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六十六
伍子胥 列傳 第六
오자서 열전 제6-3
後二歲,
闔廬使太子夫差將兵伐楚,取番。[一]
그리고 2년 후(기원전 504년)에
합려는 다시 태자 부차(夫差)에게 군사를 주어 초나라를 정벌하게 했다.
부차는 초나라의 파(番) 땅을 취했다.
楚懼吳復大來,乃去郢,徙於鄀。[二]
當是時,吳以伍子胥﹑孫武之謀,
西破彊楚,北威齊晉,南服越人。
초나라를 오나라가 다시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올까봐 두려워하여
그 수도를 영(郢)에서 약(鄀)으로 옮겼다.
이때에 이르러 오나라는 오자서와 손무의 계책에 힘입어
서쪽으로 강력한 초나라를 공격하여 그 도성을 점령했고,
다시 북쪽의 제나라와 당진에 위세를 떨쳤으며,
남쪽의 월나라를 복종시켰다.
注[一]集解音普寒反,又音婆。索隱音普寒反,又音婆。蓋鄱陽也。
注[二]集解楚地,音若。索隱音若。鄀,楚地,今闕。
其後四年,孔子相魯。
그리고 4년 즉 합려 15년(기원전 500년)
공자가 노나라의 상국(相國)이 되었다.
後五年,伐越。
越王句踐迎擊,敗吳於姑蘇,
傷闔廬指,[一]軍卻。
그리고 다시 5년 후(합려 20년 기원전 496년)
오나라가 월나라를 정벌했다.
오왕 구천이 군사를 이끌고 나와 오군을 맞이하여 고소(姑蘇)에서 싸워 이겼다.
합려는 싸움 중에 손가락에 부상을 입고 본국으로 회군했다.
闔廬病創[二]將死,謂太子夫差曰:
「爾忘句踐殺爾父乎?」
합려가 귀환했으나 싸움 중에 입은 손가락 부상이 도져 이내 죽게 되자
태자 부차를 불러 말했다.
「너는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인 일을 잊을 수 있겠는가?」
夫差對曰:「不敢忘。」
부차가 대답했다.
「제가 아버님의 원수를 감히 잊을 수 없나이다.」
是夕,闔廬死。
夫差既立為王,以伯嚭為太宰,習戰射。
그날 저녁에 합려가 죽었다.
부차가 오왕의 자리에 오르자
백비를 태재(太宰)로 삼아
군사들의 활쏘기와 싸움 연습을 담당시켰다.
二年後伐越,敗越於夫湫。[三]
越王句踐乃以餘兵五千人棲於會稽之上,[四]
2년 후(기원전 494년)
오왕 부차가 이끄는 오군이 월나라를 공격하여
부추(夫湫)에서 월군을 대파했다.
월왕 구천은 남은 잔여 병력 5천 명을 이끌고
회계산(會稽山)에 올라 농성했다.
使大夫種[五]厚幣遺吳太宰嚭以請和,
求委國為臣妾。
吳王將許之。
월왕은 대부 문종(文種)을 시켜
많은 뇌물을 가져가 태재 백비에게 화의를 청했는데,
나라를 바치고 월왕 부부는 오왕의 신하가 되기를 요청했다.
백비의 보고를 받은 오왕 부차가 월왕의 항복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伍子胥諫曰:
「越王為人能辛苦。
今王不滅,後必悔之。」
오자서가 알고 간언을 올렸다.
「월왕이라는 위인은 능히 어려움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대왕께서 월나라를 멸하지 않으면 후에 반드시 후회하실 것입니다.」
吳王不聽,
用太宰嚭計,與越平。
오왕 부차는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고
태재 백비의 말에 따라 월나라와 화평했다.
注[一]正義姑蘇當作「檇李」,乃文誤也。左傳云「戰檇李,傷將指,卒於陘」
是也。解在吳世家。
注[二]集解楚良反。索隱音瘡。
注[三]集解音椒。索隱音椒,又如字。正義太湖中椒山也。解在吳世家。
注[四]正義土地名,在越州會稽縣東南十二里。
注[五]索隱劉氏云「大夫姓,種名」,非也。按:今吳南有文種埭,則種姓文,
為大夫官也。正義高誘云:「大夫種,姓文氏,字子禽,楚之郢人。」
其後五年,
而吳王聞齊景公死 而大臣爭寵,新君弱,
乃興師北伐齊。
그후 5년(기원전 489년) 뒤
오왕은 제나라의 경공(景公)이 죽고
대신들이 서로 권력을 다투고
새로 뒤를 이은 군주는 유약하다는 소식을 듣고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했다.
伍子胥諫曰:
「句踐食不重味,弔死問疾,
且欲有所用之也。
오자서가 간언했다.
「구천은 지금 맛있는 음식은 한 가지 이상 먹지 않으며
백성들 중 초상이 난 집에 조문을 가고
병든 사람들에게 문안을 다니는 것은
후에 소용이 있어서입니다.
此人不死,必為吳患。
今吳之有越,猶人之有腹心疾也。
而王不先越而乃務齊,不亦謬乎!」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필시 오나라의 우환거리가 될 것입니다.
지금 오나라에 있어서 월나라는
사람에게 심복지환(心服之患)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급한 월나라를 제쳐놓고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시니
어찌 그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吳王不聽,伐齊,大敗齊師於艾陵,[一]
遂威鄒魯之君以歸。[二]益疏子胥之謀。
오왕은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고 제나라로 출정하여
제나라 군사를 애릉(艾陵)8)에서 크게 무찌르고,
위엄 있는 추로의 왕으로 귀환했다.
오왕은 이후부터 더욱 오자서와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注[一]正義括地志云:「艾山在兗州博城縣南百六十里,本齊博邑。」
注[二]正義鄒君居兗州鄒縣。魯,曲阜縣。
其後四年,吳王將北伐齊,
越王句踐用子貢之謀,
乃率其眾以助吳,而重寶以獻遺太宰嚭。
그리고 4년 후(기원전485년),
오왕이 다시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
월왕 구천이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의 계책에 따라
군사를 이끌고 가서 오나라를 돕는다 하고
다시 많은 뇌물을 태재 백비에게 바쳤다.
太宰嚭既數受越賂,其愛信越殊甚,
日夜為言於吳王。吳王信用
嚭之計。伍子胥諫曰:
백비는 그 전에도 이미 많은 뇌물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월나라를 지극히 좋아하며 신임했다.
그는 매일 밤낮으로 오왕에게 월왕의 충성심을 이야기했다.
오왕은 백비의 말을 믿고 따랐다. 오자서가 오왕에게 말했다.
「夫越,腹心之病,
今信其浮辭詐偽而貪齊。
破齊,譬猶石田,無所用之。
「무릇 월나라는 오나라의 심복지환인데
오늘 월왕의 허황된 말을 믿고 제나라를 넘보고 있습니다.
제나라를 공격하여 비록 그 땅을 얻는다 해도
그것은 단지 자갈밭에 불과하여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且盤庚之誥曰:
『有顛越不恭,劓殄滅之,
俾無遺育,無使易種于茲邑。』
<반경지고(盤庚之誥)>라는 옛글에 말했습니다.
‘예의에 벗어나고 불공한 자들은
코를 베거나 다 죽여
살아남았더라도 자라지 못하도록 하여
이 나라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라!’
此商之所以興。願王釋齊而先越;
若不然,後將悔之無及。」
이로서 상나라가 600년 간 흥성할 수 있었습니다.
원컨대 제나라를 정벌하는 대신 월나라를 멸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에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
而吳王不聽,使子胥於齊。
子胥臨行,謂其子曰:
「吾數諫王,王不用,吾今見吳之亡矣。
汝與吳俱亡,無益也。」
오왕 부차가 듣지 않고
자서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자서가 제나라로 출발할 때 그의 아들에게 말했다.
「내가 여러 번 간했으나 왕은 내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장차 틀림없이 오나라는 월나라에 의해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네가 오나라와 함께 죽는 일은 무익하다고 하겠다.」
乃屬其子於齊鮑牧,而還報吳。
오자서는 그의 아들을 제나라로 데려가
그 대부 포목(鮑牧)에게 맡겼다.
오자서는 아들은 제나라에 남겨 두고 혼자 돌아와
오왕에게 사신으로 간 일의 결과에 대해 보고했다.
吳太宰嚭既與子胥有隙,因讒曰:
태재 백비는 자서와 소원함이 있었으므로 오왕에게 참소했다.
「子胥為人剛暴,少恩,猜賊,
其怨望恐為深禍也。
「자서라는 위인은 고집이 세고 포악합니다.
은혜를 베푸는데 인색하며 시기심이 많습니다.
그의 말을 물리친 대왕을 원망하여 큰 화를 불러 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前日王欲伐齊,子胥以為不可,
王卒伐之而有大功。
子胥恥其計謀不用,乃反怨望。
예전에 대왕께서 제나라를 정벌한다고 할 때
자서는 불가하다고 하며 극력 반대했으나
대왕께서는 결국은 큰공을 이루셨습니다.
자서는 그의 계책이 들어맞지 않은 것을 가슴속으로 부끄럽게 생각하다가
이제는 오히려 대왕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而今王又復伐齊,子胥專愎[一]彊諫,
沮[二]毀用事,
徒幸吳之敗以自勝其計謀耳。
지금 다시 대왕께서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나
자서가 또다시 제 멋대로 고집을 부려 극력 반대하고 있는 것은
대왕의 일을 방해하고 비난하여
오직 오나라의 군사들이 싸움에 져서
자기의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今王自行,悉國中武力以伐齊,
而子胥諫不用,因輟謝,詳病不行。
오늘 대왕께서 제나라를 정벌하기 위해서
오나라의 모든 군사들을 이끌고 출정하심에도 불구하고
자서는 자기의 간언이 용납되지 않는다고 물러가
병을 핑계로 종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王不可不備,此起禍不難。
오자서의 행위를 미루어 볼 때
앞으로 일어날 화를 예측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且嚭使人微伺之,
其使於齊也,
乃屬其子於齊之鮑氏。
대왕께서는 이에 대한 방비를 하셔야만 합니다.
제가 사람을 시켜 오자서의 행적을 살펴본 바에 의하면
전번에 그가 제나라에 사자로 갈 때
그의 아들을 대동했었는데
그는 그 아들을 제나라의 포씨 집에 맡겨 놓고 혼자만 돌아왔습니다.
夫為人臣,內不得意,外倚諸侯,
무릇 신하된 자가 나라 안에서 뜻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나라의 제후에게 의지하는 행위는 심히 잘못된 일입니다.
自以為先王之謀臣,
今不見用,常鞅鞅怨望。
願王早圖之。」
옛날 선왕 때부터 모신으로 오나라를 받들던 자가
지금은 자기의 의견이 쓰이지 않는다고 해서
매일 앙앙불락하며 원망만 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하루 빨리 그에 대한 조치를 도모하시기 바랍니다.」
吳王曰:
「微子之言,吾亦疑之。」
오왕 부차가 말했다.
「태재의 말이 아니더라도, 과인은 벌써 그를 의심하고 있었소.」
乃使使賜伍子胥屬鏤[三]之劍,曰:
「子以此死。」
오왕 부차가 즉시 사람을 오자서에게 촉루검(屬鏤劍) 보내면서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그대는 이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 바란다.」
伍子胥仰天歎曰:
「嗟乎!讒臣嚭為亂矣,王乃反誅我。
我令若父霸。自若未立時,諸公子爭立,
我以死爭之於先王,幾不得立。[四]
오자서가 하늘을 쳐다보며 한탄했다.
「아아, 슬프도다! 간신 백비가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거늘
왕은 나를 오히려 죽이는구나!
나는 그의 아버지를 패자로 만들었으며,
그가 세자가 되기 전에, 여러 공자들이 다투던 것을
내가 죽을 각오로 선왕에게 간했다.
그렇게 않았다면 어찌 그가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겠는가?
若既得立,欲分吳國予我,
我顧不敢望也。
然今若聽諛臣言以殺長者。」
그가 왕이 된 후에도
오나라를 나누어 나에게 주려고 한 것을
내가 감히 받을 수 없다고 사양했다.
그런데 지금은 간신의 말을 듣고
선왕을 모시던 공신을 죽이는 구나!」
乃告其舍人曰:
「必樹吾墓上以梓,令可以為器;[五]
而抉[六]吾眼 縣吳東門之上,[七]
以觀越寇之入滅吳也。」
오자서는 이어서 자기의 문객을 향해 말했다.
「그대는 나의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오왕을 위한 관을 삼게 하시오.
그리고 나의 두 눈을 뽑아 오성의 동문 위에 걸어 놓으시오.
나는 죽어서라도 월나라가 쳐들어와
오나라가 망하는 모습을 보리라!」
乃自剄死。吳王聞之大怒,
乃取子胥尸盛以鴟夷革,[八]浮之江中。[九]
吳人憐之,為立祠於江上,[一0]
因命曰胥山。[一一]
오자서는 즉시 촉루검으로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왕이 자사가 한 말을 듣고 노하여
자서의 시신을 빼앗아 가죽부대에 넣어 강물에 띄어 보냈다.
오나라 사람들이 이를 가엾게 여겨
그 강가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 주었다.
사람들은 그 사당이 있는 산의 이름을 서산(胥山)이라 불렀다.
注[一]索隱皮逼反。
注[二]集解自呂反。
注[三]集解錄于反。
注[四]正義幾音祈。
注[五]正義器謂棺也,以吳必亡也。左傳云:「樹吾墓檟,檟可材也,吳其亡乎!」
注[六]索隱烏穴反。抉亦決也。
注[七]正義東門,門,謂門也,今名葑門。音普姑反。音覆浮反。越
軍開示浦,子胥濤盪羅城,開此門,有隨濤入,故以名門。顧野王云「
魚一名江豚,欲風則涌」也。
注[八]集解應劭曰:「取馬革為鴟夷,鴟夷,榼形。」正義盛音成。榼,古曷反。
注[九]集解徐廣曰:「魯哀公十一年。」正義案:年表云吳王夫差十一年也。
注[一0]正義吳地記曰:「越軍於蘇州東南三十里三江口,又向下三里,臨江北
岸立壇,殺白馬祭子胥,杯動酒盡,後因立廟於此江上。今其側有浦名上壇浦。
至晉會稽太守麋豹,移廟吳郭東門內道南,今廟見在。」
注[一一]集解張晏曰:「胥山在太湖邊,去江不遠百里,故云江上。」正義吳地
記云:「胥山,太湖邊胥湖東岸山,西臨胥湖,山有古丞胥二王廟。」按:其廟
不干子胥事,太史誤矣,張注又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