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六十九 蘇秦列傳第九
사기 권69
소진 열전 제9-3
是時周天子致文武之胙於秦惠王。
惠王使犀首攻魏,禽將龍賈,
取魏之雕陰,[一]且欲東兵。
이 무렵 주나라 천자는
선조 문왕과 무왕의 제사에 쓴 고기를 진혜왕에게 내려 주었다.
혜왕은 서수에게 명하여 위를 치고 적장 용고를 사로잡고
위나라의 조음 땅을 뺏고
군사를 동쪽으로 진군시키려고 하였다.
蘇秦恐秦兵之至趙也,
乃激怒張儀,入之于秦。
소진은 진나라 군사가 조나라에 침입하여
[합종의 방책이 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장의를 격노시켜 진나라로 보냈다.
注[一]索隱魏地也。劉氏曰「在龍門河之西北」。按:地理志雕陰屬上郡。正義
在鄜州洛交縣北三十四里。
於是說韓宣王[一]曰:
「韓北有鞏﹑成皋[二]之固,西有宜陽﹑商阪之塞,[三]
東有宛﹑穰﹑[四]洧水,[五]南有陘山,[六]
그리하여 선혜왕에게 이르기를
“한나라는 북쪽에 공·성고의 요새지가 있고
서쪽에 선양과 상판의 험한 땅이 요새로 되어있고
동쪽에 원·양·유수의 강물이 있고
남쪽에 경산이 있습니다.
地方九百餘里,帶甲數十萬,
天下之彊弓勁弩皆從韓出。
谿子﹑[七]少府時力﹑距來者,[八]
皆射六百步之外。
토지는 사방 9백여 리에, 부장 병력은 수십만.
천하의 강궁과 경노는 다 한나라에서 만들어지고
계자 땅의 소부의 시력과 거래는
모두 6백 보의 원거리를 쏠 수 있습니다.
韓卒超足而射,[九]百發不暇止,
遠者括蔽洞胸,近者鏑弇心。
한나라 군졸이 발을 들어 석궁을 쏘면 백발 백중이며
원거리에 맞힌 것도 화살 끝이 살에 파묻히도록 가슴을 꿰뚫고
가까운 것은 화살 끝이 심장을 덮습니다
韓卒之劍戟皆出於冥山﹑[一0]
棠谿﹑[一一]墨陽﹑[一二]合賻﹑[一三]
鄧師﹑[一四]宛馮﹑[一五]龍淵﹑太阿,[一六]
皆陸斷牛馬,水截鵠鴈,當敵則斬堅甲鐵幕,[一七]
革抉[一八]簠芮,[一九]無不畢具。
한나라 군졸의 칼과 창은 모두 명산에서 만들어지고
당계·묵양· 합박·등사·원풍·용연·태하는
모두 육지 위에서는 소나 말을 근절시키고
물 가운데서는 따오기와 기러기를 떨어뜨리고
적을 만나서는 견고한 갑옷 쇠의 막을 끊고
활걸이와 방패 끈에 이르기까지
구비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以韓卒之勇,被堅甲,
蹠勁弩,帶利劍,
一人當百,不足言也。
한나라 병정의 용감함으로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굳센 석궁을 메고 날카로운 칼을 차면
한 사람이 백 사람을 당하는 것은 문제없는 일입니다.
夫以韓之勁與大王之賢,
乃西面事秦,交臂而服,
羞社稷而為天下笑,無大於此者矣。
是故願大王孰計之。
한나라가 이와 같은 강한 세력과 대왕의 현명함을 갖추고서
서쪽으로 진나라를 섬겨
두 손을 맞잡아 절을 하며 복종하는 것은
국가의 수치이며 또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기에
이보다 더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注[一]索隱按:世本韓宣王,昭侯之子也。
注[二]索隱二邑本屬東周,後為韓邑。地理志二縣並屬河南。
注[三]集解徐廣曰:「商,一作『常』。」索隱劉氏云「蓋在商洛之閒,適秦楚
之險塞」是也。正義宜陽在洛州福昌縣東十四里。商阪即商山也,在商洛縣南
一里,亦曰楚山,武關在焉。
注[四]集解宛,於袁反。索隱地理志宛﹑穰二縣名,並屬南陽。
注[五]集解洧,于鬼反。索隱音于軌反,水名,出南方。正義在新鄭東南,流
入潁。
注[六]集解徐廣曰:「召陵有陘亭。密縣有陘山。」正義在新鄭西南三十里。
注[七]集解許慎云:「南方谿子蠻夷柘弩,皆善材。」索隱按:許慎注淮南子,
以為南方谿子蠻出柘弩及竹弩。
注[八]集解韓有谿子弩,又有少府所造二種之弩。案:時力者,謂作之得時,
力倍於常,故名時力也。距來者,謂弩埶勁利,足以距來敵也。索隱韓又有少
府所造時力﹑距來二種之弩。按:時力者,謂作之得時則力倍於常,故有時力
也。距來者,謂以弩埶勁利,足以距於來敵也。其名並見淮南子。
注[九]索隱按:超足謂超騰用埶,蓋起足蹋之而射也,故下云「蹠勁弩」是也。
正義超足,齊足也。夫欲放弩,皆
坐,舉足踏弩,兩手引揍機,然始發之。
注[一0]集解徐廣曰:「莊子云南行至郢,北面而不見冥山。」駰案:司馬彪曰
「冥山在朔州北」。索隱莊子云「南行至郢,北面而不見冥山」。司馬彪云「冥
山在朔州北」。郭象云「冥山在乎太極」。李軌云「在韓國」。
注[一一]集解徐廣曰:「汝南吳房有棠谿亭。」索隱地理志棠谿亭在汝南吳房縣。
正義故城在豫州偃城縣西八十里。鹽鐵論云「有棠谿之劍」是。
注[一二]集解淮南子曰:「墨陽之莫邪也。」索隱淮南子云「服劍者貴於剡利,
而不期於墨陽莫邪」,則墨陽匠名也。
注[一三]集解音附。徐廣曰:「一作『伯』。」索隱按:戰國策作「合伯」,春秋
後語作「合相」。
注[一四]索隱鄧國有工鑄劍,而師名焉。
注[一五]集解徐廣曰:「滎陽有馮池。」索隱徐廣云「滎陽有馮池」,謂宛人於
馮池鑄劍,故號宛馮。
注[一六]集解吳越春秋曰:「楚王召風胡子而告之曰:『寡人聞吳有干將,越有
歐冶,寡人欲因子請此二人作劍,可乎?』風胡子曰:『可。』乃往見二人,作
劍,一曰龍淵,二曰太阿。」索隱按:吳越春秋楚王令風胡子請請吳干將、越
歐冶作劍二,其一曰龍泉,二曰太阿。又太康地記曰「汝南西平有龍泉水,可
以淬刀劍,特堅利,故有龍泉之劍,楚之寶劍也。以特堅利,故有堅白之論云:
『黃,所以為堅也;白,所以為利也。』齊辨之曰:『白,所以為不堅;黃,所
以為不利也。』故天下之寶劍韓為#,一曰棠谿,二曰墨陽,三曰合伯,四曰
鄧師,五曰宛馮,六曰龍泉,七曰太阿,八曰莫邪,九曰干將也」。然干將、莫
邪匠名也,其劍皆出西平縣,今有鐵官令一,別領戶,是古鑄劍之地也。
注[一七]集解徐廣曰:「陽城出鐵。」索隱按:戰國策云「當敵則斬甲盾鞮鍪鐵
幕」也。鄒誕幕一作「陌」。劉云:
「謂以鐵為臂脛之衣。言其劍利,能斬之也。」
注[一八]集解徐廣曰:「一作『決』。」索隱音決。謂以革為射決。決,射韝也。
注[一九]集解音伐。索隱與「瞂」同,音伐,謂楯也。芮音如字,謂繫楯
之綬也。正義方言云:「盾,自關東謂之瞂,關西謂之盾。」
「大王事秦,秦必求宜陽、成皋。
今茲效之,[一]明年又復求割地。
대왕께서 만일 진나라를 섬긴다면
진나라는 반드시 의양과 성고의 땅을 요구할 것입니다.
금년에 이것을 바치면
명년에는 반드시 또 다른 땅을 요구할 것입니다.
與則無地以給之,
不與則弃前功 而受後禍。
여기에 응하려 들면
나중에는 주려고 해도 줄 땅이 없을 것이며
주지 않으면 지금까지 바친 공을 무시당한 채
오히려 뒷날 침략의 화를 당할 것입니다.
且大王之地有盡 而秦之求無已,
以有盡之地而逆無已之求,
此所謂市怨結禍者也,不戰而地已削矣。
장차 대왕의 토지는 점점 줄어들기만 할 것이며
진나라의 요구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한정이 있는 토지를 가지고
끝이 없는 요구에 응하는 것이야 말로
이는 이른바 ‘원수를 사서 우환을 맺는다.’는 것으로
싸우지도 않고 국토는 줄어들어 갑니다.
臣聞鄙諺曰:
『寧為雞口,無為牛後。』[二]
今西面交臂而臣事秦,
何異於牛後乎?
신이 듣기에 속담에 이르기를,
‘설령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제 서쪽을 향하여 두 손을 맞잡고
진나라를 신하의 예로서 섬기는 것은
어찌 소꼬리와 다르겠습니까?
夫以大王之賢,挾彊韓之兵,
而有牛後之名,臣竊為大王羞之。」
대왕의 총명으로써
굳센 한나라의 군사를 가졌으면서
소꼬리의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은
신이 가만히 생각하기에
대왕을 위해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注[一]索隱按:鄭玄注禮云「效猶呈也,見也」。
注[二]索隱按;戰國策云「寧為雞尸,不為牛從」。延篤注云「尸,雞中主也。
從謂牛子也。言寧為雞中之主,不為牛之從後也」。正義雞口雖小,猶進食;牛
後雖大,乃出糞也。
於是韓王勃然作色,攘臂瞋目,
按劍仰天太息[一]曰;
한왕은 분연히 안색을 변하여
팔을 걷어 눈을 부라리며
칼을 만져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해 말했다.
「寡人雖不肖,必不能事秦。
今主君[二]詔以趙王之教,敬奉社稷以從。」
“과인은 비록 불초한 자이나
반드시 진나라를 섬기지 않겠소.
이제 그대로부터 조왕의 가르침을 들었으니
삼가 나라를 들들고 이 의견에 따르리다.”
注[一]索隱太息謂久蓄氣而大吁也。
注[二]索隱指蘇秦也。禮,卿大夫稱主。今嘉蘇子合從諸侯,-而美之,故稱
曰主。
又說魏襄王[一]曰:
「大王之地,南有鴻溝、[二]陳、汝南、許、
郾、[三]昆陽、召陵、舞陽、新都、新郪,[四]
東有淮、潁、[五]煮棗、[六]無胥,[七]
西有長城之界,北有河外、[八]卷、衍、酸棗,[九]
地方千里。
소진은 또 위양왕에게 말했다.
“대왕의 토지는 남쪽에 홍구·진·여남·허·
언·곤양· 소릉·무양·신도·신처가 있고
동쪽에 회수·자조·무서,
서쪽에 장성의 경계,
북쪽에 하외·권·연·산조가 있습니다.
국토는 사방 천 리입니다.
地名雖小,然而田舍廬廡之數,
曾無所芻牧。人民之衆,車馬之多,
日夜行不絕,輷輷殷殷,[一0]若有三軍之衆。
지명은 비록 소국이라고는 하나
마을과 마을은 밀집하였고
목축에 남은 땅이 일찍부터 없고
백성도 많고 거마도 많아
밤낮으로 왕래의 끊임이 없고
그 울리는 소리는 횡횡하고 은은해서
마치 3군의 대병이 행군하는 것과 같습니다.
臣竊量大王之國不下楚。
然衡人怵王[一一]
交彊虎狼之秦以侵天下,
卒有秦患,[一二] 不顧其禍。
내가 가만히 생각하건대,
대왕의 나라는 결코 초나라에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연횡론자는 왕을 두렵게 하고
호랑이와 같은 진나라와 교제하여 천하를 침략케 하여
마침내는 진나라의 화를 불러
그 재앙을 고려하려 하지 않습니다.
夫挾彊秦之勢 以內劫其主,
罪無過此者。
대체 저들이 굳센 진나라의 세력을 믿고서
자기 나라의 임금을 위협하는 것만큼
죄로서는 이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
魏,天下之彊國也;王,天下之賢王也。
今乃有意西面而事秦,稱東藩,
築帝宮,[一三]受冠帶,[一四]祠春秋,[一五]
臣竊為大王恥之。
위나라는 천하의 강국이며 임금은 천하의 현군입니다.
이제 서쪽을 향해 진나라를 섬기고 동번이라 일컬어
진왕의 순찰을 위해 궁전을 짓고
진나라의 의관과 속대를 받아서
진나라 종묘의 봄 가을 제사에 봉사함은
내가 대왕을 위해 수치로 여깁니다.
注[一]索隱世本惠王子名嗣。
注[二]集解徐廣曰:「在滎陽。」
注[三]集解徐廣曰:「在潁川。於幰切。」索隱音偃,又於建反。戰國策作「鄢」。
按:地理志潁川有許、郾二縣,又有傿陵縣,故所稱惑也。傿音焉。正義陳、
汝南,今汝州、豫州縣也。
注[四]集解地理志潁川有昆陽、舞陽縣,汝南有新郪縣,南陽有新都縣。索隱
地理志昆陽、舞陽屬潁川,召陵、新郪屬汝南。按:新郪郪丘,章帝以封殷
後於宋。新都屬南陽。按:戰國策直云新郪,無「新都」二字。正義召陵在豫
州,舞陽在許州。
注[五]正義淮陽、穎川二郡。
注[六]集解徐廣曰:「在宛句。」正義在宛朐。按:宛朐,曹州縣也。
注[七]索隱按;其地闕。
注[八]正義謂河南地。
注[九]集解徐廣曰:「滎陽卷縣有長城,經陽武到密。衍,地名。索隱徐廣云「滎
陽卷縣有長城」,蓋據地險為說也。正義卷在鄭州原武縣北七里。酸棗在滑州。
衍,徐云地名。
注[一0]正義輷,麾宏反。殷音隱。
注[一一]正義衡音橫。怵音卹。
注[一二]正義卒音忽反。
注[一三]索隱謂為秦築宮,備其巡狩而舍之,故謂之「帝宮」。
注[一四]索隱謂冠帶制度皆受秦法。
注[一五]索隱言春秋貢奉,以助秦祭祀。
「臣聞越王句踐戰敝卒三千人,禽夫差於干遂;[一]
武王卒三千人,革車三百乘,制紂於牧野:[二]
豈其士卒衆哉,誠能奮其威也。
신이 듣기에 월왕 구천은 여러 해 훈련한 군사 3천 명으로써
오왕 부차를 간수에서 사로잡고
주나나 무왕은 군사 3천 명, 병거 3백 승으로
은나라 주왕을 목야에서 정복하였다고 들었는데
이는 어찌 군사가 많아서 이긴 것입니까
참으로 그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今竊聞大王之卒,武士二十萬,[三]蒼頭二十萬,[四]
奮擊二十萬,廝徒十萬,[五]車六百乘,騎五千匹。
此其過越王句踐、武王遠矣,
이제 가만히 들리는 바로는
대왕의 군사는 무사 20만,
창두를 쓴 경보병 29만,
분격 20만, 사도 10만,
병거 6백 승, 기마 5천 필로
이 수는 월왕 구천이나 무왕의 군사를 훨씬 능가합니다.
今乃聽於羣臣之說而欲臣事秦。
夫事秦必割地以效實,[六]故兵未用而國已虧矣。
그런데 이제 여러 신하의 말을 듣고
진나라를 신하의 예로서 섬길 생각을 한다니
진나라를 섬기면 반드시 토지를 쪼개 바쳐서 성의를 표시토록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력을 쓰기도 전에 벌써 국토는 이지러집니다.
凡羣臣之言事秦者,皆姦人,非忠臣也。
무릇 신하로서 진나라를 섬기도록 하려는 자는
모두가 간사한 자들이요 결코 충신이 아닙니다.
夫為人臣,割其主之地以求外交,
偷取一時之功而不顧其後,
破公家而成私門,外挾彊秦之勢以內劫其主,
以求割地,願大王孰察之。
대체로 신하된 자가 임금의 토지를 쪼개어 외교를 청하고
한때의 공을 도적질하여 뒤를 돌보지 않고
공가(公家)의 파멸로 자가의 성공을 이룩하고
밖으로 진나라의 세력을 믿고 안으로 임금을 위협하여
토지를 쪼개 바치기를 요구하다니
원컨대 대왕은 깊이 살피시기 바랍니다
注[一]索隱按:干遂,地名,不知所在。然按干是水旁之高地,故有「江干」「河
干」是也。又左思吳都賦云「長干延
屬」,是干為江旁之地。遂者,道也。於干有道,因為地名。正義在蘇州吳縣西
北四十餘里萬安山西南一里太湖。夫差敗於姑蘇,禽於干遂,相去四十餘里。
注[二]正義今%州城是也。周武王伐紂於牧野,築之。
注[三]集解漢書刑法志曰:「魏氏武卒衣三屬之甲,操十二石之弩,負矢五十,
置戈其上,冠冑帶劍,贏三日之糧,日中而趨百里,中試則復其戶,利其田宅。」
索隱衣音意。屬音燭。按:三屬謂甲衣也。覆膊,一也;甲裳,二也;脛衣,
三也。甲之有裳,見左傳也。贏音盈。謂齎糗糧。中音竹仲反。謂其筋力能負
重,所以得中試也。復音福。謂中試之人,國家當優復,賜之上田宅,故云「利
其田宅」也。
注[四]索隱謂以青巾裹頭,以異於#。荀卿「魏有蒼頭二十萬」是也。
注[五]索隱廝音斯。謂廝養之卒。斯,養馬之賤者,今起為之卒。正義廝音斯。
謂炊烹供養雜役。
注[六]索隱謂割地獻秦,以效己之誠實。
「周書曰:
『緜緜不絕,蔓蔓柰何?
豪氂不伐,將用斧柯。』
<주서>에 이르기를
‘조그마할 때 끊지 않으면
커져서는 어찌할 것인가?
털끝만한 적을 베지 않으면
장차는 도끼를 써야 한다.
前慮不定,後有大患,將柰之何?
이렇게 생각하여 잡지 않으면
뒤에는 큰 우환이 있으리라
장차 이를 어찌하랴?’고 하였습니다.
大王誠能聽臣,六國從親,
專心并力壹意,則必無彊秦之患。
만약에 대왕께서 진실로 나의 말을 받아들여
여섯 나라가 합종으로 친교를 맺어
뜻을 하나로 하고 힘을 합친다면
반드시 진나라의 화를 면할 것입니다.
故敝邑趙王使臣效愚計,[一]
奉明約,在大王之詔詔之。」
그러므로 우리 나라 조왕이 사신으로 명하여 이 계책을 바치고
맹약을 맺어 받들고자 하여
대왕의 의사를 듣고자 합니다,”
注[一]索隱此「效」猶呈也,見也。
魏王曰:
「寡人不肖,未嘗得聞明教。
今主君以趙王之詔詔之,敬以國從。」
위왕이 말했다.
“과인은 불초하여
여태까지 밝은 가르침을 들을 기회가 없었소.
이제 그대에게서 조왕의 말씀을 들었으니
삼가 나라를 들어 따르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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