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七十 張儀列傳 第十장의열전 제10-6  

居秦期年,〔1〕秦惠王終相張儀,而陳軫奔楚。楚未之重也,而使陳軫使于秦。

居秦期年(거진기년) : 진나라에 있은 지 1년에

秦惠王終相張儀(진혜왕종상장의) : 진혜왕은 마침내 장의를 재상으로 삼았으므로

而陳軫奔楚(이진진분초) : 진진은 초나라로 달아났다.

楚未之重也(초미지중야) : 초나라는 아직 진진을 중히 쓰지는 않았으나

而使陳軫使於秦(이사진진사어진) : 사자로 진나라에 보냈다.

 

過梁,欲見犀首。犀首謝弗見。過梁(과량) : 도중에 위나라를 지나

欲見犀首(욕견서수) : 서수를 만나려고 하였는데

犀首謝弗見(서수사불견) : 서수는 사절하고 만나지 않았다.

 

軫曰:“吾為事來,公不見軫,軫將行,不得待異日。”〔2〕

軫曰(진왈) : 진이 말하기를,

吾爲事來(오위사래) : “나는 그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 일부러 왔는데

公不見軫(공불견진) : 그대는 만나져 하지를 않는군.

軫將行(진장행) : 이제 진이 여기를 떠나면

不得待異日(불득대이일) : 두 번 다시 만나지 모살지도 모르오.”라고 하였다.

 

犀首見之。陳軫曰:“公何好飲也?”

犀首見之(서수견지) : 서수가 나와서 만나니

陳軫曰(진진왈) : 진진이 말하기를, 公何好飮也(공하호음야) : “그대는 어째서 술마시기를 좋아하오?”라고 하니

 

犀首曰:“無事也。”犀首曰(서수왈) : 서수는 말하기를 無事也무사야) : “할 일이 없기 때문이오.”라고 하였다.

 

曰:“吾請令公厭事可乎?”〔3〕

曰(吾請令公厭事可乎(왈오청령공염사가호) : 진진이 말하기를 “그러면 입을 닫아야 할 만큼 그대를 바쁘개 해도 좋겠소?”라고 하니

 

曰:“柰何?”曰柰何(왈내하) : 서수는 말하기를“어떻게 하는 것이요.”

 

曰:“田需約諸侯從親,〔4〕楚王疑之,未信也。

曰田需約諸侯從親(왈전수약제후종친) : 진이 말하기를 “위나라 재상 전수는 제수에게 합종책을약속하였는데

楚王疑之(초왕의지) : 초왕은 그를 의심하여

未信也(미신야) : 아직 신용하지 않았다.

 

公謂于王曰:‘臣與燕、趙之王有故,數使人來,曰 “無事何不相見”,愿謁行于王。’〔5〕

公謂於王曰(공위어왕왈) : 그대는 왕에게 이렇게 말해주시오.

臣與燕趙之王有故(신여연조지왕유고) : ‘신은 연나라와 조나라의 왕과 구교가 있어

數使人來曰(수사인래왈) : 그들이 자주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無事何不相見(무사하불상견) : 일이 없으면 어찌하여 과인에게 오지 않는가?’라고 합니다.

願謁行於王(원알행어왕) : 신이 연나라와 조나라에 가는 것을 허락하십시오.

 

王雖許公,〔6〕公請毋多車,以車三十乘,可陳之于庭,〔7〕明言之燕、趙。

王雖許公(왕수허공) : 왕이 허락을 하여도

公請毋多車(공청무다차) : 그대는 수레를 너무 많이 따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以車三十乘(이차삼십승) : 수레 30채로 족합니다.

可陳之於庭(가진지어정) : 이것을 뜰에 늘어 세워

明言之燕趙(명언지연조) : 연나라와 조나라에 가는 것을 밝혀 말하는 것이 좋습니까?”라고 했다.

 

燕、趙客聞之,馳車告其王,使人迎犀首。燕趙客聞之(연조객문지) : 연나라와 조나라의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馳車告其王(치차고기왕) : 레수를 본국으로 달려 임금에게 보고하고

使人迎犀首(사인영서수) : 사자를 보내어 서수를 영접하라고 말하였다.

 

楚王聞之大怒,曰:“田需與寡人約,而犀首之燕、趙,是欺我也。”

怒而不聽其事。楚王聞之大怒曰(초왕문지대노왈) : 초왕이 이 말에 크게 노하여 이르기를,

田需與寡人約(전수여과인약) : “전수는 과인과 약속이 있는데

而犀首之燕趙(이서수지연조) : 서수가 연나라와 조나라에 가는 것은

是欺我也(시기아야) : 나를 속이는 것이다.”라고 하고

怒而不聽其事(노이불청기사) : 분개하여 합종을 듣지 않았다.

 

齊聞犀首之北,使人以事委焉。犀首遂行,三國相事皆斷于犀首。軫遂至秦。齊聞犀首之北(제문서수지북) : 제나라는 서수가 북쪽으로 간다는 것을 듣고 使人以事委焉(사인이사위언) : 사자를 보내어 제나라의 국사를 위임하려고 하였다.

犀首遂行(서수수행) : 서수가 마침내 북으로 가서

三國相事皆斷於犀首(삼국상사개단어서수) : 제·연·조 3개국의 재상의 정사는 모두 서수의 전단을 기다렸다.

軫遂至秦(진수지진) : 진이 진나라에 당도하였다.

 

 【注釋】〔1〕“期年”,一整年。“期”,音jī。〔2〕“異日”,另外的日子。

〔3〕“厭事”,形容擔任的事多。“厭”通“饜”,飽。〔4〕“田需”,時為魏相。

〔5〕“謁行”,請行。〔6〕“雖”,即使。〔7〕“陳”,列。

 

  韓魏相攻,期年不解。韓魏相攻(한위상공) : 한나라와 조나라가 서로 싸움을 벌여

期年不解(기년불해) : 1년이 지나도 해결이 나지 않은 때였다.

 

秦惠王欲救之,問于左右。左右或曰救之便,〔1〕或曰勿救便,秦惠王欲救之(진혜왕욕구지) : 진혜왕은 이것을 구해 주기 위해 問於左右(문어좌우) : 좌우에 있는 신하들에게 물었다.

左右或曰救之便(좌우혹왈구지변) : 어떤 자는 이르기를“구하는 것이 이익이다.” 하였고

或曰勿救便(혹왈물구변) : 또 어떤 자는 이르기를 “구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다.”라고 말하였다.

 

惠王未能為之決。陳軫適至秦,惠王未能爲之決(혜왕미능위지결) : 혜왕이 아직 결정을 짓지 못할 때

陳軫適至秦(진진적지진) : 진진이 마침 진나에 왔다.

 

惠王曰:“子去寡人之楚,亦思寡人不?”

惠王曰(혜왕왈) : 혜왕이 진진에게 묻기를

子去寡人之楚(자거과인지초) : “그대는 과인을 버리고 초나라로 갔는데

亦思寡人不(역사과인불) : 지금까지도 과인을 생각한다고 하니 모르겠소.”라고 하니

 

陳軫對曰:“王聞夫越人莊舄乎?”

陳軫對曰(진진대왈) : 진진은 대답하기를,

王聞夫越人莊舃乎(왕문부월인장석호) : “임금님께서는 조나라 사람 장석의 일을 아십니까?”라고 하니

 

王曰:“不聞。”王曰(왕왈) : 혜왕이 이르기를,

不聞(불문) :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했다,

 

曰:“越人莊舄仕楚執珪,有頃而病。

曰越人莊舃仕楚執珪(왈월인장석사초집규) : 진진이 말하기를 “월인 장석은 초나라를 섬겨 집규로 있었는데

有頃而病(유경이병) : 얼마 안 있어 병이 났습니다,

 

楚王曰:‘舄故越之鄙細人也,今仕楚執珪,貴富矣,亦思越不?’〔2〕

楚王曰(초왕왈) : 초나라 왕이 이르기를,

舃故越之鄙細人也(석고월지비세인야) : ‘장석은 본디 미천한 월나라 사람으로서

今仕楚執珪(금사초집규) : 이제 초나라를 섬기어 집규에 올라

貴富矣(귀부의) : 귀하고 부유하게 되었는데

亦思越不(역사월불) : 이제까지도 오히려 월나라의 일을 생각함은 그릇되지 않은가?’하고 물으니

 

中謝對曰:〔3〕‘凡人之思故,在其病也。彼思越則越聲,不思越則楚聲。’

中謝對曰(중사대왈) : 중사가 대답하기를,

凡人之思故(범인지사고) : ‘무릇 인간이 고향을 생각하는 것은

在其病也(재기병야) : 병들었을 때입니다.

彼思越則越聲(피사월칙월성) : 그가 월나라를 생각한다면 월나라 말을 할 것이며

不思越則楚聲(불사월칙초성) : 월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초나라 말로 이야기 할 것입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使人往聽之,猶尚越聲也。今臣雖棄逐之楚,豈能無秦聲哉!”

使人往聽之(사인왕청지) : 그래서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시험해본 결과

猶尙越聲也(유상월성야) : 역시 월나라 말을 하였답니다.

今臣雖弃逐之楚(금신수기축지초) : 이제 신은 비록 버림받고 쫓기어 초나라에 의탁하였지만

豈能無秦聲哉(개능무진성재) : 어찌 신이 진나라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惠王曰:“善。今韓魏相攻,期年不解,或謂寡人救之便,或曰勿救便,寡人不能決,愿子為子主計之余,為寡人計之。”

惠王曰善(혜왕왈선) : 혜왕이 이르기를 ‘옳은 말이오.

今韓魏相攻(금한위상공) : 그런데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싸워

期年不解(기년불해) :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해결이 나지 않았습니까?

或謂寡人救之便(혹위과인구지변) : 어떤 자는 구하는 것이 진나라의 이익이라하고

或曰勿救便(혹왈물구변) : 어떤 자는 구하지 않는 편이 이익이 된다 하므로

寡人不能決(과인불능결) :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願子爲子主計之餘(원자위자주계지여) : 그대는 자신을 위해서 계책의 충분히 주장하고

爲寡人計之(위과인계지) : 과인을 위하여 그것에 꾀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陳軫對曰:“亦嘗有以夫卞莊子刺虎聞于王者乎?

陳軫對曰(진진대왈) : 진진이 대답하길

亦嘗有以夫卞莊子刺虎聞於王者乎(역상유이부변장자자호문어왕자호) : “일찌기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른 이야기를 임금께 말씀드린 자가 없었습니까?

 

莊子欲刺虎,館豎子止之,曰:莊子欲刺虎(장자욕자호) : 장자가 호랑이를 찔러 죽이려고 생각했는데 館豎子止之曰(관수자지지왈) : 객주집의 종놈이 말리면서 말하기를,

 

‘兩虎方且食牛,食甘必爭,爭則必斗,斗則大者傷,小者死,從傷而刺之,一舉必有雙虎之名。

兩虎方且食牛(양호방차식우) : ‘두 마리의 호랑이가 방금 소를 잡아 멱으려 합니다

食甘必爭(식감필쟁) : 먹어서 입에 달면 반드시 다툴 것이며

爭則必鬪(쟁칙필투) : 다투면 필연코 싸울 것입니다.

鬪則大者傷(투칙대자상) : 싸우면 큰 편은 상처를 입고

小者死(소자사) : 작은 편은 죽을 것입니다.

從傷而刺之(종상이자지) : 상처를 입었을 적에 달려 들어 찌르면

一擧必有雙虎之名(일거필유쌍호지명) : 대번에 두 호랑이를 잡았다는 이름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卞莊子以為然,立須之。有頃,兩虎果斗,大者傷,小者死。

卞莊子以爲然(변장자이위연) : 변장자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立須之(입수지) : 서서 범을 기다렸습니다.

有頃(유경) : 얼마 안 되어

兩虎果鬪(양호과투) : 과연 두 호랑이가 싸움을 하고

大者傷(대자상) : 큰 편은 상처를 입었으며

小者死(소자사) : 작은 편은 죽었습니다.

 

莊子從傷者而刺之,一舉果有雙虎之功。

莊子從傷者而刺之(장자종상자이자지) : 장자는 상처입은 호랑이가 쇠약한 기회를 타 찔러 죽이고

一擧果有雙虎之功(일거과유쌍호지공) : 한 번에 두 호랑이를 잡은 공을 얻었다고 합니다.

 

今韓魏相攻,期年不解,是必大國傷,小國亡,

今韓魏相攻(금한위상공) : 이제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싸워서

期年不解(기년불해) : 1년이 지나도록 해결이 나지 않았다면

是必大國傷(시필대국상) : 반드시 큰 나라는 상처를 입었을 것이며

小國亡(소국망) : 작은 나라는 망할 것입니다.

 

從傷而伐之,一舉必有兩實。此猶莊子刺虎之類也。臣主與王何異也。”

從傷而伐之(종상이벌지) : 상처를 입은 기회에 달려들어 치면

一擧必有兩實(일거필유양실) : 반드시 한꺼번에 두 실익을 얻는 공이 있을 것입니다.

此猶莊子刺虎之類也(차유장자자호지류야) : 이것은 마치 장자가 호랑이를 찌르는 일과 비슷한 것으로

臣主與王何異也(신주여왕하이야) : 신이 임금을 위해 바치는 계교와 초왕을 위해 바치는 계교가 어찌 다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惠王曰:“善。” 卒弗救。大國果傷,小國亡,〔4〕

惠王曰善(혜왕왈선) : 혜왕이 이르기를 “옳은 말입니다.”하고

卒弗救(졸불구) : 마침내 구해 주지 않았다.

大國果傷(대국과상) : 과연 대국은 상처를 입고

小國亡(소국망) : 소국은 망하였다.

 

秦興兵而伐,大剋之。此陳軫之計也。

秦興兵而伐(진흥병이벌) : 진나라는 출병하여 이를 쳐서

大剋之(대극지) : 크게 이겼는데

此陳軫之計也(차진진지계야) : 이것은 진진의 꾀에 따른 것이었다.

  【注釋】〔1〕“便”,有利。

〔2〕“越”,國名,都會稽(今浙江紹興),疆域主要有今浙江北部和江蘇、安徽、江西的一部分。“不”,通“否”。

〔3〕“中謝”,侍從官。〔4〕“大國果傷,小國亡”,這是夸大的話,不是事實。

  犀首者,魏之陰晉人也,〔1〕名衍,姓公孫氏。與張儀不善。

犀首(서수자) : 서수는

魏之陰晉人也(위지음진인야) : 위나라의 음진 사람인데 名衍(명연) : 이름은 연이고

姓公孫氏(성공손씨) : 성은 공손씨였다.

與張儀不善(여장의불선) : 장의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注釋】〔1〕“陰晉”,邑名,在今陜西華陰縣東。

 

  張儀為秦之魏,魏王相張儀。〔1〕張儀爲秦之魏(장의위진지위) : 장의가 진나라를 위해 위나라에 가자 魏王相張儀(위왕상장의) : 위왕은 장의를 재상으로 삼았다.

 

犀首弗利,故令人謂韓公叔曰:“張儀已合秦魏矣,

犀首弗利(서수불리) : 서수는 이것을 불리한 일이라 하여

故令人謂韓公叔曰(고령인위한공숙왈) : 한나라의 공숙에게 말하기를,

張儀已合秦魏矣(장의이합진위의) : “장의는 이미 진나라와 위나라로 동맹을 맺게 하였습니다.

其言曰‘魏攻南陽,秦攻三川’。

其言曰(기언왈) : 그의 말에 이르기를

魏攻南陽(위공남양) : ‘위나라가 한나라의 남양을 치고

秦攻三川(진공삼천) : 진나라가 한나라의 삼천을 치면 한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고 말하였소.

魏王所以貴張子者,欲得韓地也。且韓之南陽已舉矣,

魏王所以貴張子者(위왕소이귀장자자) : 위왕이 장의를 중히 여기는 것은

欲得韓地也(욕득한지야) : 한나라의 땅을 얻고 싶어서요.

且韓之南陽已擧矣(차한지남양이거의) : 한나라의 남양은 이제 곧 침략을 받을 지경에 이르렀소.

子何不少委焉以為衍功,則秦魏之交可錯矣。〔2〕然則魏必圖秦而棄儀,收韓而相衍。

子何不少委焉以爲衍功(자하불소위언이위연공) : 그대는 어찌하여 얼마쯤 한나라의 국사를 위임하여 연의 공으로 돌리지 않습니까?

則秦魏之交可錯矣(칙진위지교가착의) : 그렇게 하면 진나라와 위나라의 국교가 그칠 것이고

然則魏必圖秦而弃儀(연칙위필도진이기의) : 그치면 위나라는 반드시 진나라를 도모할 생각에 장의를 버리고

收韓而相衍(수한이상연) : 한나라를 자기 편으로 하고 연을 재상으로 삼을 것이오.”라고 하였다.

公叔以為便,因委之犀首以為功。果相魏。張儀去。

公叔以爲便(공숙이위변) : 공숙은 이 방책을 이로운 것이라 생각하여

因委之犀首以爲功(인위지서수이위공) : 한나라의 국사를 서수에게 맡겨 그에게 공로를 세워 주었다.

果相魏(과상위) : 과연 서수는 위나날 재상이 되고 張儀去(장의거) : 장의는 위나라를 떠났다.

 

 【注釋】〔1〕“魏王相張儀”,這在魏惠王后元十三年(公元前三二二年)。

〔2〕“錯”,棄置,丟在一邊。

 

  義渠君朝于魏。〔1〕犀首聞張儀復相秦,害之。

義渠君朝於魏(의거군조어위) : 의거의 군주가 위나라에 입조하였다.

犀首聞張儀復相秦(서수문장의복상진) : 서수는 장의가 또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害之(해지) : 해칠 것을 생각하여

 

犀首乃謂義渠君曰:“道遠不得復過,請謁事情。”〔2〕

犀首乃謂義渠曰(서수내위의거군왈) : 의구의 군주에게 말하기를,

道遠不得復過(도원불득복과) : “그대 나라는 길이 멀어 다시 우리 위나라를 방문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請謁事情曰(청알사정왈) : 그래서 청컨대 어느 정도 비밀 이야기를 말해 두고자 합니다.

 

“中國無事,〔3〕秦得燒掇焚杅君之國;〔4〕

中國無事(중국무사) : 중국의 제후가 진나라를 치지 않으면

秦得燒掇焚杅君之國(진득소철분우군지국) : 진나라는 그대 나라를 쳐서 집을 불사를고 재물을 빼앗을 것입니다.

 

有事,〔5〕秦將輕使重幣事君之國。”

其后五國伐秦。〔6〕有事(유사) : 제후가 진나를 치는 일이 생기면

秦將輕使重幣事君之國(진장경사중폐사군지국) : 진나라는 가벼운 차림의 사자에게 후한 뇌물을 들려 그대 나라를 선길 것입니다.”고 하였다.

其後五國伐秦(기후오국벌진) : 그 뒤에 중국의 5개국이 진나라를 쳤다.

 

會陳軫謂秦王曰:“義渠君者,蠻夷之賢君也,不如賂之以撫其志。”〔7〕

會陳軫謂秦王曰(회진진위진왕왈) : 진진이 진왕에게 말하기를,

義渠君者(의거군자) : “의거의 군주는

蠻夷之賢君也(만이지현군야) : 오랑캐 나라의 현군입니다.

不如賂之以撫其志(불여뢰지이무기지) : 뇌물을 보내어 달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秦王曰:“善。”乃以文繡千純,〔8〕婦女百人遺義渠君。

秦王曰善(진왕왈선) : 진왕은 이르기를“옳다.”하고

乃以文繡千純(내이문수천순) : 비단 천 필,

婦女百人遺義渠君(부녀백인유의거군) : 부녀 백 명을 의거의 군주에게 보냈다.

 

義渠君致群臣而謀曰:“此公孫衍所謂邪?”〔9〕乃起兵襲秦,大敗秦人李伯之下。〔10〕

義渠君致羣臣而謀曰(의거군치군신이모왈) : 의거 군주는 여러 신하를 불러서 이르기를,

此公孫衍所謂邪(차공손연소위사) : “이것이야말로 전에 공손연이 예언했던 바가 아니냐?”고 하고

乃起兵襲秦(내기병습진) :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습격하여

大敗秦人李伯之下(대패진인이백지하) : 이백의 성 아래서 진나라 군사를 크게 깨뜨렸다.

 

【注釋】〔1〕“義渠”,西戎部落之一,主要分布地在今甘肅慶陽、寧縣一帶。

〔2〕“謁”,陳述。〔3〕“中國無事”,指山東六國不進攻秦國。

〔4〕“燒掇焚☐”,焚燒侵略。“掇”,侵掠,音duó。“☐”,割取,音yú。

〔5〕“有事”,指山東各諸侯國攻秦。

〔6〕“五國伐秦”,指秦惠王后元七年(公元前三一八年),楚、魏、韓、齊、趙五國共攻秦。

〔7〕“撫”,安定。〔8〕“純”,匹。音tún。

〔9〕“此公孫衍所謂邪”,指上文公孫衍對義渠君所說的話。〔10〕“李伯”,秦邑。

  張儀已卒之后,犀首入相秦。〔1〕

張儀已卒之後(장의이졸지후) : 장의가 죽은 뒤

犀首入相秦(서수입상진) : 서수는 진나라에 들어가 재상이 되었다.

 

嘗佩五國之相印,為約長。〔2〕

嘗佩五國之相印(상패오국지상인) : 일찍이 그는 5개국 재상의 인수를 동시에 차고

爲約長(위약장) : 합종의 맹약장이 되었다.

 

【注釋】〔1〕“犀首入相秦”,這不合史實。張儀死后,犀首并未繼任秦相。

〔2〕“嘗佩五國之相印,為約長”,指公孫衍主持韓、趙、魏、燕、中山五國相王的事,

時間在周顯王四十六年(公元前三二三年)。

 

  太史公曰:三晉多權變之士,夫言從衡強秦者大抵皆三晉之人也。〔1〕

太史公曰(태사공왈) : 태사공은 말한다.

三晉多權變之士(삼진다권변지사) : “삼진에는 권모와 기이한 변화를 부린 인물이 많다.

夫言從衡彊秦者(부언종형강진자) : 합종과 연형을 부르짖어 진나라를 굳세게 한 자는

大抵皆三晉之人也(대저개삼진지인야) : 대개가 다 삼진 출신이다.

 

夫張儀之行事甚于蘇秦,〔2〕然世惡蘇秦者,以其先死,而儀振暴其短以扶其說,〔3〕成其衡道。

夫張儀之行事甚於蘇秦(부장의지행사심어소진) : 장의의 책모는 소진보다 심하였으나

然世惡蘇秦者(연세악소진자) : 그러나 세상이 장의보다 소진을 미워하는 것은

以其先死(이기선사) : 소진이 죽은 뒤

而儀振暴其短以扶其說(이의진폭기단이부기설) : 장의가 소진의 단점을 선전하고 폭로하고 자기의 유세를 유리하게 하여

成其衡道(성기형도) : 연횡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要之,〔4〕此兩人真傾危之士哉!〔5〕

要之(요지) : 요컨대

此兩人眞傾危之士哉(차양인진경위지사재) : 이 두 사람은 진실로 위험한 인물이로다.

 

【注釋】〔1〕“三晉”,春秋末期,晉國的韓、趙、魏三家大夫瓜分晉地,分別建國,史家稱他們為三晉。“權變”,權謀機變。〔2〕“張儀之行事”,指詐偽的外交手段。〔3〕“振暴”,宣揚和暴露。〔4〕“要之”,總之。〔5〕“傾危”,使國家傾覆危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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