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황해도 해주예술전문학교에 만 22세 나이로 입학해서 성악을 공부한 바 있었다. 이는 그가 월남 후 남한에서 전공을 살려 방송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류 희극배우들과 어울려 배역을 소화할 만큼 연기에도 능숙했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본래는 '창공악극단'이란 이름의 순회 악단[유랑극단]에서 가수를 했는데, 악단 공연의 특성상 진행을 하면서 입담을 살려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MC 경험을 쌓게 되었다고 한다.
31일 방송되는 2022 설 대기획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에서는 송해의 96년 인생을 담은 헌정 공연이 방송된다. 이는 국민 MC 송해의 다사다난한 인생사를 담기 위해 KBS가 최초로 시도한 트로트 뮤지컬로, 눈과 귀를 사로잡은 압도적인 무대들이 다채롭게 준비되었다.
뿐만 아니라 창공악극단장 역을 맡은 태진아는 특유의 감초연기로 극의 활력을 더하였고, 원조 한류스타 김연자 역시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다. '전국노래자랑'과 깊은 인연이 있는 아나운서 임수민도 카메오로 출연하여 첫 연기를 선보여 보는 재미를 더한다.
극 후반 등장하는 또 다른 '전국노래자랑' 스타들의 등장도 눈길을 끈다. 이제는 어엿한 국악 여신으로 성장한 송소희가 송해와 다시 만나는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으며, 박서진, 김태연, 홍잠언 등 노래자랑을 빛낸 화제의 인물들이 총출동한다.
트로트는 일제 강점기에 발생한 대한민국 대중가요의 장르이다. 트로트는 일본 엔카 음악이 한국에서 현지화한 음악이다. 《트로트》라는 이름은 구미 춤곡의 하나인 폭스트롯에서 유래한 것이며, 일본 토속 음악에 접목 돼 엔카가 되었고, 일제 강점기 때 한국에 전해졌다. 한국에서 전해오던 세 박자 또는 다섯 박자를 기본으로 하는 것을《트로트》라고 부르고, 빠른 두 박자를 기본으로 하는 것을《뽕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뽕짝》은 속어로 보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가사의 "삼백년 원한품은"을 한 해설자는 일본에 원한 품은 게 없다고멋대로 강변했하지만 1592년의 임진왜란을 잊었단 말인가? 작사자의 가사 취지를 왜곡해도 분수가 있어야제. 가정과 가족도 잊은 채, 목숨을 걸고 결사항전하셨던 의병들과 독립투사들을 뭘로 보는겨?
고딩동기팀이 주문진수산시장을 찾았다. 벗님들은 복타령이었지만 운영자의 관심은 생활의 터전인 항구와 바다에 있었다. 고달프긴 하지만 거기엔 새로운 세계로 열린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난영(李蘭影)의 노래부터 들어 보았다. 1934년 조선일보 향토가사현상공모에 문일석의 '목포의 노래'가 당선작이었다. 작사자에 의해 제목이 '목포의 눈물'로 고쳐지고 작곡가 손목인님의 재능이 덧붙여진, 가수 이름에서부터 향기가 묻어나는 '난초의 그림자'의 노래는 민족의 한과 어울어진 온 국민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아버지는 부두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일자리를 찾아 제주도로 떠났다. 제주에서 16세에 무대에 선 그녀의 노래 인생 3년차인 18세 때 부른, 가난한 천재가수의 노래 '목포의 눈물'은 '아리랑' 다음으로 지금껏 변함없는 향토의 노래를 넘어서, 한국민의 노래를 대표한다.
진양조의 육자배기, '흥타령'이 몸에 밴 정감가는 호남 출신 특유의 애절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데다 생활상의 한까지 더해져 이난영의 목소리는 지금 들어도 애간장을 녹이게 한다.
* '흥타령'은 신명나 부르는 흥취겨운 노래가 아니라 내용과 감정의 실상은 신세타령, 한타령이다.
본명은 이옥례이고, 전라남도 목포 출생이다. 15세 때 목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태양극단에 입단, 단역가수로서 노래하다가 1934년OK레코드사에서 손목인(孫牧人) 작곡의 <불사조(不死鳥)>를 불러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이어 <시드는 청춘>, <봄맞이> 등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같은 해 도쿄[東京] 히비야 공회당에서 열린 `전국 명가수음악대회`에서는 갈채를 받았다.
1935년 손목인 작곡인 <목포의 눈물>이 크게 히트하여 유명해졌으며, 그 후에도 <해조곡(海鳥曲)>, <울어라 문풍지>, <흘겨본 과거몽(過去夢)>, <목포는 항구다> 등 많은 히트곡을 내놓았다.
8·15광복 후는 남편 김해송(金海松)과 함께KPK악극단을 결성, 활약하였으나 6·25전쟁 때 김해송은 납북되었다.
그 자녀들은 후에 `김시스터즈`, `김보이즈`라는 보컬팀을 만들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활약하였다.
트로트(영어:Trot)는대한민국의음악 장르중 하나로, 정형화된 반복적인 리듬과 펜타토닉 스케일음계와한국 민요의 영향을 받은 떠는 창법이 특징인 장르이다. 또한 트로트는미국의 춤곡인폭스트롯(영어:Foxtrot)이 트로트의 어원이며, 기존의동양전통 음악과미국,유럽국가들의 다양한 음악들이 혼합하여 탄생했다.
이난영(李蘭影, 1916년6월 6일 ~ 1965년4월 11일)은 전라남도목포 출생의 일제강점기트로트 가수이다. 대표곡으로는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해조곡〉 등이 있으며, 작곡가 박시춘, 작사가 반야월(진방남)과 함께 가요계의 3보(寶)'라고 불린다. 1936년 같은 가수로서 함께 노래했던 김해송과 결혼을 하게 된다. 해방 후에는 김해송이 조직한 KPK악극단 등에서 활동했으며, 6.25로 김해송이 납북된 후로는 자식들과 조카들을 혹독히 연습을 시켰으며 그들은 각각 김시스터즈와 김보이즈로 성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같은 가수였던 남인수와 사랑이 싹트는데, 남인수의 폐결핵으로 사랑은 얼마 가지 못하였으며, 2~3년이 지난 1965년 서거하셨다. 목포를 대표하는 가수로서, 목포 시민을 중심으로 이난영기념사업회(목포의눈물기념사업회라고도 불린다.)가 조직되어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