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八十五
呂不韋列傳第二十五
려불위렬전제25-1
呂不韋者,陽翟[一]大賈[二]人也。
往來販賤賣貴,[三]家累千金。
여불위(呂不韋)는 한나라 양책(陽翟)의 대상이다.
여러 나라를 돌아니며 싼 값에 물건을 사서 비싼 값에 팔아
수 천금의 재산을 모았다.
注[一]索隱音狄,俗又音宅。地理志縣名,屬潁川。按:戰國策以不韋為濮陽
人,又記其事W亦多,與此傳不同。班固雖云太史公採戰國策,然為此傳當別
有所聞見,故不全依彼說。或者劉向定戰國策時,以己異聞改彼書,遂令不與
史記合也。正義陽翟,今河南府縣。
注[二]索隱音古。鄭玄注周禮云「行曰商,處曰賈」。
注[三]集解徐廣曰:「一本云『陽翟大賈也,往來賤買貴賣』也。」索隱王劭賣
音作育。案:育賣義同,今依義。
秦昭王四十年,太子死。
其四十二年,以其次子安國君[一]為太子。
安國君有子二十餘人。安國君有所甚愛姬,
立以為正夫人,號曰華陽夫人。
진소왕 40년(기원전 267년) 진나라의 태자가 죽었다.
42년 태자의 동생 안국군(安國君)을 태자로 삼았다.
안국군에게 20여 명에 달하는 아들이 있었고
평소에 매우 사랑하는 희첩이 있어
후에 그녀를 정비로 삼아 화양부인(華陽夫人)이라고 칭했다.
華陽夫人無子。安國君中男名子楚,[二]
子楚母曰夏姬,毋愛。
子楚為秦質[三]子於趙。
秦數攻趙,趙不甚禮子楚。
그러나 화양부인과의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다.
안국군의 아들 중에 이름이 자초(子楚)라고 있었는데
그의 모친은 하희(夏姬)였으나 안국군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자초는 조나라에 인질이 되었다.
진나라가 수차에 걸쳐 조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는 자초에게 진나라의 왕손에 대한 예를 행하지 않았다.
注[一]索隱名柱,後立,是為孝文王也。
注[二]索隱莊襄王也。戰國策曰本名異人,後從趙還,不韋使以楚服見,王
后悅之,曰「吾楚人也而子字之」,乃變其名曰子楚也。
注[三]索隱舊音致,今讀依此。穀梁傳曰「交質不及二伯」。左傳曰「信不由中,
質無益也」。
子楚,秦諸庶孽孫,[一]
質於諸侯,車乘進用[二]不饒,居處困,不得意。
呂不韋賈邯鄲,見而憐之,曰
「此奇貨可居」。[三]
자초는 진나라의 서얼 춘신의 왕손으로
제후의 나라에 인질이 되어 거마를 타고 행차할 때도 충분치 못했고
거차하는 숙소는 곤궁하여 마음먹은 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여불위가 한단에 장사하러 왔다가 지나가는 자초를 보고
매우 측은하게 여기며 말했다.
“ 참으로 사둘만만 진기한 재화로다!”
乃往見子楚,說曰:「吾能大子之門。」
그리고는 곧바로 자초를 찾아가 말했다.
" 저는 공자의 문호를 크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子楚笑曰:「且自大君之門,而乃大吾門!」
자초가 웃으며 말했다.
" 우선 그대 자신의 집 문호를 크게 만들고,
이후에나 내 집의 문호를 넓히시오."
呂不韋曰:「子不知也,吾門待子門而大。」
여불위가 말했다.
" 공자께서는 모르시고 계십니다.
우리집의 문호는 공자를 맞이하기 위해 이미 크게 높여놨습니다. "
子楚心知所謂,乃引與坐,深語。[四]
呂不韋曰:
자초가 마음 속으로 여불위의 뜻을 짐작하고
여불위를 인도하여 자리에 앉도록 한 다음
마음속에 품고 있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불위가 다시 말했다.
「秦王老矣,安國君得為太子。
竊聞安國君愛幸華陽夫人,華陽夫人無子,
能立適嗣者[五] 獨華陽夫人耳。
" 진왕은 연세가 매우 연로하고
안국군은 태자가 되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안국은 화양부인(華陽夫人)을 사랑하고 있으나
그녀는 아들을 낳지 못하고 있으니
누가 태자의 뒤를 이을 황태손으로 설지는
오로지 화양부인에게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今子兄弟二十餘人,
子又居中,不甚見幸,久質諸侯。
即大王薨,安國君立為王,
則子毋幾得與長子[六]
及諸子旦暮在前者爭為太子矣。」
지금 공자의 형제는 모두 20여 인에 달하고
그 중 공자의 서열은 중간 정도이나 크게 총애를 받지 못한 결과
오랫동안 제후들의 나라에 인질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진왕께서 돌아가신다면
부친이신 안국군께서 왕위에 오르더라도
공자께서는 장자가 될 기회도 없을뿐 아니라
여러 공자들과 함께 아침저녁으로 안국군 앞에서
경쟁하여 태자가 될 기회도 없습니다. "
子楚曰:「然。為之柰何?」
자초가 말했다.
" 그렇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
呂不韋曰:
「子貧,客於此,
非有以奉獻於親及結賓客也。
不韋雖貧,請以千金為子西游,
事安國君及華陽夫人,立子為適嗣。」
여불위가 답했다.
" 공자께서는 가진 재물이 없이 이곳에서 인질생활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진나라에 계시는 부친이나 화양부인께 바칠 것도 없고
또 이곳에서 빈객들과 사귈 수도 없습니다.
이 사람이 비록 가난하다하나
청컨대 천금의 돈을 가지고 서쪽으로 들어가
안국군과 화양부인을 받들어 공자를 적서로 세우려고 합니다. "
子楚乃頓首曰:
「必如君策,請得分秦國 與君共之。」
자초가 머리를 숙여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 일이 그대의 계획대로 된다면
약속컨대 진나라를 나누어 그대와 함께 다스리겠소."
注[一]索隱韓王信傳亦曰「韓信,襄王孫」。張晏曰「孺子曰子」。何休注
公羊「,賤子也。以非嫡正,故曰」。
注[二]索隱按:下文云「以五百金為進用」,宜依小顏讀為「賮」,音才刃反。
進者,財也,古字假借之也。
注[三]集解以子楚方財貨也。正義戰國策云:「濮陽人呂不韋賈邯鄲,見秦質子
異人,謂其父曰:『耕田之利幾倍?』曰:『十倍。』『珠玉之贏幾倍?』曰:『百倍。』『立主定國之贏幾倍?』
曰:『無數。』不韋曰:『今力田疾作,不得煖衣飽食;今定國立君,澤可遺後
世,願往事之。』秦子異人質於趙,處於城,故往說之。乃說秦王后弟陽泉
君曰:『君之罪至死,君知之乎?君門下無不居高官尊位,太子門下無貴者,而
駿馬盈外廄,美女充後庭。王之春秋高矣,一日山陵崩,太子用事,君危於累
卵,而不壽於朝生。今有計可以使君富千萬,寧於太山,必無危亡之患矣。』
陽泉曰:『請聞其說。』不韋曰:『王年高矣,王后無子。子傒有承國之業,士
倉又輔之。王一日山陵崩,子傒立,士倉用事,王后之門必生蓬蒿。子楚異人,
賢材也,棄在於趙,無母,引領西望,欲一得歸。王后誠請而立之,是異人無
國有國,王后無子有子。』陽泉曰:『諾。』入說王后,為請於趙而歸之。」
注[四]索隱謂既解不韋所言之意,遂與密謀深語也。
注[五]正義適音嫡。
注[六]索隱毋音無。幾音冀。幾,望也。左傳曰「日月以幾」。戰國策曰「子傒
承國之業」。高誘注云「子傒,秦太子異人之異母兄弟也」。正義言子楚無望得
為太子。
呂不韋乃以五百金與子楚,為進用,結賓客;
而復以五百金買奇物玩好,自奉而西游秦,
여불위는 5백 금을 자초에게 주어
빈객들과 교분을 맺는 데 쓰도록 하고
자기는 나머지 5백 금으로 기이한 보물과 노리개를 사서 휴대하고
서쪽의 진나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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