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학문과 지혜로는 본성을 기를 수 없다
- 장자(외편) ; 제16편 선성[1]-
繕性於俗,
선성어속, 세속에서 본성을 닦아
俗學以求復其初.
속학이구복기초. 통속적인 학문으로 그 원초적인 상태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滑欲於俗思,
활욕어속사, 통속적인 생각으로 욕망을 다스려
以求致其明.
이구치기명. 그의 밝은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謂之蔽蒙之民.
위지폐몽지민. 본성을 가려 도리에 몽매한 백성이라 한다.
古之治道者,
고지치도자, 옛날의 도를 다스리던 사람들은
以恬養知.
이념양지. 욕심을 끊고 깨끗하고 편안하게 있음으로써 지혜를 길렀다.
知生而无以知爲也,
지생이무이지위야, 나면서부터 지혜로써 행동하는 일이 없었으니,
謂之以知養恬.
위지이지양념. 그를 두고서 지혜로써 욕심이 없이 깨끗하고 담담함을 기르는 것이라 말한다.
知與恬交相養,
지여념교상양, 지혜와 욕심이 없이 깨끗하고 담담함이 서로를 길러줌으로써
而和理出其性.
이화리출기성. 조화와 이치가 그의 본성에 생겨나는 것이다.
(夫德, 和也.
(부덕, 화야. 덕이란 조화를 이루는 것이며,
道, 理也.
도, 리야. 도란 이치에 맞는 것이다.
德无不容, 仁也.
덕무불용, 인야. 덕이 모든 것을 용납하는 것이 어짊이다.
道无不理, 義也.
도무불리, 의야. 도가 모두 이치에 들어맞는 것이 의로움이다.
義明而物親, 忠也.
의명이물친, 충야. 의로움이 밝음으로써 사물과 친근하게 되는 것이 충실함이다.
中純實而反乎情, 樂也.
중순실이반호정, 락야. 속마음이 순수하고 충실하여 그 성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음악이다.
信行容體而順乎文, 禮也.
신행용체이순호문, 예야. 자기 몸이 행하는 대로 맡겨 두고도 절도에 알맞게 따르게 되는 것이 예의이다.
禮樂偏行,
예악편행, 그런데 예의와 음악이 한곳에 치우쳐 행해지면
則天下亂矣.)
칙천하란의.) 곧 천하가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彼正而蒙己德,
피정이몽기덕, 남을 바로잡아주려 하면서도 자기의 덕을 어둡게 만드는데,
德則不冒,
덕즉불모, 덕이란 물건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冒則物必失其性也.
모즉물필실기성야. 가리게 되면 물건은 반드시 그의 본성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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