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이 작품은 해피엔딩이라는 고소설의 구성을 탈피하여 <운영전>[일명 수성궁몽유록]처럼 비극적 결말을 확보한 차원에서 러브스토리의 사실성을 확보하였다 할 수 있다. 이는 장르상 ‘傳’의 특성 때문이라 하겠다.

이 <운영전>은  아래 블로그 창에 완역한 바 있다.

 

고전문학>고소설>수성궁몽유록

http://kydong77.tistory.com/5651

 

수성궁몽유록 해설

[낙선재] [은자주]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든 일제 만행은 아래 창에서도 한 번 언급한 바 있다. http://blog.paran.com/kydong/29613229 한문필사본으로 전해오던 운영전[수성군몽유록]은 영창서관에서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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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궁몽유록 제1회 부터

http://kydong77.tistory.com/5650

 

수성궁몽유록 제1회

제1회 壽聖宮, 卽安平大君舊宅也, 在長安城西仁旺山之下. 수성궁은 안평대군의 옛집으로 서울 서쪽 인왕산 밑에 자리잡았다. 山川秀麗, 龍盤虎踞, 산천이 수려하고 용이 서리고 범이 웅크린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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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궁몽유록 제24회 까지

http://kydong77.tistory.com/5421

 

수성궁몽유록 제24회 최종회

제24회 최종회 寫畢擲筆, 兩人相對悲泣, 不能自抑. 김생은 여기까지 적고 붓을 던지며 두 사람이 서로 붓들고 울며 자제하지 못했다. 柳泳慰之曰: 류영은 그들을 위로하였다. “兩人重逢, 志願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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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生傳(심생전)- 이옥(李鈺. 1760-1815)

 

沈生者

(심생자), 심생(沈生)은

京華士族也

(경화사족야).  서울의 양반이다.

弱冠

(약관), 그는 약관(弱冠)에 

容貌甚俊韶

(용모심준소), 용모가 매우 준수하고

風情駘蕩

(풍정태탕). 풍정(風情)이 넘치는 청년이었다.

 

嘗從雲從街觀駕動而歸

(상종운종가관가동이귀), 어느날 그가 운종가*에서 임금의 거둥을 구경하고 돌아오던 길에

*(雲從街 : 지금의 종로. 당시 서울의 중심가)

見一健婢以紫紬

(견일건비이자주)어떤 건장한 계집종이 자주빛 명주 보자기로

袱蒙一處子

(복몽일처자), 한 여자를 덮어씌워

負而行

(부이행), 업고 가는 것을 보았다.

婭鬟捧紅錦鞋

(아환봉홍금혜), 한 계집애가 붉은 비단신을 들고

從其後

(종기후).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生自外量其軀

(생자외량기구), 심생은 겉으로 그 몸뚱이를 겨냥해보고

非幼稚者也

(비유치자야). 어린애가 아닌 줄 짐작한 것이다.

遂緊隨之

(수긴수지), 그는 바짝 따라붙었다.

或尾之

(혹미지), 그 뒤꽁무니를 밟다가

或以袖掠以過

(혹이수략이과), 더러 소매로 스치고 지나가보기도 하면서

目未嘗不在於袱

(목미상부재어복). 계속 눈을 보자기에서 떼놓지 않았다.

 

到小廣通橋

(도소광통교), 소광통교(小廣通橋)에 이르렀을 때,

忽有旋風起於前

(홀유선풍기어전),갑자기 돌개바람이 앞에서 일어나

吹紫袱褫其半

(취자복치기반), 자주 보자기가 반쯤 걷히었다.

見有處子

(견유처자), 보니 과연 한 처녀라.

桃臉柳尾

(도겸유미)봉숭아빛 뺨에 버들잎 눈썹,

綠衣而紅裳

(녹의이홍상), 초록 저고리에 다홍 치마,

脂粉甚狼藉

(지분심낭자), 연지와 분으로 가장 곱게 화장을 하였다.

瞥見猶絶代色

(별견유절대색), 얼핏 보아서도 절대가인(絶代佳人)임을 알 수 있었다.

 

處子亦於袱中

(처자역어복중),처녀 역시 보자기 안에서

依稀見美少年

(의희견미소년), 어렴풋이 미소년이

衣藍衣, 戴草笠

(의남의,대초립), 쪽빛 옷에 초립(草笠)을 쓰고

或左或右而行

(혹좌혹우이행),왼편이나 오른편에 붙어서 따라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方注秋波, 隔袱視之

(방주추파), (격복시지), 마침 추파(秋波)를 들어 보자기 사이로 주시하든 참이었다.

 

袱其褫(복기치), 보자기가 걷히는 순간에 柳眼星眸(유안성모), 四目相擊(사목상격), 버들 눈, 별 눈동자의 네 눈이 서로 부딪쳤다. 且驚且羞(차경차수), 놀랍고 또 부끄러웠다.斂袱復蒙之而去(렴복부몽지이거). 처녀는 보자기를 걷잡아 다시 덮어쓰고 가버리었다.

 

生如何肯捨

(생여하긍사)? 심생은 어찌 이를 놓칠 것인가.

直隨到小公主洞紅箭門內

(직수도소공주동홍전문내), 바로 뒤좇아서 소공주동(小公主洞 : 지금의 소공동) 홍살문 안에 당도하자

處子入一中門而去

(처자입일중문이거), 처녀는 한 중문(中門)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生惘然如有失

(생망연여유실), 그는 멍하니 무언가 잃어버린 것처럼

彷徨者久

(방황자구). 한참을 방황했다.

得一鄰嫗而細偵之

(득일린구이세정지),그러다가 어떤 이웃 할멈을 붙들고 자세히 물어보았다.

蓋戶曹計士之老退者家

(개호조계사지노퇴자가),

호조(戶曹)에서 계사(計士 : 호조에 속한 회계원. 의관·역관과 함께 중인 출신들의 기술직)로 있다가 은퇴한 집이고,

而只有一女

(이지유일녀), 다만 딸 하나를 두었는데,

年十六七

(년십육칠), 나이는 16,7세였다.

猶未字矣

(유미자의). 아직 혼사를 정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問其所處(문기소처), 그 딸이 거처하는 곳을 물었더니 嫗指示之曰(지시지왈): 할멈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迤此小衚衕(타차소호동), "이 조그만 네거리를 돌아서면 有一粉牆(유일분장), 회칠한 담장이 나오고, 牆之內一夾室(장지내일협실), 담장 안의 한 골방에 卽處女之住也(즉처녀지주야).”바로 그 처자가 거처하고 있지요."

 

生旣聞之 不能忘

(생기문지, 불능망). 그는 이 말을 듣고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

夕詭於家曰

(석궤어가왈):저녁에 집안 식구에게 거짓말을 꾸며대었다.

“窗伴某

(반모), "동창 아무개가

要余同夜

(요여동야), 저와 밤을 같이 지내자고 하는군요.

請從今夕往

(청종금석왕).”오늘 저녁에 가볼까 합니다."

遂候人定往

(수후인정왕), 그는 행인이 끊어지기를 기다려

踰牆而入

(유장이입), 그 집 담을 넘어 들어갔다.

 

則初月淡黃

(즉초월담황), 그 때 초승달이 으스름한데

見窗外花木頗雅整

(견창외화목파아정),창 밖으로 꽃나무가 썩 아담하게 가꾸어졌고,

燈火照窗紙甚亮

(등화조창지심량). 등불이 창호지에 비치어 아주 환했다.

靠壁依檐而坐

(고벽의첨이좌), 심생은 처마 밑 바깥벽에 기대앉아서

屛息以侯

(병식이후),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室中有二梅香

(실중유이매향), 이 방안에 두 매향(梅香 : 몸종을 가리키는 말)과 함께 그 처녀가 있었다.

女則方低聲讀<諺解稗語>,(여즉방저성독언해패어)

그녀는 나지막한 소리로 언문 소설(諺文小說)을 읽는데

嚦嚦如雛鶯聲

(력력여추앵성). 꾀꼬리 새끼 울음같이 낭랑한 목청이었다.

 

至三鼓許

(지삼고허), 삼경 쯤에,

婭鬟已熟寐

(아환이숙매), 계집애는 벌써 깊이 잠들었고,

女始吹燈就寢

(여시취등취침), 그녀는 그제야 등불을 끄고 취침하였다.

而猶不寐者久

(이유불매자구), 그러나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若輾轉有所思者

(약전전유소사자), 뒤척뒤척 무언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生不敢寐

(생불감매), 심생은 잠이 올 리가 없거니와

亦不敢聲

(역불감성), 또한 바스락 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直至曉鐘已動

(직지효종이동), 그대로 새벽 종이 울릴 때까지 있다가

復爬牆而出

(복파장이출). 도로 담을 넘어 나왔다.

自是, 習爲常

(자시, 습위상), 그 뒤로는 이것이 일과가 되었다.

暮而往 罷漏而歸

(모이왕),(파루이귀). 저물어서 갔다가 새벽이면 돌아오는 것이었다.

如是者二十日

(여시자이십일),

이렇게 20일 동안 계속하였으나,

生猶不怠

(생유불태). 그래도 그는 게을리 아니하였다.

 

女始則或讀小說

(여시즉혹독소설), 그녀는 초저녁에는 소설책을 읽기도 하고

或針指

(혹침지). 바느질을 하기도 하다가

至半夜燈滅

(지반야등멸), 밤중에 이르러 불이 꺼지는데,

則或寐

(즉혹매), 이내 잠이 들기도 하고

或煩不寐矣

(혹번불매의). 더러 번민으로 잠을 못 이루기도 하는 것이었다.

 

過六七日 則輒稱

(과육칠일), (즉첩칭): 6,7일이 지나자 문득

“身不佳(신불가).”

'몸이 편치 못하다'고

纔初更, 便伏枕

(초경) (변복침), 겨우 초경(初更)부터 베개에 엎드려

頻擲手于壁

(빈척수우벽), 자주 손으로 벽을 두드리며

長吁短歎

(장우단탄), 긴 한숨 짧은 탄식을 내쉬어

聲息聞窗外

(성식문창외), 숨결이 창 밖까지 들리었다.

一夕甚於一夕

(일석심어일석). 하루 저녁 하루 저녁 갈수록 더해만 갔다.

 

第二十夕

(제이십석), 스무날 째 되는 밤이었다.

女忽自廳事出

(여홀자청사출), 그녀가 갑자기 마루로부터 내려와

繞壁而轉

(요벽이전), 바깥벽을 돌아

至于生所坐處

(지우생소좌처). 심생이 앉아 있는 처소에 당도하였다.

生自黑影中

(생자흑영중), 심생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突然起扶持之(돌연기부지지). 불끈 일어서 그녀를 붙잡았다.

 

女少不驚, 低聲語曰

(여소불경) (저성어왈): 그녀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郎莫是小廣通橋邂逅者耶

(낭막시소광통교해후자야)? "도련님은 소광통교 변(邊)에서 만난 분이 아니세요?

妾固已知郎之來已二十夜矣

(첩고이지낭지래이이십야의). 저는 이미 스무날 전부터 도련님이 다니시는 줄 알았답니다.

毋持我

(무지아), 저를 붙들지 마셔요.

一出聲不復出矣

(일출성불복출의). 한번 소리를 내면 다시는 여기서 못나갑니다.

若縱我

(약종아), 절 놓아주시면

我當開此戶以迎之

(아당개차호이영지),제가 뒷문을 열고 방으로 드시게 할께요.

速縱我(속종아).” 얼른 놓으셔요."

 

生以爲信 却立而俟之

(생이위신),(각립이사지)  심생은 곧이 듣고 물러서서 기다렸다.

女復迤邐而入

(여복타리이입). 그녀는 홱 돌아서 들어가 버렸다.

旣到其室, 呼婭鬟曰

(기도기실)(호아환왈):방에 들어가서는 계집애를 부르더니,

“汝媽媽許請朱錫大屈戍來

(여마마허청주석대굴수래), "너 엄마한테 가서 큰 주석 자물쇠를 주시라고 하여 갖고 오너라.

夜甚黑, 令人生怕

(야심흑)(령인생파).”밤이 깜깜해서 사람을 겁나게 하는구나."

 

婭鬟向上堂去

(아환향상당거), 계집애가 웃방 마루로 건너가서

未久(미구), 以屈戍來

(이굴수래), 금방 자물쇠를 들고 왔다.

女遂於所約後戶

(여수어소약후호), 그녀는 열어주기로 약속한 뒷문에다

拴上鎖, 弔甚分明

(전상쇄)(조심분명), 아귀진 쇠꼬챙이를 분명히 꽂고

以手安屈戍籥

(이수안굴수약), 다시 손으로 자물쇠를 채웠다.

故琅琅作下鎖聲

(고랑랑작하쇄성). 일부러 쇠를 채우는 소리를 찰카닥 내었다.

隨卽吹燈

(수즉취등), 그리고 곧 등불을 끄고

寂然若睡熟者

(적연약수숙자), 고요히 잠이 깊이 든 듯하였으나

而實未嘗睡也

(이실미상수야). 실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生痛其見欺

(생통기견기), 심생은 속임을 당하여 분통이 났다.

而亦幸其得一見

(이역행기득일견), 한편 생각하면 그나마 만나본 것만도 다행이다 싶었다.

又度夜於鎖戶之外

(우도야어쇄호지외), 여전히 쇠를 채운 방문 밖에서 밤을 새우고

晨而歸

(신이귀).새벽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翌日又往(익일우왕), 又翌日往

(우익일왕), 그는 다음날에 또 가고, 다음날에도 갔다.

不敢以戶鎖或懈

(불감이호쇄혹해), 방에 쇠가 채워져 있어도 조금도 해이해짐이 없이,

値雨下, 則蒙油而至

(치우하)(즉몽유이지), 비가 오면 유삼(油衫)을 둘러 쓰고 가서

不避沾濕

(불피첨습). 옷이 젖어도 관계하지 않았다.

如是又十日

(여시우십일), 이렇게 다시 열흘이 지났다.

 

夜將半, 渾舍皆酣睡

(야장반)(혼사개감수), 밤중에 온 집안이 모두 쿨쿨 잠들었고,

女亦滅燈已久

(여역멸등이구), 그녀 역시 등불을 끄고 한참이나 있다가

忽復蹶然起

(홀복궐연기), 문득 발딱 일어나서

呼婭鬟促點燈, 曰

(호아환촉점등, 왈):계집애를 불러 얼른 등에 불을 붙이라고 재촉하더니,

 

“汝輩今夕, 往上堂去睡

(여배금석)(왕상당거수).” "얘 너희들 오늘 밤엔 웃방으로 가서 자라."

 

兩梅香旣出戶

(양매향기출호), 두 매향(梅香)이 방문을 나가자,

女於壁上取牧籥

(여어벽상취목약), 그녀는 벽에 걸린 쇳대를 가지고

解下屈戍, 洞開後戶

(해하굴수)(통개후호), 자물쇠를 따고 뒷문을 활짝 열었다.

招生曰

(초생왈):심생을 부른다.

“郎入室

(낭입실).”"도련님, 들어오세요."

生未暇量

(생미가량), 심생은 얼떨떨하여

不覺身已入室

(불각신이입실). 자기도 모르게 몸이 벌써 방에 들어와 있었다.

女復鎖其戶 語生曰

(여복쇄기호), (어생왈):그녀는 다시 그 문에 쇠를 채우고 심생에게 말했다.

 

“願郎少坐

(원낭소좌).”"도련님, 잠깐 앉아계셔요."

 

遂向上堂去, 引其父母而至

(수향상당거) (인기부모이지). 웃방으로 가서 자기 부모를 모시고 나왔다.

其父母見大驚

(기부모견대경), 그 부모는 보고 어리둥절하였다.

女曰

(여왈):그녀는 말을 꺼내었다.

 

“毋驚 聽兒語

(무경).(청아어). "놀라지 마시고 제 말을 들어보셔요.

兒生年十七(아생년십칠), 제 나이 열일곱으로

足未嘗過門矣

(족미상과문의). 발걸음이 일찍이 문 밖을 나가지 못하옵다가, 

月前偶往觀駕動

(월전우왕관가동), 월전(月前)에 우연히 임금님의 거둥을 구경하고

歸到小廣通橋

(귀도소광통교), 돌아오던 길에 소광통교에서

風吹袱捲

(풍취복권), 덮어쓴 보자기가 바람에 날려 걷히었습니다.

適與一草笠郞君相面矣

(적여일초립랑군상면의). 마침 그 때 한 초립 도령과 얼굴이 마주쳤어요.

自其夕, 郞君無夜不至

(자기석 랑군무야불지),그날 밤부터 도련님이 안 오시는 날이 없이

屛俟於此戶之下

(병사어차호지하), 이 방문 밑에 숨어 기다린 지 今已三十日矣(금이삼십일의). 이제 이미 30일이 지났답니다.

雨亦至、寒亦至

(우역지) (한역지), 비가 와도 오시고, 추워도 오시고,

鎖戶而絶之  而亦至

(쇄호이절지),(이역지), 문에 쇠를 채워 거절해도 역시 오시었어요.

兒料已久矣

(아료이구의).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萬一聲聞外播

(만일성문외파),만일 소문이 밖으로 퍼져서

鄰里知之

(인리지지),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되면 則夕而入(즉석이입),

晨而出

(신이출), 밤에 들어왔다가는 새벽이면 나가는데

誰知其獨倚於窗壁外乎

(수지기독의어창벽외호)? 자기 홀로 창벽 밖에서 있은 줄을 누가 믿겠습니까.

是無其實而被惡名也

(시무기실이피오명야), 사실과 다르게 누명을 뒤집어 쓰지요.

兒必爲犬咋之雉矣

(아필위견색지치의). 제가 필야(必也) 개에게 물린 꿩이 되는 셈이지요.

彼以士大夫家郞君

(피이사대부가랑군), 그리고 저 분은 양반댁 도령으로

年方靑春

(년방청춘), 나이가 바야흐로 청춘이라

血氣未定

(혈기미정), 혈기가 아직 정(定)치 못하여 

只知蜂蝶之貪花

(지지봉접지탐화), 다만 나비와 벌이 꽃을 탐낼 줄만 알고

不顧風露之可憂

(불고풍로지가우), 바람과 이슬에 맞음을 돌보지 않으니

能幾日而病不作耶

(능기일이병부작야)?며칠 못가서 병이 나지 않겠습니까.

病則必不起

(병즉필불기), 병들면 필야 일어나지 못하리니,

是非我殺之, 而我殺之也

(시비아살지)(이아살지야). 그렇게 되면 제가 죽이지 않았어도 제가 죽인 셈입니다.

雖人不知, 必有陰報

(수인불지)(필유음보). 비록 남이 모르더라도 반드시 음보(陰報)가 있게 됩니다.

且兒身不過一中路家處子也

(차아신불과일중로가처자야), 또 제 몸은 한낱 중인(中人)집 딸에 불과합니다.

非有傾城絶世之色

(비유경성절세지색)、제가 무슨 절세의 경성지색(傾城之色)으로

沈魚羞花之容

(심어수화지용), 물고기가 숨고 꽃이 부끄러워할 만한 용모를 지닌 것도 아닌데,

而郞君見鴟爲鷹

(이랑군견)(저위응),도련님께서 솔개를 보고 매로 여기시어

其致誠於我 若是其勤

(기치성어아),(약시기근), 제게 지성을 바치되 이토록 부지런히 하옵십니다.

然而不從郞君者

(연이불종랑군자), 제가 만일 도련님을 따르지 않으면

天必厭之

(천필염지), 하늘이 반드시 싫어하시어

福必不及於兒矣

(복필불급어아의). 복을 제게 주시지 않을 거예요.

兒之意決矣

(아지의결의). 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顧願父母勿以爲憂

(고원부모물이위우).부모님께서는 근심하지 마옵소서.

噫 兒親老而無兄弟

(희! 아친노이무형제), 아! 저는 부모님께서 연로하시고 동기간이 없으니

嫁而得一贅婿

(가이득일췌서), 시집가서 데릴사위를 맞아

生而盡其養

(생이진기양), 살아계실 때에 봉양을 다하다가

死而奉其祀

(사이봉기사), 돌아가신 뒤에 제사를 모시면

兒之願足矣

(아지원족의), 제 소망에 족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而事忽至此

(이사홀지차), 이제 일이 뜻밖에 이렇게 되었으니,

此天也

(차천야),이 역시 하늘이라.

言之何益

(언지하익)?”말해 무엇하겠습니까?"

 

其父母黙然無可言

(기부모)(연무가언), 그녀의 부모는 어안이 벙벙했으나 달리 할 말이 없었고,

生亦無可言者

(생역무가언자). 심생 더욱 아무 말도 못했다.

乃與同寢

(내여동침),그래서 같이 동침을 하게 되었다.

 

渴仰之餘 其喜可知

(갈앙지여),(기희가지).  애타게 사모하던 끝에 그 기쁨이야 오죽하였으리오.

自是夕 始入室

(자시석),(시입실), 그날 밤 방에 들어간 이후로

又無日不暮往晨歸

(우무일불모왕신귀). 저물게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오지 않는 날이 없었다.

女家素富

(여가소부), 그녀의 집은 본래 부유했다.

於是 爲生具華美衣服甚盛

(어시),(위생구화미의복심성), 그로부터 심생을 위하여 산뜻한 의복을 정성껏 마련해 주었으나,

而生恐見異於家 不敢服

(이생공견이어가), (불감복). 그는 집에서 이상하게 여길까 보아서 감히 입지 못하였다.

生雖秘之深

(생수비지심),그러나 심생은 아무리 조심을 하여도

而其家疑其宿於外

(이기가의기숙어외), 집에서는 그가 바깥에서 자고

久不歸

(구불귀), 오래 돌아오지 않는데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命往山寺做業

(명왕산사주업), 그리하여 절에 가서 글을 읽으라는 명이 내리었다.

生意怏怏而迫於家

(생의앙앙이박어가), 심생은 마음에 몹시 불만이었으나, 집의 압력을 받고

且牽於儕友

(차견어제우), 또 친구들에게 이끌리어

束卷上北漢山城

(속권상북한산성).책을 싸들고 북한산성(北漢山城)으로 올라갔다.

留禪房將月

(유선방장월), 선방(禪房)에 머문 지 근 한 달 가까이 되었다.

 

有來傳女諺札於生者

(유래전여언찰어생자), 심생에게 그녀의 언문(諺文) 편지를 전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發之

(발지),편지를 펴보니

乃遺書告訣者也

(내유서고결자야). 유서(遺書)로 영영 이별하는 내용이 아닌가.

女已死矣

(여이사의). 그녀는 이미 죽은 것이다.

其書略曰

(기서략왈): 그 편지의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春寒尙緊

(춘한상긴), 「봄추위가 아직도 쌀쌀하온데

山寺做工連得平善

(산사주공연득평선), 절간의 글공부에 옥체 평안하시옵니까.

願言思之  無日可忘

(원언사지),(무일가망). 항상 사모하옵는 바 어느날이라 잊으리까.

妾自君之出

(첩자군지출), 소녀는 도련님께옵서 떠나신 이후로

偶然一病

(우연일병), 우연히 한 병을 얻어

漸入骨髓

(점입골수),점점 골수에 사무쳐

藥餌無攻

(약이무공). 백약이 무효하온지라

今則自分必死

(금즉자분필사), 이제 필경 죽음밖에 없는 줄 알았사옵니다.

如妾薄命

(여첩박명), 소녀처럼 박명(薄命)한 몸이

生亦何爲

(생역하위)? 살아본들 무엇하오리까마는,

第有三大恨區區於中

(제유삼대한구구어중), 우선 세 가지 큰 한(恨)을 가슴에 안고 있으니

死猶難瞑

(사유난명). 죽음에 당해서도 눈을 감지 못하옵니다.

妾本無男之女

(첩본무남지녀), 소녀 본래 무남 독녀로

父母之所以愛憐者

(부모지소이애련자), 부모님의 사랑하옵심을 받자와

將以覓一贅婿

(장이멱일췌서), 장차 부모님께서는 적당한 사위를 구하여

以爲暮年之倚

(이위모년지의), 만년(晩年)의 의지를 삼고 乃作後日之計(내작후일지계), 후일의 계책을 마련코자 하였더니,

而不意好事多魔

(이불의호사다마), 호사다마(好事多魔)라 뜻밖에

惡緣相絆

(악연상반), 악연(惡緣)에 얽히었군요.

女蘿猥托於喬松

(여라외탁어교송), 여라*가 외람되게 높은 소나무에 붙었으나 *女蘿 : 넝쿨진 풀의 일종. 지체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결탁하는 것을 말함.

而朱陳之計以此虧望

(이주진지계이차휴망), 주진지계*가 이제 단망(斷望)이옵니다. *朱陳之計 : 주·진 양씨가 秦의 惡政을 피해 무릉도원에 들어가 서로 혼인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혼인함을 가리키는 말.

則此妾之所以 悒悒不樂

(즉차첩지소이)(읍읍불락), 이는 소녀가 아무 낙이 없이 시름하다가

終至於病且死

(종지어병차사), 마침내 병으로 죽음에 이른 까닭이옵고,

而高堂鶴髮永無依賴之地矣

(이고당학발영무의뢰지지의), 이제 고당학발*은 영원히 의뢰할 곳이 없게 되었사오니, *高堂鶴髮 : 늙으신 부모님을 가리키는 말.

此一恨也

(차일한야). 이것이 첫째 한이옵니다.

女子之嫁也

(녀자지가야), 여자가 출가하면 비록

雖丫鬟桶的

(수아환통적), 종년이라도 문에 기대어

非倚們倡伎

(비의문창기), 손님을 맞는 기생의 몸이 아닌 다음에야

則有夫 婿便有舅姑

(즉유부) (서변유구고), 남편이 있고 또 시부모가 있겠지요.

世未有舅姑所不知之媳婦

(세미유구고소불지지식부),세상에 시부모가 모르는 며느리가 있사오리까.

而如妾者被人欺匿

(이여첩자피인기닉), 소녀 같은 몸은 남의 속임을 받아

伊來數月未曾見郞君家一老鬟

(이래수월미증견랑군가일노환), 몇 달이 지나도록 일찍이 도련님 댁의 늙은 여자 하인 하나도 보지 못하였사오니,

則生爲不正之跡

(즉생위불정지적), 살아서 부정한 자취를 남겼고,

死爲無歸之魂矣

(사위무귀지혼의), 죽어서 돌아갈 곳 없는 귀신이 될 것이라

此二恨也

(차이한야).이것이 둘째 한이옵니다.

婦人之所以事君子者

(부인지소이사군자자), 부인이 남편을 섬기매

不過主饋而供治  衣服以奉之

(불과주궤이공치),(의복이봉지), 음식을 장만하여 공궤(供饋)하고 의복을 지어서 입으시도록 하는 일보다 큰 일이 있을까요.

而自相逢以來

(이자상봉이래), 도련님과 상봉한 이후

日月不爲不久

(일월불위불구), 세월이 오래지 않음도 아니요,

所手製衣服, 亦不爲不多

(소수제의복)(역불위부다), 지어드린 의복이 적다고 할 수도 없는데,

而未嘗使郎喫一盂飯於家

(이미상사낭끽일우반어가)、한 번도 도련님에게 한 사발 밥도 집에서 자시게 못하였고,

披一衣於前

(피일의어전), 한 벌 옷도 입혀드리지 못하였으며,

則是所以侍郞君者

(즉시소이시랑군자), 도련님을 모신 것은

惟枕席而已

(유침석이이), 다만 침석(枕席)에서뿐이었습니다.

此三恨也 若其它

(차삼한야).(약기타), 이것이 셋째 한이옵니다.

相逢未幾而遽爾大別

(상봉미기이거이대별), 그리고 상봉하온 지 얼마 아니되어 문득 길이 이별하옵고,

臥病垂死

(와병수사),병으로 누워 죽음이 다가왔으나

而不得面訣

(이부득면결), 대면하와 영결을 못하옵니다.

則猶兒女之悲

(즉유아녀지비), 이러한 여자의 슬픔을

何足爲君子道也

(하족위군자도야)?어찌 족히 군자(君子)에게 말씀드리오리까.

興念至此

(흥념지차), 생각이 여기에 이르러

腸已斷而骨欲鎖矣

(장이단이골욕쇄의). 창자가 이미 끊어지고 뼈가 녹으려 하옵니다.

雖弱草委風

(수약초위풍),비록 연약한 풀이 바람에 쓰러지고

殘花成泥

(잔화성니), 시들은 꽃잎이 진흙이 된다 하온들

悠悠此恨何日可已

(유유차한하일가이)?끝없는 이 원한은 어느날이라 다하리오.

嗚呼 窗間之會

(오호)!(창간지회),오호(嗚呼)라! 창 사이의 밀회(密會)는

從此斷矣

(종차단의). 이제 그만입니다.

惟願郞君無以賤妾關懷

(유원랑군무이천첩관회), 바라옵건대 도련님은 소녀를 염두에 두시지 마옵시고,

益勉工業

(익면공업),더욱 글공부에 힘쓰시어

早致靑雲

(조치청운). 일찍이 청운(靑雲)의 뜻을 이루옵소서.

千萬珍重! 千萬珍重

(천만진중)(천만진중)!’옥체를 내내 보중하옵기 천만 비옵니다.」

 

生見書

(생견서), 심생은 이 편지를 받고

不禁聲淚俱失

(불금성루구실), 자기도 모르게 울음과 눈물을 쏟았다.

雖哭之慟 亦無奈矣

(수곡지통),(역무내의).이제 비록 슬프게 울어보나 무엇하겠는가.

 

後生投筆從武

(후생투필종무), 그 뒤에 심생은 붓을 던지고 무변(武弁)이 되어

擧官至金烏郞(거관지금오랑), 벼슬이 금오랑*에 이르렀으나  *金吾郞 : 義禁府의 郞官.

亦早殀而死

(역조)(이사). 역시 일찍 죽고 말았다.

 

梅花外史曰(매화외사왈):매화외사(梅花外史 : 작자인 李鈺의 별호) 가로되,

“余十二歲游於村塾

(여십이세유어촌숙), 내가 열두 살 때에 시골 서당에서 글을 읽는데

日與同學兒喜聽談故

(일여동학아희청담고). 매일 동접들과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였다.

 一日,先生語沈生事甚詳

(일일)(선생어심생사심상), 어느 날 선생이 심생(沈生)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시고,

 

曰: ‘此吾少年時窗伴也

(왈):(차오소년시창반야). "심생은 나의 소년시 동창이다.

其山寺哭書時

(기산사곡서시), 그가 절에서 편지를 받고 통곡할 때에

吾及見之

(오급견지), 나도 보았더니라.

故聞其事

(고문기사).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듣고

至今不忘也

(지금불망야).’지금까지 잊지 않았구나."

 

又曰

(우왈): 이어서 말씀하시었다.

‘吾非汝曹欲效此風流浪子耳

(오비여조욕효차풍류낭자이). "내가 너희들에게 이 풍류 소년(風流少年)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다.

人之於事

(인지어사), 사람이 일에 당해서

苟以必得爲志

(구이필득위지), 진실로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뜻을 세우면

則閨中之女尙可以致

(즉규중지녀상가이치), 규중(閨中)의 처자라도 오히려 감동시킬 수 있거늘,

況文章乎 況科目乎? 

(황문장호)(황과목호)?’ 하물며 문장이나 과거야 왜 안 되겠느냐."

 

余輩其時聽之

(여배기시청지), 우리들은 그 당시 듣고 爲<新說>也(위<신설>야). 매우 새로운 이야기로 느끼었다.

 

後讀情史

(후독정사), 뒤에 정사(情史)* 를 읽어보니  *情史 : 인정과 남녀 연정에 관한 것을 기록한 이야기책. love story.

 

多如此類

(다여차류). 이와 비슷한 이야기도 많았다.

於是, 追記爲情史補遺

(어시)(추기위정사보유).”이에 이를 추기(追記)하여 정사의 보유(補遺)를 삼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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