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六十六
伍子胥 列傳 第六
오자서 열전 제6-4
吳王既誅伍子胥,遂伐齊。
齊鮑氏殺其君悼公而立陽生。
오왕은 오자서를 죽이고 제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출정했다.
제나라의 포씨들은 제 도공(齊悼公)을 시해하고
양생(陽生)을 새로운 군주로 세웠다.
吳王欲討其賊,不勝而去。
其後二年,吳王召魯衛之君 會之橐皋。[一]
오왕이 찬탈의 죄를 묻는다 하고 토벌하기 위해 출정했으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회군했다.
그로부터 2년 후에
오왕이 노(魯)와 위(衛)나라의 군주를 탁고(橐皐)의 땅으로 불러 회맹했다.
其明年,因北大會諸侯於黃池,[二]以令周室。
越王句踐襲殺吳太子,[三]破吳兵。
그 다음 해에 황지(黃池)의 땅으로 제후들을 대거 모이게 하여
주왕의 령을 전했다.
월왕 구천이 비어 있는 오성(吳城)을 습격하여 태자를 죽이고
오나라의 군사들을 크게 격파했다.
吳王聞之,乃歸,使使厚幣與越平。
오왕이 듣고 즉시 회군하여
많은 재물을 바쳐 월나라와 화의를 맺었다.
後九年,越王句踐遂滅吳,殺王夫差;
그 후 9년,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멸하고 왕 부차를 죽였다.
而誅太宰嚭,以不忠於其君,
而外受重賂,與己比[四]周也。
그리고 백비를 주살했다.
그 군주에게 불충하고,
외부의 적인 자기로부터 많은 뇌물을 받아
내통했다는 죄목이었다.
注[一]索隱音拓皋二音。杜預云:「地名,在淮南逡遒縣東南。」正義橐皋故縣
在廬州巢縣西北五十六里。
注[二]正義在汴州封丘縣南七里。
注[三]索隱左傳太子名友。
注[四]正義紀鼻二音。
伍子胥初所與俱亡故
楚太子建之子勝者,在於吳。
오자서가 옛날 초나라로 도망쳐 올 때 함께 온
태자 건(建)의 아들 승(勝)도 오나라에 살고 있었다.
吳王夫差之時,楚惠王欲召勝歸楚。
葉公[一]諫曰:
「勝好勇而陰求死士,殆有私乎!」
오왕 부차 재위 시에
초혜왕(楚惠王)이 승(勝)을 다시 초나라로 귀국시키려고 할 때
섭공(葉公)이 간했다.
「승은 용사들을 좋아하며 자객들을 몰래 모으고 있는 것은
아마도 사사로운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
惠王不聽。遂召勝,
使居楚之邊邑鄢,[二]號為白公。[三]
白公歸楚三年而吳誅子胥。
혜왕이 듣지 않고 승(勝)을 오나라에서 불러와
초나라의 변경인 언(鄢) 땅에 살게 하고 백공(白公)이라 불렀다.
백공이 초나라에 돌아오고 나서 3년 후에
오나라에서는 자서를 주살했다.
注[一]正義上式涉反。杜預云:「子高,沈諸梁。」
注[二]集解徐廣曰:「潁川鄢陵是。」正義鄢音偃。括地志云:「故郾城在豫州
郾城縣南五里,與-信白亭相近。」
注[三]集解徐廣曰:「汝南-信縣有白亭。」正義括地志云:「白亭在豫州-信
縣南四十二里,又有白公故城。又許州扶溝縣北四十五里北又有白亭也。」
白公勝既歸楚,
怨鄭之殺其父,乃陰養死士求報鄭。
백공 승(勝)이 초나라에 돌아오자
옛날 정나라가 자기의 부친 태자 건을 살해한 것에 원한을 품고
아무도 몰래 자객을 양성하여 정나라에 원수를 갚으려고 했다.
歸楚五年,請伐鄭,
楚令尹子西許之。
초나라에 돌아온 지 5년이 지나자
그는 정나라 공격을 요청했다.
초 영윤 자서가 이를 허락했다.
兵未發而晉伐鄭,鄭請救於楚。
백공 승이 군사를 미처 일으키기도 전에
당진이 정나라를 공격했다.
이에 정나라는 초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楚使子西往救,與盟而還。
초나라에서는 자서(子西)로 하여금 정나라를 구원하도록 했다.
자서는 정나라를 구한 후 동맹을 맺고 돌아왔다.
白公勝怒曰:
「非鄭之仇,乃子西也。」
백공 승이 노하여 말했다.
「나의 원수는 정나라가 아니라 자서다.」
勝自礪劍,人問曰:[一]
「何以為?」
승이 스스로 칼을 갈고 있자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찌하여 몸소 칼을 갈고 계시는 것입니까?」
勝曰:「欲以殺子西。」
승이 대답했다.
「자서를 죽이기 위해서이다.」
子西聞之,笑曰:
「勝如卵耳,何能為也。」
자서가 전해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승은 마치 바위 위의 계란일 뿐인데
어찌 나를 죽일 수 있겠는가?」
注[一]索隱左傳作「子期之子平見曰『王孫何自礪也』」。
其後四歲,
白公勝與石乞
襲殺楚令尹子西﹑司馬子綦[一]於朝。
그리고 4년 뒤에,
백공 승과 그의 부하 석걸(石乞)이
영윤 자서와 사마자기(子綦)를 초나라의 조정의 뜰에서 기습하여 죽였다.
石乞曰:
「不殺王,不可。」
석걸이 승에게 말했다.
「왕을 죽이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乃劫*(之)*王如高府。[二]
石乞從者屈固[三]負楚惠王
亡走昭夫人之宮。[四]
석걸이 왕을 죽이기 위해 고부(高府)로 달려갔다.
석걸의 시종 굴고(屈固)가 미리 알고 달려가 초혜왕을 등에 업고
소부인의 궁궐로 도망쳤다.
葉公聞白公為亂,率其國人攻白公。
白公之徒敗,亡走山中,自殺。[五]
섭공은 백공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초나라의 국인들을 규합하여 백공을 공격했다.
백공은 싸움에서 지고 산중으로 도망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而虜石乞,而問白公尸處,
不言將亨。
섭공은 석걸을 사로잡았다.
섭공은 석걸에게 백공의 시신이 어디에 묻었는지를 묻고
대답하지 않으면 가마솥의 끓는 물에 삶아 죽이겠다고 했다.
石乞曰:
「事成為卿,不成而亨,固其職也。」
석걸이 듣고 말했다.
「일이 성공하게 되면 공경이 되고,
실패하게 되면 삶겨서 죽게 되는 일은 당연하다.」
終不肯告其尸處。
遂亨石乞,而求惠王復立之。
결국은 석걸은 백공 승이 묻힌 곳을 말하지 않았다.
섭공은 석걸을 삶아 죽이고
혜황을 찾아내어 초왕의 자리에 복위시켰다.
注[一]索隱左傳作「子期」也。
注[二]索隱杜預云:「楚之別府也。」
注[三]集解徐廣曰:「一作『惠王從者屈固』。楚世家亦云『王從者』。」索隱按:
徐廣曰一作「惠王從者屈固」,蓋此本為得。而左傳云「石乞尹門,圉公陽穴宮,
負王以如昭夫人之宮」,則公陽是楚之大夫,王之從者也。
注[四]索隱昭王夫人即惠王母,越女也。
注[五]正義左傳云白公奔而縊。
太史公曰:
태사공이 말한다.
怨毒之於人甚矣哉!
王者尚不能行之於臣下,況同列乎!
「남에게 악랄한 짓을 하여
그로 인하여 맺힌 원한은 참으로 뿌리가 깊도다!
왕이라도 오히려 그 신하된 자에게 원한을 사면 안 되거늘
하물며 동렬의 사람들에게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向令伍子胥從奢俱死,何異螻蟻。
棄小義,雪大恥,名垂於後世,
옛날 오자서가 그 부친 오사(伍奢)의 부름에 응하여 같이 죽었더라면
어찌 한낱 땅강아지나 개미와 다를 것인가?
소의(小義)를 버리고 커다란 치욕을 갚아
그 이름이 후세에 전해졌다.
悲夫!方子胥窘於江上,[一]道乞食,
志豈嘗須臾忘郢邪?
슬프도다!
오자서가 장강을 건널 때나
걸식을 하며 길을 갈 때나
어찌 잠시라도 초나라의 서울 영도를 잊었겠는가?
故隱忍就功名,非烈丈夫 孰能致此哉?
白公如不自立為君者,其功謀亦不可勝道者哉!
그는 만난을 참고 견뎌 결국은 공명을 이룰 수 있었으니
그와 같은 열혈 장부가 아니었다면
그 누가 그와 같은 일을 이루어 낼 수 있었겠는가?
백공 승이 만약 스스로 초왕의 자리에 오르지만 않았다면
그가 세운 공과 계책도 역시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
注[一]索隱窘音求殞反。
【索隱述贊】讒人罔極,交亂四國。嗟彼伍氏,被茲凶慝!員獨忍詬,志復冤
毒。霸吳起師,伐楚逐北。鞭尸雪恥,抉眼棄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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