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七十
張儀列傳 第十
장의열전 제10-6
張儀去,西說趙王曰:〔1〕“敝邑秦王使使臣效愚計于大王。
張儀去(장의거) : 장의는 제나라를 떠나
西說趙王曰(서설조왕왈) : 서쪽 조왕에게 유세하기를
敝邑秦王使使臣效愚計於大王(폐읍진왕사사신효우계어대왕) : ‘우리 진나라 왕이 신을 사자로 보내어 계책을 대왕께 말씀드리라고 합니다.
大王收率天下以賓秦,〔2〕秦兵不敢出函谷關十五年。大王之威行于山東,
大王收率天下以賓秦(대왕수솔천하이빈진) : 대왕은 천하 제후를 영도하여 진나라를 배척하였으며
秦兵不敢出函谷關十五年(진병불감출함곡관십오년) : 여기 대해 진나라는 군사를 함곡관 밖으로 내지 않은 지 15년에
大王之威行於山東(대왕지위행어산동) : 대왕의 위력은 산동에 두루 미칩니다.
敝邑恐懼懾伏,〔3〕繕甲厲兵,〔4〕飾車騎,〔5〕習馳射,
敝邑恐懼懾伏(폐읍공구섭복) : 우리 진나라는 이를 두려워하여
繕甲厲兵(선갑려병) : 갑옷을 기워 고치고 무기를 갈고
飾車騎(식차기) : 거마를 꾸미어
習馳射(습치사) :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연습하고
力田積粟,守四封之內,愁居懾處,不敢動搖,唯大王有意督過之也。〔6〕
力田積粟(력전적속) :경작에 힘서 양식을 저축하고
守四封之內(수사봉지내) : 국내만을 지키어
愁居懾處(수거섭처) : 나라의 일을 걱정하며
不敢動搖(불감동요) : 감히 동요하지 않은 것은
唯大王有意督過之也(유대왕유의독과지야) : 오직 대왕에게 진나라를 감시하는 조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注釋】〔1〕“趙王”,據《傳》文,張儀說趙在秦?惠王后元十四年(公元前三一一年),
當趙武靈王十五年。趙武靈王名雍,公元前三二五年至前二九九年在位。
〔2〕“賓”,通“擯”,排斥。〔3〕“懾伏”,因畏懼而屈服。
〔4〕“繕甲厲兵”,整治軍裝,磨快武器。“繕”,整治。“厲”,磨礪。
〔5〕“飾”,通“飭”,整飭。〔6〕“督過”,深深地責備。
“今以大王之力,舉巴蜀,〔1〕并漢中,〔2〕包兩周,遷九鼎,〔3〕守白馬之津。〔4〕
今以大王之力(금이대왕지력) : 이제야 대왕의 덕택으로
擧巴蜀(거파촉) : 파·촉을 공략하여
幷漢中(병한중) : 한중을 병합하고
包兩周(포양주) : 양주를 포용하여
遷九鼎(천구정) : 구정을 돌려주고
守白馬之津(수백마지진) : 백마의 나무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秦雖僻遠,然而心忿含怒之日久矣。
秦雖僻遠(진수벽원) : 진나라는 비록 변방 나라이지만
然而心忿含怒之日久矣(연이심분함노지일구의) : 오랫동안 마음에 분함과 원한을 품은지 오래되었습니다.
今秦有敝甲凋兵,〔5〕軍于澠池,愿渡河踰漳,據番吾,會邯鄲之下,
今秦有敝甲凋兵(금진유폐갑조병) : 이제 진나라의 무장한 군사는 피곤하고 쇠약하다고는 하지만
軍於澠池(군어민지) : 민지에 진을 쳤습니다.
願渡河踰漳(원도하유장) : 바라는 것은 하수를 건너고 장수를 넘어
據番吾(거번오) : 번오를 근거지로 하여
會邯鄲之下(회감단지하) : 조나라 서울 한단의 성 아래에 모이고
愿以甲子合戰,〔6〕以正殷紂之事,〔7〕敬使使臣先聞左右。
願以甲子合戰(원이갑자합전) : 또 갑자일에 조군과 대전하여
以正殷紂之事(이정은주지사) : 은나라 주왕의 고사를 본떠서 사리의 그릇됨을 바루고자 합니다 .
敬使使臣先聞左右(경사사신선문좌우) : 삼가 사신에게 명하여 이를 좌우 측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注釋】〔1〕“舉巴蜀”,據《六國年表》,秦滅蜀在惠文王后九年(公元前三一六年),
當趙武靈王十年。
〔2〕“并漢中”,據《秦本紀》及《楚世家》,秦惠王后十三年(公元前三一二年),
取楚漢中,當趙武靈王十四年。
〔3〕“包兩周,遷九鼎”,這不合事實,據《六國年表》,秦取兩周在莊襄王元年(公元前二四九年),
當趙孝成王十七年,這時張儀已死六十一年。
〔4〕“白馬之津”,古津渡名,在今河南滑縣東北。
〔5〕“敝甲凋兵”,這是對秦軍的謙辭。“敝甲”,破舊的甲衣。“凋兵”,殘缺的兵器。
〔6〕“甲子合戰”,甲子是周武王克商的日子。〔7〕“殷紂”,商朝最后一代君主。
“凡大王之所信為從者恃蘇秦。蘇秦熒惑諸侯,〔1〕以是為非,以非為是,欲反齊國,而自令車裂于市。
凡大王之所信爲從者恃蘇秦(범대왕지소신위종자시소진) : 대체로 대왕게서 합종의 유리함을 믿은 것은 소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蘇秦熒惑諸侯(소진형혹제후) : 소진은 제후를 현혹시켜
以是爲非(이시위비) : 옳은 것을 그르다고 말하고
以非爲是(이비위시) : 그른 것을 옳다고 하여
欲反齊國(욕반제국) : 제나라를 뒤집어 엎으려고 하다가
而自令車裂於市(이자령차열어시) : 일이 발각되자 자원하여 장터에서 거열형을 받았습니다.
夫天下之不可一亦明矣。今楚與秦為昆弟之國,而韓梁稱為東藩之臣,〔2〕齊獻魚鹽之地,〔3〕此斷趙之右臂也。
夫天下之不可一亦明矣(부천하지불가일역명의) : 그런 사람의 으로 하여 천하가 연합되지 않을 것은 처음부터 명백한 일이었습니다.
今楚與秦爲昆弟之國(금초여진위곤제지국) : 이제야 초나라는 진나라와 형제의 나라가 되고
而韓梁稱爲東藩之臣(이한량칭위동번지신) : 한나라 위나라는 동번의 신하라고 일컬어 진나라를 섬기고
齊獻魚鹽之地(제헌어염지지) : 제나라는 고기와 소금이 나는 지대를 진나라에 바쳤습니다.
此斷趙之右臂也(차단조지우비야) : 이것은 조나라의 오른 팔을 끊은 것과 같습니다.
夫斷右臂而與人斗,失其黨而孤居,求欲毋危,豈可得乎!
夫斷右臂而與人鬪(부단우비이여인투) : 무릇 오는팔을 끊기어 남과 싸우고
失其黨而孤居(실기당이고거) : 도당을 잃어 고립되면
求欲毋危(구욕무위) : 나라의 편안을 바란다고 해도
豈可得乎(개가득호) :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
【注釋】〔1〕“熒惑”,眩惑。
〔2〕“韓梁稱為東藩之臣”,這不合史實。據《秦本紀》,“韓王入朝,魏舉國聽命”,
在秦昭襄王五十三年(公元前二五四)年,時張儀已死五十五年。
又據《秦始皇本紀》,韓稱臣于秦在秦始皇十三年(公元前二三四年),距張儀之死已七十五年。
〔3〕“齊獻魚鹽之地”,這是夸大的話,當時并無其事。
“今秦發三將軍:其一軍塞午道,〔1〕告齊使興師渡清河,軍于邯鄲之東;一軍軍成皋,驅韓梁軍于河外;〔2〕
今秦發三將軍(금진발삼장군) : 이제 진나라가 3장군을 파견하면
其一軍塞午道(기일군색오도) : 1군은 오도를 막고
告齊使興師渡淸河(고제사흥사도청하) : 제나라에 통고하여 군사를 내게 하고 청하를 건너서
軍於邯鄲之東(군어감단지동) : 조나라 한단 동쪽에 진을 치고
一軍軍成皐(일군군성고) : 일군은 성고에 진을 치고
驅韓梁軍於河外(구한량군어하외) : 한나라와 위나라 군대를 하외로 몰아낼 것입니다.
一軍軍于澠池。約四國為一以攻趙,趙破,必四分其地。
一軍軍於澠池(일군군어민지) : 1군은 민지에 진을 치고
約四國爲一以攻趙(약사국위일이공조) : 진·제·한·위의 네 나라가 한 몸이 되어 조나라를 공격할 것입니다.
趙服(조복) : 조나라가 패하면
必四分其地(필사분기지) : 토지는 반드시 네 나라가 분할합니다.
是故不敢匿意隱情,先以聞于左右。臣竊為大王計,莫如與秦王遇于澠池,面相見而口相結,
是故不敢匿意隱情(시고불감익의은정) : 이 일을 굳이 숨기지 않고
先以聞於左右(선이문어좌우) : 미리 좌우에 말씀 드리는 것은
臣竊爲大王計(신절위대왕계) : 신이 은근히 대왕을 위해 생각하건대
莫如與秦王遇於澠池(막여여진왕우어민지) : 진왕과 민지에서 회견하고
面相見而口相結(면상견이구상결) : 서로 얼굴을 맞재어 직접 구두로써 서로 친선을 맺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請案兵無攻。〔3〕愿大王之定計。”
請案兵無攻(청안병무공) : 청컨대 그리하여 진나라의 출병을 역제하고 진나라에서 먼저 공격하는 일이 없도록
願大王之定計(원대왕지정계) : 대왕께서 방책을 정하시기 바랍니다.“고 말했다.
【注釋】〔1〕“午道”,縱橫交錯的重要通路,在趙東齊西。
〔2〕“河外”,地區名,指黃河以南,今河南鄭州市至滑縣一帶。
〔3〕“案兵”,止兵不動。“案”,通“按”。
趙王曰:“先王之時,〔1〕奉陽君專權擅勢,〔2〕蔽欺先王,獨擅綰事,〔3〕
趙王曰(조왕왈) : 조왕이 말하기를
先王之時(선왕지시) : “선대 숙후 때에
奉陽君專權擅勢(봉양군전권천세) : 아우 봉양군이 권세를 마음대로 휘둘러
蔽欺先王(폐기선왕) : 숙후를 속이고
獨擅綰事(독천관사) : 정치를 독단하였지요.
寡人居屬師傅,〔4〕不與國謀計。〔5〕先王棄群臣,〔6〕寡人年幼,奉祀之日新,心固竊疑焉,
寡人居屬師傅(과인거속사부) : 과인은 구에 있어서 스승에게 배우며
不與國謀計(불여국모계) : 나라의 계책에 참여한 일이 없었소.
先王弃羣臣(선왕기군신) : 선왕이 작고하시자
寡人年幼(과인년유) : 과인은 연소한 나이로 즉위하여
奉祀之日新(봉사지일신) : 종묘에 제사를 받든 지가 얼마 되지 않아
心固竊疑焉(심고절의언) : 합종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음속으로 미심쩍었소.
以為一從不事秦,非國之長利也。乃且愿變心易慮,割地謝前過以事秦。
以爲一從不事秦(이위일종불사진) : 그 뒤에 합종 때문에 진나라를 섬기지 못하는 것은
非國之長利也(비국지장리야) : 국가 장구한 이익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되어
乃且願變心易慮(내차원변심역려) : 종래의 생각을 고치고
割地謝前過以事秦(할지사전과이사진) : 토지를 쪼개어 전날의 과오를 사과하고 진나라를 섬기기를 원하였소.
方將約車趨行,〔7〕適聞使者之明詔。”
方將約車趨行(방장약차추행) : 그리하여 마침 수레에 말을 매어 진나라의 조정을 참례하려는 때에
適聞使者之明詔(적문사자지명조) : 이렇게 사자를 보낸 밝은 처분을 받았습니다.”고 했다.
趙王許張儀,張儀乃去。
趙王許張儀(조왕허장의) : 조왕이 장의의 말을 받아들이자
張儀乃去(장의내거) : 장의는 다시 조나를 떠났다.
【注釋】〔1〕“先王之時”,先王指趙武靈王父趙肅侯。
〔2〕“奉陽君專權擅勢”,這不合事實。奉陽君李兌專權在趙武靈王子趙惠文王時。
〔3〕“擅”,攬。“綰”,控扼。〔4〕“屬”,付托。〔5〕“與”,參與。
〔6〕“棄群臣”,對死亡的避忌說法。〔7〕“趨”,同“趣”,
趣向北之燕,說燕昭王曰:〔1〕“大王之所親莫如趙。
北之燕(북지연) : 북쪽 연나라로 가서
說燕昭王曰(설연소왕왈) : 연나라 소왕에게 유세하기를
大王之所親莫如趙(대왕지소친막여조) : “대왕게서 가장 친하게 교제하는 나라는 조나라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昔趙襄子嘗以其姊為代王妻,〔2〕欲并代,
昔趙襄子嘗以其姊爲代王妻(석조양자상이기자위대왕처) : 그러나 조나라는 옛날 조양자 때에 누이를 대왕의 아내로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欲幷代(욕병대) : 그것은 대나라를 병합하려는 마음이었습니다 .
約與代王遇于句注之塞。〔3〕乃令工人作為金斗,長其尾,〔4〕令可以擊人。
約與代王遇於句注之塞(약여대왕우어구주지새) : 그리하여 대왕과 구주산의 성채에서 회견하기를 약속하는 한편
乃令工人作爲金斗(내령공인작위금두) : 공인에게 명하여 금두를 만들게 하고
長其尾(장기미) : 그 자루를 길게 하여
令可以擊人(령가이격인) : 사람을 칠 수 있도록 했습니다.
與代王飲,陰告廚人曰:‘即酒酣樂,進熱啜,〔5〕反斗以擊之。’〔6〕
與代王飮(여대왕음) : 대왕과 술을 마실 때
陰告廚人曰(음고주인왈) : 가만히 요리사에게 이러두기를
卽酒酣樂(즉주감락) : ‘주인이 한창 흥겨워질 때에
進熱啜(진열철) : 금두로 뜨거운 음식을 권하고
反斗以擊之(반두이격지) : 그것을 거꾸로 쥐어 대왕을 치라.’고 하였습니다.
于是酒酣樂,進熱啜,廚人進斟,〔7〕因反斗以擊代王,殺之,
於是酒酣樂(어시주감락) : 그리하여 주련 도중에 환락이
進熱啜(진열철) : 익어갈 때
廚人進斟(주인진짐) : 요리사는 명령한 대로
因反斗以擊代王(인반두이격대왕) : 금두를 거꾸로 장아 대왕을 쳐서
殺之(살지) : 죽였습니다.
王腦涂地。其姊聞之,因摩笄以自刺,〔8〕故至今有摩笄之山。〔9〕代王之亡,天下莫不聞。
王腦塗地(왕뇌도지) : 임금은 골이 쏟아져서 땅에 흩어졌습니다.
其姊聞之(기자문지) : 조양자의 누이는 그 말을 듣고
因摩笄以自刺(인마계이자자) : 비녀를 날카롭게 갈아서 스스로 찔러 자결했습니다.
故至今有摩笄之山(고지금유마계지산) : 그런 가닭에 지금도 마계라는 이름의 산이 있습니다.
代王之亡(대왕지망) : 대왕의 죽음은
天下莫不聞(천하막불문) : 천하에서 모르는 자가 없습니다.
【注釋】〔1〕“燕昭王”,名職,燕王噲的庶子,公元前三一一年至前二七九年在位。
〔2〕“趙襄子”,趙鞅之子,名無恤,春秋末年晉國大夫,與韓、魏兩家三分晉國。
“代王”,代,國名,在今河北蔚縣東北。其時代未稱王,當作“代君”。
〔3〕“句注”,山名,在今山西代縣西北,即雁門山。
〔4〕“金斗”,銅作的口大底小的方形器皿,有柄。〔5〕“熱啜”,熱羹。“啜”,音chuò。
〔6〕“反斗以擊之”,指把斗底反過來擊代君的頭部。〔7〕“進斟”,進到席間倒羹汁。
〔8〕“摩”,同“磨”。“笄”,古代婦女用來挽發的簪子。〔9〕“摩笄山”,在今河北涿鹿縣東北。
“夫趙王之很戾無親,〔1〕大王之所明見,且以趙王為可親乎?
夫趙王之很戾無親(부조왕지흔려무친) : 이와 같이 조왕이 무도하고 인정이 없는 것은
大王之所明見(대왕지소명견) : 대왕도 잘 아실 것입니다.
且以趙王爲可親乎(차이조왕위가친호) : 그런데 누가 조왕과 친할 생각을 가지겠습니까?
趙興兵攻燕,〔2〕再圍燕都而劫大王,大王割十城以謝。
趙興兵攻燕(조흥병공연) : 일찍이 조나라는 군사를 출동하여 연나라를 공격하고
再圍燕都而劫大王(재위연도이겁대왕) : 다시 연나라 서울을 포위하여 대왕을 위협했으므로
大王割十城以謝(대왕할십성이사) : 대왕은 10개 성을 쪼개어 사죄하였습니다.
今趙王已入朝澠池,效河間以事秦。
今趙王已入朝澠池(금조왕이입조민지) : 그런데 조왕은 지금 민지에 참조하여
效河閒以事秦(효하한이사진) : 하간 땅을 제공하고 진나라를 섬깁니다.
今大王不事秦,秦下甲云中、九原,〔3〕驅趙而攻燕,則易水、長城非大王之有也。〔4〕
今大王不事秦(금대왕불사진) : 이제 만약 대왕이 진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秦下甲雲中九原(진하갑운중구원) : 진나라는 군사를 운중과 구원으로 보내어
驅趙而攻燕(구조이공연) : 조나라를 끌어내서 연나라를 칠 것입니다.
則易水長城非大王之有也(칙역수장성비대왕지유야) : 그렇게 되면 역구와 장성도 대왕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注釋】〔1〕“很”,通“狠”,兇狠。“戾”,暴戾。
〔2〕“趙興兵攻燕”三句,此事不見于記載。
〔3〕“云中”,郡名,趙武靈王所置,轄境相當于今內蒙土默特右旗以東,大青山以南,
卓資縣以西,長城以北。“九原”,趙邑,秦后于此置縣,治所在今內蒙包頭市西。
〔4〕“易水”,水名,在今河北省境內,源出河北易縣西,東流至定興縣西南,與拒馬河合。
“長城”,指燕的南長城,在今河北易縣西南。
“且今時趙之于秦猶郡縣也,不敢妄舉師以攻伐。
且今時趙之於秦猶郡縣也(차금시조지어진유군현야) : 오늘날 조나라의 진나라에 대한 처지는 마치 진나라의 고을과 같으니
不敢妄擧師以攻伐(불감망거사이공벌) : 조나라가 함부로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今王事秦,秦王必喜,趙不敢妄動,
今王事秦(금왕사진) : 이제 임금께서 진나라를 섬기면
秦王必喜(진왕필희) : 진왕은 반드시 기뻐하고
趙不敢妄動(조불감망동) : 조나라도 망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是西有強秦之援,而南無齊趙之患,是故愿大王孰計之。”
是西有彊秦之援(시서유강진지원) : 이것은 서쪽에 강진의 원조가 있어
而南無齊趙之患(이남무제조지환) : 남쪽의 제나라와 조나라의 화근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是故願大王孰計之(시고원대왕숙계지)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생각을 깊이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燕王曰:“寡人蠻夷僻處,雖大男子裁如嬰兒,〔1〕言不足以采正計。
燕王曰(연왕왈) : 연왕이 이르기를
寡人蠻夷僻處(과인만이벽처) : “과인은 미개한 변방 오랑캐 땅에 있어서
雖大男子裁如嬰兒(수대남자재여영아) : 신체는는 장부와 같으나 지혜는 어린 아이와 같아서
言不足以采正計(언불족이채정계) : 과인의 생각 같은 것은 정당한 계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今上客幸教之,請西面而事秦,獻恒山之尾五城。”〔2〕
今上客幸敎之(금상객행교지) : 이제 다행히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얻었소.
請西面而事秦(청서면이사진) : 바라건대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겨
獻恆山之尾五城(헌긍산지미오성) : [연왕은] 항산 기슭 5개 성을 진나라에 바치겠습니다. ”고 하였다.
燕王聽儀。儀歸報,未至咸陽而秦惠王卒,武王立。〔3〕
燕王聽儀(연왕청의) : 장의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儀歸報(의귀보) : 장의는 보고하려 진나라로 돌아왔는데
未至咸陽而秦惠王卒(미지함양이진혜왕졸) : 함양에 도착하기 전에 진혜왕이 죽고
武王立(무왕입) : 대신 무왕이 섰다.
武王自為太子時不說張儀,〔4〕及即位,群臣多讒張儀曰:
武王自爲太子時不說張儀(무왕자위태자시불설장의) : 무왕은 태자 때부터 장의를 싫어하였으므로
及卽位(급즉위) : 즉위하자
羣臣多讒張儀曰(군신다참장의왈) : 여러 신하들이 장의를 무고 하였다.
“無信,左右賣國以取容。秦必復用之,恐為天下笑。”
無信(무신) :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내로서
左右賣國以取容(좌우매국이취용) :여기저기에 나라를 팔며 자기의 출세만을 생각합니다.
秦必復用之(진필복용지) : 만일 진나라가 굳이 그를 등용한다면
恐爲天下笑(공위천하소) : 아마도 천하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고 했다.
諸侯聞張儀有郤武王,〔5〕皆畔衡,復合從。〔6〕
諸侯聞張儀有卻武王(제후문장의유각무왕) : 제후들은 장의가 무왕과 사이가 나쁘고 틈이 있다는 것을 듣자
皆畔衡(개반형) : 모두 연횡을 반대하여
復合從(복합종) : 다시 합종을 하기에 이르렀다.
【注釋】〔1〕“裁”,通“才”,僅僅。
〔2〕“恒山”,古山名,在今河北曲陽西北與山西接界處。恒山之尾,在燕的西南界。
〔3〕“武王”,秦武王,名蕩,惠文王子,公元前三一○年至前三○七年在位。
〔4〕“說”,通“悅”。〔5〕“郤”,通“隙”,裂痕。
〔6〕“畔”,通“叛”。“衡”,通“橫”,戰國后期,指東方各國與秦聯合。“合從”,指六國合縱抗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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