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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의 조의제문에 대한 왕의 전교와 신하들의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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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山 30卷 4年 7月 17日 (辛亥) 2번째기사

/ 김일손의 사초에 실린 김종직의 조의제문에 대한 왕의 전교와 신하들의 논의

○傳旨曰: “金宗直草茅賤士, 世祖朝登第, 至成宗朝, 擢置經筵, 久在侍從之地,

以至刑曹判書, 竉恩傾朝。 及其病退, 成宗猶使所在官, 特賜米穀, 以終其年。

今其弟子金馹孫所修史草內, 以不道之言, 誣錄先王朝事, 又載其師宗直《弔義帝文》。

전지하기를,

“김종직은 초야의 미천한 선비로 세조조에 과거에 합격했고, 성종조에 이르러서는

발탁하여 경연(經筵)에 두어 오래도록 시종(侍從)의 자리에 있었고, 종경에는 형조

판서(刑曹判書)까지 이르러 은총이 온 조정을 경도하였다.

병들어 물러가게 되자 성종께서 소재지의 수령으로 하여금 특별히 미곡(米穀)을

내려주어 그 명을 마치게 하였다. 지금 그 제자 김일손(金馹孫)이 찬수한 사초(史草)

내에 부도(不道)한 말로 선왕조의 일을 터무니없이 기록하고 또 그 스승 종직의

조의제문을 실었다.

其辭曰:

그 글에 이르기를,

丁丑十月日, 余自密城道京山, 宿踏溪驛,

‘정축 10월 어느 날에 나는 밀성(密城)으로부터

경산(京山)으로 향하여 답계역(踏溪驛)에서 자는데,

夢有神披七章之服, 頎然而來, 自言:

“楚懷王孫心爲西楚霸王所弑, 沈之郴江。”

因忽不見。

꿈에 신(神)이 칠장(七章)의 의복을 입고

헌칠한 모양으로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초(楚)나라회왕(懷王)손심(孫心)인데,

서초 패왕(西楚霸王)2007) 에게 살해 되어 빈강(郴江)에 잠겼다.」 하고

문득 보이지 아니하였다.

[註 2007]서초 패왕(西楚霸王) : 항우(項羽)

余覺之, 愕然曰:

“懷王南楚之人也, 余則東夷之人也。

地之相距, 不啻萬有餘里,

而世之先後, 亦千有餘載。

來感于夢寐, 玆何祥也?

나는 꿈을 깨어 놀라며 생각하기를

「회왕(懷王)은 남초(南楚) 사람이요, 나는 동이(東夷) 사람으로

지역의 거리가 만여 리가 될 뿐이 아니며,

세대의 선후도 역시 천 년이 휠씬 넘는데,

꿈속에 와서 감응하니, 이것이 무슨 상서일까?

且考之史, 無沈江之語,

豈羽使人密擊, 而投其屍于水歟?

是未可知也。”

遂爲文以弔之。

또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강에 잠겼다는 말은 없으니,

정녕 항우(項羽)가 사람을 시켜서 비밀리에 쳐 죽이고

그 시체를 물에 던진 것일까?

이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고,

드디어 문(文)을 지어 조문한다.

惟天賦物則以予人兮,

孰不知尊四大與五常?

匪華豐而夷嗇,

曷古有而今亡?

하늘이 법칙을 마련하여 사람에게 주었으니,

어느 누가 사대(四大) 오상(五常)2008) 높일 줄 모르리오.

중화라서 풍부하고 이적이라서 인색한 바 아니거늘,

어찌 옛적에만 있고 지금은 없을손가.

[註 2008]사대(四大) 오상(五常) :

사대(四大)는 천대(天大)·지대(地大)·도대(道大)·왕대(王大)를 이름이요,

오상(五常)은 오륜(五倫)을 이름.

故吾夷人, 又後千載兮,

恭弔楚之懷王。

그러기에 나는 이인(夷人)이요 또 천 년을 뒤졌건만,

삼가 초 회왕을 조문하노라.

昔祖龍之弄牙角兮,

四海之波, 殷爲衁。

雖鱣鮪鰍鯢, 曷自保兮,

옛날 조룡(祖龍)2009) 이 아각(牙角)을 농(弄)하니,

사해(四海)의 물결이 붉어 피가 되었네.

비록 전유(鱣鮪), 추애(鰌鯢)라도 어찌 보전할손가.

[註 2009]조룡(祖龍) : 진 시황(秦始皇).

思網漏而營營。

時六國之遺祚兮,

沈淪播越, 僅媲夫編氓。

그물을 벗어나기에 급급했느니,

당시 육국(六國)의 후손들은 숨고 도망가서

겨우 편맹(編氓)가 짝이 되었다오.

梁也南國之將種兮,

踵魚狐而起事。

求得王而從民望兮,

存熊繹於不祀。

항양(項梁)은 남쪽 나라의 장종(將種)으로,

어호(魚狐)를 종달아서 일을 일으켰네.

왕위를 얻되 백성의 소망에 따름이여!

끊어졌던 웅역(熊繹)2010) 의 제사를 보존하였네.

[註 2010]웅역(熊繹) : 주 성왕(周成王) 때 사람인데 초(楚)의 시봉조(始封祖)임.

握乾符而面陽兮,

天下固無大於芉氏。

遣長者而入關兮,

亦有足覩其仁義。

건부(乾符)2011) 를 쥐고 남면(南面)을 함이여!

천하엔 진실로 미씨(芈氏)2012) 보다 큰 것이 없도다.

장자(長者)를 보내어 관중(關中)에 들어가게 함이여!

또는 족히 그 인의(仁義)를 보겠도다.

[註 2011]건부(乾符) : 천자의 표시로 갖는 부서(符瑞).

[註 2012]미씨(芈氏) : 초(楚)나라의 성.

羊狠狼貪, 擅夷冠軍兮,

胡不收而膏齊斧?

嗚呼! 勢有大不然者兮,

吾於王而益懼。

양흔 낭탐(羊狠狼貪)2013) 이 관군(冠軍)2014) 을 마음대로 축임이여!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2015) 에 기름칠 아니했는고.

아아, 형세가 너무도 그렇지 아니함에 있어,

나는 왕을 위해 더욱 두렵게 여겼네.

[註 2013]양흔 낭탐(羊狠狼貪) : 항우(項羽)를 비유함.

[註 2014]관군(冠軍) : 경자 관군(卿子冠軍).

[註 2015]제부(齊斧) : 정벌하는 도끼임. 천하를 정제한다는 뜻에서 나옴.

爲醢腊於反噬兮,

果天運之蹠盭。

반서(反噬)를 당하여 해석(醢腊)2016) 이 됨이여,

과연 하늘의 운수가 정상이 아니었구려.

[註 2016]해석(醢腊) : 젓과 포.

郴之山磝以觸天兮,

景晻愛以向晏。

郴之水流以日夜兮,

波淫泆而不返。

빈의 산은 우뚝하여 하늘을 솟음이야!

그림자가 해를 가리어 저녁에 가깝고.

빈의 물은 밤낮으로 흐름이여!

물결이 넘실거려 돌아올 줄 모르도다.

天長地久,

恨其可旣兮,

魂至今猶飄蕩。

천지도 장구(長久)한들

한이 어찌 다하리

넋은 지금도 표탕(瓢蕩)하도다.

余之心貫于金石兮,

王忽臨乎夢想。

循紫陽之老筆兮,

思螴蜳以欽欽。

내 마음이 금석(金石)을 꿰뚫음이여!

왕이 문득 꿈속에 임하였네.

자양(紫陽)의 노필(老筆)을 따라가자니,

생각이 진돈(螴蜳)2017) 하여 흠흠(欽欽)하도다.

[註 2017]진돈(螴蜳) : 충융(沖瀜)과 같은데,

포외(怖畏)의 기운이 넘쳐서 안정하지 못한다는 뜻임.

擧雲罍以酹地兮,

冀英靈之來歆。

술잔을 들어 땅에 부음이어!

바라건대 영령은 와서 흠항하소서.’ 하였다.

其曰: ‘祖龍之弄牙角。’ 者, 祖龍秦始皇也,

宗直以始皇比世廟。

그 ‘조룡(祖龍)이 아각(牙角)을 농(弄)했다.’는 조룡은 진 시황(秦始皇)인데,

종직이 진 시황을 세조에게 비한 것이요,

其曰: ‘求得王而從民望。’ 者, 王, 楚懷王孫心,

初項梁誅秦, 求孫心以爲義帝, 宗直以義帝比魯山。

그 ‘왕위를 얻되 백성의 소망을 따랐다.’고 한 왕은

초 회왕(楚懷王)손심(孫心)인데,

처음에 항량(項梁)이 진(秦)을 치고 손심을 찾아서 의제(義帝)를 삼았으니,

종직은 의제를 노산(魯山)2018) 에게 비한 것이다.

[註 2018]노산(魯山) : 단종.

其曰: ‘羊狠狼貪, 擅夷冠軍者。’

宗直以羊狠狼貪指世廟, 擅夷冠軍,

指世廟誅金宗瑞。

그 ‘양흔 낭탐(羊狠狼貪)하여 관군(冠軍)을 함부로 무찔렀다.’고 한 것은,

종직이 양흔 낭탐으로 세조를 가리키고, 관군을 함부로 무찌른 것으로

세조가 김종서(金宗瑞)를 베인 데 비한 것이요.

其曰: ‘胡不收而膏齊斧?’ 者, 宗直指魯山胡不收世廟。

그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에 기름칠 아니 했느냐.’고 한 것은,

종직이 노산이 왜 세조를 잡아버리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다.

其曰: ‘爲醢腊於反噬。’ 者,

宗直謂魯山不收世廟, 反爲世廟醢腊。

그 ‘반서(反噬)를 입어 해석(醢腊)이 되었다.’는 것은,

종직이 노산이 세조를 잡아버리지 못하고,

도리어 세조에게 죽었느냐 하는 것이요.

其曰: ‘循紫陽之老筆, 思螴蜳以欽欽。’ 者,

宗直以朱子自處, 其心作此賦, 以擬《綱目》之筆。

그 ‘자양(紫陽)은 노필(老筆)을 따름이여, 생각이 진돈하여 흠흠하다.’고 한 것은,

종직이 주자(朱子)를 자처하여 그 마음에 부(賦)를 짓는 것을,

《강목(綱目)》의 필(筆)에 비의한 것이다.

馹孫贊其文曰: ‘以寓忠憤。’

그런데 일손이 그 문(文)에 찬(贊)을 붙이기를

‘이로써 충분(忠憤)을 부쳤다.’ 하였다.

念我世祖大王當國家危疑之際,

姦臣謀亂, 禍機垂發,

誅除逆徒, 宗社危而復安,

子孫相繼, 以至于今,

생각건대, 우리 세조 대왕께서 국가가 위의(危疑)한 즈음을 당하여,

간신이 난(亂)을 꾀해 화(禍)의 기틀이 발작하려는 찰라에

역적 무리들을 베어 없앰으로써 종묘 사직이 위태했다가 다시 편안하여

자손이 서로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功業巍巍, 德冠百王。

不意宗直與其門徒, 譏議聖德,

至使馹孫誣書於史, 此豈一朝一夕之故?

그 공과 업이 높고 커서 덕이 백왕(百王)의 으뜸이신데,

뜻밖에 종직이 그 문도들과 성덕(聖德)을 기롱하고 논평하여

일손으로 하여금 역사에 무서(誣書)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이 어찌 일조일석의 연고이겠느냐.

陰蓄不臣之心, 歷事三朝,

余今思之, 不覺慘懼。

其令東西班三品以上, 臺諫、弘文館, 議刑以啓。”

속으로 불신(不臣)의 마음을 가지고 세 조정을 내리 섬겼으니,

나는 이제 생각할 때 두렵고 떨림을 금치 못한다.

동·서반(東西班) 3품 이상과 대간·홍문관들로 하여금

형을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鄭文炯、韓致禮、李克均、李世佐、盧公弼、尹慜、安瑚、洪自阿、申溥、

李德崇、金友臣、洪碩輔、盧公裕、鄭叔墀議:

정문형(鄭文炯)·한치례(韓致禮)·이극균(李克均)·이세좌(李世佐)·노공필(盧公弼)·

윤민(尹慜)·안호(安瑚)·홍자아(洪自阿)·신부(申溥)·이덕영(李德榮)·김우신(金友臣)·

홍석보(洪碩輔)·노공유(盧公裕)·정숙지(鄭叔墀)가 의논드리기를,

“今觀宗直《弔義帝文》,

非唯口不可讀, 目不忍視也。

“지금 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보오니,

입으로만 읽지 못할 뿐 아니라 눈으로 차마 볼 수 없사옵니다.

宗直當世祖朝, 從仕已久,

自謂才高一世, 而不見納於世廟,

遂懷憤懟之心, 托辭於文,

譏剌聖德, 語極不道。

종직이 세조조에 벼슬을 오래하자,

스스로 재주가 한 세상에 뛰어났는데

세조에게 받아들임을 보지 못한다 하여,

마침내 울분과 원망의 뜻을 품고 말을 글에다 의탁하여

성덕(聖德)을 기롱했는데, 그 말이 극히 부도(不道)합니다.

原其心, 與丙子謀亂之臣何異?

그 심리를 미루어 보면

병자년에 난역(亂逆)을 꾀한 신하들과 무엇이 다르리까?

當論以大逆, 剖棺斬屍,

明正其罪, 以雪臣民之憤, 實合事體。”

마땅히 대역(大逆)의 죄로 논단하고

부관 참시(剖棺斬屍)해서 그 죄를 명정(明正)하여

신민의 분을 씻는 것이 실로 사체에 합당하옵니다.” 하고,

柳輊議:

“宗直不臣之心, 罪不容誅, 宜置極刑。”

유지(柳輊)는 의논드리기를,

“종직의 불신(不臣)한 그 심리는,

죄가 용납될 수 없사오니 마땅히 극형에 처하옵소서.” 하고,

朴安性、成俔、申浚、鄭崇祖、李季仝、權健、金悌臣、李季男、尹坦、

金克儉、尹殷老、李諿、金碔、金敬祖、李叔瑊、李堪議:

박안성(朴安性)·성현(成俔)·신준(申浚)·정숭조(鄭崇祖)·이계동(李季仝)·

권건(權健)·김제신(金悌臣)·이계남(李季男)·윤탄(尹坦)·김극검(金克儉)·

윤은로(尹殷老)·이집(李諿)·김무(金珷)·김경조(金敬祖)·이숙함(李叔瑊)·

이감(李堪)은 의논드리기를,

“宗直假托夢妖, 詆毁先王,

大逆不道, 宜置極典。”

“종직이 요사한 꿈에 가탁하여 선왕을 훼방(毁謗)하였으니,

대역 부도(大逆不道)입니다. 마땅히 극형에 처해야 하옵니다.” 하고,

卞宗仁、朴崇質、權景祐、蔡壽、吳純、安處良、洪興議:

변종인(卞宗仁)·박숭질(朴崇質)·권경우(權景祐)·채수(蔡壽)·

오순(吳純)·안처량(安處良)·홍흥(洪興)은 의논드리기를,

“宗直懷二心, 不臣之罪已甚,

依律斷之爲便。”

“종직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불신(不臣)한 죄가 이미 심하온즉,

율(律)에 의하여 처단하는 것이 편하옵니다.” 하고,

李仁亨、表沿沫議:

“觀宗直《弔義帝文》及所指之意,

罪不容誅。”

이인형(李仁亨)·표연말(表沿沫)이 의논드리기를,

“종직의 《조의제문》과 지칭한 뜻을 살펴보니

죄가 베어 마땅하옵니다.” 하고,

李克圭、李昌臣、崔璡、閔師騫、洪瀚、李均、金係行議:

이극규(李克圭)·이창신(李昌臣)·최진(崔璡)·민사건(閔師蹇)·

홍한(洪瀚)·이균(李均)·김계행(金係行)이 의논드리기를,

“宗直罪犯, 所不忍言,

依律文論斷, 以戒人臣懷二心者。”

“종직의 범죄는 차마 말로 못하겠으니,

율문에 의하여 논단해서

인신(人臣)으로 두 마음 가진 자의 경계가 되도록 하옵소서.” 하고,

鄭誠謹議:

“宗直陰懷是心, 臣事世廟,

凶惡不測, 宜置重典。”

정성근(鄭誠謹)이 의논드리기를,

“종직이 음으로 이런 마음을 품고 세조를 섬겼으니,

그 흉악함을 헤아리지 못하온즉 마땅히 중전(重典)에 처해야 하옵니다.” 하고,

李復善議:

“宗直作《弔義帝文》, 在丁丑十月,

則蓄不臣之心久矣。

이복선(李復善)이 의논드리기를,

“종직이 조의제문을 지은 것이 정축년(丁丑年) 10월이었으니,

그 불신(不臣)의 마음을 품은 것이 오래이었습니다.

觀解釋弔文之言,

非徒耳不忍聞, 抑亦目不忍見。

그 조문(弔文)을 해석한 말을 살펴보니,

비단 귀로 차마 들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역시 눈으로도 차마 보지 못하겠습니다.

其身雖死, 其惡可追, 宜從叛臣之律論斷,

則宗直地下之鬼, 必稽首甘心伏辜矣。”

그 몸이 비록 죽었을지라도 그 악을 추죄(追罪)할 수 있사오니,

마땅히 반신(叛臣)의 율에 따라 논단하소서.

종직의 귀신이 지하에서

반드시 머리를 조아리며 달갑게 복죄(伏罪)할 것입니다.” 하고,

李世英、權柱、南宮璨、韓亨允、成世純、鄭光弼、金勘、李寬、李幼寧議:

이세영(李世英)·권주(權柱)·남궁찬(南宮璨)·한형윤(韓亨允)·성세순(成世純)·

정광필(鄭光弼)·김감(金勘)·이관(李寬)·이유녕(李幼寧)이 의논드리기를,

“今觀宗直文, 語極不道。

論以亂逆何如?”

“지금 종직의 글을 보오니,

말이 너무도 부도(不道)하옵니다.

난역(亂逆)으로 논단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하고,

李惟淸、閔壽福、柳廷秀、趙珩、孫元老、辛服義、安彭壽、李昌胤、朴權議:

이유청(李惟淸)·민수복(閔壽福)·유정수(柳廷秀)·조형(趙珩)·손원로(孫元老)·

신복의(辛服義)·안팽수(安彭壽)·이창윤(李昌胤)·박권(朴權)이 의논드리기를,

“宗直《弔義帝文》, 語多不道,

罪不容誅。

“종직의 조의제문은 말이 많이 부도(不道)하오니,

죄가 베어도 부족하옵니다.

然其人已死, 追奪爵號,

廢錮子孫何如?”

그러나 그 사람이 이미 죽었으니

작호(爵號)를 추탈하고

자손을 폐고(廢錮)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하였는데,

從文炯等議。

문형 등의 의논에 따랐다.

御筆抹執義李惟淸等, 司諫閔壽福等議, 以示弼商等曰:

어필(御筆)로 집의(執義) 이유청(李惟淸) 등과 사간(司諫) 민수복(閔壽福)의 논의에

표를 하고, 필상 등에게 보이며 이르기를,

“宗直大逆已著, 而此輩議之如此,

是欲庇之也。

“종직의 대역이 이미 나타났는데도

이 무리들이 논을 이렇게 하였으니,

이는 비호하려는 것이다.

安有如此痛恨之事?

其就所坐處, 拿來刑訊。”

어찌 이와 같이 통탄스러운 일이 있느냐?

그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가서 잡아다가 형장 심문을 하라.” 하였다.

時諸宰及臺諫、弘文館皆在坐,

忽有羅將十餘人持鐵鎖, 一時走入,

宰相以下莫不錯愕起立。

이때 여러 재상과 대간과 홍문 관원이 모두 자리에 있었는데,

갑자기 나장(羅將) 십여 인이 철쇄(鐵鎖)를 가지고 일시에 달려드니,

재상 이하가 놀라 일어서지 않는 자가 없었다.

惟淸等受訊杖三十, 竝供無他情。

유청 등은 형장 30대를 받았는데,

모두 다른 정(情)이 없음을 공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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