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七十

張儀列傳 第十

장의열전 제10-1

張儀者,魏人也。〔1〕

張儀者(장의자) : 장의는

魏人也(위인야) : 위나라 사람이다

始嘗與蘇秦俱事鬼谷先生,〔2〕學術,〔3〕蘇秦自以不及張儀。

始嘗與蘇秦俱事鬼谷先生(시상여소진구사귀곡선생) : 처음에 소진과 함께 귀곡선생을 섬겨

學術(학술) : 종형술을 배웠다

蘇秦自以不及張儀(소진자이불급장의) : 소진은 스스로 재주가 장의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注釋】〔1〕“魏”,國名。戰國七雄之一,初都安邑(今山西夏縣北),魏惠王遷都大梁(今河南開封市),

其疆域包括今山西省西南部及河南省東部,以及陜西、安徽的部分地區。

〔2〕“鬼谷先生”,鬼谷所在,有幾種不同的說法。這是縱橫家夸張蘇秦、張儀的故事,故神其說。

鬼谷先生是假托的人名,鬼谷所在也不必指實。〔3〕“學術”,學習游說之術。

張儀已學而游說諸侯。

張儀已學而游說諸侯(장의이학이유설제후) : 장의는 학업을 마치자 제후들에게 유세를 하면서 돌아다녔다

嘗從楚相飲,〔1〕已而楚相亡璧,〔2〕

門下意張儀,〔3〕

曰:“儀貧無行,必此盜相君之璧。”

嘗從楚相飮(상종초상음) : 어느 때 초나라 재상과 서로 술을 마시는데

已而楚相亡璧(이이초상망벽) : 초나라의 재상의 벽옥이 없어졌다

門下意張儀曰(문하의장의왈) : 재상의 빈객들은 장의를 의심하여 이르기를

儀貧無行(의빈무행) : ‘장의는 가난뱅이로 품행이 좋지 못하다

必此盜相君之璧(필차도상군지벽) : 재상의 구슬을 훔친 것은 반드시 그자의 소행일 것이다.’하고

共執張儀,掠笞數百,〔4〕不服,醳之。〔5〕

共執張儀(공집장의) : 함께 장의를 붙들어서

掠笞數百(약태수백) : 매 몇백 대를 쳤는데

不服(불복) : 자백하지 않으므로

醳之(역지) : 매를 그쳤다

其妻曰:“嘻!〔6〕子毋讀書游說,安得此辱乎?”

其妻曰嘻(기처왈희) : 그의 아내가 이르기를

子毋讀書游說(자무독서유설) : “아, 당신이 독서와 유세를 하지 않았던들

安得此辱乎(안득차욕호) : 어찌 이런 치욕은 당하겠습니까.”하고 탄식하니

張儀謂其妻曰:“視吾舌尚在不?”〔7〕

張儀謂其妻曰(장의위기처왈) : 장의가 그의 아내에게 물었다

視吾舌尙在不(시오설상재불) : “내 혀가 아직도 남아 있는가 없느가?”

其妻笑曰:“舌在也。”

其妻笑曰(기처소왈) : 그의 아내는 웃으며 대답했다.

舌在也(설재야) : “혀는 남아 있습니다.”

儀曰:“足矣。”

儀曰(의왈) : 장의는 말하였다.

足矣(족의) : “그러면 됐다.”

 【注釋】〔1〕“楚相”,指楚國令尹。〔2〕“璧”,古代行禮所用的玉器,平圓形,中間有小孔。

〔3〕“意”,懷疑。〔4〕“掠笞”,拷打。〔5〕“醳”,古“釋”字。〔6〕“嘻”,悲嘆聲。〔7〕“不”,通“否”。

  蘇秦已說趙王 而得相約從親,〔1〕

蘇秦已說趙王(소진이설조왕) : 그때 소진은 조왕을 설득하여

而得相約從親(이득상약종친) : 서로 합종을 맹약하게 하였다

然恐秦之攻諸侯,〔2〕敗約后負,

然恐秦之攻諸侯(연공진지공제후) : 그러나 근심이 되는 것은 진나라가 제후를 공격하면

敗約後負(패약후부) : 그 때문에 제후가 약정을 깨뜨려서 뒤에 배반할까 두려웠다.

念莫可使用于秦者,

念莫可使用於秦者(념막가사용어진자) : 생각해 봐도 진나라에 등용시킬 만한 사람이 없었다.

乃使人微感張儀曰:〔3〕“子始與蘇秦善,今秦已當路,〔4〕

子何不往游,

乃使人微感張儀曰(내사인미감장의왈) : 그리하여 사람을 보내어 은근히 장의를 분발하게 할 생각으로 말을 하도록 하기를,

子始與蘇秦善(자시여소진선) : “그대는 처음에 소진과 사이가 좋았소.

今秦已當路(금진이당로) : 이제 소진은 이미 성공하여 요로에 섰는데

子何不往游(자하불왕유) : 그대는 어찌하여 찾아가서 유세하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以求通子之愿?”

張儀于是之趙,上謁求見蘇秦。〔5〕

以求通子之願 張儀於是之趙(이구통자지원장의어시지조) : 장의는 아는 자를 통해 조나라로 가서 소진을 만나고자

上謁求見蘇秦(상알구견소진) : 소진을 보기를 청하였다

蘇秦乃誡門下人不為通,〔6〕又使不得去者數日。已而見之,

蘇秦乃誡門下人不爲通(소진내계문하인불위통) : 소진은 문하 사람에게 분부해 며칠 동안을 통하게 하지 않게 하고

又使不得去者數日(우사불득거자수일) :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도록 며칠간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

已而見之(이이견지) : 그와 만났는데

坐之堂下,賜仆妾之食。因而數讓之曰:〔7〕

坐之堂下(좌지당하) : 당하에 앉혀 놓고

賜僕妾之食(사복첩지식) : 종들과 같은 음식을 주고

因而數讓之曰(인이수양지왈) : 여러 말로 꾸짖어 말하기를,

“以子之材能,乃自令困辱至此。吾寧不能言而富貴子,子不足收也。”

以子之材能(이자지재능) : “그대같이 재능을 가진 자로서

乃自令困辱至此(내자령곤욕지차) : 이렇도록 궁하다는 것은 보기 딱하다

吾寧不能言而富貴子(오녕불능언이부귀자) : 내가 어찌 그대를 추천해서 부귀하게 할 수 있겠는가

子不足收也(자불족수야) : 그대는 쓰이기에는 부족한 인물이다.”고 했다

謝去之。張儀之來也,自以為故人,求益,反見辱,怒,念諸侯莫可事,獨秦能苦趙,乃遂入秦。

謝去之(사거지) : 이렇게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張儀之來也(장의지래야) : 장의가 찾아온 것은

自以爲故人求益(자이위고인구익) : 옛 친구에게 출세할 길을 부탁하고자 왔던 것인데

反見辱怒(반견욕노) : 도리어 모욕을 받아

念諸侯莫可事(념제후막가사) : 다른 제후들은 섬길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獨秦能苦趙(독진능고조) : 다만 진나라를 섬겨 조나라를 괴롭게 하고자 했었다.

乃遂入秦(내수입진) : 이에 진나라로 들어가니

  【注釋】〔1〕“趙王”,據《蘇秦列傳》,指趙肅侯。公元前三四九年至前三二六年在位。

“從親”,指秦以外的六國合縱相親。

〔2〕“秦”,國名。戰國七雄之一,都咸陽(今陜西咸陽東北),其疆域略有今河南省的西端,陜西大部及甘肅東部。

〔3〕“微感”,暗中勸導。〔4〕“當路”,當政,當權。〔5〕“謁”,陳述。〔6〕“誡”,叮嚀。

〔7〕“數讓”,責備。“數”、“讓”兩字是同義詞迭用。

  蘇秦已而告其舍人曰:〔1〕“張儀,天下賢士,吾殆弗如也。〔2〕今吾幸先用,而能用秦柄者,獨張儀可耳。

蘇秦已而告其舍人曰(소진이이고기사인왈) : 소진은 자기 하인에게 말하기를

張儀(장의) : “장의는

天下賢士(천하현사) : 천하의 현사다

吾殆弗如也(오태불여야) : 나같은 사람이 미칠 바가 아니다

今吾幸先用(금오행선용) : 나는 다행히 한 걸음 일찍 등용된 것뿐이다

而能用秦柄者(이능용진병자) : 그런데 진나라의 권력을 자유로이 조종할 수 있는 것은

獨張儀可耳(독장의가이) : 장의만이 가능할 뿐이다

然貧,無因以進。吾恐其樂小利而不遂,故召辱之,以激其意。子為我陰奉之。”

然貧(연빈) : 다만 그는 가난하여

無因以進(무인이진) : 변변히 용돈도 밑천도 갖지 못했다

吾恐其樂小利而不遂(오공기락소리이불수) : 나는 그가 조그마한 성공에 주저앉아 큰 뜻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스럽다

故召辱之(고소욕지) : 그런 까닭으로 가까이 불러서 모욕을 주어

以激其意(이격기의) : 그의 의지를 격려한 것이다

子爲我陰奉之(자위아음봉지) : 너는 내 뜻을 받아 몰래 받들어 주어라.”고 하였다

乃言趙王,發金幣車馬,使人微隨張儀,與同宿舍,

乃言趙王(내언조왕) : 이에 곧 조왕에게 말씀을 올려

發金幣車馬(발금폐차마) : 돈과 비단과 수레와 말을 마련하여

使人(사인) : 하인으로 하여금

微隨張儀(미수장의) : 가만히 장의의 뒤를 쫓게 하여

與同宿舍(여동숙사) : 같은 객점에 들도록 하였다

稍稍近就之,〔3〕奉以車馬金錢,所欲用,為取給,而弗告。

稍稍近就之(초초근취지) : 하인은 간신히 장의를 가까이 가서

奉以車馬金錢(봉이차마금전) : 거마와 금전을 비롯하여

所欲用(소욕용) : 필요한 물건

爲取給(위취급) : 일체를 제공하였는데

而弗告(이불고) : 내용은 전혀 말하지 않았다

張儀遂得以見秦惠王。〔4〕惠王以為客卿,〔5〕與謀伐諸侯。

張儀遂得以見秦惠王(장의수득이견진혜왕) : 이렇게 하여 장의는 마침내 진혜왕을 만났는데

惠王以爲客卿(혜왕이위객경) : 혜왕으로부터 객경의 대우를 받고

與謀伐諸侯(여모벌제후) : 제후 토벌에 대한 일을 계획하였다

  【注釋】〔1〕“舍人”,戰國至漢初,王公大臣的侍從賓客、親近左右的通稱。〔2〕“殆”,大約。〔3〕“稍稍”,漸漸。

〔4〕“秦惠王”,名駟,秦孝公子,公元前三三七年至前三一一年在位。

〔5〕“客卿”,官名,專為從別國來到秦國做官的人而設,地位尊崇,僅次于相國。

  蘇秦之舍人乃辭去。張儀曰:“賴子得顯,方且報德,何故去也!”

蘇秦之舍人乃辭去(소진지사인내사거) : 그 얼마 뒤 소진의 하인이 귀국하려고 하자

張儀曰(장의왈) : 장의는 말하기를

賴子得顯(뢰자득현) : “그대의 힘을 빌려 세상에 드러난 나는

方且報德(방차보덕) : 이제부터 은혜를 갚을 작정을 하였는데

何故去也(하고거야) : 왜 돌아가려 하시오?”라고 하였다

舍人曰:“臣非知君,知君乃蘇君。

舍人曰(사인왈) : 하인이 이르기를

臣非知君(신비지군) : “당신을 아는 사람은 내가 아닙니다

知君乃蘇君(지군내소군) : 소진이야말로 당신의 지기입니다

蘇君憂秦伐趙敗從約,以為非君莫能得秦柄,故感怒君,使臣陰奉給君資,

蘇君憂秦伐趙敗從約(소군우진벌조패종약) : 소진은 진나라가 조나라를 쳐서 합종을 깨드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以爲非君莫能得秦柄(이위비군막능득진병) : 당신이 아니라면 진나라의 권력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 하여

故感怒君(고감노군) : 당신을 분발하고 노하게 하는 한편

使臣陰奉給君資(사신음봉급군자) : 저로 하여금 몰래 밑천을 제공하게 했습니다

盡蘇君之計謀。令君已用,請歸報。”

盡蘇君之計謀(진소군지계모) : 모든 것은 소진의 배려로

今君已用(금군이용) : 이제야 당신은 등용이 되었으니

請歸報(청귀보) : 이제 내가 돌아가서 복명을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라고 했다

張儀曰:“嗟乎,此在吾術中而不悟,〔1〕吾不及蘇君明矣!

張儀曰(장의왈) : 장의가 이를기를

嗟乎(차호) : “아,

此在吾術中而不悟(차재오술중이불오) : 이것은 배운 술책 가운데 있었던 것인데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소

吾不及蘇君明矣(오불급소군명의) : 나는 확실히 소진에 미치지 못합니다

吾又新用,安能謀趙乎?為吾謝蘇君,

吾又新用(오우신용) : 이래서는 또 조나라에 등용된 것이나 마찬가지니

安能謀趙乎(안능모조호) : 어떻게 조나라를 모해할 수 있겠소

爲吾謝蘇君(위오사소군) : 나를 위해 소진에게 이런 말을 전해 주십시오

蘇君之時,儀何敢言。且蘇君在,儀寧渠能乎!”〔2〕

蘇君之時(소군지시) : ‘소진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儀何敢言(의하감언) : 장의가 무슨 말을 감히 할 것인가

且蘇君在(차소군재) : 또 소진이 있는 한

儀寧渠能乎(의녕거능호) : 나 장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다고.”

張儀既相秦,〔3〕為文檄告楚相曰:〔4〕“始吾從若飲,我不盜而璧,〔5〕若笞我。若善守汝國,我顧且盜而城!”〔6〕

張儀旣相秦(장의기상진) : 그 뒤에 장의는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爲文檄告楚相曰(위문격고초상왈) : 격문으로 초나라의 재상에게 알리기를

始吾從若飮(시오종약음) : “일찍이 그대를 따라 술을 마셨을 때

我不盜而璧(아불도이벽) : 그대는 내가 구슬을 훔쳤다고 하여

若笞我(약태아) : 나에게 매를 쳤다

若善守汝國(약선수여국) : 그대는 그대의 나라를 잘 지켜라

我顧且盜而城(아고차도이성) : 이번에 나는 정말 그대의 성을 훔치리라.”라고 하였다

【注釋】〔1〕“此在吾術中”,指蘇秦的作法在張儀所學過的方法之中。

〔2〕“寧渠”,豈。“寧”、“渠”是同義詞迭用。

〔3〕“張儀既相秦”,張儀相秦在秦惠王十年(公元前三二八年)。

〔4〕“檄”,古代發表文告的竹簡。〔5〕“而”,你的。〔6〕“顧”,特,但。

  苴蜀相攻擊,〔1〕各來告急于秦。秦惠王欲發兵以伐蜀,以為道險狹難至,

苴蜀相攻擊(저촉상공격) : 저와 촉이 서로 공격하려 하여

各來告急於秦(각래고급어진) : 각각 와서 급히 진나라에 고했다

秦惠王欲發兵以伐蜀(진혜왕욕발병이벌촉) : 진나라 혜왕이 군사를 내어 촉나를 치려하니

以爲道險狹難至(이위도험협난지) : 길이 좁고 험난해서 좀처럼 행군할 수 없었다

而韓又來侵秦,〔2〕秦惠王欲先伐韓,后伐蜀,恐不利,欲先伐蜀,恐韓襲秦之敝,猶豫未能決。

而韓又來侵秦(이한우래침진) : 이 무렵에 한나라가 또 진나를 침범하였다

秦惠王欲先伐韓(진혜왕욕선벌한) : 진나라 헤왕은 먼저 한나라를 치고난

後伐蜀(후벌촉) : 뒤에 촉나라를 치면

恐不利(공불리) : 불리할까 염려되어

欲先伐蜀(욕선벌촉) : 먼저 촉나라를 치려고 했으나

恐韓襲秦之敝(공한습진지폐) : 진나라의 피폐를 틈타 한나라가 침공할 염려가 있었으므로

猶豫未能決(유예미능결) : 진혜왕은 어느 것도 결정을 짓기 어려웠다

司馬錯與張儀爭論于惠王之前,〔3〕司馬錯欲伐蜀,張儀曰:“不如伐韓。”

司馬錯與張儀爭論於惠王之前(사마착여장의쟁논어혜왕지전) : 사마착과 장의가 혜왕의 면전에서 논쟁하였다

司馬錯欲伐蜀(사마착욕벌촉) : 사마착은 먼저 촉을 쳐야 한다고 말하고

張儀曰(장의왈) : 장의는 말하기를

不如伐韓(불여벌한) : “먼저 한나라를 침만 못하다.”고 주장하였다

王曰:“請聞其說。”

王曰(왕왈) : 왕이 장의에게 이르기를

請聞其說(청문기설) : “그 까닭을 말하라.”고 하였다

 【注釋】〔1〕“苴蜀相攻擊”,據《華陽國志》所載:“蜀王別封弟葭萌于漢中,號苴侯,命其邑曰葭萌焉,

(葭萌在今四川省廣元老昭化。苴侯的封地則是從廣元直達漢中。)苴侯與巴王為好,巴與蜀仇,故蜀王怒,伐苴侯。

苴侯奔巴,求救于秦。”“苴”,音jū。〔2〕“韓”,國名。戰國七雄之一。初都陽翟(今河南禹縣),后遷都新鄭(今屬河南)。疆域有今山西東南部和河南中部。

〔3〕“司馬錯”,秦國名將,在惠王、武王、昭王朝統兵達四十年。

  儀曰:“親魏善楚,下兵三川,〔1〕塞什谷之口,〔2〕當屯留之道,〔3〕

儀曰(의왈) : 장의가 대답하기를

親魏善楚(친위선초) : “위나라와 초나라는 친선하고

下兵三川(하병삼천) : 군사를 한나라의 삼천으로 남하하게 하고

塞什谷之口(색십곡지구) : 사곡의 입구를 막아서

當屯留之道(당둔류지도) : 둔류의 길에 당하도록 하고

魏絕南陽,〔4〕楚臨南鄭,〔5〕秦攻新城、〔6〕宜陽,〔7〕以臨二周之郊,〔8〕誅周王之罪,〔9〕

魏絶南陽(위절남양) : 위나라는 남양을 차단시켜

楚臨南鄭(초임남정) : 초나를 남정으로 몰아 쫓고

秦攻新城宜陽(진공신성의양) : 진나라는 신성과 의양을 공격하여

以臨二周之郊(이임이주지교) : 이주의 교외에 다달아

誅周王之罪(주주왕지죄) : 주왕의 죄를 치고

侵楚、魏之地。〔10〕周自知不能救,九鼎寶器必出。〔11〕

侵楚魏之地(침초위지지) : 초나라와 위나라의 땅을 침범하면

周自知不能救(주자지불능구) : 주나라는 구원되지 못할 것을 스스로 깨닫고

九鼎寶器必出(구정보기필출) : 반드시 ‘구정보기’를 바쳐 항복할 것입니다

據九鼎,案圖籍,〔12〕挾天子以令于天下,天下莫敢不聽,此王業也。

據九鼎(거구정) : 그리하여 구정의 권위로써

案圖籍(안도적) : 도적을 조사하고

挾天子以令於天下(협천자이령어천하) : 천자를 빌미로 천하를 호령하면

天下莫敢不聽(천하막감불청) : 천하에 감히 따르지 않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此王業也(차왕업야) : 이것이 왕업입니다

今夫蜀,西僻之國而戎翟之倫也,〔13〕敝兵勞眾不足以成名,得其地不足以為利。

今夫蜀(금부촉) : 그런데 저 촉나라는

西僻之國而戎翟之倫也(서벽지국이융적지륜야) : 서족으로 멀리 떨어진 나라로서 오랑캐인 융적의 한 무리입니다

敝兵勞衆不足以成名(폐병로중불족이성명) : 군사를 피로하게 하고 백성을 수로롭게 하는 것뿐 하등의 명예도 되지 않으며

得其地不足以爲利(득기지불족이위리) : 토지를 얻어도 이익이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臣聞爭名者于朝,爭利者于市。今三川、周室,天下之朝市也,而王不爭焉,顧爭于戎翟,〔14〕去王業遠矣。”

臣聞爭名者於朝(신문쟁명자어조) : ‘이름을 다투는 자는 조정에서 하고

爭利者於市(쟁리자어시) : 이익을 다투는 자는 장판에서 한다.’고 말하는데

今三川周室(금삼천주실) : 지금 삼천과 주왕실이야 말로

天下之朝市也(천하지조시야) : 천하의 조정이요 시장판입니다

而王不爭焉(이왕불쟁언) : 임금께서 이것을 상대로 다투지 않고

顧爭於戎翟(고쟁어융적) : 도리어 오랑캐의 땅을 다투니

去王業遠矣(거왕업원의) : 왕업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注釋】〔1〕“三川”,郡名,屬韓,后入秦,以境內有河(黃河)、洛、伊三水而得名,

轄境包括今黃河以南,河南靈寶以東,中牟以西地區。

〔2〕“什谷”,韓地,在今河南成皋西。〔3〕“屯留”,地名,在今山西屯留東南十里。屯留之道指太行山羊腸坂道。

〔4〕“南陽”,地區名,在今河南濟源、孟縣、沁陽一帶,地處韓、魏之間,因在太行山南,黃河以北,故稱南陽。

〔5〕“南鄭’,邑名,在今河南新鄭縣,當時是韓的國都。〔6〕“新城”,韓邑,在今河南伊川縣西南。

〔7〕“宜陽”,韓縣,在今河南宜陽縣西北的韓城鎮。

〔8〕“二周”,指東周、西周兩個小諸侯國。西周都河南(今河南洛陽市西),東周都鞏(今河南鞏縣)。

〔9〕“誅”,討伐。〔10〕“侵楚魏之地”,此和上文“親魏善楚”不合,疑有誤。或謂“楚魏”是“三川”之誤。

〔11〕“九鼎寶器必出”,這句是說周不敢愛惜它的寶物。“九鼎”,相傳是夏禹所鑄,是夏、商、周三代的傳國重器。

〔12〕“按”,據有。“圖籍”,地圖和戶籍。〔13〕“戎翟”,古代對西部落后少數民族的泛稱。“倫”,類。

〔14〕“顧”,反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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