燕山 30卷 4年 7月 16日 (庚戌) 1번째기사
/ 강귀손·유자광 등이 김종직에 관한 일을 논의하다
○庚戌/
傳曰: “世廟嘗謂: ‘宗直不肖。’
宗直怨之, 故作文譏議, 一至於此。
전교하기를,
“세조께서 일찍이 김종직(金宗直)을 불초(不肖)하다 하셨는데,
종직이 이것을 원망하였기 때문에 글월을 지어
기롱하고 논평하기를 이에 이른 것이다.
人臣有過, 君責之, 乃如此可乎?
諸宰相其知之。”
신하가 허물이 있으매 임금이 책했다 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 가한가.
여러 재상들은 알아 두라.” 하였다.
弼商等共議請鞫編集宗直文集者,
윤필상(尹弼商)이 함께 의논하여
종직의 문집 편집자를 국문하기를 청하니,
姜龜孫曰:
“編集者若知其文意, 則罪固大矣, 無奈不知乎?”
강귀손(姜龜孫)이 말하기를,
“편집한 자가 만약 그 글 뜻을 알았다면 죄가 참으로 크지만,
알지 못했다면 어찌할 것인가?” 하니,
柳子光曰: “豈可依違?”
유자광(柳子光)은 말하기를,
“어찌 우물쭈물하는가?” 하고,
又曰: “豈可囁嚅?”
또 이르기를,
“어찌 머뭇머뭇하는가?” 하였다.
弼商等啓:
“臣等觀宗直《弔義帝文》,
필상 등이 아뢰기를,
“신 등이 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보니,
其義深僻, 非馹孫以寓忠憤之語, 誠難曉然。
그 의미가 깊고 깊어
김일손의 ‘충분(忠憤)을 부쳤다.’는 말이 없었다면
진실로 해독하기 어려웠습니다.
苟知其義, 而纂集刊行,
則其罪大矣, 請鞫之。”
그러나 그 뜻을 알고 찬집하여 간행하였다면
그 죄가 크오니, 청컨대 국문하소서.” 하고,
龜孫啓: “初議請鞫纂集者,
귀손은 아뢰기를,
“처음 찬집자의 국문을 청하자고 발의할 때에,
臣曰: ‘其文義誠難曉。
編集者若知其義, 則固有罪矣, 無奈不知乎?’
신은 말하기를
‘그 글뜻이 진실로 해득하기 어려우니,
편집한 자가 만약 그 뜻을 알았다면 진실로 죄가 있지만,
알지 못했다면 어찌하랴.’ 하였는데,
子光云:
‘豈可依違? 豈可囁嚅?’
臣實未安。
자광(子光)의 말이
‘어찌 우물쭈물하느냐?’ ‘어찌 머뭇머뭇하느냐?고 하니,
신이 실로 미안하옵니다.
宗直文集, 臣家亦有之。
臣嘗觀覽, 而未解其意。
종직의 문집은 신의 집에도 역시 있사온데,
신은 일찍이 보고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臣聞, 曺偉編集, 鄭錫堅刊行。
신은 듣자오니,
조위(曺偉)가 편집하고 정석견(鄭錫堅)이 간행했다 하옵는데,
此二人皆臣相交者,
今臣言如此, 而子光之言如彼,
이 두 사람은 다 신과 서로 교분이 있는 처지라서,
지금 신의 말은 이러하고 자광의 말은 저러하니,
子光必疑臣欲庇偉等而然也。
參鞫未安, 請避。”
자광은 반드시 신이 조위 등을 비호하고자 하여 그런다고 의심할 것이온즉,
국문에 참예하기가 미안합니다. 청컨대 피하겠습니다.” 하니,
傳曰: “編集及刊行者其鞫之。”
전교하기를,
“편집한 자나 간행한 자를 아울러 국문하도록 하라.” 하고,
傳于龜孫曰:
“子光之言雖如彼, 卿豈可以此而避?”
귀손에게 전교하기를,
“자광의 말이 비록 그러하다 할지라도 경이 그로써 피해서는 되겠는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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