 유머]

잠이 안 오는 건 '못쟈못쟈 모다야 모다야를 밤새 외기 때문이니

그 윗구인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를 외시지요.

(19)

매다리야 니라간타

가마사 날사남 바라 하라나야 마낙 사바하

'자비심이 깊으신 푸른 목을 가진 관음보살님이시여!

욕망을 부수어 버린 <쁘라흐라다(prahlāda)(神)>의 마음의 원만성취에 자비광명이 충만하시기를!'

(20)

싯다야 사바하

‘성취한 분께 자비광명이 충만하시기를!

(21)

마하싯다야 사바하

‘크게 성취하신 분께 자비광명이 충만하시기를!’

(22)

싯다 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요가를 성취하신 관자재보살님께 자비광명이 충만하시기를!

(23)

니라간타야 사바하

‘청경(靑頸)관음보살님께 자비광명이 충만하시기를!

(24)

바라하 목카 싱하 목카야 사바하

‘산돼지와 사자얼굴을 한 관세음보살님께 자비광명이 충만하시기를!’

(25)

바나마 하따야 사바하

‘연꽃을 손에 잡으신 관세음보살님께 자비광명이 충만하시기를!’

(26)

자가라 욕다야 사바하

큰 바퀴를 지닌 관세음보살님께 자비광명이 충만하시기를!

(27)

상카 섭나네 모다나야 사바하

‘법소라 나팔소리로 깨어난 관세음보살님께 자비광명이 충만하시기를!’

(28)

마하라 구타다라야 사바하

‘큰 곤봉을 드신 관세음보살님께 자비광명이 충만하시기를!’

(29)

바마사간타 니사 시체다 가릿나이나야 사바하

왼쪽의 공격자 쪽에 있는 <흑색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먀가라 잘마 이바 사나야 사바하

‘호랑이 가죽 위에 머물러 있는 관세음보살님께 자비광명이 충만하시기를!’

(31)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옴 씨드흐얀뚜 만뜨라 빠다야 쓰와하]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옴 씨드흐얀뚜 만뜨라 빠다야 쓰와하]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옴 씨드흐얀뚜 만뜨라 빠다야 쓰와하]

‘삼보께 귀의하여 받드옵니다.

성스러운 관자재보살님께 귀의하옵니다. ’

[이 모든 신묘한 주문이 원만히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루어 주시옵소서! ]

서두 (1) (2)의 문장과 일치합니다.

삼보:부처님[佛], 부처님의 가르침[法], 스님들과 사부대중[僧].

 

아래 구절이 덧붙여진 경전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위 꺾음쇠 부분도 함께 독송됩니다.

[옴 씨드흐얀뚜 만뜨라 빠다야 쓰와하]

이 모든 신묘한 주문이 원만히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루어 주시옵소서!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khd9345&logNo=221284328429 

 

[신묘장구대다라니] 우리말 해설

1. 神妙章句大陀羅尼(신묘장구대다라니) 해설 * 천수경(千手經)에 나오는 긴 주문. 관세음보살과 삼보(三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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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스님의 신묘장구대다라니 우리말 해석

산스크리트어[범어] 독경에 우리말 번역을 추가함

www.youtube.com/watch?v=fPd3hEKO0Mc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0758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신묘장구대다라니/ 本文과 번역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1DGS9DyzCs 아제아제(揭諦揭諦) : 가자 가자. 바라아제(波羅揭諦) : 피안으로 가자. 바라승아제(波羅僧揭諦) : 피안으로 완전히 가자. 모지(菩提) : 깨달음에 사바하(娑婆訶).

kydong77.tistory.com

 

 

 

 

ko.wikipedia.org/wiki/%ED%9E%8C%EB%91%90%EA%B5%90%EC%9D%98_%EC%8B%A0

 

힌두교의 신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천신은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천신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힌두교의 경전은 힌두교의 신인 천계의 존재들을 천신(天神, 영어: De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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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의 경전은 힌두교의 신인 천계의 존재들을 천신(天神영어: Devas, "빛나는 존재"란 뜻)이라고 표현한다. 영어로는 "Celestial deities (천계의 신들)"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산스크리트어 데바(देव)를 음차한 표기인 "Deva (데바)"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데바는 수라(Sura)라고도 하는데, 데바 또는 수라는 우주의 궁극적 원리인 브라만의 현현들로서의 힌두교의 신들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힌두교의 남신들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경우 힌두교의 여신들은 데비(Devi)라고 부른다. 데바와 데비는 무시무시한 신들도 있지만 선신(善神)으로 여겨지며, 힌두교의 악신(惡神)은 총칭하여 아수라(Asura)라고 한다. 아수라는 수라(Sura)에 "아니다"라는 의미의 아(a)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낱말이다.

힌두교의 신은 불교에 수용되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래되었고 천신(天神)의 의미로서의 (天)으로 한역(漢譯)되었다. 예를 들어 브라흐마는 범천(梵天)으로 알려져 있다.

힌두교의 신은 브라흐마 · 비슈누 · 시바의 트리무르티(삼주신)와 트리무르티의 배우자인 사라스바티 · 락슈미 · 파르바티의 트리데비와 그외의 여러 남신 · 여신들로 이루어져 있다. 《베다》와 《푸라나》는 힌두교의 주요 경전으로 신들의 기원이 실려있다. 트리무르티에 대해서는 인도의 대 서사시인 《마하바라타》("위대한 바라타족 이야기"란 뜻)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의 본뜻은

'길상존이시여 길상존이시여 지극한 길상존이시여 원만, 성취하소서'가 된다.

이것을 세 번 연거푸 외우는 것으로 입으로 짓는 모든 업을 깨끗하게 씻어 낼 수 있다고 한다.

수리 수리 - 길상존이시여, 길상존이시여 

마하 수리 - 위대한 길상존이시여 

수수리 - 지극한 길상존이시여

사바하 - 원만, 성취하게 하소서

*  '사바하'(娑婆訶, 산스크리트어: स्वाहा 스바하)는 범어(梵語, 산스크리트어)란, 불교에서 진언 주문의 마지막에 붙이며, 어떠한 주문을 외운 다음에 '원만하게 이루어 주소서'라는 의미임. 기독교의 '아멘'에 해당함.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0758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https://www.youtube.com/watch?v=q50ALBCqXQI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1384

 

천수경해석 10.신묘장구대다라니경 직역

https://www.youtube.com/watch?v=MFtPKDkynJI 산스크리트를 한문번역을 거쳐 오랜 기간 동안 한글로 독송하다 보니 독음에도 많은 오류가 생겼고 인터넷에 떠도는 번역들도 상당한 차이가 있어 김영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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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묘장구대다라니 본문

 1.귀의문(歸依文)


나모 라다나-다라야야
Namo ratna-trayāya
(나모 라뜨나 뜨라야-야)
삼보[10]께 귀의합니다

나막 알약바로기제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니가야
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 bodhisattvāya mahāsattvāya mahākāruṇikāya,
(나마하 아-르야-왈로끼떼 쓰와라-야 보디쌑뜨와-야 마하-쌑뜨와-야 마하- 까-루니까-야)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 마하살님께 귀의합니다

옴 살바-바예수 다라나-가라야 다사명
Oṁ sarva-bhayeṣu trāṇa-karāya tasmai
(옴 싸르와 브하예쑤 뜨라-나 까라-야 따쓰마이)
옴, 모든 공포에서 구제해 주시는 까닭에

나막 까리다바 이맘 알야바로기제새바라-다바
namas kṛtvā imam āryāvalokiteśvara-stavaṁ
(나마쓰 끄리뜨와- 이맘 아-르야-왈로끼떼쓰와라 쓰따왐)
어지신 관음보살님께 귀의하여 (이로 말미암아) 거룩하신 위신력이 펼쳐지도다

니라간타-나막 하리나야마 발다이사미
Nīlakaṇṭha-nāma hṛdayaṁ vartayiṣyāmi
(닐-라깐타 나-마 흐리다얌 와르따 이쓰야-미)
푸른 목을 가진 분[11]의 본심으로 귀의하옵니다.

 2.발원문‧ I (前提部)

 
살발타-사다남 수반 아예염
sarvārtha-sādhanaṁ śubhaṁ ajeyaṁ
(싸르와-타 싸-드하남 슈브함 아제얌)
중생을 구제하는 경지에 도달하여 최상의 길상을 얻어

살바-보다남 바바-마라-미수다감
sarva-bhūtānāṁ bhava-mārga-viśodhakam
(싸르와 브후-따-남- 브하와 마-르가 위쑈드하깜)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들을 삶의 길에서 깨끗하게 하시니

 3.발원문‧ II (敍述部)

 
다냐타 옴 아로계,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혜-혜 하례
tadyathā oṁ āloke, ālokamati lokātikrānte hy-ehi Hare
(따드야타-, 옴 알-로께 알-로까마띠 로까-띠끄란-떼 에혜히 하레)
이와 같이 옴, 통찰자이자 지혜의 존재이시자 초월자이시여, 아, 님이시여

마하모지사다바 사마라-사마라 하리나야
mahābodhisattva smara-smara hṛdayam
(마하- 보디히 쌑뜨와 쓰마라 쓰마라 흐리다얌)
마하살[12]이시여 마음의 진언을 기억하소서 기억하소서

구로-구로 갈마 사다야-사다야
kuru-kuru karma sādhaya-sādhaya
(꾸루 꾸루 까르마 싸-드하야 싸-드하야)
행하고 또 행하소서[13], 이루게 하시고 이루게 하소서

 4.성관자재 찬가:(聖觀自在 讚歌,

'관자재'는 청경(靑頸)<Nīlakaṇṭha>의 명호) 

도로-도로 미연제 마하미연제 다라-다라
dhuru-dhuru vijayante mahāvijayante dhara-dhara
(드후루 드후루 위자얀떼 마하-위자얀떼 드하라 드하라)
보호해 주소서, 보호해 주소서, 승리자여 위대한 승리자여, 수호하소서, 수호하소서,

다린나례 새바라 자라-자라
dharaṇiṁ dhareśvara cala-cala
(드하라님 드하레 쓰와라 짤라 짤라)
대지의 왕 자재존이시여 발동하소서

마라 미마라아마라-몰제 예혜-혜
malla vimalāmala-mūrtte ehy-ehi
(말라 위말라-말라 무-릍떼 에혜히)
모든 마라를 지워버리신 해탈자여, 어서 오소서

로계새바라
Lokeśvara
(로께쓰와라)
세상의 자재자여

라아-미사 미나사야
rāga-viṣaṁ vināśaya
(라-가 위쌈 위나-쌰야)
탐욕의 독심을 잠재우소서

나베사-미사 미나사야
dveṣa-viṣaṁ vināśaya
(드웨싸 위싸 위나-쌰야)
진심의 독심을 잠재우소서

모하-자라-미사 미나사야
moha-jāla-viṣaṁ vināśaya
(모하 잘-라 위싸 위나쌰야)
치심의 독심을 잠재우소서[14]

호로호로 마라 호로 하례 바나마나바
huluhulu malla hulu Hare Padmanābha
(훌루훌루 말라 훌루 하레 빠드마 나-브하)
공포와 번뇌(마라)를 제하소서, 연꽃을 지닌 분이여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쟈-못쟈 모다야-모다야
sarasara sirisiri suru-suru buddhyā-buddhyā bodhaya-bodhaya
(싸라싸라, 씨리씨리, 쑤루쑤루, 붇다-야 붇다-야, 보드하야 보드하야)
제도하소서, 나아가게 하소서, 보리도를 깨닫게 하소서

(여기서부터 관세음보살의 열두 가지 호칭이 나온다.)

매다리야 니라간타 가마사 날사남 바라하라 나야 마낙 사바하
maitriya Nīlakaṇṭha kāmasya darśanaṁ prahlādaya manaḥ svāhā
(마이뜨리야 닐-라깐타, 까-마쓰야 다르쌰남 쁘라흐-라다야 마-나 쓰와-하-)
자비로우신 청경성존이시여, 욕망을 부수도록 힘을 주소서 사바하[15]

싯다야 사바하
siddhāya svāhā
(싣드하-야 쓰와-하-)
성취하신 분이여, 사바하

마하싯다야 사바하,
mahāsiddhāya svāhā
(마하- 싣드하-야 쓰와-하-)
크게 성취하신 분이여 사바하,

싯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siddhayogeśvarāya svāhā
(싣드하-요게 쓰와라-야 쓰와-하-)
요가성존[16], 사바하

니라간타야 사바하
Nīlakaṇṭhāya svāhā
(닐-라깐타-야 쓰와-하-)
청경성존이시여, 사바하

바라하목카-싱하목카야 사바하
varāhamukha-siṁhamukhāya svāhā
(와라-하무카 씽하무카-야 쓰와-하-)
돼지의 모습과 사자의 모습이여, 사바하

바나마-하따야 사바하
padma-hastāya svāhā
(빠드마 하스타-야 쓰와-하-)
연꽃을 지닌 분이여, 사바하

자가라 욕다야 사바하
cakrāyudhāya svāhā
(짜끄라- 윧드하-야 쓰와-하-)
법륜[17]을 지닌 분이여, 사바하

상카-섭나-네모다나야 사바하
śaṅkha-śabda-nibodhanāya svāhā
(샹카 샵다 니보드하나-야 야 쓰와-하-)
법라[18]의 소리로 깨닫게 하시는 분이여, 사바하

마하라구타다라야 사바하
mahālakuṭadharāya svāhā
(마하- 라꾸따 드하라-야 쓰와-하-)
큰 곤봉[19]을 지닌 분이시여, 사바하

바마-사간타-이사-시체다-가릿나 이나야 사바하
vāma-skanda-deśa-sthita-kṛṣṇājināya svāhā
(와-마 스깐다 데쌰 스티따 끄리스나- 지나-야 쓰와-하)
왼쪽 어깨에 검은 사슴가죽을 걸친 분이여, 사바하

먀가라-잘마-니바사나야 사바하
vyāghra-carma-nivasanāya svāhā
(브야-그라 짜르마 니와사나-야 쓰와-하-)
호랑이가죽 옷을 두른 분이여, 사바하

 5.귀의문(歸依文)

 나모 라다나-다라야야 나막 알야바로기제새바라야 사바하
namo ratna-trayāya 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 svāhā
(나모 라뜨나 뜨라야-야 나마하 아-르야-왈로끼떼쓰와-라 쓰와-하-)
삼보께 귀의합니다. 관세음보살께 귀의합니다. 사바하.

나모 라다나-다라야야 나막 알야바로기제새바라야 사바하
namo ratna-trayāya 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 svāhā
(나모 라뜨나 뜨라야-야 나마하 아-르야-왈로끼떼쓰와-라 쓰와-하-)
삼보께 귀의합니다. 관세음보살께 귀의합니다. 사바하.

나모 라다나-다라야야 나막 알야바로기제새바라야 사바하
namo ratna-trayāya 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 svāhā
(나모 라뜨나 뜨라야-야 나마하 아-르야-왈로끼떼쓰와-라 쓰와-하-)
삼보께 귀의합니다. 관세음보살께 귀의합니다. 사바하.

 
[범어본에만 있는 것]

(옴 씨드흐얀뚜 만뜨라 빠다야 쓰와하)
이 모든 신묘한 주문이 원만히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루어 주시옵소서!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1384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사십이수관음도'

조계종 제16교구본사 고운사


 

https://www.youtube.com/watch?v=IocCm6DqYsE 

 

 

https://kydong77.tistory.com/19510

 

한글 창제의 독창성/ 신숙주, 동국정운/ 신미대사 창제설, 불경譯의 범어

www.youtube.com/watch?v=tbcjsQX-DAY 한글의 독창성과 그 우수성은 자음은 발음기관의 형상에 따라 아설순치후를, 중성인 모음은 천지인을 형상화 한 점이다. 아설순치후 오음의 발음기관을 형상화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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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21371

 

신미대사, 산스크리트어> 한글창제/ 실담어(悉曇語,범어) 1편

수암화상 신미(1405?~1480?)  眞影, 조선 전기 승려이다. 우측에는 선교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 (禪敎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碍 慧覺尊者)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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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21372

 

신미대사, 산스크리트어> 한글창제/ 실담어(悉曇語,범어) 2편

수암화상 신미(1405?~1480?)  眞影, 조선 전기 승려이다. 우측에는 선교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 (禪敎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碍 慧覺尊者)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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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眉

조선 초 15세기에 활동한 승려. 본관은 영동(永同).

속명은 김수성(金守省).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 김수온(金守溫)의 형.

https://namu.wiki/w/%EC%8B%A0%EB%AF%B8(%EC%8A%B9%EB%A0%A4)

언어학에 능통했다고 하는데,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신미를 적극적으로 기용했고 세종대왕의 눈에도 들었다. 그 덕택에 말년의 세종대왕에게 총애를 받으며 한글 보급 업무를 맡았고, 문종과 세조도 신미를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그 결과로 조선 초기 수많은 한글서적들이 신미의 손을 거쳐갔는데, 현존하는 주요 저서로는 능엄경언해목우자수심결언해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불설수생경사법어언해석보상절선종영가집언해원각경언해법화경언해월인천강지곡월인석보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창원 금룡사 입능가경 등이 있다.

다만 위 책 대부분을 신미 혼자 저술하진 않았다. 수양대군이 주도적으로 책을 저술했고 효령대군, 신미, 학조 등은 교정 또는 주해작업 정도를 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저평가될 일은 아니기에, 초기 한글 보급에 큰 도움을 준 승려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세종이 말년에 유언을 남겨 문종이 즉위년(1452) 7월 6일 '선교종도총섭(禪敎宗都摠攝) 밀전정법(密傳正法) 비지쌍운(悲智雙運) 우국이세(祐國利世) 원융무애(圓融無礙) 혜각존자(慧覺尊者)'라는 칭호를 내렸다. 

* 선교종도총섭: 세종조 교종 선종의 최고 고승. 고려말의 나옹화상을 대신할 고승.

* 밀전정법: 범어 다라니에도 정통하여 붓다의 가르침에 정통하신 스님.

*우국이세: 한글창제의 1등공신.

3. 영화 나랏말싸미로 불거진 한글창제 논란

한신대학교[4] 강진갑 외래교수는 기사를 통해, 세종대왕 친제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친제협찬설도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보지만, "실제 세종대왕 치세에는 임금과 신하가 협력하여 국력을 융성하게 만들었는데, 영화에서는 임금과 신하의 대립을 너무 극단적으로 묘사해 관객에게 당혹감을 주었다." 비판했다.

 

[이 블로그 운영자의 愚見]

왕조시대에는 그 왕조에 만들어진 것은 모두 당대 왕의 치적으로 기록한다. 영릉에 가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세종대왕께서 어떻게 그 많은 과학발명품들을 만드셨겠는가?

신미대사는 초기 경전에 접근하기 위한 방편으로 초기 불전의 문자인 산스크리트어[범어]를 공부했고, 범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전의 초기 번역은 대체로 그의 번역 내지 감수를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세종께서 소헌와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월인천강지곡>의 언해의 출간을 감행한 점이다. 유학 이념으로 건국한 조선이었지만 유학에는 제사외에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할 아무런 방편이 없었다. 억불숭유정책은 정도전 등이 주창한 건국이념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보은군 '훈민정음 공원' 논란

https://www.youtube.com/watch?v=ppb3QnC2tlQ 

 

 

훈민정음은 완성 8년전 신미대사가 이미 만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MdskqgY_eI&t=329s 

 

 

당대 최고의 음운학자는 <동국정운>을 저술한 신숙주/ 한자의 발음을 표기함.

 

 

https://www.youtube.com/watch?v=MxPTb961NZg 

 

*김수온(金守溫, 1410년 ∼ 1481년) 식우집(拭疣集) 참조

 

몽고, 파스파 문자(영어: 'Phags-pa script, ꡏꡡꡃ
ꡣꡡꡙ
ꡐꡜꡞ
, 몽골어: Дөрвөлжин бичиг dörvöljin üseg), 팔사파어(八思巴語)

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8A%A4%ED%8C%8C_%EB%AC%B8%EC%9E%90

 

파스파 문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파스파 문자(영어: 'Phags-pa script, ꡏꡡꡃ ꡣꡡꡙ ꡐꡜꡞ, 몽골어: Дөрвөлжин бичиг dörvöljin üseg), 팔사파어(八思巴語)는 1265년 몽골 원나라(元) 국사(國師)

ko.wikipedia.org

 

유니코드

한편, 파스파 문자는 2006년 중에 발표된 유니코드 5.0에 U+A840 ~ U+A87F 범위로 포함되어 있다.

U+0123456789ABCDEFA840A850A860A870

 

 

 

https://www.youtube.com/watch?v=Khcr7K8ugaU&t=1765s 

 

 

http://www.okh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641 

 

한글 창제 5년 전 신미대사 한글 번역본 있다 - 옥천향수신문

지난 9일 제527돌 한글날 경축식 축하공연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이번 경축식은 한글날이 국경일로 격상된 2006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광화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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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과 신미
세종이 1443년까지 한글창제 연구를 10년 동안 할 때 수양대군, 안평대군이 함께 했는데 그 때 금중에 출입하며 법사를 열던 신미는 수양(당시의 대군명은 진양대군이다)과 안평의 각별한 인연으로 한글창제 연구에 관여한 것으로 판단되어진다. 그러나 신미가 한글창제에 관여한 흔적과 기록은 없다. 대군들과의 두터운 친분관계를 통해 관여한 것으로 판단되어진다.

신미대사가 불교경전 등을 조선 최초로 한문을 한글(언문)로 번역한 것들을 보면 추정할 수 있는 근거들이다. 세종은 자모음 28자를 만들어놓고도 자신의 안질과 어린 대군들의 질병으로 한글창제 반포를 즉시실행하지 못했다. 신미는 세종의 안질 치료를 돕기 위해 궁에서 법사를 열었고 1444년 세종의 5남 광평대군이 졸했을 때도 1445년 세종의 7남 평원대군이 졸했을 때도 1446년 4월 소헌왕후가 졸했을 때도 그들의 사후전과 사후에 궁에서 법사를 열었다.

특히 1446년 소헌왕후가 투병 할 때는 궁에서 살다시피 하며 궁내 선왕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서 왕실의 태평과 왕후의 쾌유를 비는 법사를 자주 열었다. 세종은 그 때 신미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았다. 세종은 신미의 노고를 치하하며 높이 존경했고 신미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던 수양대군과 안평대군도 신미를 존경하며 추앙했다. 세종은 1446년 당시 집현전 교리였던 김수온에게 석가보 증수를 명했는데 신미가 동생을 도와 석가보를 증수했다.

△ 신미의 관직생활
세종은 신미를 치하하며 총승의 관직을 제수했고 후엔 판교선종의 관직을 제수했다. 세종은 자신이 죽기 직전에도 신미를 자신의 침실로 불러 법사를 열정도로 신미에 대한 존경이 남달랐다.

신미는 세종이 죽자 장례를 치른 뒤 다시 어머니가 머물러 있던 복천사로 들어가 수행을 했으며 1450년 6월 신미가 복천사를 중건 할 때 문종이 복천사 중건을 지원했다.

세종이 졸하고 보위에 오른 문종(이향)은 대간들의 빗발치는 간쟁에도 불구하고 선왕의 고명을 받들어 신미를 선교종 도총섭(禪敎宗都摠攝) 밀전정법(密傳正法) 비지쌍운(悲智雙運) 우국이세(祐國利世) 원융무애(圓融無礙) 혜각존자(慧覺尊者)로 삼고 관직을 제수했다.

△ 신미와 세조
세조의 나이 17세 후부터 신미의 나이 28세 후부터 알게 된 매우 각별한 인연이었다. 수양이 정권을 잡던 1453년 계유정난과 1455년 단종을 상왕으로 앉히고 자신이 보위에 오를 때에도 책사의 역할을 한 수양이 절대 추앙한 인물이다.

신미는 세조로부터 많은 땅과 재산을 하사 받았고 조계종이 부유한 까닭이며 오대산 상원사가 부유한 까닭이다. 수양대군의 처음 대군명은 진양이었다. 진양이라는 이름이 안 좋아 수양대군으로 개명을 했는데 신미가 지어준 대군명이다. 왕실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수양은 신미를 찾았으며 늘 신미와 함께 했다. 수양과 안평은 신미를 높은 자리에 앉히고 무릎 꿇고 절을 하는 등 신미를 어려서부터 존경했다. 그런 일들로 인해 대간들이 세조에게 자주 간쟁을 하였다.

수양이 보위에 올라 신미를 조정의 왕사로 모시기 위해 한양의 궁궐로 올라오라고 복천사에 머물던 신미대사에게 어찰을 보냈는데 당시 신미대사는 신명이 어찰을 보우하사 속리산을 떠날 수 없으니 복천사로 내유해달라는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각별했다.
신미는 세조의 왕사로서 승도들을 이끌고 많은 불교 경전들을 한글(언문) 번역 했으며 상원사중창권선문은 현재 가장 오래 된 한글 번역문으로 국보로 등록 돼있다.

출처 : 옥천향수신문(http://www.okhsnews.com)

 

http://www.jeju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980 

 

“한글 창제는 불교적 세계관의 산물?” - 제주불교신문

집현전 학자들은 한글창제를 알지 못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은 훈민정음 창제에 신숙주, 성상문 등의 집현전 학자들이 주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이후 집현전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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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대사와 불교계 한글창제설의 근거
신미대사의 한글창제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국어학자들은 ‘세종실록 계해년 그믐조’에 나타나는 ‘是月上親製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이달에 임금이 몸소 언문(諺文)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는 古篆을 모방하였다)’ 는 문장을 근거로 제시한다. 즉 ‘倣古篆’은 ‘古 篆字를 모방했다’는 뜻으로, 정인지가 지은 ‘훈민정음 해례’에도 ‘象形而倣古篆ㆍ‘古 篆字를 모방해 글자상형을 삼았다’는 문장이 나온다. 조선초기 유학자인 성현(1439~1504)도 그의 저서 ‘용재총화’에서 ‘基字體依梵字爲之(그 글 자체는 범자에 의해 만들어졌다)’라고 밝히고 있다. ‘용재총화’는 훈민정음 반포 30년 후에 쓰여진 책이다. 이수광도 그의 저서 지봉유설에서 ‘우리나라 언서(諺書)는 글자 모양이 전적으로 범자를 본떴다’(我國諺書字樣全倣梵字)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상당수 학자들은 앞서 언급된 ‘篆字’를 ‘梵字’의 한자식 표현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규명작업을 벌이고 있는 복천암 선원장 월성 스님이 제시하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신미대사가 범어에 능통했던 점 

▶유학 성향이 강했던 세종이 이례적으로 복천암에 불상을 조성해 주고 시주를 한 점 

▶세종이 ‘선교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禪敎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碍 慧覺尊者)라는 긴 법호를 내린 점 

▶수양대군 세조가 복천암을 손수 찾았던 점 

▶유학자들이 당시는 물론 세종이 죽자마자 부녀자 글, 통시 글 등의 말로 훈민정음을 비난하고 험담한 점 

▶신미대사의 본관인 영산김씨 족보에 신미대사가 집현전 학사로 언급된 점 

▶한글 창제 후 실험적으로 지은 곡과 문장이 유교가 아닌 불교 내용을 담고 있는 점 등이다. 

출처 : 제주불교신문(http://www.jejubulgyo.com)

 

https://kydong77.tistory.com/7971

 

훈민정음의 창제원리, 훈민정음 信眉창제설/북한 '조선글날' 1월15일

https://kydong77.tistory.com/20996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창제원리 세종께서 왼손에 들고 계신 책이 훈민정음 해례본 https://namu.wiki/w/%ED%9B%88%EB%AF%BC%EC%A0%95%EC%9D%8C%20%ED%95%B4%EB%A1%80%EB%B3%B8 1. 개요 2.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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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21603

 

훈민정음 청제, 신미대사와 세종대왕, 간경도감의 불교경전번역본들

https://www.youtube.com/watch?v=Btaj7tlKyoY https://kydong77.tistory.com/19510 한글 창제의 독창성/ 신숙주, 동국정운/ 신미대사 창제설, 불경譯의 범어 www.youtube.com/watch?v=tbcjsQX-DAY 한글의 독창성과 그 우수성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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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한자본 불경
 

연번/          서명                                                                                     /권수     /저자                     /간행연도    /비고

1 금강반야경소개현초(金剛般若經疏開玄鈔) 6 공철(公哲) 1461 본사
2 대반열반경의기원지(大般涅般經義記圓旨) 14 공공(鞏空) 1461 본사
3 대승아비달마집집논소(大乘阿毘達磨雜集論疏) 16 현범(玄範) 1461∼1462 낙질본
4 묘법연화경찬술(妙法蓮華經讚述) 2 혜정(慧淨) (?) 낙질본
5 정명경집해관중소(淨名經集解關中疏) 4 도액(道液) 1461∼1462 낙질본
6 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觀世音菩薩普門品三玄圓贊科文) 1 사효(思孝) 1461∼1462 낙질본
7 대반열경경소(大般涅槃經疏) 20 법보(法寶) 1461∼1462 낙질본
8 개사분율종기의경초(開四分律宗記義鏡鈔) 20 행만(行滿) (?) 낙질본
9 수능엄경의소주경(首楞嚴經義疏注經) 20 자선(子璿) (?) 낙질본
10 화엄경론(華嚴經論) 100 영변(靈辯) (?) 낙질본
11 원각예참약본(圓覺禮懺略本) 4 종밀(宗密) 1461∼1462 낙질본
12 사분율상집기(四分律詳集記) 14 징연(澄淵) 1461 상주·안동분사
13 능엄경계환해산보기(楞嚴經戒環解刪補記) 1 (?) 1461 본사
14 대승기신론필삭기(大乘起信論筆削記) 6 자선(子璿) 1462 전주분사
15 대방광불화엄경합론(大方廣佛華嚴經合論) 120 이통현(李通玄) 1462 전주분사
16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의석연밀초(大毘盧遮那成佛神變加持經義釋演蜜鈔) 10 각원(覺苑) 1462 본사
17 유가론소(瑜伽論疏) 40 지주(智周) 1462 안동분사
18 능엄경의소(楞嚴經義解) 30 함휘(咸輝) 1462 본사
19 오삼련약신학비용(五杉練若新學備用) 3 응지(應之) 1462 본사
20 진실주집(眞實珠集) 3 묘행(妙行) 1462 본사
21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2 실차난타(實叉難陀) 1462 본사
22 구사론송소초(俱舍論頌疏鈔) 8 상진(常眞) 1463 진주·상주분사
23 노산집(盧山集) 10 혜원(慧遠) 1463 본사
24 보리달마사행론(菩提達磨四行論) 1 달마(達磨) 1464 남원분사
25 선문삼가염송집(禪門三家拈頌集) 6 구암(龜庵) 1464 본사
26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3 종밀주해(宗密注解) 1464 본사
27 자애화상광록(慈愛和尙廣錄) 2 (?) 1466 본사
28 무주묘법연화경(無注妙法蓮華經) 7 구마라습(鳩摩羅什) 1467 본사
29 원종문류집해(圓宗文類集解) 22 의천(義天) 1468 개성분사
30 석문홍각범림한록(石門洪覺範林閒錄) 2 각범(覺範) 1468 상주분사
31 금강명경문구소록(金光明經文句疏) 3 지의(智顗) (?) 낙질본
 
 
[표 2] 국역본 불경
 
 
 
연번/          서명                                                         /권수  /저자                                                                   /간행연도 /비고
1 대불정수능엄경언해(大佛頂首楞嚴經諺解) 10 반자밀제역(般刺密帝譯), 계환해(戒環解) 1462 본사
2 묘법연화경언해(妙法蓮華經諺解) 7 구마라습역(鳩摩羅什譯), 계환해(戒環解), 일여집주(一如集注) 1463 본사
3 선종영가집언해(禪宗永嘉集諺解) 2 현각찬(玄覺撰), 연정정원수정(衍靖淨源修正), 세조구결(世祖口訣) 1464 본사
4 금강반야바라밀경언해(金剛般若波羅密經諺解) 2 구마라습역(鳩摩羅什譯), 혜능주해(慧能註解) 1464 본사
5 반야바라밀다심경언해(般若波羅密多心經諺解) 1 현장역(玄奬譯), 중희술(仲希述) 1464 본사
6 불설아미타경언해(佛說阿彌陀經諺解) 1 구마라습역(鳩摩羅什譯), 지의주석(智顗註釋), 세조역해(世祖譯解) 1464 본사
7 대방광원각수다라료료의경언해(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諺解) 10 종밀소초(宗密所抄), 세조구결(世祖口訣) 1465 본사
8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 1 지눌찬(知訥撰), 비현각결(丕顯閣訣), 신미역(信眉譯) 1467 본사
9 법어언해(法語諺解) 1 신미역(信眉譯) 1467 본사
10 몽산화상법어약록(蒙山和尙法語略錄) 1 신미역(信眉譯) 1467 본사
의의와 평가
 
오늘날의 시각에서 그 사업이 지니는 의의는, 첫째 귀중한 국어학 자료를 많이 생산하여 국어학사의 체계화에 크게 기여한 점에 있다. 특히, 국역본 불전은 훈민정음 창제 직후의 일이므로 오늘날 학계의 연구에 귀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은 물론, 한자본 불서를 국역한 세조의 문화사적 의의도 그 가치를 크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당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주요 불전의 국역본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널리 보급되어 사람들이 불교의 근본 이념과 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고, 얻어 보기 어려운 귀중한 장소자료(章疏資料)를 많이 생산, 전유시킴으로써 불학연구에 크게 기여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간경도감(刊經都監))]의의와 평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간경도감(刊經都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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