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七十
張儀列傳 第十
장의열전 제10-2
司馬錯曰:“不然。臣聞之,欲富國者務廣其地,欲強兵者務富其民,欲王者務博其德,〔1〕
司馬錯曰(사마착왈) : 사마척이 말하기를
不然(불연) : “그렇지 않습니다
臣聞之(신문지) : 신이 듣건대
欲富國者務廣其地(욕부국자무광기지) : ‘나라를 부하게 하려는 자는 땅을 넓히는 일을 힘쓰고
欲彊兵者務富其民(욕강병자무부기민) : 군사를 강하게 하열는 자는 백성이 부하기를 힘쓰고
欲王者務博其德(욕왕자무박기덕) : 임금의 길을 행하려는 자는 덕을 넓히기를 힘쓴다.’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三資者備而王隨之矣。〔2〕今王地小民貧,故臣愿先從事于易。
三資者備而王隨之矣(삼자자비이왕수지의) : 이 세 가지의 자격이 갖추어지면 왕업은 그것에 따라서 자연히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今王地小民貧(금왕지소민빈) : 지금 임금의 땅은 작고 임금의 백성은 가난합니다
故臣願先從事於易(고신원선종사어이) : 그런 까닭에 나는 먼저 쉬운 것부터 착수하시기를 원합니다
夫蜀,西僻之國也,而戎翟之長也,有桀紂之亂。〔3〕
夫蜀(부촉) : 촉나라는
西僻之國也(서벽지국야) :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나라로서
而戎翟之長也(이융적지장야) : 오랑캐 주의 으뜸입니다
有桀紂之亂(유걸주지란) : 그 임금에는 걸왕과 주왕에 비길 만한 난행이 있습니다
以秦攻之,譬如使豺狼逐群羊。得其地足以廣國,取其財足以富民繕兵,〔4〕不傷眾而彼已服焉。
以秦攻之(이진공지) : 진나라의 힘으로써 이를 공격하는 것은
譬如使豺狼逐羣羊(비여사시랑축군양) : 마치 호랑이로 하여금 양때를 쫓게 하는 것과 같으니
得其地足以廣國(득기지족이광국) : 토지를 얻으면 나라를 넓힐 수도 있고
取其財足以富民繕兵(취기재족이부민선병) : 재물을 취하면 백성을 부하게 할 수 있으며
不傷衆而彼已服焉(불상중이피이복언) : 군사는 무기를 수선하고 백성을 상하지 않도록 하면 저쪽 나라는 쉽게 복종할 것입니다
拔一國而天下不以為暴,利盡西海而天下不以為貪,〔5〕
拔一國而天下不以爲暴(발일국이천하불이위폭) : 그 위에 한 나라를 항복받았다고 해서 천하는 이것을 난폭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며
利盡西海而天下不以爲貪(리진서해이천하불이위탐) : 서해의 이익을 몽땅 취했다고 해서 천하는 이것을 탐욕하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是我一舉而名實附也,〔6〕而又有禁暴止亂之名。
是我一擧而名實附也(시아일거이명실부야) :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거에 명예와 실리를 얻는 바가 될 것이고
而又有禁暴止亂之名(이우유금폭지란지명) : 게다가 난폭을 금하고 혼란을 그치게한 명분까지 있게 될 것입니다
今攻韓,劫天子,〔7〕惡名也,而未必利也,
今攻韓(금공한) : 그런데 지금 한나라를 쳐서
劫天子(겁천자) : 천자를 위협하는 것은
惡名也(악명야) : 악명을 쓰는 것이며
而未必利也(이미필리야) : 반드시 이익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又有不義之名,〔8〕而攻天下所不欲,危矣。
又有不義之名(우유불의지명) : 또 불의의 이름을 얻어서
而攻天下所不欲(이공천하소불욕) : 천하의 누구도 공격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주나라를 치고자 함은
危矣(위의) : 위험합니다
臣請謁其故:〔9〕周,天下之宗室也;〔10〕齊,韓之與國也。〔11〕
臣請謁其故(신청알기고) : 그 까닭을 말씀드리게 하여 주기를 신은 청합니다
周天下之宗室也(주천하지종실야) : 주나라는 천하의 종실입니다
齊韓之與國也(제한지여국야) : 제나라와 한나라는 주나라의 친한 나라입니다
周自知失九鼎,韓自知亡三川,將二國并力合謀,以因乎齊、趙而求解乎楚、魏,〔12〕
周自知失九鼎(주자지실구정) : 주나라가 9정을 잃고
韓自知亡三川(한자지망삼천) : 한나라가 삼천을 잃은 것을 알면
將二國幷力合謀(장이국병력합모) : 두 나라는 힘을 합하고 꾀를 합하여
以因乎齊趙而求解乎楚魏(이인호제조이구해호초위) : 제나라와 조나라에 달라 붙고 초나라와 위나라에 구원을 청할 것입니다
以鼎與楚,以地與魏,王弗能止也。
以鼎與楚(이정여초) : 만약 주나라가 구정을 초나라에 주고
以地與魏(이지여위) : 땅을 위나라에 줄지라도
王弗能止也(왕불능지야) : 임금은 이것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此臣之所謂危也。不如伐蜀完。”〔13〕
此臣之所謂危也(차신지소위위야) : 이것이 신이 말하고자 하는 이른바 위험입니다
不如伐蜀完(불여벌촉완) : 촉나라를 치는 방책보다 더 나은 것은 없습니다.”고 하였다
【注釋】〔1〕“王”,指統治天下的王業。音w4ng。〔2〕“資”,條件,憑借。
〔3〕“桀紂”,夏、商兩代的末代國君,以昏庸、殘暴著稱。〔4〕“繕兵”,治兵器。
〔5〕“西海”,指今川西一帶古蜀國之地。〔6〕“名實”,“名”,指不貪暴。“實”,指土地財寶。
〔7〕“劫”,脅迫。“天子”,指當時的周慎靚王(公元前三二○年至前三一五年在位)。
〔8〕“不義”,指韓無罪而秦國去攻打它,是不義的行為。〔9〕“謁”,陳述。
〔10〕“宗室”,周室為天下所宗仰,故稱宗室。
〔11〕“齊,韓之與國也”,“齊”下疑脫一“趙”字,下文說:“以因乎齊趙。”“與國”,同盟國。
〔12〕“因”,依靠。“求解”,求其和解。〔13〕“完”,安全。
惠王曰:“善,寡人請聽子。”卒起兵伐蜀,十月,〔1〕取之,
惠王曰善(혜왕왈선) : 혜왕이 이르기를 “옳구나
寡人請聽子(과인청청자) : 과인은 그대를 따르리라.”고 하고
卒起兵伐蜀(졸기병벌촉) :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촉나라를 쳐서
十月(십월) : 10월에
取之(취지) : 그것을 취하였다.
遂定蜀,貶蜀王更號為侯,而使陳莊相蜀。〔2〕
遂定蜀(수정촉) : 촉나라를 진정시키고
貶蜀王更號爲侯(폄촉왕갱호위후) : 촉왕의 지위를 내리고 칭호를 고쳐서 촉후로 하고
而使陳莊相蜀(이사진장상촉) : 진장을 촉나라의 재상으로 하였다
蜀既屬秦,〔3〕秦以益強,富厚,輕諸侯。
蜀旣屬秦(촉기속진) : 촉나라가 진나라에 예속되자
秦以益彊(진이익강) : 진나라는 더욱 강해지고
富厚(부후) : 부강해져
輕諸侯(경제후) : 제후를 가벼이 보았다
【注釋】〔1〕“十月”,指秦惠王后元九年(公元前三一六年)十月。
〔2〕“陳莊”,秦臣。〔3〕“屬”,歸附。
秦惠王十年,使公子華與張儀圍蒲陽,〔1〕降之。儀因言秦復與魏,而使公子繇質于魏。〔2〕
秦惠王十年(진혜왕십년) : 진혜왕 10년에
使公子華與張儀圍蒲陽(사공자화여장의위포양) : 공자 화와 장의에 명하여 위나라 포양을 포위하게 하여
降之(강지) : 항복받았는데
儀因言秦復與魏(의인언진복여위) : 장의는 진왕에게 건의하여 포양을 위나라에 돌려주고
而使公子繇質於魏(이사공자요질어위) : 진공자 요를 위나라에 볼모로 보냈다
儀因說魏王曰:“秦王之遇魏甚厚,魏不可以無禮。”魏因入上郡、少梁,〔3〕謝秦惠王。
儀因說魏王曰(의인설위왕왈) : 이렇게 하고 장의는 위왕에게 말하기를
秦王之遇魏甚厚(진왕지우위심후) : “진왕이 위나를 대우하는 것이 이렇게도 후하다
魏不可以無禮(위불가이무례) : 위나라로서 여기에 답례하는 것이 없을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魏因入上郡少梁(위인입상군소량) : 위나라는 상군과 소량을 진나라에 바쳐
謝秦惠王(사진혜왕) : 혜왕에게 감사하였다
惠王乃以張儀為相,更名少梁曰夏陽。〔4〕
惠王乃以張儀爲相(혜왕내이장의위상) : 그리하여 혜왕은 장의를 재상으로 하고
更名少梁曰夏陽(경명소량왈하양) : 소량의 지명을 하양이라고 고쳤다
【注釋】〔1〕“公子華”,秦公子,世系不詳。“蒲陽”,魏邑,在今山西隰縣西北。
〔2〕“公子繇”,秦惠王子。“質”,作人質。
〔3〕“因入上郡、少梁”,據《秦本紀》、《六國年表》及《魏世家》,秦惠王十年,魏納上郡于秦,并無少梁。
少梁已于秦孝公八年(公元前三五四年)入秦。“上郡”,魏文侯所置郡,轄境包括今陜西榆林、延安一帶。
〔4〕“更少梁曰夏陽”,據《秦本紀》,更名在秦惠王十一年(公元前三二七年),《傳》文誤前一年。
儀相秦四歲,立惠王為王。〔1〕居一歲,為秦將,取陜。〔2〕筑上郡塞。
儀相秦四歲(의상진사세) : 장의는 진나라 대상이 된 지 4년만에
立惠王爲王(입혜왕위왕) : 공이라고 일컫던 혜왕을 이때부터 왕이라고 하였다
居一歲(거일세) : 1년 뒤에
爲秦將(위진장) : 진나라의 장군이 되어
取陜(취섬) : 위나라의 섬을 취하고
築上郡塞(축상군새) : 상군의 성채를 쌓았다
【注釋】〔1〕“立惠王為王”,秦惠王稱王在其十三年(公元前三二五年),即周顯王四十四年。惠王因此改次年為后元元年。
〔2〕“陜”,魏邑,今河南陜縣。
其后二年,使與齊、楚之相會齧桑。〔1〕東還而免相,相魏以為秦,欲令魏先事秦而諸侯效之。魏王不肯聽儀。
其後二年(기후이년) : 그 뒤 2년에
使與齊楚之相會齧桑東(사여제초지상회설상동) : 사자로 제나라와 초나라의 재상과 설상의 동쪽에서 회합하고
還而免相(환이면상) : 돌아와서는 진나라 재상을 그만두고
相魏以爲秦(상위이위진) : 위나라 재상이 되어서
欲令魏先事秦而諸侯效之(욕령위선사진이제후효지) : 진나라를 도울 계교를 세웠다 먼저 위나라로 하여금 진나라에 신하의 예를 바치게 하고 제후들을 이에 따르게 만들려 하였는데
魏王不肯聽儀(위왕불긍청의) : 위왕은 장의의 말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秦王怒,伐取魏之曲沃、平周,〔2〕復陰厚張儀益甚。張儀慚,無以歸報。留魏四歲而魏襄王卒,哀王立。〔3〕
秦王怒(진왕노) : 진왕은 노하여
伐取魏之曲沃平周(벌취위지곡옥평주) : 위나라의 곡옥과 평주를 공략하고
復陰厚張儀益甚(복음후장의익심) : 또 장의를 더욱더 두텁게 대우하였으므로
張儀慙無以歸報(장의참무이귀보) : 장의는 진나라에 돌아가서 보고할 만한 공적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였다
留魏四歲而魏襄王卒(류위사세이위양왕졸) : 위나라에 체류한지 4년에 위양왕이 죽고
哀王立(애왕입) : 애왕이 섰다
張儀復說哀王,哀王不聽。于是張儀陰令秦伐魏。魏與秦戰,敗。
張儀復說哀王(장의복설애왕) : 장의는 또 애왕을 설득하였는데
哀王不聽(애왕불청) : 애왕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於是張儀陰令秦伐魏(어시장의음령진벌위) : 그래서 장의는 가만히 진나라에 통보하여 위나라를 치게 하니
魏與秦戰敗(위여진전패) : 위나라는 진나라와 싸워서 패하였다
【注釋】〔1〕“其后二年,使與齊、楚之相會齧桑”,據《秦本紀》、《六國年表》及《魏世家》、
《田齊世家》,齧桑之會在張儀取陜的次年,并非“其后二年”。又,參與齧桑之會的還有魏國。
“齧桑”,魏地,在今江蘇沛縣西南。
〔2〕“曲沃”,魏邑,在今河南靈寶東北。“平周”,魏邑,在今山西介休西。
〔3〕“魏襄王卒,哀王立”,據《竹書紀年》,魏并無哀王一代,此處當作“魏惠王卒,襄王立”,以下“哀王”亦當作“襄王”。
明年,齊又來敗魏于觀津。〔1〕秦復欲攻魏,先敗韓申差軍,斬首八萬,諸侯震恐。
明年(명년) : 이듬해에
齊又來敗魏於觀津(제우래패위어관진) : 제나라도 공격해 와서 위나라를 관진에서 깨뜨렸다
秦復欲攻魏(진복욕공위) : 진나라는 다시 위나라를 치려고
先敗韓申差軍(선패한신차군) : 먼저 한나라의 장수 신차의 군사를 부수고
斬首八萬(참수팔만) : 목을 베기를 8만에 달하니
諸侯震恐(제후진공) : 제후들은 떨며 겁을 내었다
而張儀復說魏王曰:“魏地方不至千里,卒不過三十萬。
而張儀復說魏王曰(이장의복설위왕왈) : 장의는 또 위왕에게 말하기를
魏地方不至千里(위지방불지천리) : “위나라 영토는 사방 천리 미만으로
卒不過三十萬(졸불과삼십만) : 군사는 30만에 불과합니다
地四平,諸侯四通輻湊,〔2〕無名山大川之限。〔3〕從鄭至梁二百余里,〔4〕車馳人走,不待力而至。
地四平(지사평) : 토지는 사방이 평탄해서
諸侯四通輻湊(제후사통폭주) : 제후의 나라와의 도로는 4통으로 열려 있고
無名山大川之限(무명산대천지한) : 명산대천으로 경계를 이룬 곳도 없고
從鄭至梁二百餘里(종정지량이백여리) : 한나라의 정에서 위나라의 대량가지 2백여 리 사이에
車馳人走(차치인주) : 수레는 달리고 사람은 뛰어
不待力而至(불대력이지) : 힘에 수고로움이 없이 수월하게 대량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梁南與楚境,西與韓境,北與趙境,東與齊境,卒戍四方,守亭鄣者不下十萬。〔5〕
梁南與楚境(량남여초경) : 남쪽은 초나라와 접경하고
西與韓境(서여한경) : 서쪽은 한나라에 접경하고
北與趙境(북여조경) : 북쪽은 조나라와 접경하고
東與齊境(동여제경) : 동쪽은 제나라와 접경하고 있으므로
卒戍四方(졸수사방) : 군사는 사방을 지키고
守亭鄣者不下十萬(수정장자불하십만) : 정장을 지키는 군사는 10만이 넘어야 됩니다
梁之地勢,固戰場也。
梁之地勢(량지지세) : 양의 지세는
固戰場也(고전장야) : 참으로 싸음터가 되기에 알맞습니다
梁南與楚而不與齊,則齊攻其東;東與齊而不與趙,則趙攻其北;
梁南與楚而不與齊(량남여초이불여제) : 위나라가 남쪽의 초나라와 결탁하여 제나라와 손잡지 않으면
則齊攻其東(칙제공기동) : 제나라는 위나라의 동쪽을 공격할 것입니다
東與齊而不與趙(동여제이불여조) : 만약 동족의 제나라와 맺고 조나라와 맺지 않는다면
則趙攻其北(칙조공기북) : 조나라는 위나라의 북쪽을 공격할 것입니다
不合於韓,則韓攻其西;不親于楚,則楚攻其南:此所謂四分五裂之道也。
不合於韓(불합어한) : 한나라와 연합하지 않으면
則韓攻其西(칙한공기서) : 한나라는 위나라의 서쪽을 공격할 것이며
不親於楚(불친어초) : 초나라와 친선하지 않으면
則楚攻其南(칙초공기남) : 초나라는 위나라의 남쪽을 공격할 것입니다
此所謂四分五裂之道也(차소위사분오열지도야) : 이것은 이른자 사분오렬의 형세라는 것입니다
【注釋】〔1〕“齊”,國名。戰國七雄之一,都臨淄(今山東淄博市東北),
疆域有今山東半島的大部分及河北省的一部。“觀津”,當作”觀澤”,魏邑,在今河南清豐南。
〔2〕“輻湊”,好像車輻湊集到轂上,比喻這里是交通中心。〔3〕“限”,阻隔。
〔4〕“從鄭至梁二百余里”,此處所記的里數有誤。《戰國策·魏策一載》,“從鄭至梁,不過百里;從陳至梁,
二百余里。”“鄭”,指韓國國都,今河南新鄭縣。“梁”,指魏國首都大梁,今河南開封市。
〔5〕“亭鄣”,邊境上的軍事據點,有吏士防守。
“且夫諸侯之為從者,將以安社稷尊主強兵顯名也。〔1〕
且夫諸侯之爲從者(차부제후지위종자) : 제후가 합동하려는 근본은
將以安社稷尊主彊兵顯名也(장이안사직존주강병현명야) : 그것으로 나라를 편안하게 하여 군주를 높이고 군사를 든든히 하고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今從者一天下,〔2〕約為昆弟,〔3〕刑白馬以盟洹水之上,〔4〕以相堅也。
今從者一天下(금종자일천하) : 지금 합종론자는 천하의 제후를 하나로 하여
約爲昆弟(약위곤제) : 형제의 의를 맺어
刑白馬以盟洹水之上(형백마이맹원수지상) : 백마를 베어서 피를 빨고 환수의 근방에서 맹세하여
以相堅也(이상견야) : 서로의 결함을 굳게 하려 합니다
而親昆弟同父母,尚有爭錢財,而欲恃詐偽反覆蘇秦之余謀,其不可成亦明矣。
而親昆弟同父母(이친곤제동부모) : 그러나 육친의 형제로서 부모를 같이한 사이에도
尙有爭錢財(상유쟁전재) : 재산을 다투는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而欲恃詐僞反覆蘇秦之餘謀(이욕시사위반복소진지여모) : 사기와 배반한 소진의 남은 꾀는 아무리 자신을 하여도
其不可成亦明矣(기불가성역명의) : 성공하지 못할 것은 뻔한 일입니다
【注釋】〔1〕“社稷”,社是土地神,稷是谷神。古代國君都要祭社稷,所以社稷就成為國家的代稱。
〔2〕“從者”,主張合縱的人。〔3〕“昆弟”,兄弟。
〔4〕“洹水”,水名,源出今河南林縣隆慮山,逕安陽至內黃入衛水。
“大王不事秦,秦下兵攻河外,〔1〕據卷、衍、燕、酸棗,〔2〕劫衛取陽晉,〔3〕則趙不南,
大王不事秦(대왕불사진) : 대왕께서 맹약에 따라 진나라를 섬기지 않고
秦下兵攻河外(진하병공하외) : 진나라가 출병하여 하외를 공격하고
據卷衍酸棗(거권연산조) : 진·연·산조를 근거지로 하여
劫衛取陽晉(겁위취양진) : 위나라를 위협하고 양진을 취한다면
則趙不南(칙조불남) : 조나라는 남쪽의 위나라와 통할 수 없고 조나라는 북쪽의 위나라와 통할 수 없습니다
趙不南而梁不北,梁不北則從道絕,從道絕則大王之國欲毋危不可得也。
趙不南而梁不北(조불남이량불북) : 조나라가 남에게 통하지 못하고 위나라 양이 북에 통하지 못합니다
梁不北則從道絶(량불북칙종도절) : 위나라 양이 북에 통하지 못하면 합종의 길은 끊어지고
從道絶(종도절) : 합종의 길이 끊어지면
則大王之國欲毋危不可得也(칙대왕지국욕무위불가득야) : 대왕의 나라는 아무리 안전을 원해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秦折韓而攻梁,〔4〕韓怯于秦,秦、韓為一,梁之亡可立而須也。〔5〕此臣之所為大王患也。
秦折韓而攻梁(진절한이공량) : 진나라가 한나라를 제압하여 위나라 양을 공격하고
韓怯於秦(한겁어진) : 한나라가 진나라를 겁내어서
秦韓爲一(진한위일) : 진나라와 한나라가 연합하면
梁之亡可立而須也(량지망가입이수야) : 위나라 양의 멸망은 곧 실현될 것입니다
此臣之所爲大王患也(차신지소위대왕환야) : 이것이 대왕을 위해 신이 걱정하는 바입니다
【注釋】〔1〕“河外”,地區名。戰國時稱潼關以東、黃河以北為河內,黃河以南為河外。
此處指的即下文卷、衍、燕、酸棗等地。
〔2〕“卷”,魏邑,在今河南原陽縣舊原武西北。“衍”,魏邑,在今河南鄭州市北。
“燕”,魏邑,即南燕,故城在今河南延津東北。“酸棗”,魏邑,在今河南延津西南。
〔3〕“衛”,戰國時小國,為泗上十二諸侯之一。都帝丘(今河南濮陽)。“陽晉”,衛邑,在今山東鄆城西。
〔4〕“折”,制,控制。〔5〕“立而須”,指為時極短。“須”,等待。
“為大王計,莫如事秦。事秦則楚、韓必不敢動;無楚、韓之患,〔1〕則大王高枕而臥,〔2〕國必無憂矣。
爲大王計(위대왕계) : 대왕의 이해를 생각하여보건대
莫如事秦(막여사진) : 진나를 섬기는 것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습니다
事秦則楚韓必不敢動(사진칙초한필불감동) : 진나라를 섬기면 초나라와 한나라는 반드시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無楚韓之患(무초한지환) : 위나라에 초나라 한나라의 걱정이 없으면
則大王高枕而臥(칙대왕고침이와) : 대왕은 베개를 높이 하여 편안히 잘 수 있고
國必無憂矣(국필무우의) : 나라에 반드시 우환이 없을 것입니다
【注釋】〔1〕“患”,禍。〔2〕“高枕而臥”,無憂無慮。
“且夫秦之所欲弱者莫如楚,而能弱楚者莫如梁。楚雖有富大之名而實空虛;其卒雖多,然而輕走易北,〔1〕不能堅戰。
且夫秦之所欲弱者莫如楚(차부진지소욕약자막여초) : 또 장차 진나라가 누르고 싶어하는 것은 초나라가 으뜸이며
而能弱楚者莫如梁(이능약초자막여량) : 초나라를 누를 수 있는 것은 위나라 밖에는 없습니다
楚雖有富大之名而實空虛(초수유부대지명이실공허) : 초나라는 부강한 나라로 알려졌지만 실질은 공허하며
其卒雖多(기졸수다) : 군사는 많으나
然而輕走易北(연이경주이패) : 움직임이 가볍고 도망하기를 빨리해서
不能堅戰(불능견전) : 굳건히 지속해서 싸울 수 없습니다
悉梁之兵南面而伐楚,勝之必矣。割楚而益梁,虧楚而適秦,〔2〕嫁禍安國,〔3〕此善事也。
悉梁之兵南面而伐楚(실량지병남면이벌초) : 위나라 군사를 몽땅 일으켜서 남쪽으로 향하여 초나를 친다면
勝之必矣(승지필의) : 이기는 것은 필연입니다
割楚而益梁(할초이익량) : 초나라 땅을 쪼개어 위나라에 더하고
虧楚而適秦(휴초이적진) : 초나라 땅을 부수어 진나라에 돌려주는 것은
嫁禍安國(가화안국) : 재앙을 초나라에 전가하여 자기 나라를 편안히 함이니
此善事也(차선사야) : 진실로 좋은 방책이라 하겠습니다
大王不聽臣,秦下甲士而東伐,雖欲事秦,不可得矣。
大王不聽臣(대왕불청신) : 대왕께서 만약에 신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秦下甲士而東伐(진하갑사이동벌) : 진나라는 군사를 동원하려 동쪽으로 위나라를 칠 것입니다
雖欲事秦(수욕사진) : 이렇게 되면 진나라를 섬기려고 해도
不可得矣(불가득의) :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注釋】〔1〕“輕走易北”,容易被打敗而逃走。“走”,逃。“北”,敗退。
〔2〕“適秦”,取悅于秦。“適”,悅。〔3〕“嫁禍安國”,嫁禍指“虧楚”,安國指“適秦”。
“且夫從人多奮辭而少可信,〔1〕說一諸侯而成封侯,是故天下之游談士莫不日夜搤腕瞋目切齒以言從之便,〔2〕以說人主。
且夫從人多奮辭而少可信(차부종인다분사이소가신) : 합종론자는 어떤 사람이나 큰 소리를 치는 자가 많아서 믿을 만한 자가 적습니다
說一諸侯而成封侯(설일제후이성봉후) : 제후 한 사람을 설득하면 봉후가 되므로
是故天下之游談士(시고천하지유담사) : 그래서 천하의 유세자는
莫不日夜搤腕瞋目切齒以言從之便(막불일야액완진목절치이언종지변) : 밤낮으로 팔을 걷고 눈을 부릅떠면서 이를 깨물고 합종의 이로움을 말하지 않음이 없고
以說人主(이설인주) : 이로써 군주를 설득합니다
人主賢其辯而牽其說,豈得無眩哉。〔3〕
人主賢其辯而牽其說(인주현기변이견기설) : 군주가 그 변설을 현명한 것이라고 하여 그 말에 끌리면
豈得無眩哉(개득무현재) : 어찌 현혹됨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注釋】〔1〕“奮辭”,夸張的話。
〔2〕“搤腕”,用左手抓住右手的手腕。“搤”,同“扼”。“瞋目”,張大眼睛。“切齒”,牙齒互相磨擦。
以上都是合縱之士游說諸侯時激昂慷慨的表情。
〔3〕“眩”,眼花,引申為迷惑。
“臣聞之,積羽沉舟,群輕折軸,〔1〕眾口鑠金,〔2〕積毀銷骨,故愿大王審定計議,且賜骸骨辟魏。”〔3〕
臣聞之(신문지) : 신이 듣건대
積羽沈舟(적우심주) : ‘쌓아서 겹치면 가벼운 깃털도 배를 가라앉힐 수 있고
羣輕折軸(군경절축) : 너무 많이 실으면 가벼운 물건도 수레의 심대를 부러뜨리고
衆口鑠金(중구삭금) : 여러 사람이 함께 말하면 굳은 쇠도 녹이고
積毁銷骨(적훼소골) : 사람들의 악담이 많으면 단단한 뼈도 녹는다.’고 하였습니다.
故願大王審定計議(고원대왕심정계의) : 대왕께서는 계략을 신중히 정하시기를 원하며
且賜骸骨辟魏(차사해골벽위) : 장의는 휴가를 얻어서 얼마 동안 위나라를 떠나고자 합니다.“고 했다 .
【注釋】〔1〕“折軸”,折斷車軸。〔2〕“眾口鑠金”,眾口所毀,雖金石也可銷熔。
〔3〕“賜骸骨”,許其引退。“骸骨”,是對自己身體的謙稱。
哀王于是乃倍從約而因儀請成于秦。〔1〕張儀歸,復相秦。三歲而魏復背秦為從。
哀王於是乃倍從約(애왕어시내배종약) : 그리하여 애왕은 합종의 맹약을 배반하고
而因儀請成於秦(이인의청성어진) : 장의를 중간에 세워 지나라에 화친을 청하였다
張儀歸(장의귀) : 장의는 진나라로 돌아와서
復相秦(복상진) : 다시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중국고전 > 史記 사기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의열전 제10-4 (0) | 2012.05.08 |
---|---|
장의열전 제10-3 (0) | 2012.05.08 |
장의열전 제10-1 (0) | 2012.05.07 |
소진 열전 제9-7 (0) | 2012.05.04 |
소진 열전 제9-6 (0) | 2012.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