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비연에게 밀려 장신궁을 지킨 반첩여

조비연(趙飛燕) - "작장중무(作掌中舞)"
"가볍기 그지 없어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출 수 있을 정도였다."

 

조비연(趙飛燕)이 중국의 4대미인에서 탈락한 이유는 아무래도 그녀의 특징이 아름다움보다 말라깽이의 가벼움에 치우쳐 당대의 보편적 미의 기준에서 일탈했기 때문인 듯하다.그녀는 소문난 춤꾼이었다.그녀를 지칭할 때는 항상 4대 미인의 한 사람인 양귀비와 더불어 거론한다.바로 "연수환비(燕瘦環肥)"라는 성어인데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조비연(趙飛燕)은 말라갱이[瘦] 미인이었고,양귀비[본명: 양옥환(楊玉環)]는 통통한[肥] 미인이였다.또한 흔히 일컬어조비연(趙飛燕)은 날씬한 미인의 대명사로 임풍양류(臨風楊柳)형 미인,
양귀비(楊貴妃)는 풍만한 미인의 대명사로 부귀모란(富貴牡丹)형 미인
이라 한다.

은자도 미인의 무게 중심을 후자쪽에 두는 편인데 조비연은 예외다.

그녀는

백옥같이 희며 얼음 같이 매끄러운 살결을 가진,

풍만한 몸집의 아우 조합덕과 함께 성제를 녹여 여류시인 반첩여를 장신궁에

몰아낼 정도였으니 두 자매의 활약상은 불문가지다.

 

요즘말로 하면 조비연은 춤 잘추는 의상 패션모델인데,

아우 조합덕은마뜩한 사례가 없군요.

어쨌든 해파리처럼 먹이를 감싸서흡수하여 녹여버린다고 보면 될 것 같군요.

오늘은 그녀의 영면을 빌며 수많은 문학 유산을 남겨준 조비연에게 감사한다.

발레리나 비연, 4대미인에서 탈락한걸 슬퍼 마오.

지금은 당신의 시대여서 재사정하면 1위 등극은 따놓은 당상관일 거요.

 

조비연 조합덕자매,

조비연은 몸이 날씬하고 가벼우나

조합덕(趙合德)은 풍만하고 백옥같이 희며 얼음 같이 매끄러운
살결의 절세의 미인들이였다 한다.
이들 재매가 입궁한후 임금은 그들의 艶色에 혜여나지 못하고
심지어 잠자리도 한 침상을 사용하였다 하니
((언니는 아래를 녹여라 난 위를 녹일테니..ㅎㅎㅎ))
이들 두 자매의 권세도 무소불위라 혹여 다른 비빈들이 임금의
龍種을 잉태하지나 않을가 염려하여 임금과 비빈들이
접촉을 못하도록 원천봉쇄하였는데 거기엔 허황후까지도
임금을 만날 수 없었다,
어느 날 황태후를 뫼셔다 놓은 허황후가 이들 자매를 불러들여
그 죄를 물어 참수하려는 찰나에 이급박한 사정을 전해 들은 임금이
황급히 나타나 죽음을 모면하였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조비연 자매는 황후에게 이를 갈았으니,
급기야 이들의 모략으로 허황후는 차디찬 냉궁(장신궁)으로
내어쫒기고 조비연이 황후가 된다.

그러나 성제 사후 폐비되어 장신궁에 갇혔다가 출궁당하여 유리걸식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의 영욕이 새옹지마 (塞翁之馬)인가?

 

 

http://kr.blog.yahoo.com/seoul44uss/2745

 

長信宮(一作長信怨

-李白

 

月皎昭陽殿 소양전엔 포근한 달빛이 명랑한데
霜清長信宮 장신궁엔 흰서리만 뒤덮혀 있네
天行乘玉輦 임금은 옥련(가마)위에 높이 앉았고
飛燕與君同 조비연이 곁에 앉아 아양을 떠네
別有歡娛處 특별한 오락을 즐기러 가겠지
承恩樂未窮 밤새워 내리는 聖恩 얼마나 즐거우랴
誰憐團扇妾 내 신세 찬바람에 낡은 부채라
獨坐怨秋風 홀로앉아 가을바람 원망이나 할밖에

 

昭陽殿 = 본래 한무제(漢武帝)가 지은궁궐이나 成帝때 조비연 자매가 거처하던 전각으로 이후부터 황제의 총애를 받던 비빈이 거처하는 곳의 전각을 소양전이라 부른다.

長信宮 = 漢나라때 황후 또는 황태후가 거처하던 전각으로 총애를 잃었거나 허물이있어 유폐시키던곳으로 가끔 冷宮이라 부르기도함.

團扇(團扇妾)= 황제에게 시원한 바람을 부처주지 못하는 낡은부채를 비유한 말로 총애를 잃은 비빈을 뜻함.

 

http://blog.daum.net/hklee1109/5610532

長信秋詞(장신추사)

-왕창령

金井梧桐秋葉黃(금정오동추엽황)하니珠簾不捲夜來霜(주렴불권야래상)이라薰籠玉枕無顔色(훈롱옥침무안색)하니臥聽南宮淸漏長(와청남군청루장)이라

 

샘가에 오동잎이 누렇게 물들었네드리운 발 밤서리만 차갑네장롱과 베개도 먼지가 끼어 빛을 잃었네누워서 南宮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 듣고 있네

 

(長信宮의 가을의 怨詞=長信秋詞)는 天子의 발걸음이 끊어진 가을철長信宮에서 슬프게 세월을 보내는 女人의 심정을 쓴 글이다.)

 

http://kr.blog.yahoo.com/jho1938/1396

長信秋詞(장신추사): 장신궁에서의 가을 탄식 -조비연(趙飛燕)

眞成薄命久尋思 진성박명구심사
夢見君王覺後疑몽견군왕각후의
火照西宮知夜飮 화조서궁지야음
分明複道奉恩時분명복도봉은시

참으로 박명한 신세 되어 오랜 그리움에 헤매다
꿈속에서 임금님을 뵈옵곤 깨고 나니 의심스럽네.
불빛은 서궁을 비추니 저녁 향연 있음을 알겠건만
성은(聖恩)을 받들던 때의 통로만이 훤히 빛나네.
장신궁(長信宮)은 한나라 성제의 후궁이었던 반첩여(班婕妤)가 거처하던 궁이다. 성제에겐 반첩여(班婕妤)와 조비연(趙飛燕)이라는 두 명의 아리따운 미인이 있었다. 그런데, 성제가 처음에는 반첩여를 매우 총애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비연에게로 사랑을 옮겨 갔다. 조비연은 성제의 마음이 혹시라도 반첩여에게 되돌아갈 것을 염려하여, 반첩여가 임금을 중상모략했다고 무고하여 그녀를 옥에 가두게 만든다. 그러나 진상을 조사한 결과 반첩여의 혐의는 풀렸지만, 그녀의 처지는 그 옛날 임금의 총애를 한몸에 받던 그때와 같지 않게 된다. 반첩여는 장신궁에 머물면서 과거 임금의 총애를 받던 일을 회상하고 현재의 자신의 처지를 돌이켜보게 된다. 시인은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인 반첩여의 목소리를 빌어다가 왕창령의 長信秋詞(장신추사) 이다.


조비연(趙飛燕)한(漢) 나라 성양후(成陽侯) 조임(趙臨)의 딸로 본명은 빙선주(憑-心宣主)다.
가무(歌舞)를 배워 몸이 가볍기가 나는 제비 같았으므로 비연(飛燕)이라 하였다. 절세의 미인으로서 진한(秦漢)시대 미인 조비연(趙飛燕) 성제(成帝)의 비(妃)로 어릴 적 집안이 가난해 병든 어머니의 약값과 생계비가 필요해 쌍둥이 여동생 합덕(合德)과 함께 조옹(趙翁)집에 팔려간 뒤 성이 조씨가 됐다.


그뒤 여동생 합덕(合德)과 함께 성제(成帝)의 후궁이 되었으며, 뒤에 황후(皇后)가 되었다가 성제가 죽고 나서 비연 자매는 탄핵의 대상이 되었다. 대신들은 그녀들이 황제를 죽였다고 판단하여 비연을 황후의 자리에서 억지로 내치게 만들었다. 그것이 조비연(趙飛燕)의 <長信秋詞 >이다. 졸지에 황후에서 걸인이 된 비연은 유리걸식하면서 생활하다가 자살을 하고, 동생 합덕은 미쳐서 죽었다고 한다고 한다.

반첩여(班婕妤 BC48-BC6)

반(班)첩여(婕妤)는 중국 한나라 때 궁녀의 관명으로 방황(班況)의 딸이자 사가(史家)로 한서를 찬출한 반고(班固32-92)의 고모 할머니가 된다 어려서부터 재학이 있었다 효성제 즉위년 후궁으로 들어갔다. 처음 소사(少使)가되었다가 곧 대행(大幸)이되고 나중에 첩여(婕妤)가 되었다

원가행(怨歌行

원망하는 노래)

-반첩여(班婕妤)
新裂齊紈素 신렬제환소
鮮潔如霜雪 선결여상설
裁爲合歡扇 재위합환선
團圓似明月 단원사명월
出入君懷袖 출입군회수
動搖微風發 동요미풍발
常恐秋節至 상공추절지
凉飇奪炎熱 양표탈염열
棄捐篋笥中 기연협사중
恩情中道絶 은정중도절제나라 고운 비단 새롭게 자르니서리나 눈과 같이 선명하고 깨끗하여
마름지어 합환선을 만드니
고르게 둥근 것이 보름달과 같네
님께서 출입할제 소매 속에 드나들며
흔들흔들 시원한 미풍을 일으켰지만
항상 두려운 것은 가을철이 되면
서늘한 바람이 더위를 앗아가 듯
대나무 상자 안에 부채가 버려져지듯
은혜로운 사랑이 도중에 끊어질까 함이네.

전날 황제의 총애를 받던 일을 그리워하면서 지금의 처지를 가을이 되어
쓸모가 없게 된 부채와 같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班婕妤
(반첩여)- 王維(왕유)

怪來班閣閉 괴래반각폐
朝下不相迎 조하부상영
總向春園裏 총향춘원리
花間笑語聲. 화간소어성.

괴상 하여라 반각(班閣)이 닫혀 있어
조회 마치고 와도 맞이하지 않는구나.
그것은 모두 봄 동산을 향하여
꽃 앞에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소리네

 

http://blog.naver.com/ainiyusang/120052891110


班婕妤(반첩여)한(漢)나라 성제(成帝)의 후궁으로 실총하여 장신궁(長信宮)에 거처하며 자도부(自悼賦)·도소부(悼素賦)·원가행(怨歌行) 세 편의 시가를 읊었음.
반첩여는 황제가 처음 즉위하여 가려서 후궁으로 들였다. 처음에는 저으기 부리다가 조금 후에 매우 사랑하여 첩여로 삼았다. 거처를 더하여 집을 지어주고 거듭 나아가 관을 지어주었다. 아들을 낳았으나 몇 달 만에 잃었다. 성제가 뒤뜰에서 노닐며 일찍이 첩여와 더불어 함께 가마에 오르고자 하니, 첩여가 사양하여 가로되, "옛날의 그림을 보면 어질고 성스러운 임금은 모두 이름난 신하가 곁에 있고 삼대(하은주)의 마지막 임금들은 이에 여자를 두고 있으니 지금 함께 가마에 오르고자 한다면 그에 비슷하지 않겠습니까?"하였다. 황제가 그말을 옳게 여겨 그만두었다. …… 그후 조비연 자매가 또한 미천한 곳으로부터 일어나 예의와 법제를 넘어서서 (황제의) 앞을 파고들어 일어나니 반첩여와 허황후 모두 사랑을 잃고 다시 나아가 보기가 드물었다. 조씨 자매가 교만하고 투기가 심하니 첩여가 오랫동안 위급함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여 장신궁에서 태후를 공양할 것을 원하니 황제가 허락하였다. 첩여가 물러나 동궁에 거처하며 자상도라는 부를 지었다. (전한서 제97 외척열전)
한나라 제도에 황제의 할머니를 장신궁으로 칭하고 황제의 어머니를 장락궁이라 칭하였다. (병아 석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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