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七十四

孟子荀卿列傳第十四

맹자순경열전 제14

14-1 孟子(맹자)

  索隱按:序傳孟嘗君第十四,而此傳為第十五,蓋後人差降之矣。

  太史公曰:

태사공이 말한다.

余讀孟子書,至梁惠王問「何以利吾國」,未嘗不廢書而歎也。

" 내가 일찍이 맹자(孟子)를 읽을 때마다

양혜왕(梁惠王)이 '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한 대목에 이르러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曰:嗟乎,利誠亂之始也!

夫子罕言利者,常防其原也。

故曰「放於利而行,多怨」。

' 아! 이로움이란 진실로 어지러운 것의 시작이구나!

무릇 공자(孔子)가 이로움에 대해 드물게 말한 것은 항상 그 근원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로운 것에 따라 행동하면 남의 원망을 많이 받는다.''라고 하였다.

自天子至於庶人,好利之獘何以異哉!

천자(天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이로움을 좋아해서 생긴 병폐가 어찌 다르겠다고 하겠는가?"

  孟軻,騶人也。〔一〕受業子思之門人。〔二〕

맹가(孟軻)는 추(騶)나라 사람으로,

자사(子思)의 제자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道既通,游事齊宣王,宣王不能用。

도(道)에 이미 통하여

제선왕(齊宣王)에게 유세했으나 선왕이 그를 쓰지 않았다.

適梁,梁惠王不果所言,則見以為迂遠而闊於事情。

그래서 그는 양(梁)나라에 갔으나

결국 맹가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던 양혜왕(梁惠王)은

그의 말은 현실과 거리가 멀어 당시의 사정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當是之時,秦用商君,富國彊兵;

楚、魏用吳起,戰勝弱敵;

그때 당시의 정세는 진나라는 이미 상군(商君)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었고

위(魏)와 초(楚) 두 나라는 오기(吳起)를 등용하여

적군을 물리치고 적국을 약화시켰다.

齊威王、宣王用孫子、田忌之徒,

而諸侯東面朝齊。

또한 제나라의 위왕(威王)과 선왕은

손빈(孫臏)과 전기(田忌)와 같은 인재들을 등용하여

제후들로부터 조현을 받고 있었다.

天下方務於合從連衡,以攻伐為賢,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合縱)과 연횡(連橫)에 온 힘을 쏟고 있었으며,

전쟁에 능한 것을 현능하다고 여겼다.

而孟軻乃述唐、虞、三代之德,

是以所如者不合。

그러나 맹가는 요순(堯舜)과 삼대(三代)의 덕에 대해 말했음으로

그가 이르는 곳마다 제후들의 뜻에 부합되지 않아 박대를 받았다.

退而與萬章之徒〔三〕序詩書,述仲尼之意,作孟子七篇。

其後有騶子之屬。

그래서 유세하는 것을 그만 둔 맹가는

만장(萬章)의 무리들과 함께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순서에 따라 정리하여

공자의 뜻을 전하려고 했다. 맹가는 모두 7편의 저서를 지었다.

그 뒤로 추(騶)의 무리들이 있었다.

  〔一〕索隱軻音苦何反,又苦賀反。鄒,魯地名。又云「邾」,邾人徙鄒故也。正義軻字子輿,為齊卿。鄒,兗州縣。  

 〔二〕索隱王劭以「人」為衍字,則以軻親受業孔伋之門也。今言「門人」者,乃受業於子思之弟子也。

 〔三〕索隱孟子有萬章、公明高等,蓋並軻之門人也。萬,姓;章,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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