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七十四

孟子荀卿列傳第十四

맹자순경열전 제14

14-6. 순자(荀子)

  荀卿,趙人。〔一〕年五十始來游學於齊。

순경(荀卿)은 조나라 사람이다. 그의 나이 50세에 비로소 제나라에 와서 학설을 유세했다.

騶衍之術迂大而閎辯;奭也文具難施;

추연의 학술은 굽고 크게 과장되어 웅변적이었다.

추석 역시 문장은 좋으나 시행되기가 어려웠다.

淳于髡久與處,時有得善言。

순우곤과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 때때로 유익한 말을 얻을 수 있었다.

故齊人頌曰:

「談天衍,雕龍奭,

炙轂〔二〕過髡。」〔三〕

그래서 제나라 사람들이 세 사람을 각각 칭송하여 말했다.

" 하늘을 말하는 자는 추연이고,

문장에 용을 새기는 자는 추석이며,

지혜가 끝없이 흘러나오는 사람은 순우곤이다."

田駢之屬皆已死 齊襄王時,〔四〕

而荀卿最為老師。

제양왕(齊襄王) 때에

전병과 그 무리들은 모두 죽고

순경이 가장 지위가 높은 스승이었다.

齊尚脩列大夫之缺,

而荀卿三為祭酒焉〔五〕。

제나라에서는 여전히 열대부에 결원이 생기면 보충하였는데,

순경은 3차례나 직하의 좨주(祭酒)가 되었다.

齊人或讒荀卿,荀卿乃適楚,

而春申君以為蘭陵令。〔六〕

어떤 제나라 사람의 모함을 받은 순경이 초나라로 가자

춘신군(春申君)은 그를 난릉령(蘭陵令)으로 삼았다.

春申君死而荀卿廢,因家蘭陵。

춘신군이 죽자 순경의 관직은 면직되었으나

그는 계속 난릉에 머물러 살았다.

李斯嘗為弟子,已而相秦。

일찍이 순경의 제자였던 이사(李斯)는

후에 진나라로 들어가 재상이 되었다.

荀卿嫉濁世之政,亡國亂君相屬,

不遂大道而營於巫祝,信禨祥,

순경은 세상에 혼탁한 정치가 행해지는 것과

나라를 망치는 혼미한 군주가 계속 왕위에 올라

대도를 따르지 않고 무당의 기원(祈願)에 미혹되고

길흉의 징조를 믿는 것과,

鄙儒小拘,

如莊周等又猾稽亂俗,

저속한 유자들이 작은 일에 연연해하는 것과,

더불어 장주(莊周)와 같은 무리들이 언변에 능하여

세속을 어지럽히는 것 등을 싫어하여

於是推儒、墨、道德之行事興壞,

序列著數萬言而卒。因葬蘭陵。

유가, 묵가, 도가(道家)가 행한 성취와 실패를 고찰한 후

그것들을 차례로 정리하여 수만 자의 글자로 된 저서를 남기고 죽었다.

그는 난릉에 묻혔다.

  〔一〕索隱名況。卿者,時人相尊而號為卿也。仕齊為祭酒,仕楚為蘭陵令。後亦謂之孫卿子者,避漢宣帝諱改也。

  〔二〕集解徐廣曰:「一作「亂」。」

  〔三〕集解劉向別錄曰:「騶衍之所言五德終始,天地廣大,盡言天事,故曰「談天」。騶奭脩衍之文,飾若雕鏤龍文,故曰「雕龍」。」別錄曰「過」字作「輠」。輠者,車之盛膏器也。炙之雖盡,猶有餘流者。言淳于髡智不盡如炙輠也。左思齊都賦注曰「言其多智難盡,如炙膏過之有潤澤也」。索隱按:劉向別錄「過」字作「輠」。輠,車之盛膏器也。炙之雖盡,猶有餘津,言髡智不盡如炙輠也。按:劉氏云「轂,衍字也」。今按:文稱「炙轂過」,則過是器名,音如字讀,謂盛脂之器名過。「過」與「鍋」字相近,蓋即脂器也。轂即車轂,過為潤轂之物,則「轂」非衍字矣。

  〔四〕索隱按襄王名法章,湣王子,莒人所立者。

  〔五〕索隱按:禮食必祭先,飲酒亦然,必以席中之尊者一人當祭耳,後因以為官名,故吳王濞為劉氏祭酒是也。而卿三為祭酒者,謂荀卿出入前後三度處列大夫康莊之位,而皆為其所尊,故云「三為祭酒」也。

  〔六〕正義蘭陵,縣,屬東海郡,今沂州承縣有蘭陵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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