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八十四

屈原賈生列傳第二十四

굴원가생열전 제24

1.屈原열전 01

굴원열전 /사기열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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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굴원열전'은 위에 올린 바 있으나 다시 나누어서 탑재한다.

  屈原者,名平,楚之同姓也。〔一〕

為楚懷王左徒。〔二〕

博聞彊志,明於治亂,

嫺〔三〕於辭令。

入則與王圖議國事,以出號令;

出則接遇賓客,應對諸侯。

王甚任之。

굴원은 이름이 평(平)이고 초나라 왕족 출신이다.

초회왕(B.C.328년- B.C.296년 재위) 때 좌도(佐徒)였다.

위인이 견문이 넓고 의지가 굳세었고

국가의 흥망성쇠에 밝았으며 문장에 뛰어났다.

조정에 들어가서는 왕과 함께 국사를 논한 후에

호령을 내렸으며

밖으로 나와서는 제후들이 보내는 빈객들을 접대하고

제후들을 상대했다.

이에 왕이 그를 매우 신임했다.

  〔一〕正義屈、景、昭皆楚之族。王逸云:「楚王始都是,生子瑕,受屈為卿,因以為氏。」

  〔二〕正義蓋今(在)左右拾遺之類。

 〔三〕集解史記音隱曰:「音閑」。

上官大夫與之同列,爭寵而心害其能。

굴원이 상관대부(上官大夫) 근상(靳尙)과 같은 반열에 오르자

근상은 초왕의 총애를 차지하고자

마음속으로 굴원의 능력을 시기하여 해치려했다.

懷王使屈原造為憲令,

屈平屬草稿〔一〕未定。

上官大夫見而欲奪之,〔二〕

屈平不與,因讒之曰:

회왕이 굴원에게 명하여 나라의 율령을 제정하라고 했다.

굴원이 율령의 초안을 미처 완성하기 전에 상관대부가 알고

그 일을 빼앗으려고 했다.

굴원이 그 일을 넘겨주지 않자 상관대부는 왕에게 다음과 같이 참소했다.

  〔一〕索隱屬音燭。草稿謂創制憲令之本也。漢書作「草具」,崔浩謂發始造端也。

  〔二〕正義王逸云上官靳尚。

「王使屈平為令,眾莫不知,

每一令出,平伐其功,(曰)以為「非我莫能為」也。」

“ 대왕께서 굴원을 시켜 율령을 제정하라고 명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법령이 나올 때마다 그는 자기의 공이라고 자랑하며

‘ 내가 아니면 율령을 제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王怒而疏屈平。

屈平疾王聽之不聰也,讒諂之蔽明也,

邪曲之害公也,方正之不容也,

故憂愁幽思而作離騷。

이에 초왕은 노하여 굴원을 멀리하게 되었다.

왕이 한쪽의 말만 듣고 사리를 판단할 줄 모르는 것과,

아첨과 모함하는 말을 구별할 줄 모르는 것과,

사악하고 비뚤어진 무리가 공명정대한 사람을 해치려는 것과,

단정하고 올바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애통하게 생각하여 우수와 근심에 잠겨 <이소(離疎)>〔一〕를 지었다.

〔一〕離騷者,猶離憂也。

索隱,亦作「騷」。按:楚詞「」作「騷」,音素刀反。應劭云「離,遭也;騷,憂也」。又離騷序云「離,別也;騷,愁也」。

夫天者,人之始也;

父母者,人之本也。

이소는 근심스러운 일을 만났음을 말한다.

대저 하늘은 사람의 시초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人窮則反本,故勞苦倦極,未嘗不呼天也;

疾痛慘怛,〔二〕未嘗不呼父母也。

사람이 궁지에 이르면 근본을 돌이켜보는 까닭에

힘들고 피곤할 때에 하늘을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질병으로 고통스럽고 참담해지면

부모를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二〕正義上七感反,下丁達反。慘,毒也。怛,痛也

屈平正道直行,〔三〕竭忠盡智以事其君,

讒人閒之,可謂窮矣。

굴원은 올바른 도리를 곧게 실천하여

충성을 다 바치고 지혜를 다 발휘하여

그 임금을 섬기었는데,

도리어 군주와 그의 사이가 이간질 당하여,

궁지에 처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三〕正義寒孟反。

信而見疑,忠而被謗,能無怨乎?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았고,

충성을 바쳤으나 비방을 당하니,

어찌 원망스럽지 않겠는가?

屈平之作離騷,蓋自怨生也。

굴원이 지은 <이소(離騷)>는

본디 이런 원망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國風好色而不淫,小雅怨誹而不亂。〔四〕

若離騷者,可謂兼之矣。

<국풍(國風)>은 미인을 읊으면서도 음탕하지 않았고,

<소아(小雅)>는 원망과 비난을 담고 있으나 반란의 내용이 아니었다.

이 이소와 같은 것은 그 두 가지를 다 겸한 것이라고 하겠다.

  〔四〕正義誹,方畏反。

上稱帝嚳,下道齊桓,

中述湯武,以刺世事。

위로는 제곡(帝嚳)을 칭송하고

아래로는 제환공(齊桓公)을 말하고 있으며

그 중간에는 상탕(商湯)과 주무왕(周武王)에 대해 기술하여

그것으로써 세상일을 풍자한 것이다.

明道德之廣崇,治亂之條貫,

靡不畢見。

도덕의 넓고 높음과

나라의 흥망성쇠의 인과관계를 밝혀

모두 자세히 드러나게 하지 않는 것이 없다.

其文約,其辭微,

其志絜,其行廉,

其稱文小而其指極大,

그 문장은 간략하나 자세하고,

그의 정신은 정결하며 그의 행동은 청아하다.

그 문장은 비록 작은 것을 세세하게 묘사했으나

그것이 뜻하는 바는 지극히 크고 깊으며

舉類邇而見義遠。

其志絜,故其稱物芳。

예로 든 것은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심오(深奧)하다.

그의 정신은 고결했음으로

그는 즐겨 그 자신을 향초(香草)로 비유했다.

其行廉,故死而不容自疏。

濯淖〔五〕汙泥〔六〕之中,

그는 올곧은 삶을 살았기에

죽어서도 소인배들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몸은 진흙 구덩이 속에서 있으나

능히 더러운 것을 씻을 수 있고,

  〔五〕索隱上音濁,下音鬧。

  〔六〕索隱上音烏故反,下音奴計反。

蟬蛻於濁穢,〔七〕

以浮游塵埃之外,不獲世之滋垢,

皭然〔八〕泥而不滓者也。〔九〕

마치 매미가 더러운 오물 속에서 허물을 벗어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듯이

세속의 먼지구덩이 밖으로 헤엄쳐 나와

더러운 세상의 떼에 물들지 않았다.

그는 청백하고 고결하여 진흙 속에 있어도

결코 물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七〕正義蛻音稅,去皮也,又他臥反。

  〔八〕集解徐廣曰:「皭,疏淨之貌。」索隱皭音自若反。徐廣云「疏淨之貌」。

  〔九〕索隱泥亦音涅,滓亦音淄,又並如字。

推此志也,雖與日月爭光可也。〔一0〕

이에 그의 지조를 추측해 본다면

그는 해와 달과도 빛을 다투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一0〕正義言屈平之仕濁世,去其汙垢,在塵埃之外。推此志意,雖與日月爭其光明,斯亦可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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