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주]연암은 이 편지에서 한글은 한 자도 모른다고 했는데, 한글의 기록적 문자로서의 가치를 부인한 겁입니다.그는 진짜로 한글로 남긴 기록문장이 없습니다.힌글의 가치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점은 연암사상의 유일한 약점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그는 농서를 모아 정리한 <과농소초>에서는 곡식명과 농기구명 50여개를 적긴 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남긴 한글기록물의 전부입니다.

족손(族孫) 홍수(弘壽) 에게 답함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 연암집 제 3 권


[주C-001]홍수(弘壽) : 박홍수(1751 ~ 1808)는 자가 사능(士能)으로, 박상로(朴相魯)의 아들이다. 벼슬은 현감을 지냈다. 그의 집안은 연암의 4대조 박세교(朴世橋) 이후 갈라진 집안이다. 그의 부인 함종 어씨(咸從魚氏)의 외조부가 바로 연암의 고조 박필균(朴弼均)이었다.


뜻밖에 종놈이 왔기에 그가 가져온 편지를 뜯어 반도 채 읽지 않아서 글자 한 자마다 눈물이 한 번 흘러 천 마디 말이 모두 눈물로 변하니 종이가 다 젖어 버렸구나. 이런 일들은 내가 지난날에 두루 겪었던 일들이니, 어찌 마음이 아프고 뼈가 저려 팥알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겠느냐.


아, 세상의 가난한 선비들 중에는 천 가지 원통함과 만 가지 억울함을 품고도 끝내 그 한을 풀지 못하는 자가 있다. 무릇 성(城) 하나를 맡아 국가의 보루가 되었는데, 불행히도 강성한 이웃나라의 오만한 적군이 번갈아 침략하여, 운제(雲梯)와 충거(衝車) 등으로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서 공격해 오는데도, 밖으로는 개미만큼의 미미한 원조도 끊어지고 안으로는 참새나 쥐, 말 고기와 첩의 인육까지 다 떨어져 필경에는 간과 뇌가 성과 함께 으스러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뜻을 꺾고 몸을 굽히지 않은 것은 지켜야 할 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D-001]운제(雲梯)와 충거(衝車) : 성을 공격하는 무기들로, 운제는 높은 사다리이고, 충거는 충돌하여 성을 무너뜨리는 병거(兵車)이다.
[주D-002]참새나 …… 말았지만 :
당 나라 안사(安史)의 난 때 어사중승(御史中丞) 장순(張巡)은 태수(太守) 허원(許遠)과 함께 수양(睢陽)을 지키고 있었는데, 반란군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곡식이 다 떨어져 많은 병사들이 굶어 죽자 장순은 자신의 애첩을 죽여 군사들에게 먹였고, 허원은 종을 죽여서 군사들을 먹였다. 또 참새나 쥐 등도 모조리 잡아서 먹도록 하고 갑옷, 쇠뇌 등도 삶아서 먹게 했다. 이렇게 해서까지 성을 지키고자 하였으나 끝내 함락되면서 모두 적의 손에 죽었다. 《新唐書 卷192 張巡傳》


그러므로 살아서는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고 죽어서는 의로운 귀신이 되었으며, 아내는 봉작(封爵)되고 자손들은 음직(蔭職)을 얻어 만대에 길이 부귀를 누렸으며, 이름이 역사에 남겨지고 제사가 끊어지지 않았다.


가난한 선비가 굳은 절조를 지킨 경우, 그가 겪은 곤란과 우환이 어찌 열사(烈士)가 고립된 성을 지킨 것과 조금이라도 다른 적이 있었겠는가. 그 또한 오직 ‘나에게는 지켜야 할 바가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평생을 헤아려 보면, 효제충신(孝悌忠信)과 예의염치는 씻은 듯이 찾아볼 수 없고, 종국에 성취한 것이란 작은 신의를 위하여 스스로 도랑에서 목매 죽는 것을 흉내낸 데 불과하다. 그리하여 살아서는 못난 사내요 죽어서는 궁한 귀신이 되며, 종들은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고 처자는 보존되지 못하며, 제 이름자는 묻혀 없어지고 무덤은 적막할 뿐이다.


[주D-003]작은 …… 것 : 《논어》 헌문(憲問)에서 공자는 “관중(管仲)이 환공(桓公)을 도와 제후(諸侯)의 패자가 되어 한 번 천하를 바로잡게 한 덕분에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으니, 관중이 없었다면 우리는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편으로 여미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 어찌 필부필부(匹夫匹婦)가 작은 신의를 위하여 스스로 도랑에서 목매 죽되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과 같이 행동하겠는가.” 하였다.


아, 슬프다! 하늘이 백성들에게 선(善)을 부여하실 때 어찌 그토록 다르게 했겠으며, 뜻의 독실함 또한 어찌 남과 같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그들이 원통함과 억울함을 끝내 풀어 버리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런데도 세상의 논자들은 선뜻 한마디 말로 마감하여 말하기를, “가난이란 선비에게 당연한 일이다.”라고 하는데, 도대체 이 말이 어느 책에서 나왔는지 전혀 모르겠어서 마침내 옛 성현들이 남긴 교훈을 뒤적여 보았더니, 공자는 “군자는 본디 곤궁하다.〔君子固窮〕” 했고, 맹자는 “선비는 뜻을 높이 가진다.〔士尙志〕” 하였다.


[주D-004]군자는 본디 궁하다 :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나오는 내용이다. 공자가 진(陳) 나라에서 양식이 떨어져 종자(從子)들이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할 지경이 되자, 자로(子路)가 성난 얼굴로 공자에게 “군자(君子)도 곤궁할 때가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군자는 본디 곤궁하다. 소인(小人)은 곤궁하면 외람된 짓을 한다.” 하였다.
[주D-005]선비는 …… 가진다 :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서 제 나라 왕자(王子) 점(墊)이 “선비는 무엇을 일삼는가?” 하고 묻자, 맹자는 “뜻을 높이 가진다.”라고 답하였다.


천하에서 본디 곤궁하고 뜻을 높이 가지는 선비 중에 이 사람〔若人 가난한 선비〕보다 더 심한 사람이 없는데도, 성인은 이 사람을 위해서 이와 같은 말을 준비하여 거듭 훈계하신 듯하니, 어찌 지극히 원통하고 지극히 억울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소계(蘇季)는 허벅지를 송곳으로 찔러가며 글을 읽고 곤궁한 매고(枚皐)는 독서에 더욱 매진했으니 이는 바로 그들이 원통함을 씻고 억울함을 푸는 밑천이 되었지.


[주D-006]소계(蘇季)는 …… 읽고 : 소계는 전국 시대의 종횡가(縱橫家) 소진(蘇秦)으로, 그의 자가 계자(季子)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소진은 글을 읽다가 졸음이 오면 자신의 허벅지를 송곳으로 찔러 잠을 쫓아, 피가 발까지 흘러내리곤 했다 한다. 《戰國策 秦策》
[주D-007]곤궁한 …… 매진했으니 :
매고(枚皐)는 한(漢) 나라 경제(景帝) 때의 저명한 문인 매승(枚乘)의 서자이다. 어려서 아버지와 헤어져 어머니와 함께 곤궁하게 살다가, 나중에 대궐에 글을 올려 자신이 무제(武帝)가 초빙하고 싶어했으나 작고한 매승의 아들임을 밝힘으로써 벼슬을 얻게 되었다. 부송(賦頌)에 뛰어나고 또 글을 빨리 지었기 때문에 무제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漢書 卷51 枚皐傳》 단 그가 독서에 매진했다는 고사는 출전을 알 수 없다.


종놈을 붙잡아 두어 무엇 하리오마는, 부득불 장날을 기다려 베도 사와야 하고, 겸하여 솜도 타야 하겠기에 자못 날짜를 허비하게 되었고, 또 비와 눈이 연달아 내려 즉시 떠나보내지 못했을 뿐이다. 둘째 아이 혼사는 아직 정한 곳도 없는데 미리 준비하는 것을 어찌 논할 수 있겠느냐. 아마도 내가 평소에 물정에 어두운 줄을 잘 알 텐데, 오히려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을 보니 도리어 절로 웃음이 난다.


[주D-008]둘째 아이 …… 없는데 : 연암의 차남 종채(宗采)는 1795년(정조 19) 가을에 처사 유영(柳詠)의 딸인 전주 유씨(全州柳氏)와 결혼하였다.


누이의 편지가 비록 위로가 되지만, 내행(內行)을 다 보내고 홀로 빈 관아를 지키고 있자니, 곁에서 대신 글을 읽게 하고 필사(筆寫)를 시킬 사람이 없어도 어쩔 도리가 없구나. 내 평생 언문이라고는 한 글자도 모르기에, 50년 동안 해로한 아내에게도 끝내 편지 한 글자도 서로 주고받은 일 없었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한이 될 따름이다. 이 일은 아마도 들어서 알고 있을 터이니, 나를 대신해서 이 말을 전해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


[주D-009]내행(內行) : 먼 길을 나들이한 집안의 부녀자들을 가리킨다.
[주D-010]50년 동안 해로한 아내 :
연암의 부인 전주 이씨(全州李氏)는 연암과 동갑으로, 16세 되던 1752년(영조 28)에 시집 와서 1787년(정조 11) 향년 51세로 별세하였다. 그러므로 부부로서 해로한 햇수는 35년인데, 아마 부인의 향년을 들어 대략 ‘50년’이라 말한 듯하다.


현수(玄壽)가 편지를 보내왔는데, 약간의 물자를 보내어 도와주고 싶지만 애닯게도 인편이 없어서, 지금까지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마치 무엇이 목구멍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이 종놈에게 주어 보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이놈의 생김새가 신실치 못한 것 같기에 우선 그만두고 다른 인편을 기다릴 따름이다. 장부 정리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으니 환곡을 다 받아들이면 결단코 돌아가려 한다.


[주D-011]현수(玄壽) : 박현수(1754 ~ 1816)는 자가 사문(士門)으로, 박상규(朴相圭)의 아들이고 박홍수의 사촌 동생이다. 벼슬은 하지 못했다.
[주D-012]신실치 못한 것 같기에 :
원문은 ‘若不信實’인데, 몇몇 이본들에는 ‘苦不信實’ 즉 ‘몹시 신실하지 않기에’로 되어 있다. 이 역시 문리는 통한다.
[주D-013]장부 …… 끝났으니 :
1792년(정조 16) 연암은 안의 현감(安義縣監)으로 부임하자 아전들에게 그간 환곡을 횡령한 사실을 자수하도록 권하고, 처벌을 가하는 대신 자진하여 변상하게 하니, 아전들이 몇 년 안에 완납하여 장부가 완전히 정리되었다고 한다. 《過庭錄 卷2》


이제 막 안경을 걸치고 이 편지 쓰기를 다 못 마쳤는데, 통진(通津)에서 편지 두 통이 또 왔구나. 아직 편지를 뜯어서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사연은 보나마나 뻔한 일이다. 이만 줄인다.


[주D-014]통진(通津)에서 …… 왔구나 : 통진은 경기도 김포(金浦)의 한강 입구에 있던 현(縣)이다. 그곳에 사는 연암의 친척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보낸 듯하다.





'한문학 > 연암 박지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낭환집서  (0) 2008.09.20
자소집서  (2) 2008.09.20
원사(原士) -선비란 무엇인가?  (0) 2008.09.15
회우록서 -박지원  (0) 2008.09.14
취하여 운종교를 거닌 기록 -박지원  (0) 2008.09.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