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六十八 商君列傳第八사기 권68 상군열전 제8-4
商君相秦十年,〔一〕宗室貴戚多怨望者。
상군이 진나라 재상의 자리에 있기를 10년 진나라의 종실 외척으로 그를 원망하는 자가 많았다.
趙良見商君。商君曰:「鞅之得見也,從孟蘭皋,〔二〕今鞅請得交,可乎?」
조량이 상군과 회견하였을 때 상군은 말하기를, “내가 당신을 만난 것은 <맹란고>의 소개에 따른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교제하기를 원하는데 가능하오?” 하니
趙良曰:「僕弗敢願也。
孔丘有言曰:「推賢而戴者進,聚不肖而王者退。」僕不肖,故不敢受命。
조량은 대답하기를 “나는 굳이 바라지 않습니다.
공구는 말하기를, ‘현자를 밀어 주인으로 받든 자는 입신하고 불초를 모아 그 주인이 되는 자는 몰락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불초이므로 감히 당신의 명령을 따르고자 하지 않습니다.
僕聞之曰:「非其位而居之曰貪位,非其名而有之曰貪名。」
나는 듣건대, ‘있을 만한 지위가 아닌데 그 지위에 있는 것을 <탐위>라 하고
받을 만한 명예가 아닌데 이를 받는 것을 <탐명>이라 한다.’라고 했는데
僕聽君之義,則恐僕貪位貪名也。故不敢聞命。」
만약에 당신의 뜻을 따른다면 아마도 <탐위>와 <탐명>의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이 당신의 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고 했다.
商君曰:「子不說吾治秦與?」〔三〕
상군이 이르기를, “그대는 나의 진나라 통치를 좋게 생각하지 않소?” 했다.
趙良曰:「反聽之謂聰,內視之謂明,自勝之謂彊。〔四〕
조량이 이르기를, “남의 말에 반성하고 경청하는 것을 <총>이라 하고
사물을 보되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을 <명>이라 하며
자기를 이기는 것을 <강>이라고 합니다.
虞舜有言曰:「自卑也尚矣。」君不若道虞舜之道,無為問僕矣。」
우순의 말씀에 이르기를, ‘스스로 겸손하면 존경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상군으로서는 우순의 도리를 이야기하는 것 이상이 없으며 나에게 물을 것은 없습니다.”하였다.
商君曰:「始秦戎翟之教,父子無別,同室而居。今我更制其教,而為其男女之別,大築冀闕,營如魯衛矣。
상군이 이르기를, “진나라에는 옛날부터 <융적>의 가르침이 있고 부자간에 구별이 없어 처를 공유하여 살았는데
지금 나는 그 제도의 가르침을 고쳐서 남녀의 구별을 두고 또 크게 누문을 건축하여
그 훌륭함이 노나라와 위나라와 같이 하였소.
子觀我治秦也,孰與五羖大夫賢?」
그대는 나의 진나라 통치를 보고 <오고대부>와 어느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오?” 하니
趙良曰:「千羊之皮,不如一狐之掖;千人之諾諾,不如一士之諤諤。
조량이 이르기를 “천 마리 양의 가죽이 여우 한 마리의 겨드랑이 가죽을 따르지 못합니다.
천 사람의 순순한 복종도 한 선비의 올 곧은 직언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武王諤諤以昌,殷紂墨墨以亡。〔五〕君若不非武王乎,則僕請終日正言而無誅,可乎?」
주나라 무왕은 신하의 올곧은 직언으로 번영하고 은나라 주왕은 신하의 순순한 맹종으로 망했습니다.
상군께서 만약 무왕을 비난하지 않는다면 내가 종일 직언하여도 불손함을 죄로 돌리지 않는 것이 가능합니까?”
商君曰:「語有之矣,貌言華也,至言實也,苦言藥也,甘言疾也。
상군이 이르기를,
“옛말에도 있으니 ‘겉치레의 말은 화려하고 지극한 말은 진실하고 듣기 괴로운 말은 약이요 달콤한 말은 병이라.’고 하였소.
夫子果肯終日正言,鞅之藥也。鞅將事子,子又何辭焉!」
선생이 과연 그대가 종일 직언을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는 약이오.
나는 그대를 섬기려고 하는데 그대는 또 어찌하여 사퇴를 하려 하시오?”
趙良曰:「夫五羖大夫,荊之鄙人也。〔六〕聞秦繆公之賢而願望見,行而無資,自粥於秦客,被褐食牛。
조량이 이르기를 “저 오고대부는 초나라의 미천한 출신입니다.
진요왕이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만나 뵙고자 하였으나 가려고 해도 노자가 없어
자기 몸을 진나라 여행자에게 팔아 볼품없는 옷을 입고 소를 치고 살았습니다.
期年,繆公知之,舉之牛口之下,而加之百姓之上,秦國莫敢望焉。
1년 뒤에 요공은 그가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하찮은 소치기에서 일약 재상으로 올려 세웠는데
진나라에서는 아무도 감히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相秦六七年,而東伐鄭,三置晉國之君,〔七〕一救荊國之禍。〔八〕發教封內,
진나라 재상을 재낸 지 육칠 년에 동쪽 정나라를 치고 세 번 진나라의 임금을 세우고
한 번 초나라의 화를 구하고 교령을 국내에 반포하여 나라 백성을 감화시켰습니다.
而巴人致貢;施德諸侯,而八戎來服。由余聞之,款關請見。〔九〕
그리하여 읍의 사람들도 공물을 바치고 은덕을 제후에 베풀어 8융까지도 귀순하게 하였습니다.
서융 사람 <유여>도 명성을 듣고 관문을 두드려 회견을 청했습니다.
五羖大夫之相秦也,勞不坐乘,暑不張蓋,行於國中,不從車乘,不操干戈,
<오고 대부>께서 재상이 된 이래 피곤해도 수레에 걸터앉지 않았고 더워도 수레에 포장을 덮지 않았고
국내를 여행하는데 행자의 수레를 따르게 하지 않았고 무장한 호위를 거느리지 않았으며
功名藏於府庫,德行施於後世。
그 공적은 기록되어 조정의 서고에 보존되고 덕행은 길이 후세에 전해졌습니다.
五羖大夫死,秦國男女流涕,〔一0〕童子不歌謠,舂者不相杵。〔一一〕此五羖大夫之德也。
<오고대부>가 죽음을 당해서는 진나라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고
어린이들도 노랫소리를 내지 않았고 방아를 찧는 사람들까지도 방아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고대부>의 덕 때문입니다.
今君之見秦王也,因嬖人景監以為主,非所以為名也。
그런데 상군께서 진왕을 뵈올 적에는 임금의 총신 경감의 인도에 따랐으니
경감을 주인으로 하여 의뢰한 것은 명예라고 할 수 없습니다.
相秦不以百姓為事,而大築冀闕,非所以為功也。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서는 백성의 이익을 일로 삼지 않고 야단스레 누문을 건축한 것은 공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刑黥太子之師傅,殘傷民以駿刑,是積怨畜禍也。教之化民也深於命,〔一二〕民之效上也捷於令。〔一三〕
태자의 스승을 먹실넣는 형벌에 처하고 가혹한 형벌로서 백성을 징벌한 것은 원한을 쌓고 화를 모은 일입니다.
위정자가 솔선수범하여 백성을 감화하는 힘은 명령으로 하는 것보다 깊고
백성이 위에서 하는 일을 보아서 익히는 것도 명령으로 하는 것보다 효과가 빠릅니다.
今君又左建外易,非所以為教也。〔一四〕君又南面而稱寡人,日繩秦之貴公子。
이제 상군께서 세운 제도는 도리를 등졌으며 변경한 국법은 도리어 어긋났으니
이것으로서 백성을 이끄는 가르침을 삼으면 안 됩니다.
또 상군께서는 봉읍 <상오>에 군림하여 임금과 똑같이 <과인>이라 일컫고 날로 진나라 귀공자의 죄를 규탄합니다.
詩曰:「相鼠有體,人而無禮,人而無禮,何不遄死。」
<시경>에 이르기를
相鼠有體
(상서유체) : ‘쥐낮짝에도 체통이 있거니
人而無禮
(인이무례) : 사람으로서 예가 없을까?
人而無禮
(인이무례) : 사람으로서 예가 없다면
何不遄死
(하불천사) : 어찌 빨리 죽지 않을까?’라고 하였는데,
以詩觀之,非所以為壽也。
이 시구로 보더라도 상군의 행동은 천수를 온전히 누릴 수 없는 까닭입니다.
公子虔杜門不出已八年矣,君又殺祝懽 而黥公孫賈。
공자 <건>은 코를 잃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지 않기가 이미 8년이나 됩니다.
상군은 또 <축환>을 죽였고 공손고를 먹실 넣은 형벌에 처했습니다.
詩曰:「得人者興,失人者崩。」
<시경>에 이르기를,
得人者興
(득인자흥) :‘인심을 얻는 자은 흥하고
失人者崩
(실인자붕) : 인심을 잃는 자는 망한다.’고 했는데,
此數事者,非所以得人也。
상군이 범한 이 몇 가지 일들은 도저히 인심을 얻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君之出也,後車十數,從車載甲,多力而駢脅者為驂乘,持矛而操闟〔一五〕戟者〔一六〕旁車而趨。
상군은 외출함에는 후군 수십 채에 종군에는 무장병을 싣고 힘센 완력자를 옆에 태우고
창과 <극>을 가진 자가 수레 곁 가까이에서 따르게 하였습니다.
此一物不具,君固不出。
이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당신은 절대로 외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書曰:「恃德者昌,恃力者亡。」〔一七〕君之危若朝露,
<서경>에 이르기를,
恃德者昌
(시덕자창) : ‘덕을 믿는 자는 번영하고
恃力者亡
(시력자망) : 힘을 믿는 자는 망한다.’고 하였는데, 당신의 목숨은 참으로 아침 이슬 같이 위험합니다.
尚將欲延年益壽乎?則何不歸十五都,〔一八〕灌園於鄙,
그런데도 오히려 나이를 늘이고 천수를 다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상오> 15읍을 반환하고 시골에 은퇴하여 전원에 몸을 대는 생활을 하지 않으시렵니까?
勸秦王顯巖穴之士,養老存孤,敬父兄,序有功,尊有德,可以少安。
진왕에게 권하여 암혈에 숨은 현자를 나타나게 하고 늙은이를 부양하고 고아를 돌보고 부형을 공경하고
공 있는 자를 서열을 정하고 덕 있는 자를 존경하도록 하면 조금은 편안할 것입니다.
君尚將貪商於之富,寵秦國之教,畜百姓之怨,秦王一旦捐賓客而不立朝,秦國之所以收君者,豈其微哉〔一九〕
?만일 금후에도 오히려 <상오>의 부를 탐하고 진나라의 변법을 영예로 알며 백성의 원망을 쌓으려고 한다면
진왕이 하루아침에 당신을 남겨 놓고 돌아가셨을 경우 진나라가 당신을 잡으려고 하는 이유는 어찌 미미하겠습니까?
亡可翹足而待。」商君弗從。
당신의 파멸은 한 발을 들고 넘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잠깐일 것입니다.”
그러나 상군은 이 말을 따르지 않았다.
〔一〕索隱戰國策云孝公行商君法十八年而死,與此文不同者,案此直云相秦十年耳,而戰國策乃云行商君法十八年,蓋連其未作相之年耳。 〔二〕索隱孟蘭皋,人姓名也。言鞅前因蘭皋得與趙良相見也。 〔三〕索隱說音悅。與音予。 〔四〕索隱謂守謙敬之人是為自勝,若是者乃為強。若爭名得勝,此非強之道。 〔五〕正義以殷紂比商君。 〔六〕正義百里奚,南陽宛人。屬楚,故云荊。 〔七〕索隱謂立晉惠公、懷公、文公也。 〔八〕索隱案(六國)〔十二諸侯〕年表,穆公二十八年會晉,救楚,朝周是也。 〔九〕集解韋昭曰:「款,叩也。」 〔一0〕正義音體。 〔一一〕集解鄭玄曰:「相謂送杵聲,以聲音自勸也。」 〔一二〕索隱劉氏云:「教謂商鞅之令也,命謂秦君之命也。言人畏鞅甚於秦君。」 〔一三〕索隱上謂鞅之處分。今謂秦君之令。 〔一四〕索隱左建謂以左道建立威權也。外易謂在外革易君命也。 〔一五〕集解所及反。 〔一六〕集解徐廣曰:「一作「」。屈盧之勁矛,干將之雄戟。」索隱闟,亦作「鈒」,同所及反。鄒誕音吐反。音遼。屈音九勿反。按:屈盧、干將並古良匠造矛戟者名。正義顧野王云:「鋋也。」方言云:「矛,吳、揚、江、淮、南楚、五湖之閒謂之鋋。其柄謂之矜。」釋名云:「戟,格也。旁有格。」 〔一七〕索隱此是周書之言,孔子所刪之餘。 〔一八〕索隱衛鞅所封商於二縣以為國,其中凡有十五都,故趙良勸令歸之。正義公孫鞅封商於十五邑,故云「十五都」。 〔一九〕索隱謂鞅於秦無仁恩,故秦國之所以將收錄鞅者其效甚明,故云「豈其微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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