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에 사는 꿩은 열 발자국을 걸어야 한 번 쪼을 모이를 만나고,
백 발자국을 걸어야 한 번 마실 물을 만납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갇혀 길러지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 장자 (내편) ; 제3편 양생주 [4] -
公文軒見右師而驚曰:
공문헌견우사이경왈: 공문헌이 우사를 보고 놀라며 말했다.
「是何人也?
「시하인야? "어찌된 일인가?
惡乎介也?
오호개야? 어째서 한 발을 잘렸는가?
天與, 其人與?」
천여, 기인여?」 하늘이 그랬는가? 사람이 그랬는가?"
曰: 우사가 말했다.
「天也, 非人也.
「천야, 비인야. "하늘이 그렇게 한 것이지 사람이 한 일은 아닙니다.
天之生是使獨也,
천지생시사독야, 하늘이 낳을 때 외발이 되도록 정해준 것입니다.
人之貌有與也.
인지모유여야.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두 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以是知其天也,
이시지기천야, 그러니 내 외발도 하늘이 그렇게 한 것이지
非人也.」
비인야.」 사람의 짓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澤雉十步一啄,
택치십보일탁, 못 가에 사는 꿩은 열 발자국을 걸어야 한 번 쪼을 모이를 만나고,
百步一食,
백보일식, 백 발자국을 걸어야 한 번 마실 물을 만납니다.
不蘄畜乎樊中.
불기축호번중. 그러나 우리 속에 갇혀 길러지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神雖王,
신수왕, 원기는 왕성해지겠지만
不善也.
불선야. 마음이 즐겁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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