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六十六

伍子胥 列傳 第六

오자서 열전 제6-2

五年而楚平王卒。

初,平王所奪太子 建秦女生子軫,

5년 후에 초평왕이 죽었다.

옛날 초평왕은 건을 태자의 자리에서 폐하고

진녀(秦女)의 소생 진(軫)을 세웠었다.

及平王卒,軫竟立為後,

是為昭王。

이윽고 평왕이 죽자

진이 그 뒤를 이어 초왕이 되었다.

이가 초소왕(楚昭王)이다.

吳王僚因楚喪,使二公子將兵往襲楚。

楚發兵絕吳兵之後,不得歸。

오왕 요(遼)가 초나라에 국상이 난 틈을 이용하여

자기의 두 아들에게 군사를 이끌고 가 초나라를 기습공격하게 했다.

초나라가 군사를 내어 오나라 군사들의 퇴로를 끊자

두 공자가 이끄는 군사들은 귀환할 수 없게 되었다.

吳國內空,

而公子光乃令專諸襲刺吳王僚而自立,

是為吳王闔廬。

오나라에서는 국내의 군사력이 비게 되자

공자광이 전제를 시켜 왕료(王遼)를 기습하여 살해하고

스스로 오왕의 자리에 올랐다.

공자 광이 곧 오왕 합려이다.

闔廬既立,得志,

乃召伍員以為行人,而與謀國事。

합려가 오왕의 자리를 차지하여 그가 품고 있던 뜻을 이루게 되자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던 오원을 불러 행인을 삼아

그와 함께 국사를 의논했다.

楚誅其大臣郤宛﹑伯州犂,

伯州犂之孫伯嚭亡奔吳,[一]

吳亦以嚭為大夫。

초나라가 간신 비무기의 참소를 받고

대신 극완(郤宛)과 백주리(伯州犂) 및 그 일족을 주살했다.

백주리의 손자 백비(伯嚭)가 도망쳐 오나라로 들어왔다.

오나라는 백비에게 대부의 직을 주었다.

前王僚所遣二公子將兵[二]伐楚者,道絕不得歸。

後聞闔廬弒王僚自立,遂以其兵降楚,

楚封之於舒。

전에 왕료가 두 공자와 그 군사들로 하여금 초나라를 공격하게 했었는데

초군에 의해 퇴로를 차단당해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오왕 합려가 왕료를 시해하고 초왕의 자리에 오르자

결국 그들은 귀국하지 못하고 초나라에 항복했다.

초나라는 두 공자를 서(舒) 땅에 봉했다.

闔廬立三年,乃興師與伍胥﹑伯嚭伐楚,拔舒,

遂禽故吳反二將軍。

합려가 오왕이 된지 3년이 되는 해에

군사를 대대적으로 일으켜 오자서와 백비와 함께 초나라를 공격해서

서(舒) 땅을 함락시키고

전에 초나라에 항복했던 두 공자를 사로잡아 죽였다.

因欲至郢,將軍孫武曰:

「民勞,未可,且待之。」乃歸。

합려가 승세를 타고 초나라의 서울인 영도로 진격하려 했으나

장군 손무(孫武)가 반대했다.

「군사들이 싸움에 지쳐 아직 초나라의 영성을 공격할 시기가 아닙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기회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에 군사를 이끌고 본국으로 귀환했다.

注[一]集解徐廣曰:「伯州者,晉伯宗之子也。伯州之子曰郤宛,郤宛之子

曰伯嚭。宛亦姓伯,又別氏郤。楚世家云殺郤宛,宛之宗姓伯氏子曰嚭。吳世

家云楚誅伯州,其孫伯嚭奔吳也。」索隱按:州犁,伯宗子也。]宛,州犁

子。伯,]宛子。音喜。伯氏別姓]。

注[二]索隱公子燭庸及蓋餘也。

四年,吳伐楚,取六與灊。[一]

합려 4년(기원전 511년) 오나라는 다시 초나라를 공격하여

육(六)과 잠(潛)을 점령했다.

五年,伐越,敗之。

합려 5년(기원전 510년) 월나라를 공격하여 월군을 패주시켰다.

六年,楚昭王使公子囊瓦[二] 將兵伐吳。

吳使伍員迎擊,大破楚軍於豫章,[三]取楚之居巢。

합려 6년(기원전 509년)

초소왕(楚昭王)은 공자 낭와(囊瓦)를 대장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를 정벌하게 했다.

오나라는 오원(伍員,자서)으로 하여금 막게 했다.

오원은 예장(豫章)에서 초군을 대파하고 초나라의 거소(居巢)를 빼앗았다.

注[一]集解六,古國,皋陶之後所封。灊縣有天柱山。索隱六,古國也,皋陶

之後所封。灊縣有天柱山。

注[二]集解案:左傳楚公子貞字子囊,其孫名瓦,字子常。此言公子,又兼稱

囊瓦,誤也。索隱按:左氏楚公子貞字子囊,其孫名瓦,字子常。此言公子,

又兼稱囊瓦,蓋誤。

注[三]集解豫章在江南。索隱按:杜預云「昔豫章在江北,蓋分後徙之於江南

也」。

九年,吳王闔廬謂子胥﹑孫武曰:

「始子言郢未可入,今果何如?」

합려 9년(기원전 506년) 오왕 합려가 오자서와 손무에게 말했다.

「전에 두 장군들은 군사들이 지쳐 있어 초나라의 서울을 공격할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과연 어떻습니까?」

二子對曰:

「楚將囊瓦貪,而唐﹑蔡皆怨之。

王必欲大伐之,必先得唐﹑蔡乃可。」

두 사람이 대답했다.

「초나라의 대장 낭와가 탐욕하여

당(唐)과 채(蔡), 두 나라가 모두 그를 원망합니다.

대왕께서 초나라를 꼭 공격하고 싶으시면,

먼저 당과 채, 두 나라를 얻어야만 가능합니다.」

闔廬聽之,悉興師與唐﹑蔡伐楚,

與楚夾漢水而陳。

합려가 그 의견을 좇아 대군을 징발하여

당과 채, 두 나라 군사들과 함께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출동했다.

삼국의 군사들이 한수를 앞에 두고 진영을 세웠다.

吳王之弟夫概[一]將兵請從,王不聽,

합려의 동생 부개(夫槪)가 병을 이끌고 종군을 청했으나

합려가 허락하지 않았다.

遂以其屬五千人 擊楚將子常。[二]

子常敗走,奔鄭。

부개는 자기가 데려온 5천의 군사를 이끌고

자상이 이끌던 초군의 진지를 기습하자

자상은 패주하여 정나라로 도망쳤다.

於是吳乘勝而前,五戰,遂至郢。[三]

己卯,楚昭王出奔。

庚辰,吳王入郢。

오군은 승세를 타고 한수를 도하해서

다섯 번의 싸움에서 모두 이기고, 초나라의 서울 영성에 이르렀다.

그해 기묘(己卯) 일에 초소왕이 영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다음 날인 경진(庚辰) 일에 합려가 영성에 입성했다.

注[一]索隱古賚反。

注[二]集解子常,公孫瓦。索隱公孫瓦也。

注[三]集解郢,楚都。索隱郢,楚都也。音以正反,又一音以井反。

昭王出亡,入雲夢;

盜擊王,王走鄖。[一]

초소왕은 영성에서 달아나 운몽(雲夢)으로 들어갔다.

도적들이 소왕의 일행을 습격하자 그는 다시 운(鄖) 땅으로 몸을 피했다.

鄖公弟懷曰:

「平王殺我父,我殺其子,不亦可乎!」

운공(鄖公)의 동생이 투회(鬪懷)가 초소왕에게 말했다.

「초왕의 아버지 평왕이 아무 죄도 없는 나의 부친을 살해했다.

내가 어찌 그의 아들을 죽이지 못하겠는가?」

鄖公恐其弟殺王,與王奔隨。[二]

운공은 그의 동생이 초소왕을 살해할까 걱정하여

왕을 데리고 수(隨)나라로 들어갔다.

吳兵圍隨,謂隨人曰:

「周之子孫在漢川者,楚盡滅之。」

오나라 군사들이 수나라를 포위하고 수나라 사람들에게 말했다.

「주나라 자손들로 한수(漢水) 주변에 있었던 제후국들을

초나라가 모두 멸망시켰다. 」

隨人欲殺王,

王子綦匿王,己自為王以當之。

隨人卜與王於吳,不吉,乃謝吳不與王。

수나라 사람들이 초왕을 죽이려고 하자

왕자기(王子綦)가 왕을 은닉하고 초왕을 대신하여 죽으려고 했다.

수나라 사람들이 초왕을 죽이고 오왕을 섬기는 일에 대해 점을 쳤으나

점괘가 불길하게 나왔다.

수나라 사람들이 오군의 청을 거절하고 초왕을 내주지 않았다.

注[一]集解音云,國名。索隱奏雲二音。走,向也。鄖,國名。

注[二]正義今有楚昭王故城,昭王奔隨之處,宮之北城即是。

始伍員與申包胥為交,

員之亡也,謂包胥曰:

「我必覆楚。」

옛날 오원은 신포서와 초나라에 같이 있을 때 친교가 있었다.

오원이 초나라에서 도망칠 때 도중에 우연히 신포서를 만나 말했다.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전복시키고야 말겠네!」

包胥曰:「我必存之。」

신포서가 대답했다.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초나라를 보존시키겠네!」

及吳兵入郢,伍子胥求昭王。

既不得,乃掘楚平王墓,

出其尸,鞭之三百,然後已。

이윽고 오군을 이끌고 영성에 입성한 오자서가 초소왕을 찾았으나

그는 이미 도망친 다음이었다.

할 수 없이 초평왕의 묘를 발굴하여

그 시신을 꺼내어 채찍으로 3백 대 내리치고서야 멈추었다.

申包胥亡於山中,使人謂子胥曰:

그 소식을 들은 신포서가 영성에서 도망처 산중에 있다가

사람을 시켜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子之報讎,其以甚乎!

吾聞之,人觽者勝天,天定亦能破人。[一]

今子故平王之臣,親北面而事之,

今至於僇死人,此豈其無天道之極乎!」

「아들이 비록 그 부친의 원수를 갚는다고는 하나

그 정도가 너무 심하지 않는가?

나는 ‘사람이 많으면 일시적으로 하늘을 이길 수 있다고 하나

일단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사람을 물리칠 수가 있다’고 알고 있네!

지금 그대는 옛날 평왕의 신하로써 북면하여 받들었으면서

지금에 와서는 그 시신까지 욕보이니

어찌 이보다 더 천도에 어긋날 일을 행할 수 있단 말인가?」

伍子胥曰:「為我謝申包胥曰,

吾日莫途遠,吾故倒行而逆施之。」[二]

오자서가 말했다.

「나를 위하여 신포서에게 사죄하는 말을 전하라!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머니〔일모도원(日暮途遠)〕

내가 어쩔 수 없이 일을 거꾸로 행하며

하늘의 뜻에 반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네!」

於是申包胥走秦告急,求救於秦。秦不許。

신포서는 산중에서 나와 섬진(陝秦)으로 가서 초나라의 위급을 고하며

구원군을 청했으나 섬진의 애공(哀公)이 신포서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았다.

包胥立於秦廷,晝夜哭,七日七夜不絕其聲。

秦哀公憐之,曰:

「楚雖無道,有臣若是,可無存乎!」

신포서가 섬진의 궁정의 뜰에 엎드려 밤낮으로 통곡을 하여

칠일동안 그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진애공이 이를 가엾게 여기며 말했다.

「초나라가 비록 무도하다고는 하지만

이와 같은 충신이 있으니 어찌 망하기야 하겠는가?」

乃遣車五百乘救楚擊吳。

六月,敗吳兵於稷。[三]

진애공은 즉시 병거 5백승을 내주며

초나라를 구하고 오군을 물리치라고 명했다.

그해 6월에 섬진의 군사들이 직(稷) 땅에서 오군을 패퇴시켰다.

會吳王久留楚求昭王,

而闔廬弟夫概乃亡歸,自立為王。

그때 오왕 합려는 초소왕을 사로잡기 위해

오랫동안 초나라 영성에 주둔했었는데

합려의 동생 부개가 몰래 도망쳐 오나라에 들어가

스스로 오왕의 자리에 올랐다.

闔廬聞之,乃釋楚而歸,

擊其弟夫概。夫概敗走,遂奔楚。

합려가 듣고 초나라를 버리고 오나라로 들어가

부개를 공격하여 패주시켰다.

부개는 초나라로 달아났다.

楚昭王見吳有內亂,乃復入郢。

封夫概於堂谿,[四]為堂谿氏。

초소왕은 오나라에 내란이 일어난 것을 알고

즉시 영성으로 다시 들어갔다.

초왕은 부개를 당계(堂谿)에 봉했다.

부개는 그 성을 당계씨로 바꿨다.

楚復與吳戰,敗吳,吳王乃歸。

초나라가 다시 오나라와 싸워 오를 패주시켰다.

합려는 다시 오나라로 돌아갔다.

注[一]正義申包胥言聞人#者雖一時凶暴勝天,及天降其凶,亦破於彊暴之人。

注[二]索隱按:倒音丁老反。施音如字。子胥言志在復讎,常恐且死,不遂本

心,今幸而報,豈論理乎!譬如人行,前途尚遠,而日勢已莫,其在顛倒疾行,

逆理施事,何得責吾順理乎!

注[三]集解稷丘,地名,在郊外。索隱按:左傳作「稷丘」。杜預云「稷丘,地

名,在郊外」。

注[四]集解徐廣曰:「在慎縣。」駰案:地理志汝南有吳房縣。應劭曰「夫概奔

楚,封於堂谿,本房子國,以封吳,故曰吳房」,然則不得在慎縣也。正義案:

今豫州吳房縣在州西北九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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