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六十九 蘇秦列傳第九
사기 권69
소진 열전 제9-5
其後秦使犀首欺齊﹑魏,
與共伐趙,欲敗從約。
그 뒤에 진나라는 서수에게 명하여 제나라와 위나라를 속여
함께 조나라를 쳐서
합종의 약정을 깨뜨리려고 하였다.
齊﹑魏伐趙,趙王讓蘇秦。
蘇秦恐,請使燕,必報齊。
蘇秦去趙[一]而從約皆解。
제나라와 위나라가 조나라를 치자
조왕은 소진을 꾸짖었으므로
소진은 겁을 내어 연나라에 가서
반드시 제나라에 보복할 것을 청하였다.
이렇게 하여 소진이 조나라를 떠나니
합종의 약정은 자연 모두 해소되었다.
注[一]集解徐廣曰:「自初說燕至此三年。」
秦惠王以其女為燕太子婦。
是歲,文侯卒,太子立,
是為燕易王。
진나라 혜왕은 딸을 연나라 태자의 아내로 하였다.
그해 연문후가 죽고 태자가 즉위하였다.
이 사람이 연나라 역왕이다.
易王初立,
齊宣王因燕喪伐燕,取十城。
역왕이 즉위한 처음에
제선왕은 상중인 틈을 타서 연나라를 치고
10개 성을 빼앗았다
易王謂蘇秦曰:
「往日先生至燕,而先王資先生見趙,
遂約六國從。
역왕이 소진에게 말했다.
“전날 선생이 연나라에 왔을 때
선왕 문후는 선생에게 여비를 주어서 조왕을 만나게 하고
그 결과 마침내 여섯 나라 합종의 약정을 하였소.
今齊先伐趙,次至燕,
以先生之故 為天下笑,
先生能為燕得侵地乎?」
그러나 이제 제나라는 먼저 조나라를 치고
다음으로 연나라를 쳤으니
선생 때문에 연나라는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소.
선생은 과연 연나라를 위해 잃은 땅을 찾을 수 있겠소?”
蘇秦大慙曰:「請為王取之。」
소진은 매우 부끄러워했다.
“임금을 위해 되찾아 오겠습니다.”
蘇秦見齊王,再拜,
俯而慶,仰而弔。[一]
소진은 제왕을 만나 두 번 절하고
엎드려 경하의 말씀을 올림과 동시에
우러러 뉘우침의 말씀을 드렸다.
齊王曰:「是何慶弔相隨之速也?」
제왕이 말했다.
“무엇을 또 그렇게 성급하게도 경하와 뉘우침을 연이어 말하시오?”
蘇秦曰:
「臣聞飢人所以飢 而不食烏喙者,[二]
為其愈充腹 而與餓死同患也。[三]
소진이 말했다.
신이 듣건대 ‘굶주린 사람도 오탁이라는 독초를 먹지 않는 것은
설령 배가 부르더라도
굶어 죽는 것과 같은 환란이기 때문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今燕雖弱小,即秦王之少壻也。
大王利其十城 而長與彊秦為仇。
지금 연나라는 약소국이라고는 하지만
진나라로 봐서는 사위의 나라입니다
대왕은 연나라에서 10개 성을 빼앗으나
그 대신 장차 오랫동안 진나라의 원수가 될 것입니다.
今使弱燕為鴈行 而彊秦敝其後,
以招天下之精兵,是食烏喙之類也。」
이제 약한 연나라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여
강한 진나라가 그 뒤를 사서
천하의 정병을 부르는 결과가 되면
이것은 굶주린 사람이 오훼를 먹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齊王愀然變色[四]曰:
「然則柰何?」
제왕은 슬픈 빛으로 근심을 띠고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蘇秦曰:
「臣聞古之善制事者,
轉禍為福,因敗為功。
大王誠能聽臣計,即歸燕之十城。
소진이 말했다.
“신이 듣기네 ‘예부터 일을 잘 마름질하는 자는
화를 돌려 복이 되게 하고
실패로 말미암아 성공을 가져온다.’고 들었습니다.
대왕께서 만약 진실로 나의 계교를 들어 주신다면
곧 연나라의 10개 성을 돌려주십시오.
燕無故而得十城,必喜;
별다른 이유를 붙이지 않고 돌려주신다면
연나라는 반드시 기뻐할 것이며
秦王知以己之故 而歸燕之十城,亦必喜。
此所謂弃仇讎而得石交者也。
진왕도 내 덕택으로
10개 성이 돌려진 것을 알면
반드시 기뻐할 것이니
이것은 이른바 원수를 버리고
굳은 친교를 얻는 것입니다.
夫燕﹑秦俱事齊,則大王號令天下,
莫敢不聽。是王以虛辭附秦,
以十城取天下。此霸王之業也。」
연나라와 진나라가 함께 제나라를 섬기면
대왕의 호령에 따르지 않을 자는 하늘 아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공허한 외교 변설로 진나라를 따르게 하고
10개 성의 보상으로 천하를 취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패업이고 왕업입니다.”
王曰:「善。」
於是乃歸燕之十城。
왕이 이르기를 “좋다.”고 하고
연나라의 10개 성을 반환하였다.
注[一]索隱劉氏云:「當時慶弔應有其詞,但史家不錄耳。」
注[二]集解本草經曰:「烏頭,一名烏喙。」索隱烏啄,音卓,又音許穢反。今
之毒藥烏頭是。正義廣雅云:「奚,毒附子也。一歲為烏啄,三歲為附子,四
歲為烏頭,五歲為天雄。」
注[三]索隱劉氏以愈猶暫,非也。謂食烏頭為其暫愈飢而充腹,少時毒發而死,
亦與飢死同患也。
注[四]索隱愀音自酋反,又七小反。
人有毀蘇秦者曰:
「左右賣國反覆之臣也,將作亂。」
소진을 비방하는 자들이 말했다.
“여기저기에 나라를 팔고 마음에 표리가 있는 사람이다.
얼마 안 있어 난을 일으킬 것이다.”
蘇秦恐得罪歸,而燕王不復官也。
蘇秦見燕王曰:
소진은 죄를 입을 것을 두려워하여
[제나라에서 연나라로] 돌아왔는데
연왕은 그를 지난 날의 벼슬로 복직시키지 않았다.
소진은 연왕을 만나 말했다.
「臣,東周之鄙人也,無有分寸之功,
而王親拜之於廟 而禮之於廷。
“신은 동주의 천한 출신입니다
일찍이 조그마한 공로도 없었는데
임금은 친히 종묘에 절하고
신을 관직에 올려 조정에서 대우하였습니다.
今臣為王卻齊之兵而*(攻)*得十城,宜以益親。
今來而王不官臣者,人必有以不信 傷臣於王者。
그리고 이제는 임금을 위해 제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10개 성을 회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더욱 친애하여야 마땅하거늘
이제 귀국하니 임금은 신을 본 직책에 돌아가도록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누군가 반드시 임금에게 불신으로써
신을 모함한 자가 있는 증거입니다.
臣之不信,王之福也。
臣聞忠信者,所以自為也;
進取者,所以為人也。
且臣之說齊王,曾非欺之也。
그러나 신의 이른바 불신이라는 것은
실은 임금에게 행복입니다.
신이 듣건대,
‘충신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소행이며
진취는 남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제왕을 설복한 것은
제왕을 속인 것은 아닙니다.
臣弃老母於東周,
固去自為 而行進取也。
신이 노모를 고향인 동주에 버려둔 것은
자기 근본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무시하고
남을 위해 진취를 행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今有孝如曾參,廉如伯夷,信如尾生。
得此三人者以事大王,何若?」
이제 설령 효도하기를 증삼 같이 하고
청렴하기를 백이 같이 하고
성실하기를 미생 같이 하는 자가 있다고 하여
이 세 사람이 대왕의 밑에서 일한다면
어떻겠습니까?”
王曰:「足矣。」
임금이 대답했다.
“만족하겠소.”
蘇秦曰:
「孝如曾參,義不離其親一宿於外,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 而事弱燕之危王哉?
소진이 말했다.
“효행하기를 증참 같이 하는 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어버이를 떠나서
비록 하룻밤일이라도 외박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임금은 하여 그를 천 리 밖의 먼 곳으로 보내어
약소국인 연나라의 불안정한 임금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廉如伯夷,義不為孤竹君之嗣,
不肯為武王臣,不受封侯
而餓死首陽山下。
청렴한 백이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고죽군의 후사가 되지 않고
무왕의 신하가 되는 것을 즐겨하지 않고
봉읍을 받아 제후가 되지 않고
수양산 밑에서 굶어 죽었습니다.
有廉如此,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
而行進取於齊哉?
이같이 청렴한 자가 있다면
임금은 어떻게 하여 그를 천 리 밖 먼 곳으로 보내어
제나라에 대하여 진취를 행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信如尾生,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水至不去,抱柱而死。
성실한 미생은
여자와 다리 아래의 밀회를 약속하고서
여자가 오지 않아 여자를 기다린 채
밀물이 들어 물이 불어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다가
마침내 교각을 끌어안고 죽었습니다.
有信如此,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
卻齊之彊兵哉?
臣所謂以忠信得罪於上者也。」
그같이 성실한 자가 있다면
임금은 어떻게 하여 그를 천리 밖 먼 곳으로 보내어
제나라 강병을 물리 칠 수 있겠습니까
말하자면 신은 충신인 까닭에 임금에게 죄를 입었습니다.”
燕王曰:
「若不忠信耳,
豈有以忠信 而得罪者乎?」
임금이 말했다.
“그대가 충신이 아니기 때문이오.
어찌 세상에 충신으로서 죄를 얻는 자가 있겠소?”
蘇秦曰:「不然。
臣聞客有遠為吏 而其妻私於人者,
其夫將來,其私者憂之,
소진이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들은 이야기에 어떤 사람이 관리가 되어 먼 곳에 있을 때
아내가 다른 사람과 사통한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 뒤에 남편이 돌아온다는 것을 듣고
친한 남자가 걱정을 하니,
妻曰『勿憂,吾已作藥酒待之矣』。
아내는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말라.
나는 벌서 독약 넣은 술을 준비하고 기다리니까.’
居三日,其夫果至,
妻使妾舉藥酒進之。
妾欲言酒之有藥,則恐其逐主母也,
欲勿言乎,則恐其殺主父也。
그런 지 사흘 뒤에 그 남편이 과연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첩에게 술잔을 돌려 남편에게 권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첩은 술에 독이 든 것을 알리면
주모에게 쫓겨날 것이며
알려 말하지 않으면
주인이 죽을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於是乎詳僵而弃酒。[一]
主父大怒,笞之五十。
그리하여 일부러 거짓으로 넘어져서 술잔을 쏟아 버렸는데
주인은 크게 노하여
첩에게 매 50대를 때렸습니다.
故妾一僵而覆酒,
上存主父,下存主母,
한 번 거짓으로 넘어져서 술을 쏟은 첩의 계교가
위로는 주인을 보호하고
아래로는 주모도 보호한 것입니다.
然而不免於笞,
惡在乎 忠信之無罪也?
夫臣之過,不幸而類是乎!」
그러면서도 매 맞는 일은 면하지 못했습니다.
어찌하여
충신이며 죄를 얻을 리가 없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대체로 신의 허물이라는 것도
말하자면 불행하게도 이와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燕王曰:「先生復就故官。」
益厚遇之。
연왕이 말했다.
“선생은 또 전과 같이 관직에 취임하시오.”
더욱 더 그를 우대하였다.
注[一]索隱詳音羊。詳,詐也。僵,仆也,音薑。
易王母,文侯夫人也,與蘇秦私通。
역왕의 어머니는 문후의 부인인데
소진과 사통하였다.
燕王知之,而事之加厚。
蘇秦恐誅,乃說燕王曰:
연왕은 이것을 알면서도
더욱 두텁게 그를 대우하였으나
소진은 죽음을 당할 것을 겁내어
연왕에게 말했다.
「臣居燕不能使燕重,
而在齊則燕必重。」
“신이 연나라에 있어서는
연나라를 천하에 무게 있는 나라로 할 수 없으니
제나라에 가면 연나라는 반드시 무게를 더할 것입니다.”
燕王曰:「唯先生之所為。」
於是蘇秦詳為得罪於燕 而亡走齊,齊宣王以為客卿。[一]
연왕이 말했다.
“다만 선생 마음대로 하시오.”
이에 소진은 연나라에서 죄를 범했다고 거짓말하여
제나라에 망명하였다.
제선왕은 그를 객경(客卿)으로 대우하였다.
注[一]集解徐廣曰:「燕易王之十年時。」
齊宣王卒,湣王即位,
說湣王厚葬以明孝,
高宮室大苑囿以明得意,
欲破敝齊而為燕。
제선왕이 죽고 혼왕이 즉위하니
소진은 혼왕에게 말하여 장례를 정중히 하고 효도를 분명히 하고
객사를 높이 하고 정원을 넓게 하여 왕자의 풍도를 나타내게 하였다.
이것은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를 재정적으로 피폐케 하려는 생각이었다.
燕易王卒,[一]燕噲立為王。
其後齊大夫多與蘇秦爭寵者,
而使人刺蘇秦,不死,殊而走。[二]
연나라 역왕이 죽으니 쾌가 임금이 되었다.
그 뒤에 제나라의 태부 중에는
소진과 임금의 총애를 다투는 자가 많아서
자객으로 하여금 소진을 찌르게 하였는데
죽지 않고 자객은 도망가 버렸다.
齊王使人求賊,不得。蘇秦且死,乃謂齊王曰:
제왕은 자객을 찾으라고 분부하였으나 잡히지 않았다
소진은 거의 죽게 되어 제나라 왕에게 말했다.
「臣即死,車裂臣 以徇於市,曰
『蘇秦為燕作亂於齊』,
如此則臣之賊必得矣。」
“만일 신이 죽거든
신을 거열형에 처하시고
장터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구경을 시키시되 이르기를,
‘소진은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를 모반하였다.’고 말씀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신을 찌른 도둑은 반드시 잡힐 것입니다.”
於是如其言,而殺蘇秦者果自出,
齊王因而誅之。
이에 과연 그의 말대로
소진을 죽인 자가 자수해 왔으므로
제왕은 그자를 죽였다.
燕聞之曰:
「甚矣,齊之為蘇生[三]報仇也!」
연나라에서는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했다.
심하구나. ‘제나라가 소진을 위해 원수를 갚아 줌이.’
注[一]集解徐廣曰:「易王十二年卒。」
注[二]集解風俗通義稱漢令「蠻夷戎狄有罪當殊」。殊者,死也,與誅同指。而
此云「不死,殊而走」者,蘇秦時雖不即死,然是死創,故云「殊」。
注[三]集解徐廣曰:「一作『先』。」
'중국고전 > 史記 사기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진 열전 제9-7 (0) | 2012.05.04 |
---|---|
소진 열전 제9-6 (0) | 2012.05.04 |
소진 열전 제9-4 (0) | 2012.05.04 |
소진 열전 9-3 (0) | 2012.04.30 |
소진 열전 제9-2 (0) | 2012.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