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是夜, 紫鸞以至誠問於妾曰:
이날 밤에 자란이 지성으로 나에게 물었다.
“女子生而願爲有嫁之心, 人皆有之.
"여자로 태어나서 시집가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汝之所思, 未知何許情人, 悶汝之形容, 日漸減舊, 以情悃問之, 妾須毋隱.”
네가 생각하고 있는 애인이 누군지는 알지 못하나, 너의 안색이 날로 수척해 가므로 안타까이 여겨 내 지성으로 묻나니, 조금도 숨기지 말고 이야기하라."
妾起而謝曰:
저는 일어나 사례하며 말했다.
“宮人甚多, 恐有囑喧, 不敢開口, 今承悃愊, 何敢隱乎?”
"궁인이 하도 많아 누가 엿들을까 두려워 말을 못하겠거니와 네가 지극한 우정으로 묻는데 어찌 숨길 수 있겠니?"
上年秋, 黃菊初開, 紅葉漸凋之時,
지난 가을 국화꽃이 피기 시작하고 단풍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大君獨坐書堂, 使侍女磨墨張縑, 寫七言四韻十首.
대군이 홀로 서당에 앉아 시녀들에게 먹을 갈고 비단을 펼치게 하고는 칠언사운 10수를 베껴 쓰시고 있었는데,
小童自外而進曰:
동자가 들어와 고하기를,
“有年少儒生, 自稱金進士見之.”
"나이 어린 선비가 김진사라 자칭하면서 대군을 뵈옵겠다 하옵니다."하니,
大君喜曰: “金進士來矣.”
대군은 기뻐하시면서,
"김진사가 왔구나."하시고는,
使之迎入, 則布衣革帶士, 趨進上階, 如鳥舒翼. 當席拜坐, 容儀神秀, 若仙中人也.
맞아들이게 한즉, 베옷을 입고 가죽띠를 맨 선비로서 얼굴과 거동은 신선 세계의 사람과 같더구나.
大君一見傾心, 卽趨席對坐,
대군이 한 번 보고 마음을 기울여 곧 자리를 옮겨 마주앉았다.
進士避席而拜辭曰:
진사님이 절을 하고 아뢰었다.
“猥荷盛眷, 屢辱尊命, 今承警咳, 無任悚恢.”
"외람 되어 많은 사랑을 입고 존명을 욕되게 하고 이제야 인사를 올리게 되오니 황송하기 말할 수 없사옵니다."
大君慰之曰:
대군은 위로의 말을 하시었다.
“久仰聲華, 坐屋冠盖, 光動一室, 錫我百朋.”
“오랜동안 명성을 사모하다가 집에 갓을 마주하고 앉으니 빛이 방안 가득하니 나에게 백 명의 벗님들을 주심입니다.
進士初入, 已與侍女相面, 而大君以進士年少儒生, 中心易之, 不令以妾等避之.
진사님이 처음 들어올 때에 이미 우리와 상면을 하였으나, 대군은 진사님의 나이가 어리고 착하므로 우리로 하여금 피하도록 하지도 아니 하였었지.
大君謂進士曰:
대군이 진사님 보고 말씀하시었다.
“秋景甚好, 願賜一詩, 以此堂生彩.”
"가을 경치가 매우 좋으니 원컨대 시 한 수를 지어 이 집으로 하여금 광채가 나도록 하여 주오."
進士避席而辭曰:
진사가 자리를 피하고 사양하며 말했다.
“虛名蔑實, 詩之格律, 小子安敢知乎?”
“허황한 이름이 사실을 가렸군요. 시의 격률을 소가 어지 감히 알겠습니까?“
大君以金蓮唱歌, 芙蓉彈琴, 寶蓮吹簫, 飛瓊行盃, 以妾奉硯.
대군은 금련에겐 노래 부르기를, 부용에겐 탄금을, 보련에겐 소 불기를, 비경에겐 술잔 심부름을, 나에겐 벼루 심부름을 시켰다.
于時, 妾年十七, 一見郎君, 魂迷意闌. 郎君亦顧妾, 而含笑頻頻送目.
그때 내이 열일곱 살이었다. 낭군을 한 번 보고는 정신이 어지럽고 생각이 아득했다. 낭군도 첩을 돌아보고는 미소를 머금고 자주자주 눈길을 주었다.
大君謂進士曰: “我之待君, 誠款至矣. 君何惜一吐瓊琚, 使此堂無顔色乎?”
대군이 진사에게 말했다.
“나는 그대를 기다리며 정성을 다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옥구슬 같은 시구 한 번 짓기를 아껴서 내 집으로 하여금 안색이 없게 하는가?
進士卽握筆, 書五言四韻一首曰:
진사는 곧 붓을 잡고 오언사운 한 수를 써내려갔다.
旅鴈向南去, 宮中秋色深.
水寒荷折玉, 霜重菊垂金.
綺席紅顔女, 瑤絃白雪音.
流霞一斗酒, 先醉意難禁.
기러기 남쪽을 향해 가니
궁안에 가을빛이 깊구나.
물이 차가워 연꽃은 구슬 되어 꺾이고,
서리가 무거우니 국화는 금빛으로 드리우네.
비단 자리엔 홍안의 미녀
옥 같은 거문고 줄엔 백운 같은 음일세.
노을이 흐르니 한 말 슐이로다[유하주 한 말 술에]
먼저 취하니 몸 가누기 어려워라.
大君吟咏再三而驚之曰: “眞所謂天下之奇才也. 何相見之晩耶!”
대군이 재삼 읊으시며 놀라워했다.
"진실로 천하의 기재로다. 어찌 서로 만나기가 늦었던고."
侍女十人, 一時回顧, 莫不動容曰:
시녀 십인도 서로 얼골을 돌니여 경탄하지 안는 자가 업섯다
“此必王子晋, 駕鶴而來于塵寰. 豈有如此人哉!”
시녀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하길,
"이는 반드시 신선 왕자이 학을 타고 진세에 오신 것이니, 어찌 이와 같은 사람이 있으리오." 라고 하였지.
大君把盃而問曰:
대군은 잔을 들면서 물었다.
“古之詩人, 孰爲宗匠?”
"옛날 시인의 누구를 종장(宗匠)이라 하느뇨"
進士曰: “以小子所見言之, 李白天上神仙, 長在玉皇香案前, 而來遊玄圃, 餐盡玉液, 不勝醉興, 折得萬樹琪花, 隨風雨散落人間之氣像也.
진사가 답했다.
“소자의 소견으로 말씀드리면 이백은 천상의 신선으로 오래도록 옥황상제의 향안 앞에 있다가 현퐁에 와서 노닐며 옥액을 다 마시고 취흥을 이기지 못하여 온갖 나무와 기화를 꺾어 비바람을 따라 인간세상에 떨어진 기상입니다.
至於盧王, 海上仙人, 日月出沒, 雲華變化, 滄波動搖, 鯨魚噴薄, 島嶼蒼茫, 草樹薈鬱, 浪花菱葉, 水鳥之歌, 蛟龍之淚, 悉藏於胸襟, 此詩之造化也.
노왕에 이르러서는 해상의 신선으로 일월의 출몰, 창파의 동요, 고래의 분출, 도서의 창망함, 풀과 숲의 울창함, 갈대꽃과 마름의 잎, 물새의 노래, 교룡의 눈물 등을 모두 가슴에 품었으니 이것은 시의 조화입니다.
孟浩然音響最高, 此學師曠, 習音律之人也.
맹호연은 음향이 가장 높으니 이는 사광에게서 배웠습니다.
李義山學得仙術, 早役詩魔, 一生編什, 無非鬼語也. 自餘紛紛, 何足盡陳.”
이의산은 신선술을 배워 일찍이 시마를 부렸으며 일생동안 지은 것이 귀신의 말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나머지 분들도 제각기 특색이 있으니 어찌 다 진술하리오?“
[진사는 이럿케 대군이 무르심에 대하야 리태백 로왕 맹호연 리의산 두자미를 의론하고 각각 그들에 장단을 드러 말하엿다. 그의 온츅(蘊蓄)하고 해박(該博)한 사리는 정통하다 아니할 수 업다.]
大君曰:
“日與文士論詩, 以草堂爲首者多, 此言何謂也?”
날마다 문사들과 시를 논하면 두보를 제일로 곱는 이가 많은데 이것은 어떤 점을 말하는가?“
進士曰:
“然. 以俗儒所尙言之, 猶膾炙之悅人口. 子美之詩, 眞膾與炙也.”
“그렇습니다. 속유들이 숭상하는 바를 말씀드리면 회와 구운 고기가 사람들 입을 즐겁게 함과 같습니다. 두보의 시는 참으로 회와 구운 고기입니다.
大君曰:
“百體俱備, 比興極精, 豈以草堂爲輕哉?”
백체가 구비하고 비와 흥이 극히 정밀한데 어찌 두보를 경박하다 하는고?“
進士謝曰:
“小子何敢輕之. 論其長處, 則如漢武帝, 御未央之宮, 憤四夷之猖夏, 命將薄伐, 百虎萬態之士, 連亙數千里,
“소자가 어찌 그를 경박하다 하리오? 그 장점을 논하면 한무제가 미앙궁에 앉아 오랑캐가 중원을 침공하는 것에 분노하여 장수들에게 쳐 없애기를 명령하면 백만 군사들이 수천 리에 뻗친 것 같고,
言其短處, 則如使相如賦長楊,馬遷草封禪. 求神山, 則如使東方朔侍左右, 西王母獻天桃. 是以杜甫之文章, 可謂百體之俱備矣.
그 단점을 말한다면 사마상여에게 장양부를 짓게 하고 사마천에게 봉선문을 초한 것과 같으며, 신선산을 구한 것으로는 동방삭에게 좌우에서 모시게 하고 서왕모에게 천도를 바치게 함과 같습니다. 이러므로 두보의 문장은 백체를 구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至比於李白, 則不啻天壤之不侔, 江海之不同也. 至比於王孟, 則子美驅車先適, 而王孟執鞭爭道矣.’
이백과 비교함에 이르러서는 하늘과 땅이 가지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강과 바다가 다른 것과 같습니다. 왕유 맹호연과 비교함에 이르러서는 두보가 수레를 몰아 앞서 가면 왕유 맹호연이 채직을 잡고 길을 다투는 것과 같습니다.
大君曰
.‘聞君之言, 胸中惝恍, 若御長風上太淸. 第杜詩, 天下之高文, 雖不足於樂府, 豈與王孟爭道哉?
그대의 말을 들으니 가슴 속이 황홀하여 징풍을 타고 태청궁에 오르는 것 같네. 다만 두시가 천하의 고귀한 문장이라 비록 악부에는 적합하지 않지마는 어찌 왕유나 맹호연과 길을 다투겠는가?
雖然, 姑舍是, 願君又費一吟, 使此堂增倍一般光彩.”
비록 그러하나 여기서 그만두고 원컨대 자네는 시 한 편을 지어 이 집을 광채를 배가시켜 주오.“
進士卽賦七言四韻一首, 其詩曰:
진사는 즉시 칠언사운을 지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烟散金塘露氣凉, 碧天如水夜何長.
微風有意吹垂箔, 白月多情入小堂.
夜畔隱開松反影, 盃中波好菊留香.
院公雖小頗能飮, 莫怪瓮間醉後狂.
연파금당(烟波金塘)에 이슬 긔운이 차고
푸른 히늘은 물결 같은데 밤은 어이 긴고
가는 바람은 뜻이 잇서 부러 발을 걷어치니
흰 달은 다정히 적은 집으로 들도다
들두던의 그늘 지우믄 솔나무 그림자의 반사함이로다
슐잔 가온데의 기우러지믄 조흔 국화의 향긔를 도드도다
완공은 연소하다 하지만 자못 능히 마시고
괴상함은 업스나 마시고 취한 후에는 미치도다
大君益奇之, 前席摎手曰:
“進士非今世之才. 非余之所能論其高下也. 且非徒能文章筆法, 又極神妙, 天之生君於東方, 必非偶然也.”
대군은 무의식적으로 자리를 각가히 하사 손을 잡으시면서.
"진사는 금세의 재사는 아니로다. 내가 그 고하를 논할 바 아니로다. 도한 문장 필법에 능할 뿌만 아니라 또한 극히 신묘하도다. 한울이 그대를 동방에 나게 하시믄 우연한 일이 아니로다."
又使草書, 揮筆之際, 筆墨誤落於妾之手指, 如蠅翼. 妾以此爲榮, 不爲拭除, 左右宮人, 咸顧微笑, 比之登龍門.
진사가 붓을 드러 글시를 쓸 때에 먹점이 그릇 운영의 손가락에 떨어졌다. 마치 파리날개를 그린 것 같았다. 운영은 이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야 씻으려고도 아니 한다. 좌우의 궁인들은 모다 미소지으며 이를 등용문에 비했다.
時夜將半, 更漏相催, 大君欠身思睡曰:
“我醉矣. 君亦退休, 勿忘‘明朝有意抱琴來’之句.”
어언간 밤중에 이르러 시간을 재촉하니 대군도 하품하고 졸음이 왔다.
“나는 취햇다. 그대는 물러나 쉬라. ‘명조유의포금래(明朝有意抱琴來)’란 구절을 잊지 말게.”
翌日, 大君再三吟其兩詩而歎曰: “當與謹甫爭雄, 而其淸雅之態, 則過之矣.”
이튿날 아침에 대군은 두 편의 시를 재삼 읊조리면서 감탄했다.
“성삼문과 자웅을 겨를 만하지만 진사의 시는 오히려 쳥아(淸雅)한 맛이 있는 점에서는 지나치도다.”
妾自是, 寢不能寐, 食滅心煩, 不覺衣帶之緩, 汝未能織之乎?”
나는 이로부터 누워도 능히 자지를 못하고, 밥맛은 떨어지고 마음이 괴로워서 허리허리띠를 푸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는데, 너는 느끼지 못하였는가?
紫鸞曰: “我忘之矣. 今聞汝言, 恍若酒醒.”
자란은,
"그래 내 잊었었군. 이제 너의 말을 들으니 정신의 맑아짐이 마치 술깬 것과 같구나." 라고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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