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라기를 부는 장자
장자에게 끼친 노자의 영향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가 있습니다. 노자의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견해와, 『장자』와 『노자』는 각각 달리 발전되었고 다른 경로를 통해 계승되어왔다는 견해가 그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노자』보다는 오히려 『장자』를 노장 철학의 주류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 않습니다. 『장자』에는 『노자』를 직접 인용한 부분이 없다는 것이지요.
『노자』와 『장자』가 다른 경로를 통해 발전되어왔다는 주장은 특히 그 서술 형식이 판이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노자』의 서술 방식은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설(辭說)을 최소한으로 하는 엄숙주의가 기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내용에 있어서도 최소한의 선언적 명제(命題)에 국한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장자』는 만연체를 기조로 하면서 허황하기 짝이 없는 가공과 전설 그리고 해학과 풍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두 책의 제1장이 그러한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자』의 제1장은,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입니다.
이에 비하여 『장자』의 첫 구절은,
“북쪽 깊은 바다(北冥)에 물고기가 한 마리 살았는데, 그 이름을 곤(鯤)이라 하였다. 그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가 없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로 시작됩니다.
이 첫 구절의 차이가 사실 노장(老莊)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노자는 도(道)의 존재성을 전제합니다. 도를 모든 유(有)의 근원적 존재로 상정하고 이 도로 돌아갈 것(歸)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장자는 도를 무궁한 생성 변화 그 자체로 파악하고 그 도와 함께 소요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지요. 『노자』를 우리는 민초들의 정치학으로 이해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읽었습니다만 『노자』에는 그러한 사회성과 정치성이 분명하게 있는 것이지요.
『장자』에는 이러한 차원의 정치학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장자』의 정치학은 오히려 다른 차원에서 모색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절대적 자유와 소요를 장자의 정치적 선언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패권 경쟁을 반대하고 궁극적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자』와 『노자』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자는 노자의 상대주의 철학 사상에 주목하고 이를 계승하고 있지만 이를 심화해가는 과정에서 노자로부터 결정적으로 멀어져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주의적인 세계, 즉 ‘정신의 자유’로 옮겨갔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도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떻든 노자의 관념화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루쉰(魯迅)의 『호루라기를 부는 장자』가 바로 장자의 그러한 면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호루라기를 부는 장자』는 『장자』 「지락」(至樂)에서 소재를 취하여 장자의 상대주의 철학을 풍자한 희곡 형식의 작품입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습니다만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500년 전에 친척을 찾아가다가 도중에 옷을 모두 빼앗기고 피살된 한 시골 사람이 다시 부활하여 장자와 대화를 나눕니다. 간절하게 옷을 원하는 그 사람에게 장자는 그의 고답적인 철학을 펼칩니다.
“옷이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법. 옷이 있다면 그 역시 옳지만 옷이 없어도 그 역시 옳은 것입니다. 새는 날개가 있고, 짐승은 털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이와 가지는 맨몸뚱이입니다. 이를 일러 ‘저 역시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며, 이 역시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전개는 위급해진 장자가 급히 호루라기를 꺼내어 미친 듯이 불어서 순경을 부릅니다. 현장에 도착한 순경은 옷이 없는 그 사람의 딱한 사정을 목격하고 장자가 옷을 하나 벗어 그 사람이 치부만이라도 가리고 친척을 찾아갈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장자는 그러한 순경의 제안을 끝내 뿌리치고 순경의 도움을 받아 궁지를 벗어납니다.
이 이야기는 작품의 전편을 ‘발가벗겨진’ 분위기로 이끌고 가면서 그 사람의 절실한 현실인 ‘옷’과 장자의 고답적인 사상인 ‘무시비관’(無是非觀)을 극적으로 대비시킴으로써 장자 철학의 관념성을 드러냅니다. 이 작품의 정점은 장자가 미친 듯이 호루라기를 불어 순경을 부르고 순경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대목입니다. 장자가 호루라기를 불다니 여러분도 상상이 가지 않지요?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 점에서 루쉰의 대가적 면모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장자와 호루라기라는 극적 대비를 통하여 장자의 허구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장자의 무시비(無是非)란 결국 통치자에게 유리한 논리임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호루라기는 권력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장자 사상이 권력에 봉사한다는 부정적 평가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원용되었을 뿐이며 『장자』는 권력 그 자체를 부정하는 근본주의적 사상으로 평가됩니다. 이러한 긍정적 평가가 장자에 대한 일반적 평가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유묵(儒墨)의 천명(天命) 사상이나 천지론(天志論)에 대한 장자의 비판은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장자 사상은 반체제적인 부정 철학(否定哲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체제 그 자체를 부정하는 체제 부정의 해방론이라는 평가가 그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자의 해방은 어디까지나 관념적 해방이며 주관적인 해방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장자 철학은 기본적으로 『노자』의 ‘상대주의’에서 입론(立論)하고 있습니다. 『노자』의 상대주의적 측면을 한층 심화하여 공간적, 시간적으로 확장해갑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 사상적 영역이 새롭게 확장된 것은 인정된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노자의 사회성과 실천성이 탈색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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