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七十

張儀列傳 第十

장의열전 제10-5

  張儀去楚,因遂之韓,說韓王曰:“韓地險惡山居,

張儀去楚(장의거초) : 장의는 초나를 떠나

因遂之韓(인수지한) : 도중에 한나라에 들려서

說韓王曰(설한왕왈) : 한왕에게 유세하녀 말하기를

韓地險惡山居(한지험악산거) : “한나라의 지세는 험준하고 많은 주민들이 산에서 삽니다.

五谷所生,非菽而麥,〔1〕民之食大抵菽飯藿羹。〔2〕

五谷所生(오곡소생) : 농사짓는 곡식은

非菽而麥(비숙이맥) : 콩이 아니면 보리 정도

民之食大抵飯菽飯藿羹(민지식대저반숙반곽갱) : 백성들의 조석 끼니는 대개가 콩으로 지은 밥이나 콩족입니다.

一歲不收,民不饜糟糠。地不過九百里,無二歲之食。

一歲不收(일세불수) : 1년만 농사를 그르치면

民不饜糟穅(민불염조강) : 백성들은 가루조차 충분히 먹을 수 없습니다.

地不過九百里(지불과구백리) : 토지는 사방 9백 리에 지나지 않고

無二歲之食(무이세지식) : 2년을 지탱할 식량이 없습니다.

料大王之卒,悉之不過三十萬,

料大王之卒(료대왕지졸) : 대왕의 군사들을 헤아려 보건대

悉之不過三十萬(실지불과삼십만) : 모두 다 해도 30만에 불과 합니다.

而廝徒負養在其中矣。〔3〕除守徼亭鄣塞,〔4〕見卒不過二十萬而已矣。〔5〕

而廝徒負養在其中矣(이시도부양재기중의) : 그러고도 그 가운데는 잡역부·짐꾼·취사부가 포함되었고

除守徼亭鄣塞(제수요정장새) : 변경을 지키는 군사와 상을 지키는 군사를 제외하면

見卒不過二十萬而已矣(견졸불과이십만이이의) : 현역군은 20만에 불과합니다 .

秦帶甲百余萬,車千乘,騎萬匹,虎賁之士跿跔科頭貫頤奮戟者,〔6〕至不可勝計。

秦帶甲百餘萬(진대갑백여만) : 그런데 진나라는 무장 병격이 100여 만,

車千乘(차천승) : 전차가 1000승,

騎萬匹(기만필) : 기마가 1만 필,

虎賁之士跿跔科頭貫頤奮戟者(호분지사도구과두관이분극자) : 맨발로 투구도 쓰지 않은 채 돌격하는 자 화살이 날아오는데도 창을 휘두르며 적에게 달려가는 자 등 용맹한 군사가

至不可勝計(지불가승계) :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秦馬之良,戎兵之眾,〔7〕探前趹后蹄間三尋騰者,〔8〕不可勝數。

秦馬之良(진마지량) : 진나라의 말은 건장하고

戎兵之衆(융병지중) : 병사는 많은 데다가

探前趹後蹄閒三尋騰者(탐전결후제한삼심등자) : 달릴 때에는 앞다리로 앞을 찾고 뒷다리는 뒤를 밟아 한 번 뛰면 굽과 굽 사이에 간격이 세 발 길이나 되는 날랜 말이

不可勝數(불가승수) :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山東之士被甲蒙胄以會戰,〔9〕秦人捐甲徒裼以趨敵,〔10〕左挈人頭,〔11〕右挾生虜。

山東之士被甲蒙冑以會戰(산동지사피갑몽주이회전) : 산동의 군사는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모여 싸우는데

秦人捐甲徒裼以趨敵(진인연갑도석이추적) : 진나라 사람은 갑옷을 벗고 직진 가운데로 뛰어들어

左挈人頭(좌설인두) : 왼쪽으로 사람의 머리채를 잡고

右挾生虜(우협생로) : 오른쪽으로 사로잡아 겨드랑에 낄 만큼 아주 용감합니다.

夫秦卒與山東之卒,猶孟賁之與怯夫;〔12〕以重力相壓,猶烏獲之與嬰兒。〔13〕

夫秦卒與山東之卒(부진졸여산동지졸) : 진나라 군사와 산동의 군사를 비교하면

猶孟賁之與怯夫(유맹분지여겁부) : 마치 맹분과 겁장아이을 나란히 하는 것과 같으니

以重力相壓(이중력상압) : 진나라 군사가 산동 군사를 누르는 것은

猶烏獲之與嬰兒(유오획지여영아) : 마치 오획이 어린 아이를 상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夫戰孟賁、烏獲之士以攻不服之弱國,無異垂千鈞之重于鳥卵之上,必無幸矣。〔14〕

夫戰孟賁烏獲之士以攻不服之弱國(부전맹분오획지사이공불복지약국) : 맹분·오획 같은 용사로 하여금 복종하지 않는 약한 나라를 치는 것은

無異垂千鈞之重於鳥卵之上(무이수천균지중어조란지상) : 몇 천 근 무게를 새알 위에다 싣는 것과 같으니

必無幸矣(필무행의) : 반드시 요행은 없을 것입니다.

【注釋】〔1〕“菽”,大豆。“而”,則,即。〔2〕“藿”,豆葉。〔3〕“廝徒負養”,擔任雜役的人。

〔4〕“徼亭”,徼,邊界。徼有亭,以供瞭望。“鄣塞”,塞,險要之處。塞有工事,作為屏障。

〔5〕“見”,通“現”。

〔6〕“跿跔”,徒跣,赤足。音tūjü。“科頭”,空頭,不戴頭盔。“貫頤”,張弓。“貫”,讀為彎弓的彎。

“頤”,弓名。“奮戟”,執戟奮怒地沖入敵陣。“戟”,戈矛的合體,可鉤可刺。

〔7〕“戎兵之眾”,此句是衍文,當刪去。

〔8〕“探前趹后”,馬的前蹄躍向前,后蹄踢地而起,“趹”,音jué。“尋”,古七尺或八尺為尋。

〔9〕“被”,披上。“胄”,頭盔。〔10〕“捐”,棄。“徒裼”,赤腳露體。

〔11〕“挈”,提。“挈”,音qiè。〔12〕“孟賁”,衛國勇士。

〔13〕“烏獲”,秦武王時的大力士。〔14〕“千鈞”,形容極重。古代以三十斤為一鈞。

  “夫群臣諸侯不料地之寡,而聽從人之甘言好辭,比周以相飾也,〔1〕皆奮曰‘聽吾計可以強霸天下’。

夫羣臣諸侯不料地之寡(부군신제후불료지지과) : 대개의 제후들은 자기 영토가 작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而聽從人之甘言好辭(이청종인지감언호사) : 합종론자의 감언의 언사에 혹하여

比周以相飾也(비주이상식야) : 한패가 되어서 합종론이 좋다고 말들을 하고

皆奮曰(개분왈) : 모두 떨쳐 이르기를,

聽吾計可以彊霸天下(청오계가이강패천하) : ‘우리의 계략을 들어야 천하의 강국으로서 승리를 부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夫不顧社稷之長利而聽須臾之說,〔2〕詿誤人主,無過此者。〔3〕

夫不顧社稷之長利而聽須臾之說(부불고사직지장리이청수유지설) : 무릇 국가 영원의 이익을 돌아보지 않고 한때의 경박한 말을 듣는다면

詿誤人主(괘오인주) : 임금을 그르치게 함이

無過此者(무과차자) : 이보다 심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注釋】〔1〕“比周”,勾結。〔2〕“須臾”,短暫的時間。

〔3〕“詿誤”,貽誤。“詿”,音gu4。

  “大王不事秦,秦下甲據宜陽,斷韓之上地,東取成皋、滎陽,〔1〕

大王不事秦(대왕불사진) : 대왕이 진나라를 섬기지 않아

秦下甲據宜陽(진하갑거의양) : 진나라가 병사를 풀어 의양에 웅거하면서

斷韓之上地(단한지상지) : 한나라의 위쪽 지방을 끊어

東取成皐滎陽(동취성고형양) : 동쪽의 성고와 형양을 취할 것입니다.

則鴻臺之宮、桑林之苑非王之有也。〔2〕夫塞成皋,絕上地,則王之國分矣。先事秦則安,不事秦則危。

則鴻臺之宮桑林之苑非王之有也(칙홍대지궁상림지원비왕지유야) : 그렇게 되면 홍대궁 상림원은 이미 임금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夫塞成皐(부새성고) : 무릇 진나라가 성고의 길을 막고

絶上地(절상지) : 위쪽의 땅을 끊으면

則王之國分矣(칙왕지국분의) : 임금의 나라는 쪼개지고 말 것입니다.

先事秦則安(선사진칙안) : 그보다 앞서 진나라를 섬기면 태평하겠거니와

不事秦則危(불사진칙위) : 그렇지 못하면 위험합니다.

夫造禍而求其福報,計淺而怨深,逆秦而順楚,雖欲毋亡,不可得也。

夫造禍而求其福報(부조화이구기복보) : 스스로 화를 만들어 그 복됨을 갚음을 구한다는 것은

計淺而怨深(계천이원심) : 계략으로는 얕은 것이며 진나라의 원한만 깊어질 따름입니다 .

逆秦而順楚(역진이순초) : 진나라를 거스르고 초나라를 따른다면

雖欲毋亡(수욕무망) : 망하지 않을래야

不可得也(불가득야) : 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注釋】〔1〕“滎陽”,韓邑,在今河南滎陽東北。

〔2〕“鴻臺之宮、桑林之苑”,都是韓國的宮苑名。苑,畜養鳥獸的園林,形狀婉轉曲折,所以稱為苑。

  “故為大王計,莫如為秦。〔1〕

故爲大王計(고위대왕계) : 그런 까닭에 대왕을 위해 생가가하건대

莫如爲秦(막여위진) : 진나라에 가담하는 수밖에 좋은 방책은 달리 없습니다.

秦之所欲莫如弱楚,而能弱楚者莫如韓。非以韓能強于楚也。〔2〕其地勢然也。

秦之所欲莫如弱楚(진지소욕막여약초) : 진나라가 바라는 것은 초나라를 위축시키는 일이며

而能弱楚者莫如韓(이능약초자막여한) : 초나라를 위축시킬 수 있기로는 한나라보다 더한 나라가 없습니다 .

非以韓能彊於楚也(비이한능강어초야) : 이것은 한나라가 초나라보다 강해서가 아니고

其地勢然也(기지세연야) : 지세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今王西面而事秦以攻楚,秦王必喜。夫攻楚以利其地,轉禍而說秦,計無便于此者。”

今王西面而事秦以攻楚(금왕서면이사진이공초) : 이제 만약 임금이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기고 초나라를 치면

秦王必喜(진왕필희) : 진왕은 반드시 기뻐할 것입니다.

夫攻楚以利其地(부공초이리기지) : 초나라를 쳐서 토지를 빼앗고

轉禍而說秦(전화이설진) : 화를 굴려서 진나라를 기쁘게 한다면

計無便於此者(계무변어차자) : 이보다 좋은 계책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注釋】〔1〕“為”,《戰國策·韓策一》作“事”,臣服的意思。〔2〕“以”,認為。

  韓王聽儀計。張儀歸報,秦惠王封儀五邑,號曰武信君。

韓王聽儀計(한왕청의계) : 한왕이 장의의 모책에 따랐으므로

張儀歸報(장의귀보) : 장의는 진나라로 돌아와 보고하였다.

秦惠王封儀五邑(진혜왕봉의오읍) : 진혜왕은 장의를 5읍의 영주로 봉하고

號曰武信君(호왈무신군) : 무신군이란 호를 내렸다.

使張儀東說齊湣王曰:〔1〕“天下強國無過齊者,大臣父兄殷眾富樂。

使張儀東說齊湣王曰(사장의동설제혼왕왈) : 그리고 혜왕은 장의를 동쪽 제나라에 보내어 혼왕에게 유세하게 하기를

天下彊國無過齊者(천하강국무과제자) : ‘천하의 강국으로서는 제나라에 미칠 것이 없습니다.

大臣父兄殷衆富樂(대신부형은중부락) : 대신과 부형은 모두 살림이 번성하고 부귀와 안락을 누립니다.

然而為大王計者,皆為一時之說,不顧百世之利。

然而爲大王計者(연이위대왕계자) : 그러면서도 대왕을 위해 게책을 바치는 자는

皆爲一時之說(개위일시지설) : 모두 한때의 의논에 끌려서

不顧百世之利(불고백세지리) : 백 대의 이익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從人說大王者,必曰‘齊西有強趙,南有韓與梁。齊,負海之國也,〔2〕地廣民眾,兵強士勇,雖有百秦,將無奈齊何’。

從人說大王者(종인설대왕자) : 합종론을 가지고 대왕께 말씀드리는 자는

必曰(필왈) : 반드시 이렇게 말합니다.

齊西有彊趙(제서유강조) : ‘제나라는 서쪽에 강국 조나라가 있고

南有韓與梁(남유한여량) : 남쪽에 하나라와 위나라가 있고

齊負海之國也(제부해지국야) : 제나라는 배후에 바다를 낀 나라다.

地廣民衆(지광민중) : 토지는 넓고 주민은 많고

兵彊士勇(병강사용) : 군사는 강하고 용감하여

雖有百秦(수유백진) : 100 개의 진나라를 가지고도

將無柰齊何(장무내제하) : 제나라를 어찌하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大王賢其說而不計其實。夫從人朋黨比周,〔3〕莫不以從為可。

大王賢其說而不計其實(대왕현기설이불계기실) : 대왕은 이 말을 현명한 것으로 알고 그 실질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夫從人朋黨比周(부종인붕당비주) : 저 합종론자들은 서로 도당을 만들고 한동아리가 되어서

莫不以從爲可(막불이종위가) : 합종을 가능하지 않다고 하는 자가 없습니다.

臣聞之,齊與魯三戰而魯三勝,〔4〕國以危亡隨其后,

臣聞之(신문지) : 신이 듣건대

齊與魯三戰而魯三勝(제여로삼전이로삼승) : ‘일직이 제나라와 노나라가 세 번을 싸워 노나라는 세 번 다 이기고도

國以危亡隨其後(국이위망수기후) : 나라가 위태하게 되어 마침내 망했다.’고 말입니다.

雖有戰勝之名,而有亡國之實。是何也? 齊大而魯小也。

雖有戰勝之名(수유전승지명) : 싸움에 이겼다는 이름은 있으면서

而有亡國之實(이유망국지실) : 나라가 망한 결과가 생겼습니다 망했습니다.

是何也(시하야) : 이것은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요?

齊大而魯小也(제대이로소야) : 제나라 대국이요 노나라는 소국이기 때문입니다.

今秦之與齊也,猶齊之與魯也。秦趙戰于河漳之上,再戰而趙再勝秦;〔5〕

今秦之與齊也(금진지여제야) : 가까이는 진나라와 제나라인 경우도

猶齊之與魯也(유제지여로야) : 제나라나 노나라의 예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秦趙戰於河漳之上(진조전어하장지상) : 진나라와 조나라는 하수와 장수의 근방에서

再戰而趙再勝秦(재전이조재승진) : 두 번 사워 조나라가 두 번 다 이겼습니다.

戰于番吾之下,再戰又勝秦。〔6〕四戰之后,趙之亡卒數十萬,邯鄲僅存,〔7〕

戰於番吾之下(전어번오지하) : 번오의 성 아래서도

再戰又勝秦(재전우승진) : 두 번을 싸워 또 진나라에 이겼습니다.

四戰之後(사전지후) : 그러나 네 번을 싸운 뒤에

趙之亡卒數十萬(조지망졸수십만) : 조나라의 전사자는 몇 십만에 달하고

邯鄲僅存(감단근존) : 간신히 서울인 한단을 유지했을 뿐입니다 .

雖有戰勝之名而國已破矣。是何也?秦強而趙弱。

雖有戰勝之名而國已破矣(수유전승지명이국이파의) : 비록 전승의 이름은 있었지만 나라는 이미 다 깨어졌습니다.

是何也(시하야) : 이것은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요?

秦彊而趙弱(진강이조약) : 오직 진나라가 강하고 조나라가 약했기 때문입니다.

 【注釋】〔1〕“齊湣王”,名地,齊宣王之子,公元前三○○年至前二八四年在位。

湣王即位時,張儀已死九年,此處說張儀東說齊湣王,不合事實。

〔2〕“負”,背靠。〔3〕“朋黨”,結成小集團。

〔4〕“齊與魯三戰而魯三勝”,這是假設的話,不是事實。

〔5〕“秦趙戰于河漳之上,再戰而再勝秦”,這兩戰也不見記載,恐不可靠。

“河”指黃河,“漳”指漳水。

〔6〕“戰于番吾之下,再戰又勝秦”,秦攻趙番吾,被趙將李牧打退,事在公元前二三二年,

時張儀已死七十七年。“番吾”,趙邑,在今河北磁縣境。“番”,音p2n或p2。

〔7〕“邯鄲”,趙都,公元前三八六年趙敬侯自晉陽徙都于此。故址在今河北邯鄲市西南十里,

俗稱趙王城。

  “今秦楚嫁女娶婦,〔1〕為昆弟之國。

今秦楚嫁女娶婦(금진초가녀취부) : 이제 진나라와 초나라는 서로 여자를 시집보내어

爲昆弟之國(위곤제지국) : 형제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塞獻宜陽;〔2〕梁效河外;〔3〕趙入朝澠池,〔4〕割河間以事秦。〔5〕

韓獻宜陽(한헌의양) : 한나라는 진나라에 성양의 땅을 바치고

梁效河外(량효하외) : 위나라는 하외를 제공하고

趙入朝澠池(조입조민지) : 조나라는 민지에서 진나라의 회견에 응하였고

割河閒以事秦(할하한이사진) : 하간의 땅을 쪼개어 진나라를 받들었습니다.

大王不事秦,秦驅韓梁攻齊之南地,悉趙兵渡清河,〔6〕指博關,〔7〕

大王不事秦(대왕불사진) : 대왕께서 만약 진나라를 받들지 않으면

秦驅韓梁攻齊之南地(진구한량공제지남지) : 진나라는 하나라와 위나라를 앞장세워 제나라의 남부를 공격하고

悉趙兵渡淸河(실조병도청하) : 조나라의 병력을 모두 들어서 청하를 건너

指博關(지박관) : 박관을 향해 진격할 것입니다.

臨菑、即墨非王之有也。〔8〕國一日見攻,雖欲事秦,不可得也。是故愿大王孰計之也。”

臨菑卽墨非王之有也(임치즉묵비왕지유야) : 그렇게 되면 임치와 즉묵은 임금의 소유가 되지 못합니다.

國一日見攻(국일일견공) : 제나라가 한 번 진나라에 공격을 받으면

雖欲事秦(수욕사진) : 진나라를 섬기고 싶어도

不可得也(불가득야) : 이미 때가 늦습니다.

是故願大王孰計之也(시고원대왕숙계지야) :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注釋】〔1〕“秦楚嫁女娶婦”,據《六國年表》,秦往楚迎婦在秦昭王二年(公元前三五五年),時張儀已死五年。

〔2〕“韓獻宜陽”,這不合事實。秦取宜陽是用武力攻取,并非韓國所獻。

事在秦武王四年(公元前三○七年),張儀已死三年。

〔3〕“梁效河外”,“河外”,地區名,指曲沃(今山西聞喜東北)、平周(今山西介休西)等地。

據《六國年表》,公元前三二二年,秦取曲沃、平周,可見河外入秦也是秦用武力攻取,不是魏國所獻。

〔4〕“趙入朝澠池”,據《六國年表》,秦、趙會澠池在周赧王三十六年(公元前二七九年),時張儀已死三十年。

〔5〕“割河間以事秦”,河間,地區名,指黃河、漳水之間。秦、趙澠池之會時,趙并無割河間事。

〔6〕“清河”,古河名,在齊、趙二國之間,源出今河南內黃縣南。

〔7〕“博關”,古關名,在今山東博平縣西北。

〔8〕“即墨”,齊邑,故城在今山東平度東南。

  齊王曰:“齊僻陋,隱居東海之上,未嘗聞社稷之長利也。”乃許張儀。

齊王曰(제왕왈) : 제나라 왕이 이르기를

齊僻陋(제벽루) : “제나라는 벽지에 있는 보잘 것 없는 미개의 나라로서

隱居東海之上(은거동해지상) : 과인은 동해와 근방에 은거해 있으므로

未嘗聞社稷之長利也(미상문사직지장리야) : 지금껏 국가 장구의 이익을 들은 일이 없었습니다.”하고

乃許張儀(내허장의) : 장의의 진언을 받아들였다.

'중국고전 > 史記 사기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의열전 제10-7  (0) 2012.05.10
장의열전 제10-6  (0) 2012.05.09
장의열전 제10-4  (0) 2012.05.08
장의열전 제10-3  (0) 2012.05.08
장의열전 제10-2  (0) 2012.05.0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